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

급체를 했다고 표현을 하지만 뭔가의 이유로 소화기계가 잠시 고장났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첫날은 아예 뭘 먹을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래도 일과를 수행해야 하니 당분이 필요할 듯 하여 이삿짐 속에 있던 10년 쯤 된 아카시아 벌꿀을 찾아 뜨거운 물에 타먹었다. 그거 가지고는 모자라는 것 같아 냉장고에 쌓여있는 콜라캔을 한 개 따서 마셔보기도 했다. 콜라는 끊은지 한참 됐는데… 정말 오랜만에 마셨다. 먹은 게 없는데도 화장실을 수시로 들락거려야 했다. 이불 속에 들어가 있는데 몸이 뜨거운 거 같아 열을 재보니 37.8도였다.

금요일은 좀 상태가 나아졌으나 완벽한 상태로 회복되진 않았고 식욕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침 방송을 마치고 귀가해 그래도 두통약은 먹어야겠기에 바나나를 먹었다. 비몽사몽간에 김준우 변호사가 정의당 비대위원장이 되는 꿈을 꾸었다. 모처럼 오후 방송 일정이 있어 나갔는데 탄핵소추안이니 국회법이니 설명이 잘 되지 않았다. 머리가 잘 돌지 않는 것이다. 위기감을 느꼈다. 다시 귀가해 망설이다가 전자렌지에 데워먹을 수 있게 포장된 레토르트 죽을 먹었다.

다행히 컨디션은 상당히 회복된 느낌이다. 그동안 방치돼있던 이삿짐 정리를 좀 더 했다. 그러고 있자니 이틀을 거의 굶다시피 한 후의 몸무게가 궁금해졌다. 달아보니 90키로다. 굶기 전에는 얼마였다는 거냐. 마른 사람으로 좀 살아보고 싶다. 그러면서도, 이제 내일부터는 정상적인 식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다 나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