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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Author: 이상한 모자

오키나와 기행 5

2016년 8월 24일 by 이상한 모자 Leave a Comment

새로운 숙소를 찾아 걷는 도중에 나하 시내를 이것 저것 관찰하였다. 특히 사람들이 사는 집에 대해서는 각별한 관심이 있다. 밖에서 볼 때 다들 좁은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겠다. 대개 공동주택에들 사는 것 같고 아파트라고 하면 좀 남루하고 맨션이라고 하면 그럭저럭이며 최근에 지은 걸로 보이는 건물들은 좀 더 허세가 들어간 이름을 달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타운이라든지… 무슨무슨마치(町)라고 써있는 것도 봤는데, 지나가다 슬쩍 본 거여서 그냥 그게 그 동네 이름인지 한국처럼 ‘무슨무슨 마을’이라는 아파트 이름 같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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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다양한 주거환경

오키나와의 다양한 주거환경

시내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택시다. 대개 백미러가 본네트 양 옆에 달린 고전적 디자인을 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앞뒤가 짧은 차를 주로 타고 있는 걸 볼때, 과거 택시 회사를 만들 때 구입한 차를 여전히 쓰고 있는 것으로 추측됐다. 나하 시내에만 여러 회사가 있는지 차량 위에 달린 표식이 제각각이었다. 사람이 없는 차는 우리나라 처럼 ‘空車’라고 표시된다. 내 기억에 80년대 까지 한국 택시에 이 시스템이 없었다. 누가 타고 있는지를 밖에서 봐야 알 수 있었다. 여기도 그랬는진 물론 잘 모른다. 다음에 방문한다면 택시를 한 번 꼭 타보고 싶다. 자동차들을 보면서 일본인에 대한 선입견이 약간 깨진 게 있는데, 다들 질서를 잘 지킬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람이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데도 차가 슬그머니 지나간다. 오키나와만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양심냉장고 프로젝트를 해야 하나?

'약'이라고 쓴 글씨와 택시

‘약’이라고 쓴 글씨와 택시

그 밖에… 간판에 표시된 글자체도 유심히 보았다. 표지판부터 약국 이름까지 진지한 내용이면 영락없이 ‘나루체’가 쓰인다. 나루체는 한국 굴림체의 원조이다. 하도 보다 보니까 일종의 공공디자인으로 보일 정도이다. 이 동네가 이러는 의도는 잘 모르지만, 우리는 공공디자인이란 관점에서 접근을 해야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하였다. 그리고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마찬가지인가 싶은 것도 있었는데, 웬 학원 등에 ‘동대를 몇 명이 갔다’는 식의 선전 문구와 학생들의 사진이 죽 붙어있는 거였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요소들이 의외로 많았다. 또 역시 오키나와라서 그런지 스테이크 하우스를 표방하고 있는 곳도 종종 있었다.

스테키하우스 미스터 마이크

스테키하우스 미스터 마이크

스테이크 하우스의 동족상잔 디자인

스테이크 하우스의 동족상잔 디자인

숙소를 찾아가는 도중에 ‘旅の宿’라는 이름이 붙은 곳을 보았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그냥 호텔인 것 같았다. 개중에는 공용 목욕탕이 딸린 곳도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묵기로 한 숙소는 ‘오키나와 호텔 콘티넨탈’ 이라는 2성급 호텔이었는데 세상에 소프란도 밀집지역 한가운데 있었다. 소프란도 직원들의 분별없는 호객행위를 뚫고 어찌어찌 도착했다. 김 선생님은 자신있는 태도로 무슨 서류 같은 것을 내밀고 우리가 예약을 했다, 이렇게 설명을 했다. 여권을 주고 숙박비를 계산하니 5천엔 정도가 나왔다. 문제는 현금이 다 떨어졌다는 거다. 카드로 결재할 수 없냐고 물으니 직원은 놀라면서 그러면 가격이 좀 더 비싸진다고 말했다. 계산을 해보니 7천엔 정도로 올라간다. 다소 자린고비 기질이 있는 김 선생님은 당황하였다. 근처에 혹시 ATM이 있느냐고 물으니 어찌어찌 가면 콘비니안스스토아가 나온다고 가르쳐 준다. 그러나 김 선생님은 멘붕을 일으킨 것 같았다. 하릴없이 숙소를 나와 콘비니를 찾아서 간다. 그런데 편의점은 나오지 않고 리우보우(りうぼう)라는 마트가 나오는 거였다. 일단 거기에도 ATM이 있으니 여러 시도를 하였다. 그러나 ATM은 한국인의 카드를 읽지 못했다. 김 선생님의 멘붕은 점점 더 심해졌고 나는 왠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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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점인 소프란도

