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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국민개세주의

2017년 7월 27일 by 이상한 모자

과거에 ‘국민개새주의’라는 말장난도 있었던 것 같은데 너무 아재 같으니까 거기까지만 하고… 증세 얘기하니 보수언론이 국민개세주의 국민개세주의 하는데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개세주의가 무슨 얘기냐면, 법인세 말고 소득세를 손대라는 거다. 금융소득이나 임대소득을 더 물리란 얘기 같지는 않고, 결국 근로소득세 얘기다.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이 세계 최고라는 지적이 반드시 따라 붙는다. 근데 이게 왜 그렇게 됐는지는 잘 얘기를 안 한다. 아래는 News1이 만든 그래프이다.

물론 2013년 32.4%도 적은 비율은 아니지만 왜 갑자기 2014년에 면세자 비율이 뛰었나. 2013년 연말정산 파동을 얘기 안 할 수가 없다. 맨날 말하는 거 또 말하는데, 소득공제 방식을 세액공제 방식으로 바꾼 거 자체는 소득불평등 개선 효과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악마는 늘 디테일에 있다고 하듯이 모형을 어떻게 만드느냐, 즉 실질적으로 얼마 버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세부담을 늘릴 거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때 나온 게 조원동의 거위 깃털 얘기랑 연봉 3450만원 5500만원 논란 등등이다. 보수언론은 복지를 늘려서 서민증세가 됐느니 하면서 난리 난리를 쳤고 지금의 더불어민주당도 여기에 부화뇌동해서 월급쟁이 유리지갑 퍼포먼스 같은 거 하면서 법인세 ‘원상 복구’를 주장했다. 뭐 그럴 수도 있다고 보는데, 여튼 박근혜 정부는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결국 못 버티고 공제 범위를 늘려줬다. 비전문가인 나로서는 이게 면세자 비율 증가의 주요 원인이 아닐까 추측한다.

그런데 이때 사람들이 ’13월의 세금폭탄’ 운운 하면서 기분이 안 좋았던 것도 이해는 한다. 실제로 현재 수준의 소득으로 살기가 팍팍하니까 할 수 없다. 그래서 단순히 ‘면세자 비율’이 문제라면 유식한 말로 담세력을 높이는 대책을 함께 봐야 한다. 그런데 보수언론은 최저임금 인상도 싫고 소득주도 성장도 싫다. 최저임금을 인상해서 전통의 회사가 외국으로 떠난다며 온갖 걱정을 다하고 있다. 서울신문이 팩트체크도 해봤는데, 이에 따르면 보수언론의 관련 주장은 한 10%만 사실인 거 같다. 보수언론은 또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서도 웬 듣보잡 이론을 갖고 와서 나라 전체를 정책실험장으로 만든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결론은… 이 난리 부르스가 문제가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이나 국민개세주의에 있다는 게 아니란 걸 오히려 보여준다는 거다. 그냥 법인세를 방어하자는 거다. 법인은 투표권이 없고 노동자는 투표권이 있으니 지방선거 앞두고 어디 투표권 있는 분들 대상으로 증세 얘길 해보시라, 이 얘기다. 이 얘기를 한참 해도 결론은 안 날 거기 때문에 논점은 결국 부가가치세로 가고야 말 것이다. 벌써 이렇게들 쓴다. 꼭 정치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저성장을 걱정하는 분들이 과연 부가가치세에 손을 대겠는가?

