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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정치 사회 현안

혁신위가 혁신당할 판

2023년 8월 2일 by 이상한 모자

더블민주당의 혁신위원장이라는 분은 동네 아저씨 스타일 같다. 푼수라고 해야 되나? 눈치없이 되는대로 막 말하고 수습하려다가 더 사고치는… 이런 분이 그런 면모가 있어도 다른 장점이 있다면 혁신위원장을 할 수도 있을텐데 다른 무슨 장점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혁신위니까 혁신위원장이 좀 이상해도 다른 분들이 멀쩡하면 혁신위가 잘 굴러가야 할 거 같은데, 그렇지 않다. 오늘도 봐라.

◎ 진행자 > 물론 김은경 위원장은 학교에 계셨던 분이고 정치 일선에서 뛰었던 분은 아니기 때문에 메시지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훈련이 안 돼 있는 분이긴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된 자리라고 한다면 물론 항상 발언이 문제가 되면 내 발언 의도나 맥락은 그게 아니었다라는 항변들을 다 해요. 일반적으로. 하지만 보통 뽑아서 쓴다는 거 다 알잖아요. 그러면 발언에 주의를 기울였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 서복경 > 그래서 어제 인천에서 당원 국민 간담회 할 때 그 발언으로 인해서 불쾌하시거나 그런 분들이 있다면 유감이다, 그런 얘기도 하셨죠.

◎ 진행자 >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 상한 분들이 있다고 하면 유감이다” 어제 이런 입장 표명, 이걸로 갈음된다고 평가하시는 겁니까?

◎ 서복경 > 저희가 말한다고 해서 갈음이 되는 건 아닌 것 같고요. 들으시는 분들이 계속 용납이 안 되면.

◎ 진행자 > 그런데 들으시는 분들 중에 국민의힘도 있잖아요. 지금 국민의힘에서는 상당히 공세를 세게 펴고 있는데, 혁신위원회 해체까지 얘기했거든요. 김기현 대표 같은 경우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 서복경 > 그런데 혁신위하면서 굉장히 의아했던 부분은 있는 게 국민의힘의 원내대표님도 그렇고 대표님도 그렇고 남의 당에 관심이 많으시더라고요. 제가 보기에는 그 당도 문제가 많으시던데 그 당 일은 알아서 하시고 민주당 일은 또 민주당에서 알아서 하고 그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 진행자 > 그런데 과거 2004년 총선 때인가요. 정동영 열린우리당 시절 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까지 다시 소환하고 있는데 그럼 이건 그냥 정치공세다, 이렇게 받아들이시는 겁니까?

◎ 서복경 > 실제로 저희 위원장님도 나이가 곧 60세인데요. 연배가 있는 국민 분들이 들으시기에 불쾌하다 라고 하는 것은 저희가 얼마든지 말씀을 드려야 되는 부분인데, 국민의힘에서 그렇게 얘기하시는 거는 또 그분들은 그분들의 의도가 있는가 보다.

http://imbbs.imbc.com/view.mbc?list_id=7211220&pre_list_id=-1&next_list_id=7211218&page=1&bid=focus03

정치 조직에 들어갔으면 거기서 하는 말은 다 정치적으로 소비되기 마련이다. 이 문제의 경우 사려깊지 못했다, 유감이다, 진의는 그게 아니었지만 미안하다… 이렇게 계속 반복하면서 넘어가야 할 문제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라고 할지 모르겠는데, 사족을 붙여서 너네나 신경써라 라고 하면 앞의 얘기는 다 소용이 없게 된다. 가령 여기서도 다뤘는데 ‘민주주의에 반대한다’라는 책이 있다고 할 때, 학계라면 중간에 좋은 얘기가 많이 있다는 게 중요하지만 이 책이 정치권으로 오면 결론이 투표권 제한이라는 게 알파요 오메가인 책이 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국민의힘의 비판 취지에는 뭐라고 할 거냐’는 질문에 뭐라고 답을 해야 했을까? 그냥 땡큐라고 하면 된다. 그정도로 모자랄 것 같으면, 우리가 제안하는 혁신 과제는 앞으로 국민의힘에도 필요할 거다… 그 정도면 된다. 너네 일에나 신경써라, 이러면 앞의 얘기는 다 없어지고 이것만 남는 거다. 이런 저런 설명을 해도 욕만 먹다보면 결국 남탓 언론탓 정치인탓 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정치권이 이 모양 이꼴로 온 경로를 정확하게 답습하는 거다. 혁신위가 시궁창 정치 체험 위원회는 아닐 것이다.

