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들의 타조동맹에 대한 방송 내용
요즘 다수파 전략이라는 말이 유행인가? 온갖데서 이 단어를 마주쳐서 좀 당황… 아무튼 오늘 방송 내용 재미있는 거 같아서 올려본다.
오늘은 타조동맹이다. 브라질의 정치학자 올리버 스토인켈이 고안한 개념인데 코로나19 사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세계지도자들에게 붙인 이름이다. 타조는 위험이 닥치면 몸은 그대로 두고 머리만 모랫속에 숨기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각국 지도자들이 위기를 외면하고 자기 생각대로만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타조동맹에 속하는 사람으로는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르 대통령이 있는데, 앞서 올리버 스토인켈이 브라질에 있으니 사실 타조동맹 얘기로 겨냥한 건 보우소나르 대통령이라고 볼 수 있다, 보우소나르의 망언에 대해선 몇 차례 다룬 바 있는데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그게 인생이다”라고 했다. 격리와 봉쇄를 중심으로 방역대책을 짜면 경제 회복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대량 실업이 발생한다면서 교통사고가 났다고 해서 공장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또 격리조치 확대를 주장하는 보건 장관을 경질해버렸다. 소셜미디어에 바이러스에 대한 자기 주장을 올렸는데 코로나19에 대한 그릇된 정보를 담고 있다는 이유로 삭제당하는 굴욕도 당했다.
요즘엔 탄핵 얘기도 나온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두 아들은 각각 하원의원과 리우데자네이루 시의원직을 갖고 있는데 가짜뉴스 네트워크 가담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그런데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경찰청장을 아들의 측근으로 교체하기 위해 경찰청장을 해임하려 한다는 것이다. 브라질 국민의 절반 이상이 탄핵에 찬성하고 있는데 코로나19 대응 때문에 여론은 더 악화됐다. 이것도 탄핵 사유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브라질은 계속된 대통령 탄핵으로 극도의 혼란 상태이다.
벨라루스의 알렉산데르 루카셴코 대통령도 타조동맹에 가입되었다. 코로나19에 대한 전세계적 우려를 광란이자 정신병이라고 규정하고 각국의 방역대책은 오버액션이라고 했다. 코로나19는 트랙터를 몰다 보면 치유된다고도 했고 보드카를 마셔서 바이러스를 죽이자고도 했다. 벨라루스에선 스포츠경기가 정상적으로 열리고 있고 루카셴코 대통령이 직접 아이스하키 경기에 참가하기도 했는데 최근엔 2차대전 전승 기념 퍼레이드를 강행하기로 했다. 벨라루스의 코로나19 확진자는 5일까지 1만8천명이 넘는 걸로 파악되고 있으나 봉쇄 조치는 당연하게도 전혀 없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20년 넘게 장기집권하고 있는 독재자이다. 벨라루스는 과거 소련의 일부였다가 1990년에 독립했다. 1994년 첫 대통령 선거를 치렀는데 이때 당선됐고 지금까지 직을 유지하는 중이다. 최근에는 10대인 아들을 유엔총회 등 국제무대에 대동하고 다녀 세습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사고 있다.
권력이 유지되는 비결은 소련식 통제 경제체제를 유지해 국유회사 및 자산의 사유화를 막아 부패 기득권(올리가르히)의 등장을 막았다는 평가 덕분이다. 벨라루스 경제는 러시아가 싼값에 공급하는 원유를 정제 서방에 파는 방식으로 유지돼왔는데, 이런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야당을 탄압하고 언론을 장악했다.
그런데 최근 러시아는 벨라루스에 경제적 통합을 압박하면서 석유 및 가스 가격 인상과 보조금 삭감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코로나19를 비웃고 있는 것도 사실 경제 지표 등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다.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도 타조동맹으로 언급된다. 니카라과는 야외 활동을 장려하고 있어 부활절 퍼레이드나 해변에서의 수영 등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오르테가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이후 공식석상에서 없어졌는데 잠적 34일만에 나타나 코로나 19는 신의 계시라며 일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죽을 것이라고 했다.