나 같은 사람이야 세목이 뭐든 증세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과정에 정치가 있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 5년 내내 중산층 증세는 없다고 벌서 못 박았지만 슈퍼리치든 핀셋이든 법인세든 있는 데부터 손을 대야 나머지도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 거다. 법인세 인상 여론만 비켜가면 어차피 증세를 못 할 거라고 생각하며, 안 될 일을 안 되게 하려는 목적으로, 안 되는 얘기를 하는 걸 아침마다 보고 있어야 되는 이 세상이 피곤하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국민개세주의, 근로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세액공제, 연말정산, 증세

오키나와 기행 6

2016년 8월 28일 by 이상한 모자 Leave a Comment

숙취 속에서 깨어났다. 김 선생님은 아직 자고 있었다. 다시 잠들었다. 그러나 곧 김 선생님의 스마트폰이 내는 소음에 깼다. 고국의 뉴스를 시청하려는 것이다. 차례로 씻고 일단 밖으로 나갔다. 이 와중에도 굳이 뭔가를 둘러보겠다고 하는 김 선생님의 열정에 감탄하였다.

나미노우에 해변 인근

나미노우에 해변 인근

공사 중인 건물 담벼락에서 발견한 고양이

공사 중인 건물 담벼락에서 발견한 고양이

골목 골목을 누비며 일상의 삶을 관찰하였다. 때는 8시를 좀 넘은 시각이었는데, 출근에 발이 바쁜 사람들을 몇몇 보았다. 글쎄 여기나 거기나 다들 힘들고, 사는 게 비슷하다. 바쁜 사람들은 공사 중인 건물 옆의 사무소 같은 데로 들어갔는데 그러니까 건설 현장에 관계가 돼있는 직업을 가졌을 것이다. 뭘 짓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해변과 주거지역과 공장과 상업지역이 마구 뒤섞인 공간이 낯설지 않았다.

해변에서 바라본 바다

해변에서 바라본 바다

해변 위로 지나가는...

해변 위로 지나가는…

해변에서 야구공을 발견한 김 선생님

해변에서 야구공을 발견한 김 선생님

먼저 향한 곳은 나미노우에 해변(波の上ビーチ)이다. 앞의 건설 현장과 가까운 것을 볼 때 동네 사람들도 많이 이용하는 곳으로 추측됐다. 바다 저 멀리 배를 끌어 올리는 크레인이 보였다. 샤워시설 등은 9시부터 쓸 수 있었다. 어차피 온 몸이 타버려서 해수욕을 할 마음은 없었다. 그 아침에 벌써 수영을 하고 있는 젊은이도 있었다. 꽤 전문적인 포즈였다. 자세히 보니 그가 수영을 하고 있는 주변에 수중차단막 같은 게 쳐져 있었다. 그 안에서 이른바 스노클링 등을 하라는 의도인 것 같았다. 이외에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노인들과도 마주쳤다. 날은 덥고 햇빛은 세고 숙취에 배까지 아파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나미노우에 신사

나미노우에 신사

한참 해변을 걷고 나서는 나미노우에 신사로 이동했다. 해변에 우뚝 서있는 바위절벽 위에 있는 신사로서, 오키나와 신사들의 대장 격인듯 했다. 오키나와에는 8개 정도의 신사가 있는 듯 했는데 아무래도 중국 문화가 섞여있다 보니 본토의 신사와 좀 의미가 다를 듯도 싶었다. 절벽 위에 서서 해신의 나라를 향해 풍요를 기원했다고 하는데, 그 광경을 상상해보았다. 그들이 바라보는 방향에 있는 건 중국인데… 그때도 알았으려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중국문화권이었다고 해도…

신사에 도착한 김 선생님은 경내를 이리 저리 둘러보았다. 그리고 물이 있는 곳을 발견해 국자로 물을 마셨다. “안 시원해!”라고 외쳤지만, 난 왠지 그게 아닌 거 같아 물 마시기에 동참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곳은 참배 전에 손과 입을 씻는 의식(手水)을 치르는 곳이었다. 국자에 입을 대서도 안되고 의식이 끝난 후에는 국자를 씻기까지 하는데… 뭐 난 안 했으니 됐다. 그리고 그 옆에서 어찌된 일인지 메이지 천황의 동상을 발견했다. 1879년 메이지 정부가 류큐 왕국을 오키나와현으로 만든 흔적인 것 같기도 했다.

