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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오키나와

오키나와 기행 5

2016년 8월 24일 by 이상한 모자 Leave a Comment

새로운 숙소를 찾아 걷는 도중에 나하 시내를 이것 저것 관찰하였다. 특히 사람들이 사는 집에 대해서는 각별한 관심이 있다. 밖에서 볼 때 다들 좁은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겠다. 대개 공동주택에들 사는 것 같고 아파트라고 하면 좀 남루하고 맨션이라고 하면 그럭저럭이며 최근에 지은 걸로 보이는 건물들은 좀 더 허세가 들어간 이름을 달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타운이라든지… 무슨무슨마치(町)라고 써있는 것도 봤는데, 지나가다 슬쩍 본 거여서 그냥 그게 그 동네 이름인지 한국처럼 ‘무슨무슨 마을’이라는 아파트 이름 같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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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다양한 주거환경

오키나와의 다양한 주거환경

시내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택시다. 대개 백미러가 본네트 양 옆에 달린 고전적 디자인을 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앞뒤가 짧은 차를 주로 타고 있는 걸 볼때, 과거 택시 회사를 만들 때 구입한 차를 여전히 쓰고 있는 것으로 추측됐다. 나하 시내에만 여러 회사가 있는지 차량 위에 달린 표식이 제각각이었다. 사람이 없는 차는 우리나라 처럼 ‘空車’라고 표시된다. 내 기억에 80년대 까지 한국 택시에 이 시스템이 없었다. 누가 타고 있는지를 밖에서 봐야 알 수 있었다. 여기도 그랬는진 물론 잘 모른다. 다음에 방문한다면 택시를 한 번 꼭 타보고 싶다. 자동차들을 보면서 일본인에 대한 선입견이 약간 깨진 게 있는데, 다들 질서를 잘 지킬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람이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데도 차가 슬그머니 지나간다. 오키나와만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양심냉장고 프로젝트를 해야 하나?

'약'이라고 쓴 글씨와 택시

‘약’이라고 쓴 글씨와 택시

그 밖에… 간판에 표시된 글자체도 유심히 보았다. 표지판부터 약국 이름까지 진지한 내용이면 영락없이 ‘나루체’가 쓰인다. 나루체는 한국 굴림체의 원조이다. 하도 보다 보니까 일종의 공공디자인으로 보일 정도이다. 이 동네가 이러는 의도는 잘 모르지만, 우리는 공공디자인이란 관점에서 접근을 해야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하였다. 그리고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마찬가지인가 싶은 것도 있었는데, 웬 학원 등에 ‘동대를 몇 명이 갔다’는 식의 선전 문구와 학생들의 사진이 죽 붙어있는 거였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요소들이 의외로 많았다. 또 역시 오키나와라서 그런지 스테이크 하우스를 표방하고 있는 곳도 종종 있었다.

스테키하우스 미스터 마이크

스테키하우스 미스터 마이크

스테이크 하우스의 동족상잔 디자인

스테이크 하우스의 동족상잔 디자인

숙소를 찾아가는 도중에 ‘旅の宿’라는 이름이 붙은 곳을 보았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그냥 호텔인 것 같았다. 개중에는 공용 목욕탕이 딸린 곳도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묵기로 한 숙소는 ‘오키나와 호텔 콘티넨탈’ 이라는 2성급 호텔이었는데 세상에 소프란도 밀집지역 한가운데 있었다. 소프란도 직원들의 분별없는 호객행위를 뚫고 어찌어찌 도착했다. 김 선생님은 자신있는 태도로 무슨 서류 같은 것을 내밀고 우리가 예약을 했다, 이렇게 설명을 했다. 여권을 주고 숙박비를 계산하니 5천엔 정도가 나왔다. 문제는 현금이 다 떨어졌다는 거다. 카드로 결재할 수 없냐고 물으니 직원은 놀라면서 그러면 가격이 좀 더 비싸진다고 말했다. 계산을 해보니 7천엔 정도로 올라간다. 다소 자린고비 기질이 있는 김 선생님은 당황하였다. 근처에 혹시 ATM이 있느냐고 물으니 어찌어찌 가면 콘비니안스스토아가 나온다고 가르쳐 준다. 그러나 김 선생님은 멘붕을 일으킨 것 같았다. 하릴없이 숙소를 나와 콘비니를 찾아서 간다. 그런데 편의점은 나오지 않고 리우보우(りうぼう)라는 마트가 나오는 거였다. 일단 거기에도 ATM이 있으니 여러 시도를 하였다. 그러나 ATM은 한국인의 카드를 읽지 못했다. 김 선생님의 멘붕은 점점 더 심해졌고 나는 왠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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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점인 소프란도

