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안내
  • 이상한 모자
  • 야채인간
  • 김민하 공화국
  • 신간 안내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레닌

우크라이나 포탄 지원에 대한 생각

2023년 4월 21일 by 이상한 모자

모든 것은 맥락이다 그런 말씀 여러차례 드린 일 있다. 만약에 우리가 포탄을 지원하면 전쟁을 끝낼 수 있다, 그런 전제가 있다면 나는 포탄 지원 찬성이다. 그런데 어제도 썼듯이 이거는 그런 맥락이 아니고 ‘현상유지’에 조력하겠다는 거다.

우크라이나전의 가장 큰 비극은 어떤 선택지든 대안이 아니라는 거다. 미국은 작년 어느 시점까진 우크라이나에 적당한 타협을 간접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는데, 바이든 재선 준비를 해야 하는 시점에 와선 지구상의 그 누구보다도 전쟁 상황의 유지에 적극적이다. 그 반대편에는 ‘평화협정’을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러시아의 전술적 목표를 달성한 상황을 인정하고, 그니까 러시아가 이긴 걸로 끝내자는 러시아와 중국의 농간이 있다.

전쟁 치르는 당사자인 젤렌스키는 크림반도 수복까지 이루지 않으면 전쟁을 끝낼 수 없다고 한다. 뭐 이해할 수도 있다. 반대로 우려되는 바도 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러시아와 벨라루스인들을 우크라이나 주요 정치인들이 공격한 바를 보면 그렇다. 어쩔 수 없이 친유럽과 친러시아가 갈려 오랫동안 대립해 온 우크라이나 내부 정치를 생각하게 된다. 젤렌스키는 친유럽과 친러시아에 질려버린 유권자들이 선택한 봉합적 성격의 카드이므로 어느 쪽을 선택하기 어렵고, 어떤 경우든 전쟁이 지속돼야 정치적으로 유리한 것이다. 이게 노벨평화상을 둘러싼 갈등이 보여준 우크라이나 상황의 한 단면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어떤 선택이 가능할까? 여기서 레선생의 일방적 패배 선언을 돌이켜보게 된다. 혁명적 패배주의 어쩌고 했는데. 이게 가능했던 조건이 두 가지였지. 첫째, 러시아는 땅덩어리가 넓다… 둘째, 일방적 선언을 떠받칠 수 있는 정치적 조건(볼셰비키 운동, 혁명, 집권)이 존재했다. 근데 첫째는 바꾸거나 다른 데 적용할 수 없는 조건이니까 여기선 넘어가고, 둘째로 볼 것 같으면 그니까 적어도 어떤 결정을 할 때에는 그게 뭐든 그 다음이 중요한 거라는 거거든. 전제정이 그대로 유지됐으면 그 패배 선언이 정치적으로 수용이 됐겠냐? 아니지.

그니까 어떤 경우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수 있느냐 라는 것은 우크라이나란 무엇인가란 본질적 질문을 야기한다는 것. 그리고 그 본질적 질문에 대한 답의 연장선에서 역할을 할 때에야 군사적 지원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방송 이런 데서 떠들 수가 있겠어요? 할 수 없는 세상이다… 방송 뿐인가. 이젠 글로도 못하고 SNS로도 못하고(SNS… 없기도 하고…)… 블로그에다가나 써야지.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레닌, 우크라이나, 포탄 지원, 혁명적 패배주의

극단적 이념형과 책임정치

2023년 4월 16일 by 이상한 모자

여러 사진들을 보면서 묘한 그래프를 보았다.

http://www.womennews.co.kr/news/photo/202304/235123_386449_848.jpg

저 분 주장을 다 들어봐야 알겠지만, 그래프로만 봐서는 이상하다. 마치 ‘책임정치의 영역’이 어떤 중도주의로 수렴하는 듯한 인상이다. 책임정치의 필요성이라는 표현은 이 분들의 논의와 별개로 나도 여러차례 썼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바다. 그런데 그건 이념 지향이나 가치관과는 관계없이 현안을 현안 그 자체로 논할 생각이 있느냐, 그럴 수 있는 여러 인프라를 갖추도록 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본다.

