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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무소유를 어떻게 실천합니까

2020년 11월 16일 by 이상한 모자

내로남불 내로남불 신나는 노래… 지겹고 짜증난다. 어딜 가나 스님 얘기를 시켜갖고 많은 생각을 하였다. 전현직 법무부 장관들에 이어 스님들끼리 또 SNS에서 싸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이패드 스님은 왜 이렇게 당당하였는가?

애초에 소유란 무엇이며 무소유란 무엇인가? 세속의 기준으로 하면 명확하다. 내가 어떤 대상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획득하고 있으면 그게 소유이다. 누가 무엇을 가졌는지에 대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도록 소유권을 법으로 정해놨다. 부동산이라면 등기부등본에다가 주란봉석 이렇게 쓰는 거지.

그런데 이것은 세속의 기준이다. 종교의 기준 도의 기준에서 소유란 무엇인가? 무소유를 끝까지 밀어 붙인다면, 스님은 옷을 입지 말아야 하는가. 스님은 왜 옷을 가지는가? 아니다. 무에서 와서 무로 가는 우리에게 옷은 그저 빌린 것이다. 부당거래라는 영화에서 황정민이 마동석에게… 너 그 북창동 오락실 건 와이로 받았어? 그러자 마동석이… 아뇨 형님 그거 좀 빌린 거예요…

그래서 법적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든, 이게 내 것이 아니다 라고 그저 잠깐 빌린 거예요 이렇게 생각을 한다면은 그것은 소유가 아닌 것이다. 남산타워 뷰 주택 그저 빌린 거예요… 건물주? 빌린 거예요… 아이패드? 빌린 거예요… 여보게 저승갈 때 뭘 가져갑니까? 이게 아이패드 스님이 당당하게 예능 촬영에 임한 이유가 아니여?

뭐 그런 말장난이 있는가 하겠지만… 보십시요.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마실 적에 이게 누가 봐도 해골물인데 임마 아니라고 생각하면 어떡하냐… 이렇게 자책하였습니까? 아닙니다. 무릎을 탁 치며 깨달음을 얻었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있는 것이로다! 일체유심조! 그니까 당신 명의의 통장에 10억이 있든 50억이 있든 그것을 가지지 않기로 마음을 먹는 것이 중요하다. 돈을 쓰면서, 이건 나를 위해 쓴다 이러면 그것은 소유이다. 하지만 비록 내가 잘 먹고 잘 입는 데 쓰지만 이건 모두 하여간 어떤 도를 위해서이다 라고 한다면 소유가 아니다.

그래서 훌훌 털고 떠난다고 하니 기생충이라고까지 한 독일 스님도 인정한 것이다. 오케이! 우리는 돈오점수… 뒤에서 이런 종교적 스토리로 몰래 땅 투기 하고 선거자금으로 쓰고 룸살롱에서 접대하고 이런 땡중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에 비하면 혜민쓰는 무소유의 무소유 아닌 무소유 같은 무소유를 너무도 투명하게, 방송을 통해 모든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독일 스님 얘기처럼 차라리 순수하군요.

이래도 납득이 안 된다면, 노래를 함께 부르자. 어떠한 높으신 양반 고귀한 이념도, 허공에 매인 십자가도 우릴 구원 못 하네! 애초에 아이패드 스님한테 뭘 기대한 거여! 거기서부터 문제가 있었던 겁니다. 과세 없이 대표 없다! 세금이라도 좀 잘 내시고…

Posted in: 소박한 철학, 잡감 Tagged: 무소유, 혜민

도시와 선거제도

2020년 11월 13일 by 이상한 모자

아까 미국 교수님의 결론은 그래서 농촌의 보수표심이 과대대표되는 미국 간접선거제도에 대한 문제제기가 결론인데,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을 것 같다. 과거에는 도시가 가난과 범죄의 상징이었던 때도 있었다. 20세기 초중반까지만 해도 미국 중산층의 이상적 삶은 교외의 독립된 저택에 살면서 이동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자기가 소유한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런 구도로 보면 진보와 보수라는 구도의 허구성이 드러나는데, 가령 도시는 도시화로 불거진 불평등과 빈곤의 해결방법을 모색해야 했다는 점에서 혁신주의의 모티프가 되었지만 동시에 금융자본이라는 절대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즉, 동북부 공화당 자본가들은 남부 민주당 지주들로부터 노예를 빼앗아 노동자로 만들었고 기득권을 빼앗긴 남부 민주당 지주들은 역시 금융자본이 문제라며 노예해방을 강요하는 군정의 종식을 요구하고 민주주의 만세를 외쳤던 것이다.

