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철학과 ChatGPT
어룩소에다가 쓴 거 리바이벌 안 한다. 이건 보충설명 같은 거다. 밀린 칼럼들 읽는데 챗지피티 이거에 대해서 성의없이 쓴 글들이 엄청 많다. 그런데 그건 한편으로는 뭐 이해한다. 쓰긴 써야겠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쟁점을 거론한 거는 여기도 링크로 소개한 박권일님 글 정도라고 본다. 나머지는 똑같다.
근데 제가 더 웃기다고 생각하는 거는, 소위 AI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코멘트하거나 쓴 글의 내용이다. 가령, 챗지피티에 탑재된 언어생성모델의 매개변수가 1750억개가 아니라 1조개 정도 되면 자의식을 갖고 감정을 가질 수 있는 인공지능도 가능할 거라고 주장하는 내용을 봤다. 물론 그럴수도 있다. 근데 심리철학의 입장에서 보면 그건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지 된다고 말할 수 없는 영역이다. 1조개가 아니라 10조개가 되어도 안 된다고 보는 입장도 있는 것이다. 가령 8086XT 시절에 오늘날 시리 같은 게 나오면 시리가 세상 지배할 거라고 믿는 사람들 있었을 거다. 그러나 시리가 세상을 지배하진 않는다. 시리는 여전히 인간과 같은 카테고리라기 보다는 8086XT와 같은 카테고리에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저는 AI의 발전이나 이런 게 유의미한 사회적 변화를 물론 추동하겠지만 사회의 어떤 근본 틀이 바뀌고 난리가 나고 인간이 바뀌고 거의 터미네이터 세상이 된다고 호들갑떠는 이런 주장들은 사실이라 보기 어렵고, 자본주의적인 어떤 욕망의 발현이라고 보는 편이다.
심리철학과 챗봇의 영역을 떠나 더 위협적으로 보이는 건 오히려 인공지능을 만들려는 시도가 아예 인간을 만드는 것에 닿는 경우다. 나는 뇌-오가노이드라는 개념을 주워들은 일이 있다. 궤도라는 분이 설명해줬다. 제가 라디오 진행을 누구 대타를 잠깐씩 하고 그랬던 때가 있다. 궤도님이 게스트였다.
◆ 궤도> 비슷한 맥락이 단어들일 수도 있는데 이게 간단하게 말해서 유사 생체 장기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심장, 간, 신장, 췌장, 갑상선, 소화기간, 피부까지 이렇게 모방한 것들을 전부 이제 오가노이드라고 하는데. 2014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메들린 랭커스터 박사가 최초로 이걸 만들었어요. 인체에서 줄기세포를 채취해서 뇌 오가노이드를 만들었는데.
◇ 김민하> 뇌를 그러면 인공적으로 만든 건가요?
◆ 궤도> 네. 진짜 사람의 뇌를 만들어낸 거죠.
◇ 김민하> 네 그런 거예요? 벌써 과학이 거기까지 갔습니까?
◆ 궤도> 근데 이게 실제 신경 세포의 활동까지 모방하는 건 굉장히 어려웠어요. 어쨌거나 줄기세포를 어떻게 만들었느냐. 이 이야기는 너무 길기 때문에 패스를 하고. 어쨌거나 2019년에 사람의 생각을 할 수 있는 미니 뇌를 지금 개발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만든 거는 뇌 형태로 이제 비슷하게 구조를 만들었는데, 얘가 실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느냐? 신경 세포 활동을 할 수 있느냐? 이거는 좀 아니었는데 이제 생각할 수 있는 미니 뇌를 개발하고 있고 미숙하지만 뇌의 기능을 수행할 수가 있대요.
◇ 김민하> 그러면 지금 말씀하신 대로 생각을 한다는 게. 어떤 자체적인 판단을 하고 가치 판단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것을 그 미니 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이 얘기인가요?
◆ 궤도> 그런데 이제 그런 걸 판단하려면 이 뇌가 이제 인풋 아웃풋 여러 가지 신호를 우리가 해석할 수가 있어야 하는데. 거기까지는 좀 어렵고.
◇ 김민하> 그거는 역시 어렵겠죠, 아직은.
◆ 궤도> 다만 이제 뇌 기능을 수행할 때 어떤 반응이 있다. 어떤 패턴이 있다. 이걸 통해서 그러면은 조현병이나 이런 뇌 질환 관련된 질병들의 치료를 할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데 이제 어쨌거나 이거 이게 어떻게 작용하고 어떻게 신호를 주고받고. 이런 것들이 반응이 있으니까
(…)
◆ 궤도> 한 번 추측해 보세요. 인간의 뇌를 만들어낸 이 뇌 오가노이드는 얼마만한 크기일까?
◇ 김민하> 주먹만 하다. 주먹을 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주먹만 하다.
◆ 궤도> 이게 렌틸콩 크기라고 하더라고요.
◇ 김민하> 렌틸콩?