지금 서교수님 같은 분들이 이렇게 몰리는 이유가 2개 있다. 하나는 이미 ‘사과할 일 아니다’라고 혁신위가 이 문제를 규정해버렸기 때문에 혁신위원이 그 밖으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거다. 변호사와 기자 출신 대변인이 이미 그렇게 대응해놨다. 물론 그 대응도 혁신위의 집단지성?의 결과겠지만. 그런데 그런 입장은 애초에 왜 나온 건가? 이게 둘째 이유인데, 만약 혁신위가 별 일 아니고 국힘이 문제다, 이렇게 반응하지 않고 도게자 분위기로 갔다면 그렇잖아도 내외로 취약한데 이미 상당히 부풀어오른 내부로부터의 압력으로부터 버틸 수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도 있다. 지금 상황에서 기반이 취약한 혁신위가 혁신을 하려면 일단 살고 봐야 하는데 버팀목도 없이 살기는 어려운 거다. 물론 급히 주워온 버팀목이 오히려 더 취약한 썩은 나무 같은 분위기가 되어 버렸지만…

그러니까, 세상사 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정치판이 이따위인 이유가 그저 정치인이 이상한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는 게 이런 사례에서 드러나는 거다. 뭐 어떡하나. 누가 칼 들고 협박해서 혁신위원 하신 것도 아니니…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김은경, 혁신위

인권은 보장돼야 하나 내가 볼 때 너는 인간이 아니다

2023년 8월 1일 by 이상한 모자

오늘 이동관씨가 이렇게 말했다.

“언론은 장악될 수도 없고 장악돼서도 안 된다”, “공산당의 신문이나 방송을 언론이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실이나 진실이 아니라 (일방의) 주장을 대변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기관지, 영어로는 ‘오건'(organ)이라 한다”

즉, 언론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언론이 아닌 것의 자유는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대한민국 언론에는 언론이 아닌 것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언론이 아닌 것’을 정하는 건 누구다? 이게 요즘 전형적인 21세기형 극우포퓰리스트들의 문법이예요… 길게 설명하기도 귀찮아 이제.

오늘 대통령이 여러 말씀 하셨는데, 주옥 같다. 순살아파트 그거는 다 전 정권 때 만들었어요… 도대체 전 정권 얘기를 안 하면 한 마디도 못하는 건지 원…

“학생 인권을 이유로 해서 규칙을 위반한 학생을 방치하는 것은 인권을 이유로 사회 질서를 해치는 범법행위를 방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규칙 위반 학생을 누가 방치했습니까… 학부모 악성 민원과 모든 걸 교사에 떠넘기는 무책임, 이상한 아동학대법 때문에 못살겠다고 아우성인데, 폭염에 거리로 뛰쳐나와 지금 그렇게 목놓아 얘기를 하는데, 왜 이런 얘기를 하는 거냐… 근데 이게 나름대로 일관성 있는 세계관이다.

학생 인권=진보교육감=민주당 VS 학생 응징=교권=바로 나
범죄자 인권=민변=검수완박 VS 범죄자 응징=검찰=바로 나
가짜 평화 타령=공산주의=주사파 VS 한미일 핵동맹=자유민주주의=바로 나
탈원전=괴담=문재인 VS 원전=과학=바로 나

성의있게 뭘 쓰기도 싫다.