풍속점인 소프란도

일단 인터넷 검색을 했다. 우리는 어쨌든 환전을 해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세븐뱅크나 유초은행 ATM을 찾아야 한다. 세븐뱅크는 세븐일레븐에 가면 있다. 사람들을 붙들고 세븐일레븐이 근처에 있느냐 물으니 모른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키나와에는 세븐일레븐이 없다(2018년에 진출하겠다고 한다)! 나하 공항에 세븐뱅크 ATM이 있을뿐… 유초은행은 겐초마에역에 가야 있는데 다리가 아파서 거기까지 갈 엄두가 안 났다. 일단 호텔 직원이 알려준 편의점을 찾고자 근방을 뒤져 패밀리마트를 발견했다. 물론 성과는 없었다. 멘붕에 휩싸인 김 선생님에게 호로요이를 카드 결재로 사드리고 나도 하나 마시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혹시나 해서 편의점 주인에게 익스첸지-를 해야 한다고 손짓 발짓으로 질문을 했으나 모른다고 한다. 길 건너에 류큐은행이 있어 마지막으로 허망한 시도를 해보았다. 결론은 그냥 7천엔을 카드로 긁자… 다시 호텔로 돌아가 패잔병의 기운을 씻어내고 여봐란듯이 410호실에 입실했다. 호텔 직원의 마음을 이심전심 해보았다. 아마 그는 그냥 우리가 ATM을 찾으니까 환전이고 뭐고 그게 있는 곳을 가르쳐준 것 뿐일 거다.

마트에서 팔고 있는 흰 달걀과 파란 바나나

마트에서 팔고 있는 흰 달걀과 파란 바나나

황망한 마음을 다스리며 샤워를 했다. 낮에 햇볕에 완전히 구워져서 온 팔이 다 따가웠다. 그래도 씻고 옷을 갈아입으니 마음이 편했다. 아이패드를 활용해 그리운 고국의 JTBC 뉴스를 틀었다. 대우조선해양을 털다 보니 ‘특정 언론’ 고위 관계자 이름이 나왔다는, 애초에 난 찌라시에서 본 내용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이거 어째야 하나 생각하면서… 곧 잠들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 마지막 밤을 즐기기 위해 우리는 다시 리우보우로 향했다. 소프란도 형님들의 호객을 뚫고 마트에 들어가 스시 코너로 이동했다. 그럴듯해 보이는 스시와 참치 사시미, 타다끼, 문어숙회 등등을 샀다. 그리고 맥주와 발포주를 적당히 섞어서 샀다. 신기해 보이는 것은 하여튼 다 샀다. 그 마트에서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파란 바나나와 하얀 달걀을 판다는 거였다. 멋지게 내 카드로 계산을 할 차례였는데 마트 직원은 내가 외국인인줄 모른다. 암 포리너 라고 말했더니 당황을 하면서 비닐봉지를 손으로 가리키는 거였다. 나는 두 개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투! 라고 말했다. 마트 직원은 거기에 산 물건들을 친절히 담아주었다. 두 봉지의 균형을 맞춰 달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냥 관뒀다. 그걸 들고 다시 오키나와 호텔 콘티넨탈 410호실로 돌아왔다.