풍속점인 소프란도

일단 인터넷 검색을 했다. 우리는 어쨌든 환전을 해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세븐뱅크나 유초은행 ATM을 찾아야 한다. 세븐뱅크는 세븐일레븐에 가면 있다. 사람들을 붙들고 세븐일레븐이 근처에 있느냐 물으니 모른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키나와에는 세븐일레븐이 없다(2018년에 진출하겠다고 한다)! 나하 공항에 세븐뱅크 ATM이 있을뿐… 유초은행은 겐초마에역에 가야 있는데 다리가 아파서 거기까지 갈 엄두가 안 났다. 일단 호텔 직원이 알려준 편의점을 찾고자 근방을 뒤져 패밀리마트를 발견했다. 물론 성과는 없었다. 멘붕에 휩싸인 김 선생님에게 호로요이를 카드 결재로 사드리고 나도 하나 마시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혹시나 해서 편의점 주인에게 익스첸지-를 해야 한다고 손짓 발짓으로 질문을 했으나 모른다고 한다. 길 건너에 류큐은행이 있어 마지막으로 허망한 시도를 해보았다. 결론은 그냥 7천엔을 카드로 긁자… 다시 호텔로 돌아가 패잔병의 기운을 씻어내고 여봐란듯이 410호실에 입실했다. 호텔 직원의 마음을 이심전심 해보았다. 아마 그는 그냥 우리가 ATM을 찾으니까 환전이고 뭐고 그게 있는 곳을 가르쳐준 것 뿐일 거다.

마트에서 팔고 있는 흰 달걀과 파란 바나나

마트에서 팔고 있는 흰 달걀과 파란 바나나

황망한 마음을 다스리며 샤워를 했다. 낮에 햇볕에 완전히 구워져서 온 팔이 다 따가웠다. 그래도 씻고 옷을 갈아입으니 마음이 편했다. 아이패드를 활용해 그리운 고국의 JTBC 뉴스를 틀었다. 대우조선해양을 털다 보니 ‘특정 언론’ 고위 관계자 이름이 나왔다는, 애초에 난 찌라시에서 본 내용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이거 어째야 하나 생각하면서… 곧 잠들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 마지막 밤을 즐기기 위해 우리는 다시 리우보우로 향했다. 소프란도 형님들의 호객을 뚫고 마트에 들어가 스시 코너로 이동했다. 그럴듯해 보이는 스시와 참치 사시미, 타다끼, 문어숙회 등등을 샀다. 그리고 맥주와 발포주를 적당히 섞어서 샀다. 신기해 보이는 것은 하여튼 다 샀다. 그 마트에서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파란 바나나와 하얀 달걀을 판다는 거였다. 멋지게 내 카드로 계산을 할 차례였는데 마트 직원은 내가 외국인인줄 모른다. 암 포리너 라고 말했더니 당황을 하면서 비닐봉지를 손으로 가리키는 거였다. 나는 두 개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투! 라고 말했다. 마트 직원은 거기에 산 물건들을 친절히 담아주었다. 두 봉지의 균형을 맞춰 달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냥 관뒀다. 그걸 들고 다시 오키나와 호텔 콘티넨탈 410호실로 돌아왔다.

리우보우 점원을 압도하는 나

리우보우 점원을 압도하는 나

맥주는 과연 맛있었다. 참치 사시미는 다소 신 맛이 났다. 이건 한국의 마트에서 사도 똑같다. 맛을 위한 처리를 한 것인지 아니면 상하지 말라고 뭔가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먹고 마시고 탄산수에 첫 날 먹다 남은 국화눈물인지를 섞어 마셔 얼큰히 취했다. 그동안 김 선생님과 꽤 아카데믹한 대화(김 선생님은 사회학 석사이시며 박사를 할 뻔 하셨다)를 나누었다. 취한 상태로 맥주를 더 사러 아까 그 패밀리마트에 갔다. 생햄과 마카로니 사라다에 에비수 맥주를 샀다. 점원에게 나는 외국인이다 라고 하니 재패니즈는 모르시냐고 하는 것 같았다. 저스트 잉글리시 라고 대답했는데 사실 술에 취해서 이게 무슨 대화인지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또 소프란도 형님들의 호객을 뚫고 오키나와 호텔 컨티넨탈로 돌아왔다. 김 선생님과 맥주를 마셨다. 얼마 후 김 선생님은 쓰러져 잠이 들었다. 나도 잠이 들었다.

