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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트럼프

게임과 전쟁과 백악관

2026년 3월 7일 by 이상한 모자

최근 백악관이 게임 화면을 연상케 하는 방식의 전쟁 정당화 영상을 올려 많은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오래 전에 했던 오타쿠 게이머 모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 모임에서 나는 게임의 형식 자체가 가져오는 게이머의 인식 변화라는 게 있다는 얘기를 했다. 이건 나 혼자 하는 얘기가 아니고 이런 저런 비슷한 얘기 한 사람, 해온 사람들이 다 있다. 게임 자체의 형식이 만들어 내는 인식이라는 게 있고, 그 인식을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방향으로 귀결시키는 게임 담론이라는 게 또 있고, 그 게임 담론을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극우포퓰리즘 정치가 있다는 게 내 주장이다. 이 얘기는 지난 번에 쓰고 방치해 놓은 책 원고에도 있다.

지금 못 봤지? 내가 글씨로 다 지금 썼는데도 못 봤지? 그냥 뭐 또 그랬겠지 하면서 대충 읽느라. 다시 쓴다.

1) 게임 자체의 형식이 너님들에게 형성하는 인식이 있고
2) 이 인식을 특정 이데올로기적 방향으로 이끄는 ‘게임 담론’이 있고
3) 이 ‘게임 담론’의 수용자를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극우포퓰리즘 정치가 있다

트럼프의 백악관은 정확히 이 대목을 겨냥하고 있는 거다. 겨냥? 여기에 익숙한 것이다. 너무너무너무너무 익숙한 것이다. 왜? 계속 그렇게 해왔고, 그게 진행이 돼 왔고, 뭐 상식이니까! 우리 세대가 뭐 전쟁을 어디서 경험했냐? 다 콜 오브 듀티 이런 데서 경험했지. 근데 거기서 경험한 건 뭐? 총 맞고 사망하는 걸 경험했나? 아니다. 사망했지만 시간을 되돌려 되살아 나고 다시 가서 적을 쏴죽이고 뭐 하고 뭐 하고 뭐 하는 그런 걸 배웠지. 총의 종류는 뭔지, 소리는 어떻게 나는지, 언제 쏘고 언제 숨고 언제 탄창을 갈아야 하는지, 뭐 그런 거였지. 트럼프의 백악관은 지금 우리가 하는 게 그런 거다, 이거 아니냐…

그래서 나 같은 놈도 이 얘기를 유튜브에서도 수십번을 떠들고 했지만, 여하튼 간에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도 유사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이른바 젊은 세대의 보수화-극우화 이 문제에 이 코드가 하나의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는 것.

그러나 그 때, 얘기를 했을 때, 많은 우리 게이머 분들의 반응은? 게임을 마녀사냥 하지 마라, 네가 뭘 아냐(요즘의… 영포티가 뭘 아느냐 같은 거였음), 진짜 그런지 나는 모르겠다, 하여간 난 아니다 등등…

왜 그랬는가? 그 때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소중한 게임을 지켜야만 했고(왜? 게임은 소중하고 게이머는 언제나 피해자니까), 또 여러분이 생각하는 ‘극우’에 이런 건 안 들어가는 얘기였기 때문에. 무조건 여러분들이 원하는 얘기, 지금까지 이해해 온 얘기, 여러분들 생각이 옳다는 것을 뒷받침 하는 얘기, 이런 것만 필요한 거거든. 그래서 이제 똑같은 얘기를 해도, 이전에 하면 ‘저 새끼는 왜 괜히 저러냐, 누가 꼰대 아니랄까봐…’ 이런 반응을 했는 데 이제와서는 ‘아이 그걸 누가 몰라~’ 뭐 이런 반응 하는 거지. 그러면서 악플 같은 거나 다는 거야. 이게 우리가 사는 이 지옥같은 세상이다.

이 모두가 자기 세상에서 주인공인 자기중심적 SNS-인터넷 세상에 더해, 이제는 AI까지… 이 개같은 세상에 대해 더 떠들고 싶으나…

아 왜 진정이 안 되지… 두통예방약을 아직 안 먹어서 그런가… 아 왜 이렇게… 그럼 이만…

Posted in: 신변잡기, 잡감 Tagged: 게임, 백악관, 이란, 전쟁, 트럼프

트럼프, 법치, 노동계급

2024년 11월 19일 by 이상한 모자

토요일에 읽은 인터뷰 기사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안병진 교수 얘기다. 이거를 중앙일보에서 읽었다고 토요일날 유튜브 방송에서 잘못 말했는데, 한국일보였다. 한국일보에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고… 경제 문제가 핵심이었다는 거는 여러 군데서 얘기하지만 ‘법과 질서’ 역시 중요한 한 축이었다는 게 중요한 거 같다. 이거는 제가 얼마 전에도 여기다가 적은 트럼프와 법치 얘기랑 비슷한 말씀인 거 같다.