◆ 궤도> 엄청나게 작죠. 왜냐하면 이게 그 실험 접시 안에서 이제 미니 뇌를 키우는데 얘가 이제 미숙아 수준의 아기 뇌와 비슷한 전자 신호를 낸대요. 그런데 이거를 과거에는 계속 성장을 시키다 보면은 정상적인 사람의 수준까지 이를 수 있을 거라고 본 거예요. 계속 키우면. 그럼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주먹만 해지고 커지겠다, 그러면 이게 정말 사람처럼 되겠구나, 했는데 이게 쉽지가 않아요. 왜냐면은 이 미니 뇌가 점점 커가려면 얘가 커지려면 이 중심부까지 산소나 영양분이 가야 돼요, 우리 아이처럼. 그런데 이게 실제 뇌 발달에 필요한 환경을 못 만들어서 겉에서 안에까지 이제 파고들어서 산소나 영양분이 가지를 못하는 거죠. 그래서 어려움에 빠졌었는데. 지난 5일에 국내 연구진이 이걸 해냈습니다.
◇ 김민하> 뭘 해냈어요? 키우는 것을요?
◆ 궤도> 키우는 것을.
◇ 김민하> 뇌를 키웠어요? 근데 그게 왠지 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 궤도> 그런 생각도 들죠.
◇ 김민하> 키웠다, 한국인이.
◆ 궤도> 기초과학연구원 연구진이 나노 기술로다가 배양액의 흐름을 좀 조정을 잘 해가지고 중심부까지 잘 산소와 배양이 갈 수 있게 이런 기술을 개발해서 효율을 높였더니. 기존의 미니 뇌보다 두 배 이상 커진 뇌 오가노이드가 만들어졌다. 근데 말씀하셨죠. 윤리적 문제가 좀 있을 수 있죠.
◇ 김민하> 그러게요 섬뜩하네요. 그 뇌가 혹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 아닌가요. 사실?
◆ 궤도>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 지각력이나 감지력이 있는 뇌를 배양하는 게 이게 이미 선을 넘은 거 아니냐. 이게 어디까지가 인간이냐. 그러면 이 경계에 대해서 논란이 있습니다.
◇ 김민하> 무섭네요.
◆ 궤도>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사람의 뇌를 꺼내서 죽은 사람의 뇌를 연구하는 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살아있는 사람의 뇌를 꺼내서 연구하는 건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잖아요.
◇ 김민하> 그게 더 문제일 수도 있고.
◆ 궤도> 그게 훨씬 큰 문제이기 때문에. 그래서 살아 있는 뇌를 만들어서 연구할 수 있다, 라는 거는 굉장히 잠재력 있는 분야다. 하지만 윤리적인 문제도 우리가 같이 고민을 해 나가야 한다.
◇ 김민하> 그걸 한국인이 해냈다.
◆ 궤도> 걸 한국인이 지금 해내고 있다. 이런 내용이 첫 번째 소식이었습니다.
◇ 김민하> 네, 좀 양가감정이 느껴지네요. 불안하기도 하고 너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이제 다음 주제는 뭔가요?
◆ 궤도> 너무 경청해 주시니까 신이 납니다.
https://m.radio.ytn.co.kr/interview_view.php?id=78331&s_mcd=0263&page=1
그래서 이 얘기를 기억하고 있다가 어느 날 신문을 보는데 너무나 무시무시한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였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하이브리드칩 개발업체 코티컬랩스(Cortical Labs) 연구진은 미니 뇌를 컴퓨터 시스템에 통합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최근 이 연구진이 접시에서 배양한 미니 뇌가 고전적인 컴퓨터 아케이드 게임 ‘퐁’에서 인공지능보다 뛰어난 학습 능력을 발휘했다는 연구 결과를 사전출판 논문집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미니 뇌가 특정 임무를 수행하는 능력을 보여준 건 처음이라고 밝혔다.
(…)
연구진의 장기 목표는 컴퓨터 기반 인공지능보다 뛰어난 사이보그 두뇌를 개발하는 것이다. 케이건은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에 사이보그 두뇌의 잠재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시각장애인이 길을 건너도록 하는 데 여전히 로봇보다 개를 이용하고 있다. 개의 단순한 생물학적 지능조차도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어떤 기계보다 성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단기적으로는 이번에 확인한 뉴런의 학습법을 시간과 에너지가 덜 드는 머신러닝을 개발하는 데 응용해 볼 계획이다.
프리스턴 교수는 “차세대 인공지능은 생물학적 뇌의 효율성을 따라잡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며 “지금의 연구 작업은 이 방향으로 가는 주목할 만한 단계”라고 평가했다.https://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1023960.html
이 뇌-오가노이드가 아직 심리철학의 풀리지 않는 떡밥, ‘감각질 재현’이나 ‘강인공지능’ 문제를 해결했다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뇌’를 ‘컴퓨터’ 대신 쓰겠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혹시나’하는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 심리철학에서 실체적 이원론은 거의 설 자리가 없다. 최소물리주의는 수용해야 한다. 제거주의라는 마지노선 안쪽에 남아있는 이원론적 개념은 물질에 심리적 속성이 뭔가 따라간다는(그게 수반이든 뭐든) 정도이다. 그런데 ‘뇌’를 ‘컴퓨터’로 대체한다고 한다면, 최소물리주의를 수용한 이원론적 개념으로 봐도 실제 물질과 의식의 매커니즘을 규명하지 않고도 ‘감각질’을 복제하고 재현하는 어떤 가능성이 이전보다는 커질 수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얘기였다.
물론 되더라도 먼 미래일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윤리는 결국 인간의 윤리로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