산토리의 에일 맥주

산토리의 에일 맥주

산토리 맥주와 마트 음식들

산토리 맥주와 마트 음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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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기행 4

2016년 8월 23일 by 이상한 모자 Leave a Comment

8월 21일 / 숙취 속에 깨어났다. 6시 정도였다. 나머지 4명의 투숙객들이 모두 잠을 자고 있어 다시 잠이 들었다가 7시에 일어났다. 김 선생님이 씻는 동안 전날 먹다 남긴 무슨 차 음료 같은 걸 마시며 아이패드로 고국의 여론을 검토하였다. 황당한 얘기들이 많았다. 김 선생님과 교대해 씻고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힘든 하루를 예고하는 출발

힘든 하루를 예고하는 출발

오늘의 계획은 섬에 가는 것이다. 게라마 제도의 자마미 섬이다. ‘페리 자마미’로는 2시간 걸리고 쾌속선인 ‘퀸 자마미’로는 1시간 정도라고 한다. 김 선생님이 퀸 자마미 예매에 실패했기에 페리 자마미를 이용해야 했다. 10시 탑승인데 여객 터미널에 8시에 도착했다. 티켓팅을 마치고 코인락커를 활용해 짐을 정리했다. 짐을 최소화한 후 근처의 도마리 수산시장을 방문해 김 선생님이 좋아하는 생선들을 보기로 했다. 물론 언제나 그랬듯이 걸어가야 하는데 가는 길을 쉽게 찾는 게 어렵다. 잠시 헤매던 김 선생님은 외국인 묘지에 잠시 앉아서 구글지도를 보며 길을 다시 확인해야 했다. 걷는 도중에 모기에 물리기도 하면서 겨우 도마리 수산시장에 도착했다.

외국인 묘지 앞에서

외국인 묘지 앞에서

도마리 수산 시장에 들어가며

도마리 수산 시장에 들어가며

도마리 수산시장

도마리 수산시장

이곳의 수산시장 자체는 노량진처럼 크지는 않았는데, 항이랑 붙어있기 때문에 경매를 하는 장소가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작은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구경했다. 스시나 참치 스테이크를 팔고 있는데 상당히 먹음직스러웠다. 중간에 ‘덮밥 스시 참치집 본점(丼・すし まぐろや本舗)’이라는 이름의 가게가 있다. 참치 덮밥과 오차즈케를 파는데 아침부터 손님들이 많다. 가격에 비하자면 아주 맛있었다. 여기에는 오키나와 사람들이 잘 먹는다는 ‘바다포도(海ぶどう)’란 해초가 들어가는데 좋은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뭘 먹으니 또 살 것 같았다. 다음에 오키나와를 방문하게 되면 근방에 숙소를 잡고 세끼 정도는 이 시장에서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참치 덮밥

참치 덮밥

덮밥을 먹는 나

덮밥을 먹는 나

페리에 승선하기 전

페리에 승선하기 전

피곤을 이끌고 승선한 페리의 내부

피곤을 이끌고 승선한 페리의 내부

다시 여객터미널로 돌아와 용변을 해결하니 벌써 9시 40분이었다. 페리에 승선했는데 이미 사람들이 바글바글이다. 2층은 실내외에 좌석이 있고 1층은 바닥에 눕거나 앉아서 가도록 돼있다. 실내 좌석은 이미 찼고 실외 좌석은 남아 있었는데 더 이상 더워서는 안될 것 같아 난민 분위기인 1층으로 갔다. 아무렇게나 드러누운 승객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멍하니 있는 사이 배가 출발했다. 올림픽에 대해 떠들다가 쇼기를 두기 시작한 TV를 곁눈질하며 스마트폰으로 드래곤 퀘스트 5를 잠시 했다. 자동판매기에서 커피를 사먹으며 더위를 진정시킨 후에 밖으로 나가니 바닷바람이 시원했다. 망망대해를 바라 보았다. 마시지 못하는 물이 모래와 무엇이 다르랴, 물의 사막이여. (??)