리우보우 점원을 압도하는 나

리우보우 점원을 압도하는 나

맥주는 과연 맛있었다. 참치 사시미는 다소 신 맛이 났다. 이건 한국의 마트에서 사도 똑같다. 맛을 위한 처리를 한 것인지 아니면 상하지 말라고 뭔가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먹고 마시고 탄산수에 첫 날 먹다 남은 국화눈물인지를 섞어 마셔 얼큰히 취했다. 그동안 김 선생님과 꽤 아카데믹한 대화(김 선생님은 사회학 석사이시며 박사를 할 뻔 하셨다)를 나누었다. 취한 상태로 맥주를 더 사러 아까 그 패밀리마트에 갔다. 생햄과 마카로니 사라다에 에비수 맥주를 샀다. 점원에게 나는 외국인이다 라고 하니 재패니즈는 모르시냐고 하는 것 같았다. 저스트 잉글리시 라고 대답했는데 사실 술에 취해서 이게 무슨 대화인지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또 소프란도 형님들의 호객을 뚫고 오키나와 호텔 컨티넨탈로 돌아왔다. 김 선생님과 맥주를 마셨다. 얼마 후 김 선생님은 쓰러져 잠이 들었다. 나도 잠이 들었다.

산토리의 에일 맥주

산토리의 에일 맥주

산토리 맥주와 마트 음식들

산토리 맥주와 마트 음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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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기행 3

2016년 8월 23일 by 이상한 모자 2 Comments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며 거의 1시간 정도를 달려 다시 나하시로 들어와 우에노야에서 내렸다. 같이 탄 승객 중에는 해변을 다녀온 한국 남자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노약자석을 점거해서는 여자친구를 데려왔었다면 큰일날 뻔했다는 내용의 대화를 했다. 여자친구가 화를 냈을 것이기 때문이란다. 차를 렌트하지도 않았고, 장시간 고생을 했을 것이기 때문에… 다음 번에는 꼭 여자친구를 데려와서 차를 빌리자고들 말하는데, 한국 남자 답다고 해야 할지…

끝없이 이어지는 도보여행

끝없이 이어지는 도보여행

어쨌든 현립박물관미술관(이하 박물관)에 가기 위해 우에노야 근처를 또 헤매었다. 이 근처엔 부자들이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초현실적인 디자인 등 겉보기에도 돈 들어간 티가 나는 주택들이 많았다. ‘세콤’과 같은 경비업체의 스티커도 제법 보였다. 근처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야구 연습을 하는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오키나와 중산층 이상이 거주하는 걸로 생각되는 주택과 맨션

오키나와 중산층 이상이 거주하는 걸로 생각되는 주택과 맨션

이 근방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보았다. 건물 공사장에서 잠시 도로를 점거해 차가 밀리는 일이 있었는데, 건설노동자가 도로를 막아 놓았던 라바콘을 치운 후에 그동안 기다린 차들을 향해 일일이 90도로 절을 하는 거였다. 건설노동자들의 친절은 슈리성 근처에서도 경험했다. 인도에서 공사를 하느라 차도에 보행로를 만들어 놨는데 김 선생님이 보행로 밖으로 걷자 막아놓은 펜스를 열어 친절하게 다시 보행로로 들어와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한국 같았으면 본체 만체 신경질이나 내고 말았을 거다. 안전의 문제는 오직 자기 책임인 것이다.

이런 걸 두고 한국인들은 혼네니 다테마에니 하는 말을 동원해 겉과 속이 다른 일본인이란 식으로 묘사하지만, 내겐 그게 아니라 공동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에 대한 나름의 해법처럼 보였다. 이 사람들은 20세기 중반에 전세계를 대상으로 참으로 표현하기도 힘든 큰 폐를 끼쳤는데, 그 대가로 핵폭탄을 두 발이나 맞고 국가의 기능을 거세당했다. 남에게 해를 끼치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집단적으로 경험했다. 반면 우리는 뭔가를 책임지는 것에 대한 경험이 없지 않나 한다. 외세의 침략으로 일관된 반만년의 역사 어쩌구 하면서 스스로를 부당한 경험에 의한 피해자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런데 실제로 ‘잘못한 사람(실제 잘못을 했는지와는 관계없음)’이 되면 순식간에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체제는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하다. 그래서 한국은 ‘각자도생’이다.