“시대정신이 트럼프에게 있었다. 선거 초반부터 해온 얘기인데,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인플레이션이다. 먹고살기 팍팍하다는 거다. 식료품 물가상승으로 치명타를 입은 저소득층에게 임금 수준이 나아졌다는 통계치를 줘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 이제 반성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문제니까 넘어가자. 다른 하나는 한국에 덜 알려진 ‘법과 질서’, 즉 로 앤드 오더(law & order) 문제다. 미국 정치의 핵심 키워드인데 너무 간과됐다.”

-법과 질서라는 건 어떤 건가.

“미국 내 ‘진보의 아성’이라 불리는 뉴욕, 샌프란시스코 같은 곳의 민주당 정치인들은 엄청 곤혹스럽다.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 같은 사람이 ‘너희 진보가 그렇게 훌륭하다고? 어디 한번 당해봐’ 이러면서 불법 이민자들을 버스, 비행기에 태워서 진보 도시에다 보냈다. 진보 도시들은 이민자를 수용하느라 정신없다. 그 결과 뉴욕 내에서도 가장 진보적이라는 브롱스, 퀸즈 같은 곳에서도 트럼프 표가 2~3배 이상 늘었다. 또 하나는 펜타닐 문제다. 서부에 가보면 약물 오남용 중독자들이 길거리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 이런 혼란상이 싫으니 정리해달라는 게 법과 질서의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선은 1968년 대선 당시 리처드 닉슨의 승리와 동일하다.”

-그러고 보면 닉슨도 그 유명한 ’68혁명’ 와중에 승리했다.

“묘한 평행이론이다. 그때도, 지금도 현직 대통령 린든 B 존슨과 조 바이든이 재선 출마를 포기했고 현직 부통령 휴버트 험프리와 카멀라 해리스가 출마했다. 험프리도 전임 존슨과의 차별화에 실패한 가운데 닉슨은 ‘법과 질서’를 내걸었다. 닉슨에겐 케빈 필립스라는 탁월한 전략가가 있었다. 그는 ‘사회 진보, 민권 신장 다 좋은데 이렇게 폭력적이고 혼란스러운 건 싫다는 이들, 침묵하는 다수를 공략하자’고 했다. 이 전략이 1968년 유혈사태로 치달았던 민주당 전당대회 등과 맞물리면서 미국민들에게 먹혀들었다. 올해 민주당 행보, 대선 흐름과 판박이다.”

-해리스도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 경력을 내세웠다.

“너무 안이했다. ‘검찰총장하면서 마약 카르텔, 아동 성 착취범들을 단호하게 처벌했다’고 했는데 그뿐이었다. 사실 해리스는 민주당 진보파들에겐 의심의 대상이었다. 사형제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선 것 등 여러 요인들이 있다. 그 때문에 해리스는 검사로서의 커리어를 내세우면 법과 질서에서 뒤지지 않는다 생각한 것 같은데, 그건 민주당 내에서나 통할 이야기다.”

(…)

-해리스가 ‘법과 질서’란 이름 아래 내놓을 수 있는 제안은 무엇이었을까.

“공화당이 초당적 이민법을 안 해줘서 그렇다, 라고 변명하기보다 여러 혼란과 불편함에 대해 일단 사과하고 그다음에는 이민 담당자로 강력한 인물을 내세워야 했다. 박근혜 후보 시절 경제민주화를 생각해보라. 복잡하게 설명하느니 ‘김종인 영입’으로 그냥 보여줬다. 그게 대선 캠페인의 기본인데 그걸 못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11308360001887

인터뷰 전문을 보면 그 외에 이대남 얘기도 있고 지난 번에 메모로 적어 놨던 거랑 겹치는 얘기가 이래 저래 있다. 이외에 또 눈길이 가는 대목은…

-한때 인구구성 변화 등으로 미국의 ‘백인 정체성’이 옅어지면 민주당이 장기집권하는 거 아니냐는 분석도 있었다.

