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찍는 기계로 유명한 강준만 겨수님이 MBC의 흑역사라는 책을 냈다고 조선일보가 기사를 실어줬다. 책 한 권에 대해서 이렇게 기사를 쓰는 거 아무한테나 해주는 일이 아니다. 한겨레… 제가 책 냈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그거 안 잊어버린다. 잠깐 개인의 앙심을 이렇게 표현을 하고…
아무튼 MBC에 대해선 저도 이런 말 저런 말 많이 했는데, 조선일보 기사로 미루어 봐서는 뭐 그저 그런 얘기 같다.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됐다, 자신들이 절대선을 독점했다고 착각한다, 반대편을 악으로 몰아가선 안 된다… 등등. 모르겠다. 실제 책을 읽어보면 더 대단한 인사이트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런 얘기의 연속이라면 저는 뭐 그냥 강준만이 또 강준만 한 얘기라고 본다(제가 시사초보로 입문하던 때가 중궈니횽과 준마니횽이 무슨 준마니교니 어쩌니 하면서 죽기 살기로 싸우던 시절…).
이런 생각을 해보세요. 여기도 때되면 쓰는 얘긴데, 이명박 때 방송장악 이후 KBS MBC 내의 밀려난 사람들이 뭐라고 주장했느냐. 공영방송이 권력의 주구 노릇을 하며 공공성과 공정성을 스스로 훼손해 시민들의 외면을 받은 결과 시청률이 하락하고 경영상 위기를 걱정할 정도가 됐다… 더 이상 회사가 망가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 이런 거였거든? 즉, ‘공영방송(공공성+공정성) 훼손 -> 시청률 하락’… 이 논리 세트이다.
그러다 이제 자기들이 주류가 됐잖아? 그러면 뭘 해야 하냐면, 앞서의 논리 세트를 반대로 뒤집어서 ‘공영방송(공공성+공정성) 회복 -> 시청률 상승’… 이걸 증명해야 되는 거거든? 이걸 절대적으로 증명해야. 그래야 자신들을 탄압한 대상에 대한 반대를 조직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유지할 수 있음. 근데 이게 저널리즘적으로는 모순이지. 공영방송이 공영방송답게 하면 필연적으로 일반적 상황에서의 시청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음. 황색언론이 달리 황색언론인가? 공공성 공정성을 훼손해야 부수 판매든 시청률이든 늘어나니까 황색언론이지… 그러니까 이게 처음부터 말이 안 됨.
그런데 말이 안 되는 걸 되게 해야 되잖아?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어? 공공성 공정성 회복을 ‘더블민주당은 정상이고 국민의힘은 비정상이다’란 민주당-정파성과 연결하고 ‘시청률 상승’을 도모하는 걸 더블민주당 성향 시청자층 잡는 걸로 치환하는 거지. 공영방송의 공정성과 공공성은 지난 정권에서 이런 방식으로 정파성에 굴복한 것.
제가 공영방송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이에 따라 일어났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 몇몇 사건? 사례? 요인?에서 이 경향이 나타난 것임. 이 경향이 나타나는 것도 KBS와 MBC에서 좀 방식이 다른데, 그러니까 KBS는 MBC와는 다름. KBS는 태어나기를 공영방송으로 태어났고 형식적으로도 공사이기 때문에 공공성-공정성에 대한 어떤 점잖은 태도? 그런 게 있음. 그래서 앞서의 경향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 계속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들이 있다고. 반대편에서 보기엔 그게 그거겠지만…
근데 MBC는 공영방송이고 싶었던 적도 없고 지금도 별로 공영방송이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형식적으로도 수입원이 광고수익이잖나. 이 난리가 나기 전인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에 MBC가 KBS와 비교해 훨씬 적극적이고 과감한 방식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성격에 기인하는 것임. 그래서 공공성-공정성에 대한 어떤 강박이랄까 그런 게 KBS보다 훨씬 덜한 측면이 있고, 그게 앞서의 경향이 더 급속하게 급진적 방식으로 나타나는 촉매가 되는 거 아니냐는 게 저의 생각.
여튼 이게 그래서 보수정권이 정권 잡고 공영방송에 관여하고 조지고 하는 방식으로 통제하는 매커니즘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됐다 이런 거는 어떤 정서적인 측면에선 그런 면도 있겠지만(좌천당해있다 권력을 잡게 되면 상대를 혼내주고 싶은 생각이 분명 들겠지…), 그게 어떤 본질적인 문제라고 하면 ‘차카게 살자’ 이상의 결론이 나올 수가 있겠나. 공영방송이란 뭐고, 공영방송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와 그 합의에 따른 시스템 마련을 촉구하는 게 필요한 때라고 본다.
가령 공영방송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경우 시청률 하락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공영방송에 대한 평가 기준은 어때야 하나? 지금도 시청률 하락이 공영방송이 잘못한 증거인양 하는 세태가 일반적이잖아. 그럴 게 아니라 최소한의 보조적 지표(그러니까 공영방송의 역할을 인정하더라도 이것만큼은 시청률이 높았어야 한다는 식으로)로 얘기할 수 있어야 하는 거고, 내부 조직 논리도 그에 따라야 하는 거지. 유튜브 조회수 얘기나 하고 그게 낮다고 조지고 이런 건 안 된다는 것. 또, 공영방송이 그런 존재라는 걸 인정하면 소유구조는 어떤 방식으로 설계돼야 하나? 이런 걸 얘기해야 되는데, 좌파단체다 이런 얘기나 하고…
근데 또 이런 얘기하면 MBC PD같은 사람들이 그런다니까. 아니 공영방송이라고 해서 꼭 진지빠는 것만 해야 하나요? 공영방송도 재밌고 화끈하면 안 된다는 법 있나요? 공영방송이라고 기계적 중립 꼭 지켜야 하나요? 아휴~~ 됐씁니다 그만얘기하자…
추가. 강준만 교수님은 무엇보다도 그걸 아셔야 한다. ‘흑역사’는 건담 용어이다.
Comments are closed, but trackbacks and pingbacks are op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