말이 나왔으니, ‘나만과학’들 중에 정범진씨라고 있지? 윤캠프 출신이고 나꼼수 주진우를 라이브로다가 혼내줬다든가, 남이 얘기하는 건 다 괴담이고 미신이고 지들이 얘기하는 거는 다 과학이라고 하는. 근데 과연 그럴까? 지난 주엔가 라돈침대 얘기를 쓴 SBS 글 첨부한다. 내가 이 계기가 된 조선일보 글도 보고 다 봤거든. 진짜 괴담 유포 세력은 누구냐? 함 자세히 들여다봐라. 일단 아래는 문제의 조선일보 글 일부.

탈원전 정권에서 라돈 침대는 설 땅이 없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2020년 신문 기고에서 “침대 회사는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봤고 국민은 근거 없는 공포에 시달렸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과학을 믿지 않고 원자력에 대한 편견을 극대화하려는 소수의 정략적 판단이 이런 코미디를 낳았다”고 했다.

(…)

나는 머지않아 후쿠시마산 수산물이 수입되고 오염수도 라돈 침대처럼 잊힐 것으로 확신한다. 그렇게 판단할 만한 과학적 지식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정치인과 과학자 중 한쪽을 믿어야 할 때 서슴없이 과학자를 택할 뿐이다.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3/07/11/RZJGXURGVRDQDGSTPELA7DK4E4/

이제 이 글의 반론격 되는 SBS 글. 일부만 발췌하지만 전문을 다 보시라.

굳이 말하자면 기자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영향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최종 보고서를 신뢰하는 쪽이다. 라돈 침대 이슈를 취재하면서 방사능 이슈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해당 칼럼에 대해선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괴담을 비판하기 위해 괴담을 생산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

라돈 침대는 탈원전 정책 탓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내세우는 근거가 검찰이 라돈 침대 회사 대표를 불기소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검찰 수사의 쟁점은 회사 대표의 고의성 여부였지 라돈이 몸에 나쁘냐 마냐가 아니었다. 라돈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건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고, 1992년 라돈핵종의 인체 피폭 위험도를 평가한 한국원자력연구소 연구는 IAEA와 공동으로 이뤄졌다. 후쿠시마 오염수 영향을 평가한 바로 그 IAEA 말이다. 라돈이 인체에 나쁘다는 건 이미 입증된 과학적 사실이지 검찰 수사로 가릴 일이 처음부터 아니었다. 담배회사 임직원들이 형사처벌을 받지 않고, 폐암 환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해서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 아닌 건 아니듯 말이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284478

이 글에는 기자가 당시 정범진씨 글에다가 반론을 한 글도 링크가 돼있는데, 글에 들어있는 것이지만 그것도 함 봐라.

한편으로는 결국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싶었던 게 이 부분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탈원전 정책 기조로 관련 산업은 쪼그라들고 전공자들이 설 자리는 좁아졌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를 저도 익히 보았습니다. 교수님께서도 많이 속상하실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개인적으로 현 정권의 탈원전 정책에 100%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대 사건을 탈원전 정책과 엮어 ‘정략적, 정무적’이라 말씀하시는 건 지나친 비약입니다. ‘탈원전 때문이다’라는 결론을 이미 정해놓고 중간 과정의 사실관계를 아예 무시하거나 곡해하셨기 때문입니다.

(…)

여담이지만, 칼럼을 기고하신 그 신문도 딱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재작년 한참 라돈 침대 사태로 시끄러울 때 해당 신문은 ‘별 문제 없는데 난리를 쳐서 애꿎은 업체만 망하게 생겼다’라고 악의적 보도를 했다가 원안위가 결과를 정정하고 파장이 커지자 급히 기사 제목과 문장을 수정하고 사실상 꼬리를 내렸습니다. ‘외부 기고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다’지만, 이제 와서 팩트체크조차 하지 않고 칼럼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싶기도 합니다.