메이지 덴노의 동상

메이지 덴노의 동상

기이한 식물

기이한 식물

신사를 보고 이제 그만 숙소로 돌아갔으면 했는데, 김 선생님은 신사 주변까지 모조리 탐험하려는 것이었다. 숙소 주변에는 숲길과 앉아서 쉴 수 있는 긴 의자 등이 조성돼있다. 기이한 식물을 구경하면서도 숙취와 더위와 복통을 어떻게 이겨낼까를 고민했다. 그러던 중 기이한 동상을 발견했다. 한 여인이 아동을 안고 있는 모양인데,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 상의 이름은 ‘바다울음의 동상(海鳴りの像)인데, 대단히 슬픈 사연이 있는 기념물이었다.

바다울음의 동상

바다울음의 동상

오키나와 전투 당시 방어를 맡았던 제32군은 북부를 포기하고 슈리성을 중심으로 남부만을 방어하기로 하고 장기전 체제에 들어갔다. 주식이던 쌀을 고구마로 바꾸고 각 지역에 보급소를 만들어 남쪽 지역 전체를 요새화 하려고 했다. 문제는 민간인들이었는데, 군사자원으로 활용하기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은 밥만 축내게 하느니 차라리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게 나았던 것이다. 그래서 제32군은 소개령을 내려 비전투인원을 전부 본토의 큐슈 등에 보내게 했다. 이 중에는 보호자와 떨어진 아동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들을 태운 화물선인 쓰시마 호가 군함의 호위를 받으며 이동 중에 미군 잠수함의 공격에 휘말렸다. 당시 탑승객은 1788명이었는데 이 중 1484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희생자 중 780명은 학동(學童), 즉 어린이들이었다. 그래서 나미노우에 해변 근처에는 이를 기리기 위한 쓰시마마루 기념관(対馬丸記念館)과 작은 벚꽃의 탑(小桜の塔)이 있다.

그런데 당시 오키나와 근해에서 희생된 민간인은 이들 뿐이 아니었다. 당시 이런 식으로 격침된 조난 선박은 26척이며 앞서 쓰시마마루를 제외하고도 오키나와 현 조사 기준 1927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 중에는 물론 어린이들도 포함돼있다. 이 상은 이 사람들을 기릴 목적으로 만들어 졌다.

다시 숲을 헤치며 걸어 내려오니 옆에 운전학원 같은 게 있었다. 그리고 또 절도 있는 것 같았는데 시간도 없고 상태도 좋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비틀비틀 걸어가는 와중에 패밀리마트를 발견하고 거기서 아침식사거리를 사기로 했다. 그런데 이곳에는 놀랍게도 화장실이 설치돼있었다. 이용해본 바 아주 깨끗했다. 감탄하였다. 도시락코너로 가서 김 선생님은 돼지고기가 들어간 파스타 같은 것을, 나는 돼지고기 덮밥을 골랐다. 점원이 데워준 도시락들을 들고 숙소로 복귀해 펼쳐놓고 먹었다. 드디어 술이 좀 깨는 듯 하였다. 돼지고기 덮밥은 베스트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었지만 편의점 음식이라는 걸 감안할 때에는 꽤 괜찮았다. 소스가 좀 새콤했는데 특이했다.

돼지고기 덮밥과 돼지고기 파스타

돼지고기 덮밥과 돼지고기 파스타

짐을 챙기고 숙소를 나서 공항으로 가기 위해 유이레일을 다시 이용했다. 이번에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대량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뒷사람이 뭘 기다리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안하무인격으로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며 민폐를 끼쳤다. 일본에 있다가 갑자기 한국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공항에 도착하기까지 그들의 괴이한 행동들은 내내 이어졌다.