가령 폭력혁명까지 불사하겠다는 극단적 이념지향을 가진 혁명가를 떠올려보자. 모든 현안에 대해 ‘그래서 지금 혁명이 필요합니다’ 라고 외치면 사람들이 들을 것이라는 식의 믿음은 피상적 수준이다. 실제로 혁명을 일으키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하느냐를 진지하게 고민하면 그런 단순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혁명가라면 가령 선거법 개정이나 이런 제도권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것 같지만, 그건 레선생을 잘못 읽은 것이다. 현대적 혁명가의 조상이라고 할만한 레선생이 두마에 대해 어떻게 접근했는지를 되새김질 해보라. 러시아판 선거제도 개혁을 그 시대에 주장했다.

즉 책임정치는 어떤 태도의 문제이지 가치관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뎁스가 문제지 방향이 아니라고 하면 되려나? 책임정치의 반대인 무책임정치의 전형을 상정해보라. 무책임정치는 그들이 외치는 구호나 하는 행위와는 별개로 노리는 바가 늘 따로 있다. 표든지 돈이든지 인기든지 소셜-따봉이든지… 그것만 지향하는 정치의 반대편으로 갈 수 있어야 책임정치거든. 오직 모든 행위와 결정이 무책임정치의 반대로 맞춰져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거기로 갈 수 있어야 한다… 근데 아마 저 분들이 그런 얘긴 하기 싫을 수 있겠다 싶기도 하고. 지켜보지 뭐.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레닌, 책임정치

막대를 구부려야 되는데 막대가 없다

2021년 7월 15일 by 이상한 모자

레선생께서 막대구부리기라고 하셨다. 레선생은 레선생으로 반박 가능하다, 레적레… 이 비판에 대해서(오늘날 우리가 하는 짓들, 옛날 사람들도 다 한 거다) 멋있는 개념을 들이댄 것이다. 레선생 말도 일리가 있는게 기득권이 합의한 정통의 담론이라는 게 안정적으로 존재하고 담론의 주도권을 갖지 못한 쪽이 그걸 변화시키려고 하면 어느 날은 오른쪽으로 마구 구부리고 어느 날은 또 왼쪽으로 마구 구부리고 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해가는 수밖에 없다. 이게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의 문제, 반대의 정치라는 것이다. 레선생이라고 답이 있냐? 어차피 답은 몰라요… 그래서 국가와 헥멩이 내용이 그런 거요. 그러나 적어도 대략적인… 어떤 일관된 방향은 찾아 가자는 거지. 왼쪽 오른쪽 마구 구부리다 보면 어느 부분에서 정파적으로 올바른(물론 ‘우리’ 기준에서) 균형이 맞을 거라는…

근데 오늘날의 기득권들은 서로 막대를 양쪽에서 힘껏 구부리기 때문에, 막대가 이미 개박살이 나고 다 없어졌다. 이거 뭐 어떡하냐. 당분간은 막대가 있다고 치고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이제 나는 막대가 오른쪽으로 굽든 왼쪽으로 굽든, 다시 말해 윤석열 정권이 되든 이재명 정권이 되든 백원짜리가 앞면이 되느냐 뒷면이 되느냐의 차이일 뿐이기 때문에, 그런 정파성에 복무하지 않겠다 이거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 마찬가지니 낙향해서 자연을 벗삼아 살자 이런 게 아니고, 싸우더래도 좀 말이 되는 걸 갖고 싸울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즉, 막대가 있는 걸로 치시라고들. 그런 걸 하려고 아무한테도 환영 받지 못해도 이쪽 저쪽 다 욕하고 이러고 있는 거다.

잠도 한숨 못자고 신문 보다가 이딴 얘기나 하는 한국 사회 승질이 나서 마음 가라앉히느라 몇 자 적어봄.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레닌, 막대 구부리기

최근 글

  • 좋은 말로 하면 악플이 아니게 되나?
  • 이단이 되어야
  • 주식 투자를 10억씩 하는 사람들의 훈계
  • 행복한 사람, 오지 오스본
  • 극우와 보수 구분하기

분류

누적 카운터

  • 1,488,250 hits

블로그 구독

Flickr 사진

추가 사진

____________

  • 로그인
  • 입력 내용 피드
  • 댓글 피드
  • WordPress.org

Copyright © 2025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Omega WordPress Theme by ThemeH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