아, 한마디 보태면 올해 초 검찰의 불기소 결정 이후 많은 언론이 이를 보도했습니다. 물론 칼럼이 실린 신문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아 모르고 지나치셨을 수 있겠습니다만,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아서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는 말씀은 조금 어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왜 불기소 후 석 달이나 지난 시점에 이런 칼럼이 나왔을까 고민해봤습니다만, 저희 뉴스를 시청하시는 것도 괜찮은 대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SBS뉴스는 올해 초 메인 뉴스에서 리포트 2개에 걸쳐 5분 가까이 해당 이슈를 자세히 보도했습니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738339

아 그런데 SBS 기자로 하여금 “딱하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 “칼럼을 기고하신 그 신문”은 어딜까? 본문에도 링크 돼있지만, 말할 필요가 있는가? ‘나만과학’의 선두주자 조선일보지.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06/2020040603911.html

이게 다 뭐하는 거냐 도대체?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라돈침대, 이동관, 정범진

마지막 낙관

2023년 7월 29일 by 이상한 모자

일전에 박권일 선생의 글에 나오는 호빗, 벌칸, 훌리건의 구분법을 눈여겨 보았는데, 며칠 후 한국일보에 그 책에 대한 서평이 실려 전반적 내용을 알게 되었다(물론 그 이후 이외의 다양한 신문에도 내용이 소개되었다. 또 검색을 통해 이미 이전부터 식자들에 의해 이 구분법이 언급돼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빗, 벌칸, 훌리건의 개념은 설명 대신 박권일 선생의 글을 다시 인용한다.

정치학자 제이슨 브레넌은 미국 유권자를 ‘호빗’, ‘훌리건’, ‘벌컨’의 세 그룹으로 나눈다. 호빗은 정치 무관심층이고, 훌리건은 편향적·광신적 지지자이며, 벌컨은 냉정하고 이성적인 유권자다. 정치학자 다이애나 머츠는 정치참여형 시민들이 거의 모두 훌리건적 성격을 가진다고 말한다. 한국인들만 유독 광기에 차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현대 정치의 흔한 현상이라는 거다.

정치 팬덤이 극단화되기 쉬운 이유가 있다. 도덕적 확신이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취향의 다름은 존중할 수 있지만 도덕의 다름은 그렇지가 않다. 도덕은 세계를 인식하고 살아가게 하는 기본적 가정이기 때문에 양보하기가 어렵다. 문제는, 여러 심리학자가 밝혀낸 것처럼 이념과 문화적 배경에 따라 도덕 기준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서로가 ‘옳음’을 강변하니 늘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듯 정치 참여가 도덕의 문제이자 훌리건을 양산하는 활동이라면, 우리는 극한의 정치적 내전을 운명처럼 감내하고 살아야 하는 걸까?

쉽지 않은 문제지만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 실험심리학자 조슈아 그린에 따르면 인간의 도덕 판단엔 두 가지 시스템이 병존한다. 하나는 그가 “자동모드”라 부르는 직관적이고 감정적인 동기다. 다른 하나는 “수동모드”라 부르는 이성적인 동기다. 우리가 직면한 많은 정치 의제는 정교한 판단과 절묘한 절충을 요구하지만 오늘날 정치 담론은 대개 누군가를 악마화하는 일로 환원된다. 즉, “자동모드”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다. 관건은 이분법적 사고를 강요하는 양당제 정치를 탈피하는 것, 그리고 사람보다 의제를 중심으로 담론과 실천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훌리건’보다 ‘벌컨’에게 훨씬 많은 발언권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주목도는 낮지만 사회적 논의가 꼭 필요한 의제들을 더 많은 시민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이를 위해 아낌없이 공적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99093.html

