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로 회수하자는 발상에 대해
그러니까, 돈을 시급하게 줘야 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고소득층에게 준 돈은 회수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다들 세금을 말했지만 관료 입장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국가가 주는 지원금을 소득으로 잡아 세금을 붙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고소득층에 대한 세금을 일반적 차원에서 강화할 수도 있겠으나 1회적으로 주는 성격이란 걸 명확히 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도 어렵다. 4인가구 100만원 한 번 주면서 종부세를 영원히 올리겠다는 것이냐 이런 얘기고… 그리고 일회적으로 하더라도 지원금을 회수해야 할 대상과 세금 부과 대상이 명확히 일치하지 않는 문제도 있다. 그러니까 이 문제는 ‘회수해야 한다’와 ‘1회적’이란 간극에서 발생하는 게 큰 것 같다.
이럴수도 없고 저럴수도 없으니 결국 등장한 게 알아서들 성의를 표하라는 것인데, 이걸 ‘기부’로 포장하려니 이것도 쉽지는 않다. 법정기부금으로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새로운 항목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국가나 지자체에 내는 돈으로 걍 포괄적으로 볼 것인가? 그렇다면 ‘안 받겠습니다’란 의사표시를 ‘드리겠습니다’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인가? 등등…
이런 난점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기부를 하라고 하면 기부할 사람이 많다고 본다. 이건 국가시책에 적극적으로 따르는 국민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비상 상황에서의 공동체 유지를 위한 서바이벌(일전에 썼듯)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마스크 나눔’을 하고 정부가 우리 국민 너무 좋습니다~ 이런 거랑 비슷한 모습이랄까. 게다가 외국이 입을 모아 칭찬하잖아, 우리가 잘한다고. ‘살아남았다’는 지위 유지를 위해선 당연히 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그리고 이런 때 멋진 모습 보여줘야 이득인 측면도 있고. 작년에 일부 영민한 자들이 반일 마케팅 하던거 떠올려보라.
원래 재난 상황에선 물론 약탈과 폭동도 있지만 상부상조의 미덕이 발휘되기도 하는 것이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카트리나 때 그랬다는 거 아니냐. 그래서 인류에겐 하여간 희망이 있고 포스트-아포칼립스라는 게 그런 면에서 주는 역설적 위안이라는 게 있지. 이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어쨌든 꾸역꾸역 살아 나가는 구나 뭐 그런 감정… 근데 그것과 별개로, 거기에 하나 더 얹어서 이게 이득이, 그러니까 돈이 된다 라는 맥락이 있다.
진단키트 수출과 바이오 제약업계의 주가 급등 등등은 일전에 여기도 썼는데, 이런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도 비슷한 생각을 갖게 한다. 방역 대책이 외국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다는 뉴스를 전하려고 할 때 방송 진행자가 보인 반응은 “방역 한류라고 하면 어떨까!”였다. 이때 나는 워딩이 좀 그렇지 않나 하고 생각했는데, 사람들 생각은 다 비슷한지 순식간에 이런 말이 언론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내게는 이렇게 보였다. 우리는, 팔린다!
진단키트 시장이 블루오션이 되자 대통령이 말했다. 이제는 백신과 치료제다! 정부가 지원을 팍팍 해줘라! 인류를 위해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대통령의 발언 맥락은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할 수 있다는 것으로 비쳤다. 눈치를 보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우리가 치료제에 들어가는 무슨 물질 생산을 미국 회사로부터 수주했습니다 보도자료 뿌리고… 빌 게이츠가 전화를 했다지만 그가 결국 하는 거는 펀딩이다.
한국형 뉴딜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뉴딜이 뭐냐? 민간 참여시키는 공공개발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이를 통해 기업에 보조금 등 혜택을 주면서 노동자 권리의 일반적 보장을 이뤄주는 거였다. 우리도 고용유지 조건 들어가고(물론 확인 안 되는 사각지대가 부지기수겠지만 어쨌든) 그럴듯 한데 내가 주목한 것은 ‘공공개발 프로젝트’의 자리에 뭘 놓느냐 하는 거다(기간산업 대책은 한국형 뉴딜과는 별개인 것처럼 얘길하고 있다).
지금 얘기하는 건 언택트이코노미 등으로 뭔가 되는 거 같은 비대면 경제, 그러니까 디지털 인프라 투자다. 이게 뭐지? 해변에 병을 묻었다가 다시 파내는 거라도 반복하라는 게 아니고 4차산업헥멩 그거를 하겠다는 거다. 고용유발 효과가 얼마나? 저 같은 못 배운 놈도 일할 수 있나요? 적자생존 각자도생의 글로벌자본주의! 한국은 오로지 앞만 볼 뿐 뒤는 돌아보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가 보는 건 국가의 새로운 역할이나 어떤 공동체적 미덕이라기 보다는 속물성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