“2008년 버락 오바마의 대선 승리 이후 민주당에서 나온 주장이다. 흑인, 히스패닉계에 이어 청년, 여성까지 끌어들였으니 이제 ‘레이건 민주당원’은 중요하지 않다는 목소리다.”

-레이건 민주당원이란 어떤 이들인가.

“말 그대로 민주당원인데 대통령으론 레이건을 찍는 백인들을 말한다. 사회경제적으론 민주당, 프랭클린 루스벨트, ‘뉴딜 민주주의’를 좋아하지만 문화적으론 보수적인 백인들을 말한다. 오바마 승리 이후 ‘흑인 히스패닉 여성 청년, 4개의 카드만 있으면 레이건 민주당원이 없어도 우리가 이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농촌, 백인, 노동자의 분노가 2012년부터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중이 줄었다 해도 그들은 여전히 다수다. 거기다 흑인, 히스패닉, 여성, 청년이 무조건 진보적이라는 것도 착각이다. 특히 히스패닉의 경우 백인 주류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트럼프의 승리’라기보다는 ‘해리스의 패배’라는 건가.

“만약 트럼프가 좀 더 온건한 후보였다면 훨씬 더 크게 이겼을 거라고 본다. 민주당의 오만함이 너무 싫은데 트럼프라서 차마 찍지 못한 이들도 많다.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는 극단성 때문에 이긴 게 아니라 되레 손해를 본 경우라고 봐야 한다.”

이걸 버니 샌더스 등의 지적과 연결해서 봐야 할 필요가 있는데, 나는 버니 샌더스 등의 지적을 ‘민주당이 보다 좌파적이 되지 못해 패배했다’는 식으로 연결하는 논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유권자가 ‘좌파적인 민주당’을 원하는 그런 판인지 의문이고, ‘좌파적인’ 게 뭔지조차에 합의하지 못하는 게 오늘날 전 세계 진보쓰들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레이건-민주당에 대한 위 규정이 그런 건데, 1) ‘뉴딜 민주주의’를 좋아하지만 2) 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인 백인이라는 거 아닌가? 1)로 보면 진보적인데가 있다고 할 수도 있고 2)로 보면 중도층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다. 그런데 오바마 이후 민주당은 1)에서는 뉴딜 이후 그래왔던 것처럼 (그게 자의든 타의든) 사실상 답이 없거나 더디거나 말 뿐이거나 하고, 2)에서는 급진화 되었다. 그러니 안 교수가 말하는 ‘레이건 민주당’은 오바마 이후의 민주당을 지지할 이유가 없는 거고, 이번 대선에도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 레이건-민주당을 잡을 해법은 뭘까? 이들이 2)에 대해 갖는 거부감은 낮추면서 1)에 대해선 대안적 해법 제시가 필요하다. 이걸 버니 샌더스식으로 말하면 노동계급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일이 되는 거다. 사실상 똑같은 얘긴데, 이렇게 얘기하면 중도층 잡으라는 얘기가 되고 저렇게 얘기하면 노동자 계급 잡으라는 얘기가 된다. 즉 우리는 중도층을 잡는 것과 노동계급에 대안을 제시하는 게 비슷한 얘기인 세상에 살고 있다.

그게 그렇게 된 이유는 뭐다? 주류 정치가 세상에 대한 총체성, 즉 통치를 전제한 어떤 상을 잃어버린 탓이다… ‘나는 뭘 하겠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이런 저런 뭘 해주겠다’고 말하는 것에 그치고 있는 것. 그런데 트럼프는 그나마 ‘뭘 하겠다’에 가까운 것처럼 보였고, 그게 승패를 가른 것 아니냐 라는 생각이 든다는 그런 얘기를 계속 드리고 있다는 것.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레이건 민주당, 안병진, 트럼프, 해리스

트럼프의 선거-통치 담론에 대한 짧은 생각

2024년 11월 13일 by 이상한 모자

전적으로 내식으로 말하는 거지만, 선거담론이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통치담론이라고 말하기도 그래서, 선거-통치 담론이다. 미국 대선에 대한 이런 저런 글들을 계속 보는데, 아직은 기존의 틀 혹은 인식에다가 우겨 넣는 식의 얘기가 많은 거 같다.

