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독도 얘기 했나요
아침에 쓴 글에는 이렇게 썼다.
사실 확인을 위해선 한국 정부의 입장을 들어봐야 할텐데, 설명이 아무래도 애매하다. 언론 대응에 직접 나선 당국자들은 “정상회담 논의 의제는 아니었다”면서도 “정상 간 대화를 전부 공개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정식 논의 의제가 아니었더라도 정상 간 대화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독도 영유권 등의 언급을 했을 가능성을 부정하지 못하는 거다. 한 술 더 떠 김태효 1차장은 앞서 언론 인터뷰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선 남은 기금을 우리가 미래지향적으로 쓰면 된다고 했고, 독도 문제에 대해선 “일본 당국자가 우리에게 독도 얘기를 한 기억이 없다”고 했다. 이 발언의 맥락은 ‘일본 총리가 실제 민감한 문제를 거론했더라도 한일 간 현안으로 다룰 일은 아니다’는 것이어서 논란이 불가피하다.
핵심 당국자들의 이런 태도는 어디서 온 것일까?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 요구와 독도 영유권 거론 문제가 정상회담 논의 의제가 아니었는데 거론됐다면 그럴 수 있었던 자리는 친교를 목적으로 한 ‘오므라이스’ 집에서의 양자회동이다. 이 자리에서 나눈 대화는 두 사람과 통역만 알고 있다. 구체적 대화 내용은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드러나게 될 수도 있다. 심지어 김태효 1차장이나 박진 외교부 장관이 아는 내용조차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 애초에 일본과 싸우고 싶지 않아서 만든 자리였다. 일본 총리가 자기네 입장을 얘기한다고 한국 대통령이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도 없는 자리다. 그러니 당국자들도 ‘그런 얘기가 있었을 수도 있다’는 가정으로 답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이 국내 언론에 “기시다 총리가 일본 정치권에서 술이 가장 세지 않는가”라는 류의 흥미위주 발언만 흘려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통령실과 정부, 보수언론이 주장하듯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이다. 그런데 이 ‘오므라이스’ 대화와 관련한 진실공방이 보여주는 것은 앞으로 양국 간 갈등을 이루는 핵심쟁점에 대해 일본이 양보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점이다.
그 얼룩소라는 데에 아까 마지막으로 쓴 글(나는 율리시스라는 별도의 앱에다가 글을 쓰기 때문에 그 사이트에 접속을 안 해도 내가 쓴 글을 다시 복사-붙여넣기 할 수 있다)에서는 이렇게 썼다. 뭐 이제 안 하기로 했고 돈도 안 받기로 했으니 상관없겠지.
지난주 금요일 아침 방송에서 위안부 합의랑 독도 얘기를 정말 기시다 후미오가 했는지를 논해야 했다. 저는 이렇게 말했다. 위안부 합의 얘기는 직접적으로 했을 거다, 독도 얘기는 간접적으로 하고 언론플레이 하는 거 같다… 이 사이트 글에서도 동일하게 적었다. 이렇게 생각한 근거가 몇 가지 있다.
첫째, 일본 언론 보도 직후에 대통령실이 위안부 합의 얘기는 좀 얼버무렸는데, 독도는 절대 언급된 바 없다고 했다.
둘째, 일본도 그렇고 국내 보수세력의 생각도 그렇고 한일관계의 최근 파탄은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를 문재인 정권이 사실상 파기한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기시다 후미오는 한일위안부합의에 서명한 당사자다. 따라서 한일위안부합의 이행은 거론했을 개연성이 있다. 그러나 독도 영유권은 굳이 거론해봐야 실효적인 조치가 뒤따를 게 없다는 점에서 굳이 그랬을까 싶은 얘기다.
셋째, 독도 거론의 근거가 된 일본 언론 보도를 보면 NHK는 ‘전했다'(바로 위의 위안부 합의 이행에 대해선 ‘요구했다’고 해놨다)고 해놨고 교도통신은 ‘포괄적으로 언급했고 그 안에 독도 사안도 포함된다는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 있었다’고 했다.
一方、岸田総理大臣は会談で、慰安婦問題について、過去の両国間の合意の着実な履行を韓国側に求めたほか、島根県竹島をめぐる問題でも日本の立場を伝えました。
‘요구한 것’은 구체적으로 답이나 행동을 바란다는 거고 ‘전했다’는 거는 입장을 일방적으로 얘기했다는 거다. ‘요구한 것’에 대한 검증은 우리 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하는가를 보면 되는데 ‘전했다’는 것은 그냥 자기네 입장을 주장했다는 거니까 검증할 방법이 없다. 이런 주장은 일본 정부 관계자를 통해서 나왔는데, 실제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일테다.
