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나 여기나
오늘은 여의도를 가려고 5호선을 탔는데, 저쪽에서 시끄러운 거야. 그래서 뭔가 하고 봤지. 어떤 아저씨랑 할머니가 시비가 붙었더라고. 아저씨가 할머니한테 막 마스크 쓰시라고… 할머니가 소리를 빽빽 지르는데 솔직히 뭐라는지는 잘 모르겠고, 난 코로나 아니다 마스크도 있다 내가 우습냐 이런 얘긴 거 같더라고. 그리고 주섬주섬 뭘 쓰는데, 아저씨가 저러는 거는 그렇다 치고 마스크가 있으면 진작 좀 쓰시지…
여튼 아저씨는 다른데로 가버렸는데 갑자기 할머니가 이쪽으로 걸어오면서 뭘 얘기하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는 거야. 난 아 이거 포교활동인가 했어. 근데 내용을 잘 들어보니까 아니야. 최근 일어난 모든 사건을 엮어서 음모론을 만들었더라고.
그러니까 이런 식이야. 김여정이 돈을 달라고 했는데 우리가 안 주니까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대. 그래서 문통이 앗 뜨거 해서 대북송금을 했대. 아마 그러려고 국정원장을 갖다가 대북송금 전문가로 그렇게 했겠지? 그런데 돈이 부족했든지 하여간 서울시가 갖고 있는 통일기금 그걸로 보냈다는 거야. 그런데 이게 밝혀질 위기에 처하게 되니 문통이 박시장한테 시켰다는 거지. 네가 안고 가라… 그래서 일이 이렇게 됐다 너희는 아느냐 너희 젊은 것들은 빨리 탄핵을 안 하고 뭐하냐 너희가 가만히 있으니 치매 걸린 이 할머니가 나서서 이렇게 떠든다…
말하다 답답한지 마스크는 벗어버리더라고. 내가 분명히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도 할머니 구취가 느껴져서 아 이거 큰일났다 싶었어. 내 눈빛을 알아차렸는지 바로 내 앞에 딱 붙어서 계속 소리를 질러… 내가 개저씨나 할아버지한테는 들이받을 수 있겠는데 할머니는 안 되겠더라고. 이게 그림이 너무 좀 그렇잖아. 최대한 눈을 피해서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전염되나? 감염이 되셨으면 이렇게 멀쩡하게 다니시진 않을 거 같고… 아니 그래도 잠복기에 무증상 감염이… 뭐 오만 생각을 다했어. 뭐 한 두어 정거장 남았는데 다행히 옆칸으로 가더라고.
그러고 나니 저 할머니가 말하는 거랑 내가 하는 일이, 물론 퀄리티나 뭐 그런 차이가 있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얼마나 다른가 싶기도 하고, 좀 그렇더라 이 말이야.
오늘 아침에 인터넷 방송한 거 주제가 백선엽 씨 문제예요. 아마 친일이력 대 6.25전공 구도로 얘기를 만들고 싶었겠지. 근데 난 솔직히 어디다 안장을 해도 상관없거든. 그거에 하나 하나 의미부여를 하는 것도 국가주의 아니야? 그런데 굳이 말을 하라고 하면 친일 대 전공 이런 식으로 하고 싶지는 않아. 내 생각을 정리해보면 이래.
현충원에다가 누구를 모신다는 거는 그냥 상을 주는 게 아니고 우리 사회가 뭔가 그것에 대해 기억을 하고 기린다는 것이다. 백선엽 씨의 무엇을 왜 기억하고 기려야 하는지를 그럼 따져야 한다. 백선엽 씨의 전공이라고 회자되는 건 첫째 전쟁을 잘했다, 둘째 국군을 조직적으로 추슬렀다, 셋째 고속승진을 했고 친일이니 뭐니 논란에도 오랫동안 잘 먹고 잘 살았다… 이런 걸 뭐 특별하게 기억할 필요가 있나?
대비되는 예로 채명신 중장 얘길 많이 하는데 이 양반은 베트남전의 영웅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베트남 군인 불러서 대화도 하고 나름대로 화해의 제스추어 비슷한 걸 연출하려고도 했다. 사후에 서울현충원에 안장됐는데 장군 묘역을 거부하고 사병들과 함께 묻혔다. 나름 책임을 다하려 한 모습 아닌가? 이런 건 뭐 기억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백선엽 씨는 잘한 건 본인이 했다고 하고 좀 안된 건 어쩔 수 없었다거나 아랫사람들 잘못이라고 하는데 무슨 귀감이 되는 건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논란을 계속 만드는 건 결국 정체성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거다. 백선엽 씨의 이력, 친일 전력에도 불구하고 능력으로 평가받아 실제 능력을 발휘해 미국과 손을 잡고 한미동맹 파워로 공을 세워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을 막아내고 국군을 사실상 만들었다… 이런 거. 이런 게 메이저이고 이 땅의 주인이다 라고 하고 싶은 거지. 근데 문통은 지난 번에 뭐라 그랬냐면 국군의 뿌리는 광복군이라 그랬다. 김원봉 합류를 붙여서 사회주의는 왕따시키냐 논란을 우회한 것 같기도 하고 한데, 어쨌든 이런 거는 사짜고 혹시 빨갱이세요 이 얘기다. 그래서 역사 논쟁 정체성 논쟁 이거를 계속 하자는 게 미통분들의 뜻…
지겹고. 근데 박원순은 되는데 왜 백선엽은 안 되냐 이 난리 난리를 치니까 결국 다들 조문을 갔잖아? 그게 이 사태의 가장 웃긴 지점이라고 본다. 배트맨과 조커는 동전의 양면인 거니? 그러니까 이 두 역사적 파벌이 서로 싸우지만 뿌리는 비슷해요. 그거는 저 책을 보면 나와. 그 저 책… 제목 잊어버렸네. 대한민국을 맨든 사람들? 찾아보긴 귀찮으니까 나중에 얘기하고…
아무튼 이런 얘기를 하려고 그랬어. 한 70% 정도 얘기한 거 같아. 그랬더니 진행자가 그러더라고. 그래서 결론이 뭐예요? 설명이 왜 이렇게 장황해요? 끝에는 반드시 반대한다로 끝내야 하는 겁니까? 아무튼 갑자기 그 할머니 보니까 생각나더라고. 횡설수설 하는 걸로 보면 결국 다 비슷한 얘기로 되는 거다 이거야… 이게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