게라다 제도를 지나면서 본 바다

게라다 제도를 지나면서 본 바다

배 위에서 본 바다

배 위에서 본 바다

호기심 천국 김 선생님과 배의 오만 군데를 돌아다니며, 그러니까 배 안에서도 또 걷고 있는 중에 배는 뭐 어딘가에 도착했다. 아카 섬이 아니었나 싶다. 게라마 제도를 구성하는 섬 중에 가장 작은 것 같다. 일단 여기에 사람들이 내리고 배는 방향을 바꿔 다시 자마미 섬으로 간다. 이 섬들은 오키나와 전투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전에 미군이 점령했다. 앞의 두 섬에 가장 큰 도카시키 섬 등에서 모두 전투가 벌어졌다. 특히 자마미와 도카시키는 격렬했다고 한다. 끌려와서 노역을 당하던 한국인들도 있었다. 지금은 물이 맑고 아름답고 관광자원 외에는 별게 없어서 그저 즐거운 관광지이다.

섬에 근접하자 바다 색깔이 이렇게 변했다

섬에 근접하자 바다 색깔이 이렇게 변했다

섬마을의 풍경

섬마을의 풍경

12시 정도에 하선을 해 먼저 자전거를 빌리러 갔다. 자전거 대여점을 운영하는 할머니는 친절했다. 자전거가 좀 낡아 보였지만 모처럼 걷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기뻤다. 그런데 출발 5분 후 끝이 나지 않는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언덕을 넘어 다시 내리막을 내려가니 후루자마미 비치가 나왔다. 이곳 매점에서 얼굴이 타버릴 것 같아 모자를 사려 했으나 고정시키는 끈이 없어서 관뒀다. 모자를 사기 위해 다시 언덕을 넘어가기로 했다. 이럴수가,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니고 끌고 다니는 꼴이다!

자전거 대여 직후

자전거 대여 직후

오르막을 오를 때에는 끌고 올라가야

오르막을 오를 때에는 끌고 올라가야

후루자마미 비치

후루자마미 비치

다시 언덕을 넘어와서 귀여운 모자를 1200엔 주고 샀다. 이제 달리는 일만 남았다. 오르막이 없는 반대쪽 도로로 달렸다. 그러다 어느 소년들이 낚시를 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곳은 ‘비치’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장소는 아니었다. 모래에 산호가 섞여 있었다. 이곳에서 허물을 벗는 작은 게들을 목격했다. 작은 섬의 생태계에 대해 잠시 감탄한 후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허물을 벗은 작은 게

허물을 벗은 작은 게

살아있는 산호

살아있는 산호

불가사리? 이름 모를 생물

불가사리? 이름 모를 생물

아마 비치와 캠핑장이 나왔는데, 여기서 화장실을 이용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이미 비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다시 자전거를 달리는 도중 드디어 오르막이 나왔다. 나는 돌아가겠다고 했으나 김 선생님은 오르막을 올라 카미노하마 전망대에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걸 또 올라갔다. 언제부터 이름이 카미노하마였는진 모르겠지만 과연 그럴듯 했다. 먼저 와있던 유럽인 여성이 우릴 보고 인사했는데 뭔가 여행객 다운 대화를 기대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는 중에 찍은 셀카

자전거를 타는 중에 찍은 셀카

자전거를 타는 중에 찍은 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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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하마 전망대에서 찍은 섬 전경

카미노하마 전망대에서 찍은 섬 전경

아이패드를 꺼내 정성들여 사진을 찍고 (사진을 보면 느낄 수 있지만 아이폰의 카메라는 고장이 나있다) 땀을 식히다가 다시 내려왔다. 그러다 또 다른 이름없는 해변을 발견해 김 선생님과 잠시 앉아 쉬었다. 다른 일본인 관광객 가족이 작은 천막을 쳐놓고 있었다. 아이들이 ‘곤니치와’라고 인사를 해서 손을 흔들어 줬다. 물에 발을 담궈 보기도 했는데 산호 때문에 발이 아파서 그만두었다. 바위는 너무 뜨겁고 마음 편히 쉬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그냥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이름 없는 해변에 앉아있는 김 선생님