아무튼 마침 양당제이니 직접선거를 하면 논란을 해소할 수 있을 거 같다. 근데 이게 되려면 미국이란 나라의 구성 원리를 바꿔야 된다. 13개 식민지가 논란 속에 하나의 중앙정부를 구성한 것이 미국의 출발… 언제적 얘기냐 할 수 있겠으나 예를 들어 하원은 인구비례로 의원 숫자를 각 주에 배정하지만 상원은 주별 2명으로 동일하게 돼있다. 노쓰다코타든 캘리포니아든 상원의원은 2명씩만 가진다. 이것 뿐만이 아니고 하여간 시스템이 이런 식이다. 윈도우컴에다가 맥OS를 어떻게 깝니까. 해킨토시라는 것도 있지만…

간접선거가 필연이라고 하면, 특정 성향의 사람이 특정 지역에 몰려있는 한 어떤 방식으로든 과대/과소 대표의 문제는 피할 수 없어진다. 우리가 총선 치를 때를 생각해보면 사실 마찬가지 문제가 있다. 선거구 편차가 심해서 특정 성향의 지역이 과대대표된다고 하는…

하여간 편차는 줄일 수 있으면 줄여야 한다. 그런데 앞서 도시에 대한 인식의 차를 두고 말했듯 이 편차라는 것도 시기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진다. 도시나 농촌이나 민주/공화 득표 비율이 똑같이 나온다고 하면 논란은 없을 것이다. 즉 제도에 선행하는 것은 도시와 농촌으로 여론을 양극화시키는 정치이다. 그러니까 이건 결국 완벽한 제도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는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적 문제이다. 제도를 바꾸더라도 상황이 달라지면 또 이런 저런 수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여기서 할 말이 없어지면 이렇게 말하세요. 모든 이론은 회색이요…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도널드 트럼프, 민주주의, 선거제도

도시와 농촌

2020년 11월 13일 by 이상한 모자

오늘은 미국 교수님 블로그를 보다가 또 그 전형적인 문제의 얘기를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도 여촌야도 뭐 이래가지고 옛날에 도시가 더 진보적이다 이런 개념이 있었다. 우리 뿐만이 아니고 세계가 다 마찬가지다. 경향적으로 대도시가 더 진보적 성향을 보인다.

이건 당연히 경제-학력의 문제와 관계가 있다. 여기서 간과하기 쉬운 것은 사실 이게 단지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는 아니란 거다. 전통적 진보 담론은 변화+대의라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거나, 도덕과 윤리를 따라야 한다거나, 심지어는 선진국은 이러저러한 기준을 갖고 있는데 우리는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거나… (선거제도 타령도 담론의 성격으로만 보면 여기에 해당한다) ‘~해야 한다’는 것에 익숙한 고학력층이 수용하기 쉬운 논리 구성이다. 그래서 도시적 진보는 대의를 따르기 위해 변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끌린다.

반면 농촌의 저학력 저소득층에게는 이런 논리가 매력적이지 않다. 경제에 있어선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절실하고 당위를 추구하는 것에 있어선 전통적 가치 수호 이상의 맥락을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 1차산업 위주의 경제권이라면 더욱 전통적 가치가 중요하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전통을 지키거나 되살리고 이상보다는 현실을 택해 당장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자는 담론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근데 트럼프의 담론은 복고적 변화+현실적 이득이라는 형태로 구성돼있다. MAKE AMERICA GREAT AGAIN! 그런 점에서 대도시의 중산층이 BLM 등의 정치적 올바름과 기후변화 이슈에, 농촌이나 쇠락한 지역의 저소득층이 트럼프식 속물주의에 상대적으로 더 끌리는 것은 뭐 당연하다.

이 정권들어 유행인 공정 담론은 ‘현상유지를 위한 변화’, ‘현실적 이득을 추구하기 위한 대의’라는 식의 포장에 성공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맞서는 진보의 담론은 대의를 추구하기 위한 변화를 더 철저하게, 더 근본적으로, 더 완결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가령 대의의 추구가 또다른 울타리를 만드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하지만 현실은 진보의 담론조차도 ‘변화에 동참해야 나의 이익이 보장된다’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과거에는 그것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나의 이익이 훼손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변화해야 한다’는 걸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그건 날이 갈수록 어렵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단지 ‘착한 소비’에 동참하는 것만이 아니라 아예 기존의 삶을 버려야 한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불가능에 도전하세요~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기후변화, 도널드 트럼프, 여촌야도, 진보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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