이런 온갖 생각을 하는 중에도 김 선생님의 뚜벅이 여행은 계속되었다. 나는 다리가 부러져 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하였다. 박물관에 근접할수록 오키나와 특유의 시골스러움은 점점 옅어졌다. 길도 넓어졌고 공동주택 중에 부자들이 많이 사는 걸로 보이는 ‘맨션’들이 출현했다. 이 동네를 ‘신도심’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오키나와 현립박물관미술관

오키나와 현립박물관미술관

고생 끝에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멀리서 볼 때 건물디자인이 경기도문화의전당을 연상시켰다. 이곳의 디자인은 ‘류큐 왕조 시대의 성’이 모티브라는데, 경기도문화의전당 역시 처음 만들었을 때 무슨 성곽 같은 게 디자인 모티브라고들 했던 기억이다. 수원 출신이니 내가 잘 안다. 여튼 건물 안에 들어가서 에어컨의 시원함에 감동하였다.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 잠시 앉아서 박살난 정신을 추스른 후 자동판매기에서 티켓을 샀다. 모든 걸 볼 수 있는 티켓은 너무 비싸서 상설전시만 보는 걸로 샀다.

류큐인들이 사랑해마지 않는 산신으로 좌측 하단은 전쟁 이후 깡통으로 만든 것

류큐인들이 사랑해마지 않는 산신으로 좌측 하단은 전쟁 이후 깡통으로 만든 것

상설전시는 오키나와의 해양성과 도서(島嶼)성에 기반한 해설이 포인트라고 하는데, 오키나와의 인간과 동식물 등의 모든 역사를 표현하겠다는 의지가 대단해보였다. ‘우리는 본토와는 다른 역사적 근본을 갖고 있다’는 어떤 자부심이 작용한 게 아닐까도 추측하였다. 미나토가와인의 모형을 실제 모습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에서도 이런 느낌이 왔다. 또, 왠지 모르게 산신에 집착하는 것도 그렇다. 지식이 많이 없어서 설명하기 힘들지만 미나토가와인과 산신 모두 본토보다 앞섰다는 느낌의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의 자부심을 표현하고 있다

오키나와의 자부심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지쳐서 화장실을 이용하였는데, 옆 통로를 이용하니 휴식실이 나왔다. 밝은 창이 있는 커다란 방에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들이 죽 늘어서 있다. 자꾸 한국과 비교하게 되어서 미안하지만, 우리 같았으면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이런 시설은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포켓몬스터 대전액션 게임

포켓몬스터 대전액션 게임

대충 관람을 끝내고 자동판매기에서 콜라를 사서 마시면서 길 건너 쇼핑몰로 이동했다. ‘나하 메인플레이스’라는 다소 괴이한 이름의 복합쇼핑몰인데 옷 가게부터 극장까지 온갖 것이 다 있었다. 먼저 들른 것은 거대한 오락실이다. 이 곳은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인형뽑기 기계들로 가득 차있으며 포켓몬스터 대전액션 등 진기한 게임 머신 등을 이용해볼 수도 있다. 괜히 돈쓰지 말잔 생각에 그냥 넘어갔다. 그 외의 전자제품 등을 이것 저것 구경한 후 다리가 너무 아파 주저앉아 있는데 밖에 비가 오기 시작하는 거였다.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오전에 산 바나나를 먹었는데 아무래도 우산을 사야겠지 싶었다. 몇 천엔씩 하는 고가의 우산들을 제끼고 200엔이 좀 넘는 비닐우산을 샀다. 그걸 쓰고 다시 오모로마치 역으로 가서 유이레일에 탔다. 이제야 숙소로 가는구나 했는데…