이름없는 해변에 앉은 김 선생님

이름없는 해변에 앉은 김 선생님

100킬로그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해변의 모래

100킬로그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해변의 모래

아마 비치로 돌아와 점심을 해결했다. 소바와 카레를 파는 매점인데 시원한 차를 제공한다. 나는 돈까스 카레, 김 선생님은 소바를 먹기로 했다. 김 선생님은 소바를 뜨겁지 않게 해달라고 말하고 싶어했으나 대화가 잘 되지 않았다. 손짓 발짓 영어를 섞어 이게 뜨겁냐고 물었는데 매우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뜨겁다고 대답하는 거였다. 그래서 김 선생님은 아주 뜨거운 소바를 먹게 되었다. 과연 오키나와의 소바답게 큼직한 돼지고기가 올려져 있다. 내가 먹은 돈까스 카레는 기성품인 것 같았다. 지친 와중이니가 맛이 없을리 없다. 다만 평가의 대상이 될만한 음식은 아니다.

아마 비치 옆 매점에서 먹은 돈까스 카레와 소바

아마 비치 옆 매점에서 먹은 돈까스 카레와 소바

그리고 나서 다시 쏜살같이 달리는 중에 웬 개동상을 발견했다. 마리린상 이라고 써있었는데, 별 신경을 안 쓰고 지나쳤다. 나중에 찾아보니 아카 섬에 사는 시로라는 개가 마리린이라는 개를 만나기 위해 바다를 헤엄쳐 왔다고 한다. ‘마리린을 만나고 싶다’라는 제목의 영화가 1988년에 개봉을 했을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까 아카 섬에 가면 시로 동상이 있다는 거다. 흠… 개를 말이지… 흠…

마리린상과 김 선생님

마리린상과 김 선생님

다시 배를 타는 곳으로 돌아와 자전거를 반납하고 가게에 들러 음료수 같은 것들을 사먹었다. 내 팔은 시뻘겋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배를 타려고 줄을 서있었으나 난 더운 게 너무 싫어 에어컨이 나오는 기념품점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승선 시간이 임박해 다시 배에 올랐는데 거의 뭐 난민선이었다. 놀라웠던 건 돌아갈 때에도 아카 섬을 거쳐야 하므로, 그들이 탈 수 있는 공간은 펜스를 쳐서 따로 남겨 놓게 해놨다는 거다. 역시 대단하다. 앉을 데가 없으므로 2층 실내 좌석의 맨 앞 바닥에 방랑자처럼 앉았다. 졸다가 드래곤 퀘스트 5를 하다가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루한 항해 끝에 간신히 나하에 도착하니 오후 6시였다. 지친 몸을 이끌고 코인락커에서 짐을 찾아 새로운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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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기행 3

2016년 8월 23일 by 이상한 모자 2 Comments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며 거의 1시간 정도를 달려 다시 나하시로 들어와 우에노야에서 내렸다. 같이 탄 승객 중에는 해변을 다녀온 한국 남자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노약자석을 점거해서는 여자친구를 데려왔었다면 큰일날 뻔했다는 내용의 대화를 했다. 여자친구가 화를 냈을 것이기 때문이란다. 차를 렌트하지도 않았고, 장시간 고생을 했을 것이기 때문에… 다음 번에는 꼭 여자친구를 데려와서 차를 빌리자고들 말하는데, 한국 남자 답다고 해야 할지…

끝없이 이어지는 도보여행

끝없이 이어지는 도보여행

어쨌든 현립박물관미술관(이하 박물관)에 가기 위해 우에노야 근처를 또 헤매었다. 이 근처엔 부자들이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초현실적인 디자인 등 겉보기에도 돈 들어간 티가 나는 주택들이 많았다. ‘세콤’과 같은 경비업체의 스티커도 제법 보였다. 근처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야구 연습을 하는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오키나와 중산층 이상이 거주하는 걸로 생각되는 주택과 맨션

오키나와 중산층 이상이 거주하는 걸로 생각되는 주택과 맨션

이 근방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보았다. 건물 공사장에서 잠시 도로를 점거해 차가 밀리는 일이 있었는데, 건설노동자가 도로를 막아 놓았던 라바콘을 치운 후에 그동안 기다린 차들을 향해 일일이 90도로 절을 하는 거였다. 건설노동자들의 친절은 슈리성 근처에서도 경험했다. 인도에서 공사를 하느라 차도에 보행로를 만들어 놨는데 김 선생님이 보행로 밖으로 걷자 막아놓은 펜스를 열어 친절하게 다시 보행로로 들어와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한국 같았으면 본체 만체 신경질이나 내고 말았을 거다. 안전의 문제는 오직 자기 책임인 것이다.