지난 번에 여기다가도 썼지만, 바이든 심판론에 트럼프 심판론으로 맞서는 거는 역부족이었다는 점에 대해선 대개 인정하는 거 같다. 그렇다는 전제 하에, 하여간 트럼프가 이겼으니 트럼프의 무엇에 사람들이 반응했고 해리스의 무엇에 반응하지 않은 건지를 규명해야 한다.

이번에 느낀 건 트럼프의 여러 선거용 논리 중 먹혔던 게 어떤 ’법치‘ 논리였다는 거다. 대표적으로 합법적 이민자와 불법적 이민자를 가르는 논리가 그렇다. 어차피 정치적 효과는 백인-남성-기득권 중심과 소수자 배제 및 혐오지만 거기에 이르는 방식 그러니까 포장지가 그랬다는 것인데, 이게 최근 ’이대남 정서’와 코드가 맞는 게 있다.

가령 ’이대남 정서‘라는 건 본질은 어떨지 몰라도 포장은 ‘팩트’, ‘논리’, ‘법치’로 자기들이 부르는 무언가로 한다. 그 대척점에 있는 건 ‘선동’, ‘감성’, ‘생떼’이다. 가령 어느 시민단체가 ‘서민 보호를 위해 복지제도를 강화하고 이를 위한 증세를 하자’는 주장을 내걸고 집회를 개최하면, 감성에 기초한 선동에 나선 좌파들이 생떼부리는 게 되는 거다. 그리고 이들을 ‘참교육’ 하기 위하여 복지 혜택 줘봤자 놀고 먹는데 익숙해지기만 하는 사람 스토리 같은 걸 팩트라고 들고와 무슨 주장을 하면서 그걸 논리라 하고, 이런 시위대를 경찰이 당장 해산시켜야 한다며 법치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식의 태도를 냉소주의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가령 마약정책이라고 해보자. 이런 팩트-논리-법치의 세계관 속에 2차 감염부터 막기 위해 미사용 주사기를 나눠주는 장기적 접근 같은 건 위선에 불과한 거다. 하물며 이민자 문제는 어떤가? 대외문제는? 젤렌스키 좋은 일을 왜 해야 하는가?

이들에게 트럼프의 대답은 이런 위선 같은 건 다 일소하고 선동, 감성, 생떼들의 설 자리를 없애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여기서 트럼프의 태도가 먹히는 게 있는데, 트럼프는 이렇게 ‘하겠다’고 하는 거고 사람들에게 ‘알아서 따라오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찌됐건 해법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는 거다. 실제 그렇든 아니든.

이에 반해 해리스는 해법 제시라기 보다는 공감형이었다는 인상이다. 트럼프에 대한 여러분의 우려를 안다, 그러니 우리 함께 트럼프 집권을 막자…. 그 와중에 오바마가 나와서 막 꾸짖고…. 트럼프가 이기게 생겼는데 흑인 남성 너네들 정신 못 차리고 도대체 뭐하냐! 다시 해리스가 와서 우리 흑인 남성들 뭐 좋아해… 마리화나? (물론 대마 소지에 대한 처벌 완화는 트럼프도 얘기했다. 다만 맥락이 해리스와는 다르게 보였을 뿐. 언제나 중요한 건 맥락…)

트럼프식 21세기 극우포퓰리즘의 시대가 지나면 엘리트주의가 이전보다 훨씬 더 잔혹한 모습으로 본능을 드러내며 귀환하지 않을까 하는 얘기를 여기저기서 한 바 있다. 최근 상황에 대입해보면 정확히 바이든이나 해리스가 그렇게 하지 않을까 생각한 거였다. 비유하자면, 트럼프가 조커라면… 팀 버튼의 영화에서처럼 조커가 배트맨의 아빠 엄마를 죽이는 바람에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이 되어 귀환하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었는데, 현실은 그게 아닌 거 같다.

트럼프 이후에 귀환하는 것은 또다른 트럼프다. 트럼프는 그대로지만 대중과 시대가 트럼프 이후의 트럼프로 트럼프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전의 엘리트가 그랬던 것처럼, 법치의 외양을 하고 있다. 조커가 그저 조커로서 환호를 받는 게 아니라, 배트맨으로서 환호를 받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아마 엘리트가 그랬던 것처럼 트럼프도 엘리트처럼 부패하고 엘리트처럼 무너질 것이다. 트럼프처럼 부패하고 트럼프처럼 무너지는 게 아니다. 그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닐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이제 일하러 가야 하는 시간이어서 급히 마무리 함…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미국 대선, 엘리트주의, 트럼프, 포퓰리즘, 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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