사카에마치시장 입구

사카에마치시장 입구

갑자기 김 선생님이 무슨 시장을 보러 가자는 거였다. 더 걸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하려다가… 모처럼이니 나쁘지 않겠다 싶어 아사토 역에서 내렸다. 여기에는 사카에마치 시장이 있다. 전쟁 직후에 만들어졌는데 아직 현대화 되지 않았다. 여기서 저녁을 먹자는 계획이었는데 거의 3바퀴나 돌았으나 언어가 안 되기 때문에… 도전할만한 식당을 찾지 못했다. 대신 인상깊은 장면들을 많이 봤다. 밤이었기 때문에 대개의 점포들은 문을 닫았고 작은 선술집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대개 중년 남성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으며 개중에는 전자기타와 작은 북 같은 것으로 고전적인 노래를 연주하는 집도 있다. 간판에 ‘블루칼라’라고 쓰여있는 집도 있어서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블루칼라(ブルーカラー) 가 아니고 풀컬러(フルカラ)다. 어쩐지 이름이 전색주점이더라.

복잡한 시장 내부

복잡한 시장 내부

풀칼라 전색주점

풀칼라 전색주점

거의 뇌활동이 정지될 정도로 지쳐서 이 다음에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유이레일을 타고 미에바시 역에서 내렸거나, 아니면 걸어갔을 것이다. 하여간 정신을 차렸을 때는 미에바시 역 근처의 작은 소바집에 있었다. 할머니 혼자 운영하는듯 했다. 김 선생님은 야채소바를, 나는 소키소바를 주문했다. 500엔짜리 생맥주도 주문했으나 할머니는 600엔짜리 오리온 병맥주를 갖고 왔다. 할머니가 병으로 먹으라는 건지 병 밖에 없다는 건지 그런 말을 한 듯도 했다. 야채소바는 야채를 볶은 후에 오키나와식 소바에 얹은 모양새다. 소키소바는 원래 뼈가 붙은 갈비가 들어가야 하는데 그냥 삼겹살이 얹혀서 나왔다. 가격이 싸니까 그냥 먹었다. 기대했던 소키소바는 아니었지만 맛은 있었다. 고깃국물과 가쓰오부시 국물이 적당히 섞였고 간장이 들어갔다. 이 동네 소바는 메밀이 아니라 밀가루로만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꼬들꼬들하다. 미군의 흔적이다.

부실했던 소키소바

부실했던 소키소바

이후, 잠시 서점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고 드디어 숙소인 게스트하우스로 복귀했다. 7사람이 잘 수 있는 이른바 도미토리에 묵어야 한다. 마비된 다리를 간신히 제어해 부들부들 떨며 2층침대로 올라갔다. 짐을 정리하고 씻는 동안 김 선생님은 맥주 아니 발포주를 사왔다. 술을 마시는 동안 기력을 회복했다. 술이 떨어져 편의점에 가서 생햄과 치즈, 에비수를 샀다. 편의점의 생햄은 정말 대단하였다.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이날 걸은 걸음 수는 3만5천보 이상, 거리로 따지면 26킬로미터 정도였다.

동식물에만 관심을 갖는 김 선생님과 게스트하우스에까지 비치돼 있는 산신

동식물에만 관심을 갖는 김 선생님과 게스트하우스에까지 비치돼 있는 산신

Posted in: 글, 기고 안 된 글, 여행 Tagged: 나하 메인플레이스, 미나토가와인, 사카에마치 시장, 산신, 소키소바, 여행기, 오키나와, 오키나와 소바, 현립박물관미술관

오키나와 기행 1

2016년 8월 22일 by 이상한 모자 3 Comments

8월 19일 / 촌놈이 어쩌다보니 국제선 비행기를 다 타보게 되었다. 만 나이 45세 김 선생님으로부터 오키나와에 같이 가자는 제안을 받은 것인데, 다행스럽게 때가 맞아 어찌 어찌 계획에 동참할 수 있었다. 항공사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게 아니면 타지 말라고들 하는 피치 항공인데, 제 시간에 오지 않고 제 시간에 떠나지도 않는다. 기내 서비스 등에 대해서도 별로 기대할 것은 없고 결제 과정이나 이런 데에도 여러 문제가 있다고들 하는데, 어차피 시간 많고 들고 갈 짐 별로 없고 긴 거리가 아니라고 하면 괜찮지 않을까 한다. 파일럿이 조종을 못하는 건 아니니…

시작부터 시간 계산을 못하는 바람에 이륙 1시간 반을 남기고 겨우 공항에 도착하였다. 김 선생님이 미리 여러 준비를 한 데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 포켓와이파이 대여, 티켓팅, 출국 수속 등등이 상당히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졌다. 금요일 낮에 해외 여행을 떠나는 이는 별로 없었던 거다. 비행기는 20분 정도 늦게 떴는데 나하 공항까지 2시간 정도가 걸렸다.

