노동자다 아니다
뭐 어떻게 하다보니까 그런 일도 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특수고용노동자 문제야 말로 새로운 시대가 맞닥뜨릴 계급적 문제의 최전선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였다. 이게 고전적인 스탈린식의 마르크스주의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겠지. 그래서 다들 금속노조와 현대차에만 주목을 하였는데(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그렇게 표현해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특수고용이나 이런 데는 나 같이 별 배경도 없는 놈들이 가는 데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여러 특수고용 뭐라고 하는 직종 중에 노동자로서의 형식이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분야 중 하나가 레미콘믹서트럭이 아닌가 한다. 여기는 사실상 레미콘 생산업체에 소속돼있는 노동자나 다름이 없이 일을 하는데, 고용관계의 형식과 생산수단 소유권에서만 노동자가 사장님으로 둔갑을 한다. 이들이 노조를 결성한 것은 그런 차원에서 보면 이후 화물연대 등 보다는 훨씬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 관계당국에서도 별 고민이 없었는지 1999년인가 2000년에 어영부영 노동조합설립신고를 받아주고 말았다. 그래서 결성된 것이 전국건설운송노동조합이었다. 2002년에 이들의 투쟁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김미례 감독이 제작하였는데, 이게 바로 <노동자다 아니다>이다. 김미례 감독, 최근에 들어본 일 있지?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아무튼, 이 다큐멘터리를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나로서는, 눈에 익은 얼굴들도 있고… 다들 건강하신지… 어쩌다 보니 사장님이 돼버린 노동자들의 당혹감 같은 것들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초창기 싸우는 모습을 보면 민주노총 마크를 건설노조의 것보다 앞세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건 담쁘아저씨들도 그랬는데, 큰 조직이 배경에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싶어했던 것 같다. 아저씨들이 처음부터 그랬것니? 노조라 그러고 싸워야겠다 싶으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거지… 저 영상에 찍힌 노동자들 상태를 봐라. 공산주의자 같냐? 에휴…
그거 아냐? 유로트럭시뮬레이터라는 게임이 크게 유행하던 때가 있었잖아. 디시인사이드 이런데서 모니터 2개씩 연결해서 과몰입하는 애들 있었거든? 룸미러에 다는 장식품 같은 것도 비슷하게 모니터 앞에 걸어 놓고… 아예 실감나게 한다고 화물연대 조끼까지 구해서 입고 하던 녀석도 있었다. 얘가 공산주의자라서 그런 거냐? 아니잖아. 그냥 이 편에 서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거야…
아무튼 내용을 흝어보면 최근에 화물노동자 얘기하고, 노동조건이나 형태에 있어서 크게 다를 게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노래에 삽입된 주제곡이 귀에 꽂힌다. 제목은 똑같이 <노동자다 아니다>이다. 멜로디를 잘 들어보면 일본 만화 주제곡 같은 데가 있어 오타쿠의 심성을 자극한다. 건설노조 언저리들 노래가 좀 다 그런 느낌이다. 아무튼 가사를 음미해보시길 바란다. ‘탕뛰기’란 한탕에 얼마란 식으로 오고 간 횟수에 따라 운송료를 지급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시멘트 가득 싣고서 오늘도 떠나는 이 길
언제나 끝이 날까 얼마나 더 돌아야 사람답게 살 수 있나
오고 가는 길 위에 석양은 고달픈 오늘을 알까
어느 새 탕뛰기의 노예가 되어 힘겨운 하루가 덧없이 저무네
레미콘도 돌고 운전대도 돌고 세상은 미친듯이 돌아가는데
이랬다 저랬다 부르는대로 온 몸을 내던지고 구르라 하네
노동자다 아니다 따지지를 마라
우리 앞에 갈림길은 이제는 없다
오늘도 달린다 세상을 바꾼다
투쟁의 시동을 멈추지 마라
노동자의 길을 가련다
20년 전, 20년 전이다. 20년 전에! 똑같은 얘기를 똑같이… 똑같은 방식으로… 더 말해 뭐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