이 글에서는 저자의 결론까지 인용하진 않고 있는데, 신문에 실린 서평을 보면 저자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저자는 에피스토크라시(epistocracy), 즉 ‘지식인에 의한 통치’에서 대안을 찾는다. 그러면서 충분한 지식을 갖춘 이들에게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주는 ‘참정권 제한제’나 더 유능한 시민에게 투표권이 추가로 주어지는 ‘복수 투표제’를 소개한다. 다만 ‘정치 엘리트주의’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저자는 이 제도에 앞서 충분한 숙의와 합의가 필요하며, 특정 사람에게 자격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유권자 능력 시험 등의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71217580001291

정서적/감정적으로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얘기다. 그러나 그런 걸 일체 배제하고 논의를 일단 따라가볼 필요는 있는데, 저자의 연구는 그렇다고 한다. 가령 가장 쉽게 제기될 수 있는 반론은 숙의민주주의를 통해 호빗이든 훌리건이든 벌칸의 비중을 늘리면 되지 않느냐는 건데(사실 박권일 선생의 벌컨 발언권 확대론도 근본적으론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실제 ‘숙의’의 결과물을 보면 호빗은 그냥 훌리건이 되고 훌리건은 더 극렬한 훌리건이 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는 것이다.

여기가 전통적인 좌우파 방법론이 갈리는 결정적 분기점이라는 생각이다. 각 주장이 좌파와 우파의 주장이라는 게 아니다. 여기서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가 관건이라는 거다. 가령 극좌파인 어떤 사람도 호빗과 훌리건에게 “벌컨이 돼라!”며 꾸짖고 두들겨패고 하다가 지쳐서 “역시 에피스토크라시가 있어야 돼…”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언제나 비슷한 경로로 가는 사람들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의문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숙의’라는 것에 한계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혹은, 그 ‘숙의’라는 것이 현재와 같은 형태의 대의민주주의 시스템과 결합해있을 경우라면 마찬가지 결론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닐까? 왜냐하면 호빗과 훌리건의 민주주의라는 것 자체가 본질적으로는 현대 대의민주주의의 오류와 한계일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제 수준에서는 저의 책을 참고해보시라는 정도의 설명을 덧붙이기로 하고…

그래서, 호빗과 훌리건은 제끼고 벌컨들에게 운전대를 넘겨주자는 식의 결론이 아니라, 또는 호빗과 훌리건에게 너는 왜 벌컨이 되지 못하느냐… 지금부터 내가 너희들이 모르는 세상의 진실을 보여줄테니 너도 벌컨이 함 돼봐라… 안 되면 혼날줄 알아라… 이렇게 접근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어쩔 수 없이 벌컨이 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가, 이게 고민의 핵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게 근본적으로 안 되는 일이다 라고 한다면 그 분에게 남는 해법은 어떤 방식으로든 검증된 소수의 다수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 뿐일 것이고, 언젠가는 가능할 수 있지만 아직 우리가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라고 말하는 분은 나이 먹고도 철없는 좌파로 남는 것이고…

그래서 내 생각에 진보라든가 어떤 좌파라든가 하는 것의 근본적인 태도란 거는 비관으로 일관하더라도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에 마지막 낙관이 있느냐, 이게 핵심이 아닌가 한다. 뒤집어 말하면 아무리 현실을 낙관하더라도 ‘원래 사람들은 안 되는 것’이라는, 마지막의 마지막에 비관을 품고 있는 사람은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진보라든가 좌파라든가는 아닐 수 있다는 것. 오해하지 마시라. 누구는 좌파여서 되고 누구는 안 되고 이런 얘기가 아니다. 좌파면 어떻게 아니면 어떻냐. 그러나 우리가 좌우 구분의 어떤 기준을 말한다면 그 핵심의 핵심은 이게 아닐까 이러한 생각을 했다는 거다.

추가. 이런 얘기를 라디오에서 ‘시럽급여’얘기랑 같이 한 바 있었는데, 방송국에 사람들이 그런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네가 실업급여에 대해 뭘 아느냐며, 나는 벌컨인데 실업급여는 시럽급여가 맞다 라는… 에이구… 다음에 얘기합시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민주주의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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