나하 공항에서 본 지는 해

나하 공항에서 본 지는 해

비행기에서 내리고 나서는 약간 당황하였다. 공항이라기 보다는 웬 창고 같은 분위기가 아닌가. 나하 공항은 LCC 승객을 따로 이런 창고 같은 곳에 내리게 하고 있다. 아마도 화물운항을 위한 공항 일부를 LCC를 위해 내준 듯 싶었다. LCC라고 해도 다 여기서 출입하는 건 아니고 피치와 바닐라 항공의 경우만 해당된다. 여기서 입국 수속을 하는데 특히 지카바이러스와 테러 때문에 예민해져 있는 듯 싶었다. 금발 벽안의 양인은 짐을 수색당했는데, 우리 아시안들은 무사통과였다.

나하 공항 LCC 터미널의 유일한 면세점

나하 공항 LCC 터미널의 유일한 면세점

그 다음은 셔틀을 타고 국내선 터미널로 이동했다. 셔틀이라는 건 굉장히 낡아보이는 버스였다. 좀 달리는데 위에서 물이 떨어졌다. 물이 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그렇게 국내선 터미널에 도착, 바로 모노레일 승강장으로 이동했다. 오키나와의 모노레일은 기괴한 로고와 함께 ‘유이레일’ 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사람 이름은 아닌 것 같다.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오키나와 말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국적을 알 수 없는 유럽인들과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이 모두가 타서 북적였는데 유럽인들은 눈이 마주치면 잘 웃고 일본인들은 사과를 잘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유이레일 표를 자동판매기로 사려는 관광객들

유이레일 표를 자동판매기로 사려는 관광객들

이때까지는 포켓와이파이를 작동시키지 않은 상태여서 김 선생님의 아날로그식 여행 방식에 모든 것을 맡긴 상태였다. 김 선생님은 미에바시 역 근처의 소라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해 놓았는데, 역에서의 거리는 거의 5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날로그식 여행 방식은 그런 게 아니기 때문에, 나하 시내를 거의 1시간 이상 헤메었다. 덕분에 나하 시민들의 삶에 대해 조금 더 잘 알게 되었다. 주거 환경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치과가 많았던 게 인상적이었다. 결국 막스 발루라는… 우리로 치면 대형 마트에 들어가서 계단에 앉아 포켓 와이파이를 작동시키고 구글 지도를 이용했다.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해 돈을 지불하고 이런 저런 설명을 듣고 예약된 2인실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바로 다시 밖으로 나가 또다시 거리를 헤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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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라멘

미소라멘

매운 미소라멘에 만족스러운 김 선생님

매운 미소라멘에 만족스러운 김 선생님

먼저 가야 할 곳은 국제거리였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많은 것들이 있었다. 배를 채워야했기에 아무 라멘집에 들어갔다. 원래 가려던 곳은 줄이 너무 길어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 집은 ‘노 라멘, 노 라이프’라는 슬로건이 수줍게 걸려있었는데, 가게 이름은 창야(ちゃんや)이다. 마음먹고 가는 거 아니면 발견하기 힘들지 싶다. 나는 미소라멘을, 김 선생님은 매운 미소 라멘을 시켰다. 면이 구불구불해서 놀랐다. 나중에 찾아보니 홋카이도의 니시야마 제면이 만든 계란국수를 쓴다는 것 같다. 주인이 홋카이도 사람이라고 한다. 맛은 뭐 좋다. 홋카이도 라면과 오키나와 소바가 약간 혼합돼있는 것 아닌가 추측했다. 국물은 짜고 진하고, 면은 우리 표현으로 하면 꼬들꼬들이다. 귤껍질 같은 게 아주 소량 들어가 있다. 훌훌 마시다 보면 어느 순간에 딱 씹히고 뭔가 새콤달콤한 맛이 퍼진다. 그게 상당히 재미있는 요소이다. 고명으로 올라가 있는 돼지고기는 어느 부위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느낌으론 항정살 같은 게 아닐까 하는데, 지방질이 고루 분포가 돼있어 아주 맛있었다. 오리온 드래프트 삐루라고 적혀있길래 한국의 생맥주 500 같은 느낌으로 주문했는데 작은 캔이 하나 나왔다. 뭐 어쨌든 오리온 맥주는 오키나와의 자존심인 것 같다.