이런 걸 두고 한국인들은 혼네니 다테마에니 하는 말을 동원해 겉과 속이 다른 일본인이란 식으로 묘사하지만, 내겐 그게 아니라 공동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에 대한 나름의 해법처럼 보였다. 이 사람들은 20세기 중반에 전세계를 대상으로 참으로 표현하기도 힘든 큰 폐를 끼쳤는데, 그 대가로 핵폭탄을 두 발이나 맞고 국가의 기능을 거세당했다. 남에게 해를 끼치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집단적으로 경험했다. 반면 우리는 뭔가를 책임지는 것에 대한 경험이 없지 않나 한다. 외세의 침략으로 일관된 반만년의 역사 어쩌구 하면서 스스로를 부당한 경험에 의한 피해자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런데 실제로 ‘잘못한 사람(실제 잘못을 했는지와는 관계없음)’이 되면 순식간에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체제는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하다. 그래서 한국은 ‘각자도생’이다.

이런 온갖 생각을 하는 중에도 김 선생님의 뚜벅이 여행은 계속되었다. 나는 다리가 부러져 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하였다. 박물관에 근접할수록 오키나와 특유의 시골스러움은 점점 옅어졌다. 길도 넓어졌고 공동주택 중에 부자들이 많이 사는 걸로 보이는 ‘맨션’들이 출현했다. 이 동네를 ‘신도심’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오키나와 현립박물관미술관

오키나와 현립박물관미술관

고생 끝에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멀리서 볼 때 건물디자인이 경기도문화의전당을 연상시켰다. 이곳의 디자인은 ‘류큐 왕조 시대의 성’이 모티브라는데, 경기도문화의전당 역시 처음 만들었을 때 무슨 성곽 같은 게 디자인 모티브라고들 했던 기억이다. 수원 출신이니 내가 잘 안다. 여튼 건물 안에 들어가서 에어컨의 시원함에 감동하였다.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 잠시 앉아서 박살난 정신을 추스른 후 자동판매기에서 티켓을 샀다. 모든 걸 볼 수 있는 티켓은 너무 비싸서 상설전시만 보는 걸로 샀다.

류큐인들이 사랑해마지 않는 산신으로 좌측 하단은 전쟁 이후 깡통으로 만든 것

류큐인들이 사랑해마지 않는 산신으로 좌측 하단은 전쟁 이후 깡통으로 만든 것

상설전시는 오키나와의 해양성과 도서(島嶼)성에 기반한 해설이 포인트라고 하는데, 오키나와의 인간과 동식물 등의 모든 역사를 표현하겠다는 의지가 대단해보였다. ‘우리는 본토와는 다른 역사적 근본을 갖고 있다’는 어떤 자부심이 작용한 게 아닐까도 추측하였다. 미나토가와인의 모형을 실제 모습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에서도 이런 느낌이 왔다. 또, 왠지 모르게 산신에 집착하는 것도 그렇다. 지식이 많이 없어서 설명하기 힘들지만 미나토가와인과 산신 모두 본토보다 앞섰다는 느낌의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의 자부심을 표현하고 있다

오키나와의 자부심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지쳐서 화장실을 이용하였는데, 옆 통로를 이용하니 휴식실이 나왔다. 밝은 창이 있는 커다란 방에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들이 죽 늘어서 있다. 자꾸 한국과 비교하게 되어서 미안하지만, 우리 같았으면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이런 시설은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포켓몬스터 대전액션 게임