천신만고 끝에 나하공항 국내선 터미널에 도착했다. 김 선생님은 다소 헤매는 듯 했다. LCC 터미널로 가는 셔틀을 타야 하는 것 아닌지 얘기해보려 했으나 그만두었다. 김 선생님은 걸어서 국제선 터미널로 이동한 후 거기서 다시 LCC 터미널로 가야 한다는 걸 깨닫고 국내선 터미널로 돌아왔다. 어차피 LCC 터미널로 가봐야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이곳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김 선생님은 이미 아침을 먹었다는 이유였는지 오니기리를 선택했으나 나에게는 그런 도량이 없어 오키나와 라멘 세트를 선택했다. 여기에는 드링크와 쥬시가 포함돼있다고 써있었는데, 쥬시는 쥬스 같은 것이 아닐까 해석하였으나 알고 보니 오키나와에서 먹는 일종의 양념밥 같은 것이라고 한다. 여튼 오키나와의 돼지고기 사랑은 대단하다. 맛있게 잘 먹었다.

오키나와 라멘 세트

오키나와 라멘 세트

나하 공항 LCC 터미널

나하 공항 LCC 터미널

그리고 LCC 터미널로 이동했다. 혼돈의 도가니였다. 여러 시행착오와 혼란을 겪은 후(이 중에는 김 선생님이 차가운 것으로 혼동하고 뜨거운 커피를 사온 것도 있었다) 간신히 비행기에 탑승, 꾸벅 꾸벅 졸며 귀국했다. 이 와중에도 김 선생님은 비행기 안에서 저기가 여수니 지형이 이렇느니 저렇느니 하며 설명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고국의 땅을 밟자마자 여기가 과연 ‘헬조선’이라는 게 느껴졌다. 에스컬레이터에, 또 공항으로 이동하는 셔틀에 재빨리 들어가지 않으면 바로 뒤쳐진 사람이 되어 손해를 본다. 과연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할까? 여행을 떠나는 마음이라는 걸 35년을 살고 나서야 알게 된 기분이었다.

Posted in: 글, 기고 안 된 글, 여행 Tagged: 나미노우에 신사, 나미노우에 해변, 바다울음의 동상, 쓰시마마루, 여행기, 오키나와 전투, 인천공항, 중국인 관광객, 편의점 도시락

오키나와 기행 5

2016년 8월 24일 by 이상한 모자 Leave a Comment

새로운 숙소를 찾아 걷는 도중에 나하 시내를 이것 저것 관찰하였다. 특히 사람들이 사는 집에 대해서는 각별한 관심이 있다. 밖에서 볼 때 다들 좁은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겠다. 대개 공동주택에들 사는 것 같고 아파트라고 하면 좀 남루하고 맨션이라고 하면 그럭저럭이며 최근에 지은 걸로 보이는 건물들은 좀 더 허세가 들어간 이름을 달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타운이라든지… 무슨무슨마치(町)라고 써있는 것도 봤는데, 지나가다 슬쩍 본 거여서 그냥 그게 그 동네 이름인지 한국처럼 ‘무슨무슨 마을’이라는 아파트 이름 같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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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다양한 주거환경

오키나와의 다양한 주거환경

시내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택시다. 대개 백미러가 본네트 양 옆에 달린 고전적 디자인을 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앞뒤가 짧은 차를 주로 타고 있는 걸 볼때, 과거 택시 회사를 만들 때 구입한 차를 여전히 쓰고 있는 것으로 추측됐다. 나하 시내에만 여러 회사가 있는지 차량 위에 달린 표식이 제각각이었다. 사람이 없는 차는 우리나라 처럼 ‘空車’라고 표시된다. 내 기억에 80년대 까지 한국 택시에 이 시스템이 없었다. 누가 타고 있는지를 밖에서 봐야 알 수 있었다. 여기도 그랬는진 물론 잘 모른다. 다음에 방문한다면 택시를 한 번 꼭 타보고 싶다. 자동차들을 보면서 일본인에 대한 선입견이 약간 깨진 게 있는데, 다들 질서를 잘 지킬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람이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데도 차가 슬그머니 지나간다. 오키나와만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양심냉장고 프로젝트를 해야 하나?