이런 상황에 우리 정부는 어쨌든 독도 얘긴 없었다고 하니, 일단은 한일위안부합의에 대한 언급은 있었고 독도 얘긴 언론플레이인 걸 기본으로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난 주말 사이 대통령실의 국가안보실 1차장과 외교부 장관이 연이어 매스컴에 등장해 여러 발언을 쏟아냈는데, 이 사람들 발언 보니 좀 이상하다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정권 대일외교의 밑그림을 그렸을 걸로 추정(국가안보실장도 있고 왜 본인이 방송에 직접 나왔겠나?)되는 김태효 1차장의 발언은 특히 의미심장하다. 김태효 1차장은 한일위안부합의에 대해선 이미 피해 당사자들 상당수에 돈을 지출했고 남은 돈은 우리가 미래지향적으로 쓰면 된다고 설명했고 독도 문제에 대해선 최근 일본 쪽 실무자가 자기한테 관련한 얘기를 한 기억이 없다고 했다. 이게 무슨 얘기냐 하실 수 있다. 맥락을 봐야 한다. 이 얘기는 ‘설사 일본 총리가 거론을 했다 하더라도 우리가 추가로 해줄 건 없기에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다’란 뜻이다.
대통령실의 이런 태도가 의미하는 건 뭘까? 여기서 보통은 대통령실이 뭔가 감추고 있다! 밝혀라! 이렇게 간다. 민주당은 그 방향으로 갈 거다. 감추고 있을 수 있다. ‘지금은 곤란하니 기다려달라’의 악몽도 있지 않은가.
근데 저는 김태효씨 발언의 뉘앙스가 좀 더 미묘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추고 있다, 밝혀라! 이건 간명한 결론이니까 일단 넘어가고. 미묘한 구간으로 들어오면, 두 가지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본다. 첫째는 실제로 무슨 말이 오갔는지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다. 문제의 ‘위안부 합의’와 ‘독도 영유권’ 문제가 공식적인 정상회담 의제가 아니었다는 것은 명확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화가 오갈 수 있었던 공간은 ‘오므라이스’의 독대 자리다. 통역만 배석했을 것이므로 이 자리에서의 대화는 극히 제한된 사람들만이 알 수 있고 그 대상에는 김태효씨가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대통령 본인 역시 다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스키야키집에서부터 보면 일본주가 댓자로 상 위에 올라와있다. 오므라이스집에선 소폭을 말았다. 무슨 얘길 했는지 알 게 뭔가…
근데 이건 좀 너무하지. 대통령이 그래도 서울법대 나왔는데… 두 번째 가능성은 기시다 총리의 국내적 위상까지 우리가 걱정해주고 있을 가능성이다. 오늘 산케이신문은 기시다 총리는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규제 철폐 등을 요구했으나 진전이 없었고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와 독도 문제에 대해선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고 한다. 이거 원문을 찾아보려 했으나 유료플랜을 구독해야 볼 수 있다고 나와 확인하지 못했는데, 어쨌든 국내 언론 보도는 그렇다.
산케이라고 하면 영향력은 요미우리만 못하지만 이념지향에서 가장 오른쪽에 있는 신문이라고 할 정도의 위치다. 산케이는 이전 사설에서 기시다 총리가 한일정상회담에서 레이더-초계기 문제에 대한 한국 대통령의 불성실한 답을 용인해 어영부영 넘기려고 한다며 호통을 쳤다. 그러니까 일본 내 극우세력이 볼 때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윤석열 대통령과 회담을 한 것 자체가 못마땅한 거다. 우리가 갚아야 할 빚이 애초에 없는데 한국은 왜 지들이 대신 갚는다며 생색을 내며, 거기에 우리 총리는 왜 호응해서 춤을 추는가! 이게 일본 극우들의 심경이다.