거대 잡화점 돈키호테의 인상적 상품들

거대 잡화점 돈키호테의 인상적 상품들

블루실 아이스크림과 나

블루실 아이스크림과 나

그 다음엔 돈키호테라는, 거대 다이소의 느낌인 쇼핑몰에 들렀다. 여러 잡스러운 물건들을 구경하며 한국과 일본의 유사성에 대해 생각했다. 그 다음엔 블루실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블루실(blue seal)이라는 건 미국의 어느 동네에서 훌륭한 아이스크림에 주는 표장 같은 것으로 생각된다. 콘을 줄 때 김마끼를 끼우는 틀 같은 데다가 얹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바닐라, 김 선생님은 고구마였는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소프트 아이스크림이니까, 부드럽고 달고 맛있다.

그리고 또 다시, 기약없이 거리를 헤매었다. 거의 나하 시내를 통째로 외울 기세였다. 여러 진기한 광경을 보고 나서 아무 가게나 또 들어가서 앉았다. ‘이치마이루(いちまいる)’라는 이름인데 뭔 뜻인진 모르겠다. 고야참프루와 라후테, 맥주를 시켰다. 지친 상태여서 느낌으로 말하자면… 뭐든지 맛있고 좋았다. 고야챰프루라는 건 ‘고야’라는 괴이한 식물과 두부, 계란, 고기 등등을 같이 볶은 것인데 맛있는 음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고야라는 건 우리 말로는 ‘여주’라고 하는 식물의 열매인데 쓴 맛이 난다. 라후테라는 건 동파육의 변형이다. 삼겹살 덩어리를 간장, 설탕 등과 함께 삶아 졸인 것인데 돼지갈비 비슷한 맛으로,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그 외 특기할 점은 한국엔 드문 ‘테이블챠지’가 있다는 거다. 대개 있는 것 같다. 음식을 서빙하는 점원에게 땡큐를 연발했는데, 어느 순간 뭐라고 말을 하는데 못 알아들었다. ‘샹큐와’ 까지는 알아 들었는데 이 다음이… 대략 “땡큐는 됐습니다” 정도 느낌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고야챰프루

고야챰프루

라후테

라후테

길거리의 팔자 좋아 보이는 고양이들

길거리의 팔자 좋아 보이는 고양이들

그 다음, 정처없이 걸어서 편의점에 들러 술과 안주를 샀다. 나는 에비수 맥주를, 김 선생님은 무슨 30도짜리 술을 샀는데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국화의 눈물’ 같은 느낌인데 모르겠다. 전형적인 곡주의 맛이 났다. 김 선생님은 또 푸딩을 꼭 사먹어야 한다며 신선란의 뭐시기 프링 이라는 이름의 식품과 젤리화 된 과일 같은 걸 샀다. 자는 방에서 뭔가를 먹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지만 어글리 코리안이라 그냥 몰래 먹고 잠들었다. 김 선생님은 이미 쿨쿨 잠들었지만, 나는 쉽게 잠이 들 수 없었다. 왠지 슬펐다.

숙소에서의 불법 파티

숙소에서의 불법 파티

Posted in: 글, 기고 안 된 글, 여행 Tagged: 고야참프루, 나하시, 돈키호테, 라멘, 라후테, 블루실, 여행기, 오리온 맥주, 오키나와, 유이레일, 이치마이루, 창야, 피치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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