'약'이라고 쓴 글씨와 택시

‘약’이라고 쓴 글씨와 택시

그 밖에… 간판에 표시된 글자체도 유심히 보았다. 표지판부터 약국 이름까지 진지한 내용이면 영락없이 ‘나루체’가 쓰인다. 나루체는 한국 굴림체의 원조이다. 하도 보다 보니까 일종의 공공디자인으로 보일 정도이다. 이 동네가 이러는 의도는 잘 모르지만, 우리는 공공디자인이란 관점에서 접근을 해야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하였다. 그리고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마찬가지인가 싶은 것도 있었는데, 웬 학원 등에 ‘동대를 몇 명이 갔다’는 식의 선전 문구와 학생들의 사진이 죽 붙어있는 거였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요소들이 의외로 많았다. 또 역시 오키나와라서 그런지 스테이크 하우스를 표방하고 있는 곳도 종종 있었다.

스테키하우스 미스터 마이크

스테키하우스 미스터 마이크

스테이크 하우스의 동족상잔 디자인

스테이크 하우스의 동족상잔 디자인

숙소를 찾아가는 도중에 ‘旅の宿’라는 이름이 붙은 곳을 보았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그냥 호텔인 것 같았다. 개중에는 공용 목욕탕이 딸린 곳도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묵기로 한 숙소는 ‘오키나와 호텔 콘티넨탈’ 이라는 2성급 호텔이었는데 세상에 소프란도 밀집지역 한가운데 있었다. 소프란도 직원들의 분별없는 호객행위를 뚫고 어찌어찌 도착했다. 김 선생님은 자신있는 태도로 무슨 서류 같은 것을 내밀고 우리가 예약을 했다, 이렇게 설명을 했다. 여권을 주고 숙박비를 계산하니 5천엔 정도가 나왔다. 문제는 현금이 다 떨어졌다는 거다. 카드로 결재할 수 없냐고 물으니 직원은 놀라면서 그러면 가격이 좀 더 비싸진다고 말했다. 계산을 해보니 7천엔 정도로 올라간다. 다소 자린고비 기질이 있는 김 선생님은 당황하였다. 근처에 혹시 ATM이 있느냐고 물으니 어찌어찌 가면 콘비니안스스토아가 나온다고 가르쳐 준다. 그러나 김 선생님은 멘붕을 일으킨 것 같았다. 하릴없이 숙소를 나와 콘비니를 찾아서 간다. 그런데 편의점은 나오지 않고 리우보우(りうぼう)라는 마트가 나오는 거였다. 일단 거기에도 ATM이 있으니 여러 시도를 하였다. 그러나 ATM은 한국인의 카드를 읽지 못했다. 김 선생님의 멘붕은 점점 더 심해졌고 나는 왠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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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점인 소프란도

풍속점인 소프란도

일단 인터넷 검색을 했다. 우리는 어쨌든 환전을 해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세븐뱅크나 유초은행 ATM을 찾아야 한다. 세븐뱅크는 세븐일레븐에 가면 있다. 사람들을 붙들고 세븐일레븐이 근처에 있느냐 물으니 모른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키나와에는 세븐일레븐이 없다(2018년에 진출하겠다고 한다)! 나하 공항에 세븐뱅크 ATM이 있을뿐… 유초은행은 겐초마에역에 가야 있는데 다리가 아파서 거기까지 갈 엄두가 안 났다. 일단 호텔 직원이 알려준 편의점을 찾고자 근방을 뒤져 패밀리마트를 발견했다. 물론 성과는 없었다. 멘붕에 휩싸인 김 선생님에게 호로요이를 카드 결재로 사드리고 나도 하나 마시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혹시나 해서 편의점 주인에게 익스첸지-를 해야 한다고 손짓 발짓으로 질문을 했으나 모른다고 한다. 길 건너에 류큐은행이 있어 마지막으로 허망한 시도를 해보았다. 결론은 그냥 7천엔을 카드로 긁자… 다시 호텔로 돌아가 패잔병의 기운을 씻어내고 여봐란듯이 410호실에 입실했다. 호텔 직원의 마음을 이심전심 해보았다. 아마 그는 그냥 우리가 ATM을 찾으니까 환전이고 뭐고 그게 있는 곳을 가르쳐준 것 뿐일 거다.