김태효 1차장은 앞서 YTN 인터뷰에서 자민당 다수파는 여전히 아베파고 지방선거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시민단체 등의 주장은 기시다 내각이 받아들일 수 없고 따라서 우리도 요구할 수 없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이러한 설명은 일정부분 사실인데, 일본의 지방선거는 대개 무소속 후보들의 경쟁체제고 기성 정당은 지지 의사를 표명하는 정도에 그치는 게 일반화돼있다. 하지만 일부 경합지역과 보궐선거 등에서 거둔 성적이 정권의 앞날을 점치는데 굉장히 중하게 평가된다. 더군다나 기시다 총리는 지지율이 바닥을 기는 상황이다. 선거 전망 안 좋은데 패배를 빌미로 당내 반대파가 ‘거봐라, 게다가 외교도 줏대가 없지 않느냐’라며 들이받으면 총리 교체 시나리오가 가동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걸 독도 문제에다가 대입하면, 극우파들은 “한국에 한 수 접어주려는 거냐! 독도 얘긴 꺼내지도 못했다면서!”이러는 거고 기시다 쪽은 “저는 독도 얘기까지 했습니다! 스키야키서부터 오므라이스까지, 당당했습니다!” 이런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는 거지. 만약 이런 상황을 감안해 굳이 국내정치적 손해를 감수하며 대통령이 독도 얘기를 들었는지 어땠는지 대통령실이 확인을 안 해주는 거라면 참 상냥한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아마 진실은 둘 사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하는데, 과연 이게 한국인으로서 납득할 수 있는 일인지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라고. 그건 그렇고 여기서 드러나는 건… 결국 비공개 회담에서 뭘 할 거냐, 비공개 회담을 대비해 뭘 준비할 거냐에 대한 양국의 차이라는 게 흥미롭다. 그러니까 일본은 적어도 오므라이스 집에서의 회담을 공식 의제가 아닌 양국 간 갈등 현안 전반을 ‘터놓고’ 말하는 자리로 인식했다는 거다. 그래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한국 대통령을 떠보기도 하고 언론플레이용 재료를 만들어 놓기도 하고 그런 거지. 반면 우리 대통령은? 일단 오므라이스를 바란 것 자체가 어린 시절 추억이기도 하고… 뭔가 쏘맥 한 잔 말면서 우애를 다지고 하는 자리 정도로 생각한 것이 아닌가 이런 의심이 드는 거다.
(뒤에는 생략)
이런 기준으로 보면 독도 얘기를 했을 수도 있고 안 했을 수도 있는데, 한겨레의 경우는 일본 언론 보도를 종합할 때 독도 얘기는 안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산케이의 오늘 보도로 대략 정리되는 모양새인 듯 하다.
앞선 3대 현안에 논의가 이뤄졌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일본 언론이 정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두 정상의 대화의 내용을 매우 상세히 보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케이신문>은 20일 일본 정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합의 △후쿠시마 등 수산물 수입 △초계기 갈등에 대한 사실 인정과 재발 방지 등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이 보도를 보면, 기시다 총리가 초계기 문제에 대해 언급하자 윤 대통령은 “이것은 서로 신뢰 관계에 문제가 생겨 발생했다. 앞으로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 서로의 주장을 조화시켜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신문은 윤 대통령의 이 답변에 대해 “한국 정부는 그동안 레이더 조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면서 “윤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사실관계를 부정하지 않았다”는 해석을 덧붙였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주장처럼 한국의 함선이 일본 초계기를 향해 사격통제레이더를 쐈다는 사실을 윤 대통령이 사실상 인정한 것처럼 보도한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런 갈등이 발생한 이유가 양국 간에 신뢰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을 뿐 일본의 주장을 수용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신문은 나아가 위안부 합의와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등에 대해선 “기시다 총리가 요구했지만 진전이 없었다”고만 전했다. 기시다 총리가 이 문제를 꺼내 들었지만, 윤 대통령이 반응하지 않았거나 일본이 원하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18일 <한국방송>에 출연해 위안부 문제 등이 “의제로 논의된 바 없다”면서 “정상간 대화는 공개할 수 없다”는 애매한 입장을 보였다. 애초 두 나라가 위안부 문제를 의제로 삼진 않았지만, 기시다 총리가 즉석에서 이 얘기를 꺼냈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이 가운데 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선 기시다 총리가 당시 외무상으로 2015년 12월 합의 내용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 임했었다. 그런 이유로 2021년 10월 총리에 오른 뒤에도 줄곧 합의 이행을 주장해왔다. 일본은 이 합의의 이행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2018년 11월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했고, 일본 대사관 앞의 ‘평화의 소녀상’도 철거하지 않는 등 합의를 지키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또 국제사회에서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는 것도 합의 위반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철폐 역시 국민의 건강권과 직결되는 먹거리 문제이기 때문에 여론의 반응이 민감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일본 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에 맞서 한국이 힘겹게 역전 승소한 사안이어서 양보가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독도와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강제동원이 대규모로 이뤄졌던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문제는 이날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산케이신문> 역시 이날 보도에서 “기시다 총리가 (독도·사도광산 문제와 관련해) 개별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다만, 앞으로 일본 정부가 이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나설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1084323.html
이 문제에 대해선 경향신문에 매월 돌아오는 칼럼에다가도 썼는데, 그건 좀 더 뜬구름 잡는 얘기다. 내일이 나오는 날인가? 오랜만에 글자 수 제한이 있는 지면 칼럼을 쓰려니 줄이는 게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