포켓몬스터 대전액션 게임

대충 관람을 끝내고 자동판매기에서 콜라를 사서 마시면서 길 건너 쇼핑몰로 이동했다. ‘나하 메인플레이스’라는 다소 괴이한 이름의 복합쇼핑몰인데 옷 가게부터 극장까지 온갖 것이 다 있었다. 먼저 들른 것은 거대한 오락실이다. 이 곳은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인형뽑기 기계들로 가득 차있으며 포켓몬스터 대전액션 등 진기한 게임 머신 등을 이용해볼 수도 있다. 괜히 돈쓰지 말잔 생각에 그냥 넘어갔다. 그 외의 전자제품 등을 이것 저것 구경한 후 다리가 너무 아파 주저앉아 있는데 밖에 비가 오기 시작하는 거였다.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오전에 산 바나나를 먹었는데 아무래도 우산을 사야겠지 싶었다. 몇 천엔씩 하는 고가의 우산들을 제끼고 200엔이 좀 넘는 비닐우산을 샀다. 그걸 쓰고 다시 오모로마치 역으로 가서 유이레일에 탔다. 이제야 숙소로 가는구나 했는데…

사카에마치시장 입구

사카에마치시장 입구

갑자기 김 선생님이 무슨 시장을 보러 가자는 거였다. 더 걸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하려다가… 모처럼이니 나쁘지 않겠다 싶어 아사토 역에서 내렸다. 여기에는 사카에마치 시장이 있다. 전쟁 직후에 만들어졌는데 아직 현대화 되지 않았다. 여기서 저녁을 먹자는 계획이었는데 거의 3바퀴나 돌았으나 언어가 안 되기 때문에… 도전할만한 식당을 찾지 못했다. 대신 인상깊은 장면들을 많이 봤다. 밤이었기 때문에 대개의 점포들은 문을 닫았고 작은 선술집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대개 중년 남성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으며 개중에는 전자기타와 작은 북 같은 것으로 고전적인 노래를 연주하는 집도 있다. 간판에 ‘블루칼라’라고 쓰여있는 집도 있어서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블루칼라(ブルーカラー) 가 아니고 풀컬러(フルカラ)다. 어쩐지 이름이 전색주점이더라.

복잡한 시장 내부

복잡한 시장 내부

풀칼라 전색주점

풀칼라 전색주점

거의 뇌활동이 정지될 정도로 지쳐서 이 다음에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유이레일을 타고 미에바시 역에서 내렸거나, 아니면 걸어갔을 것이다. 하여간 정신을 차렸을 때는 미에바시 역 근처의 작은 소바집에 있었다. 할머니 혼자 운영하는듯 했다. 김 선생님은 야채소바를, 나는 소키소바를 주문했다. 500엔짜리 생맥주도 주문했으나 할머니는 600엔짜리 오리온 병맥주를 갖고 왔다. 할머니가 병으로 먹으라는 건지 병 밖에 없다는 건지 그런 말을 한 듯도 했다. 야채소바는 야채를 볶은 후에 오키나와식 소바에 얹은 모양새다. 소키소바는 원래 뼈가 붙은 갈비가 들어가야 하는데 그냥 삼겹살이 얹혀서 나왔다. 가격이 싸니까 그냥 먹었다. 기대했던 소키소바는 아니었지만 맛은 있었다. 고깃국물과 가쓰오부시 국물이 적당히 섞였고 간장이 들어갔다. 이 동네 소바는 메밀이 아니라 밀가루로만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꼬들꼬들하다. 미군의 흔적이다.

부실했던 소키소바

부실했던 소키소바

이후, 잠시 서점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고 드디어 숙소인 게스트하우스로 복귀했다. 7사람이 잘 수 있는 이른바 도미토리에 묵어야 한다. 마비된 다리를 간신히 제어해 부들부들 떨며 2층침대로 올라갔다. 짐을 정리하고 씻는 동안 김 선생님은 맥주 아니 발포주를 사왔다. 술을 마시는 동안 기력을 회복했다. 술이 떨어져 편의점에 가서 생햄과 치즈, 에비수를 샀다. 편의점의 생햄은 정말 대단하였다.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이날 걸은 걸음 수는 3만5천보 이상, 거리로 따지면 26킬로미터 정도였다.

동식물에만 관심을 갖는 김 선생님과 게스트하우스에까지 비치돼 있는 산신

동식물에만 관심을 갖는 김 선생님과 게스트하우스에까지 비치돼 있는 산신

Posted in: 글, 기고 안 된 글, 여행 Tagged: 나하 메인플레이스, 미나토가와인, 사카에마치 시장, 산신, 소키소바, 여행기, 오키나와, 오키나와 소바, 현립박물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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