마트에서 팔고 있는 흰 달걀과 파란 바나나

마트에서 팔고 있는 흰 달걀과 파란 바나나

황망한 마음을 다스리며 샤워를 했다. 낮에 햇볕에 완전히 구워져서 온 팔이 다 따가웠다. 그래도 씻고 옷을 갈아입으니 마음이 편했다. 아이패드를 활용해 그리운 고국의 JTBC 뉴스를 틀었다. 대우조선해양을 털다 보니 ‘특정 언론’ 고위 관계자 이름이 나왔다는, 애초에 난 찌라시에서 본 내용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이거 어째야 하나 생각하면서… 곧 잠들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 마지막 밤을 즐기기 위해 우리는 다시 리우보우로 향했다. 소프란도 형님들의 호객을 뚫고 마트에 들어가 스시 코너로 이동했다. 그럴듯해 보이는 스시와 참치 사시미, 타다끼, 문어숙회 등등을 샀다. 그리고 맥주와 발포주를 적당히 섞어서 샀다. 신기해 보이는 것은 하여튼 다 샀다. 그 마트에서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파란 바나나와 하얀 달걀을 판다는 거였다. 멋지게 내 카드로 계산을 할 차례였는데 마트 직원은 내가 외국인인줄 모른다. 암 포리너 라고 말했더니 당황을 하면서 비닐봉지를 손으로 가리키는 거였다. 나는 두 개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투! 라고 말했다. 마트 직원은 거기에 산 물건들을 친절히 담아주었다. 두 봉지의 균형을 맞춰 달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냥 관뒀다. 그걸 들고 다시 오키나와 호텔 콘티넨탈 410호실로 돌아왔다.

리우보우 점원을 압도하는 나

리우보우 점원을 압도하는 나

맥주는 과연 맛있었다. 참치 사시미는 다소 신 맛이 났다. 이건 한국의 마트에서 사도 똑같다. 맛을 위한 처리를 한 것인지 아니면 상하지 말라고 뭔가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먹고 마시고 탄산수에 첫 날 먹다 남은 국화눈물인지를 섞어 마셔 얼큰히 취했다. 그동안 김 선생님과 꽤 아카데믹한 대화(김 선생님은 사회학 석사이시며 박사를 할 뻔 하셨다)를 나누었다. 취한 상태로 맥주를 더 사러 아까 그 패밀리마트에 갔다. 생햄과 마카로니 사라다에 에비수 맥주를 샀다. 점원에게 나는 외국인이다 라고 하니 재패니즈는 모르시냐고 하는 것 같았다. 저스트 잉글리시 라고 대답했는데 사실 술에 취해서 이게 무슨 대화인지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또 소프란도 형님들의 호객을 뚫고 오키나와 호텔 컨티넨탈로 돌아왔다. 김 선생님과 맥주를 마셨다. 얼마 후 김 선생님은 쓰러져 잠이 들었다. 나도 잠이 들었다.

산토리의 에일 맥주

산토리의 에일 맥주

산토리 맥주와 마트 음식들

산토리 맥주와 마트 음식들

Posted in: 글, 기고 안 된 글, 여행 Tagged: 굴림체, 나루체, 나하, 리우보우, 맥주, 세븐뱅크, 소프란도, 에비수, 여행기, 오키나와, 오키나와 호텔 콘티넨탈, 유초은행, 참치, 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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