오르테가 대통령은 1985년부터 1990년까지 집권했고 2007년에 재집권한 후 지금까지 직을 유지하고 있다. 이 사람은 니카라과의 독재자들인 소모사 가문의 붕괴를 주도한 혁명가 출신이다. 1945년에 태어나 1963년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에 가입해 1979년까지 투쟁했다. 소모사 일당들이 미국으로 도망가면서 성공은 혁명했고 이후 오르테가가 사실상 정권을 잡았다. 1984년 치러진 선거에서 정식으로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미국의 압력과 산디니스타 해방전선 조직원들의 부패연루 스캔들 등으로 정권을 잃게 됐다. 이후 야당을 이끌며 이런 저런 스캔들에 연루되면서 온건 노선으로 전환하며 버티다가 2006년 대선에서 우파 진영의 분열 덕에 재집권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개헌을 통해 대통령직의 무제한 연임을 가능하게 했고 영부인의 사례에서 보듯 자기 가족들을 기득권에 대거 진입시키는 무리수를 두면서 상당한 반발을 초래하고 있다.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도 타조동맹이다. 투르크메니스탄 역시 당연하게도 모든 야외활동을 아무런 제한없이 실시하고 있다. 지난달 26일에는 말의 날 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렸다. 코로나19 확진자 공식통계는 0명이지만 아무도 믿는 사람은 없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이란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아무리 그래도 0명은 아니다라고들 한다. 국경없는 기자회에 따르면 투르크메니스탄 공공장소에서 코로나19 관련 대화를 하거나 마스크를 쓰고 있는 상태가 발각되면 사복경찰이 잡아간다고 한다.
근데 왜 말이냐,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이 말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이 지역에 뭔가 말에 내세울만한 장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투르크메니스탄 최대의 자랑 중 하나는 아할테케라는 품종의 명마이다. 한자로 한혈마라고도 하는데 삼국지에 나오는 적토마가 이 품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겉보기에 아름다운데다 체력… 특히 지구력이 좋아 사흘 밤낮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달릴 수 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이다. 당연히 말 애호가들 사이에선 최고의 가격으로 거래된다. 결국 부유층을 겨냥한 사치재의 성격인데, 2차대전 때 많이 죽어서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물론 그 전임자도 이 말의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가끔 외국 정상들에게 선물로 준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타조동맹으로 꼽힌다. 코로나19 대처와 관련한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등 방역을 무시하는 행태를 여러 번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 역시 봉쇄나 격리 등을 통해 경제에 해를 끼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본인이 코로나19에 감염되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전까지 보리스 존슨은 현대의학을 무시하고 개인생활수칙을 일부러 어기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으나 코로나19로 죽음의 문턱에 갔다온 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할 것이고 봉쇄조치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새로 태어난 자식들에게 의사들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영국의 의료체계는 모범적인 걸로 알려져 있는데 사망자 수가 급증한 이유 역시 보리스 존슨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의료체계가 있어도 정부가 대응을 제대로 안 하면 순식간에 방역망이 뚫릴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물론 보리스 존슨 총리 한 사람만 이런 사태에 기여한 것은 아니다. 영국의 의료시스템인 NHS는 2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도입됐는데 마거릿 대처 이후부터 지금까지 우파들의 주요 공격대상이 돼왔다. 1992년 보수당 정권이 NHS의 일부를 무너뜨려 민간의료산업을 창출했고 이후 NHS에 들어가는 예산은 꾸준히 삭감돼왔다. 예산이 삭감되니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비효율적이라는 공격을 받게 되고, 공격을 받게 되니 다시 예산이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져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보리스 존슨 총리가 크게 혼난 이후엔 의료진들에 성과급을 주기 위한 예산 추가 편성을 고려한다고 한다.
타조라고 한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빼놓을 수 없다. 코로나19 관련 브리핑을 자기 대선 유세장처럼 활용하다가 소독제 주사 발언 등으로 큰 비난을 초래했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돈 문제다. 격리 봉쇄 이런 걸로는 경제가 어려워지니까 코로나19 별거 아니란 식으로 대응해온 것이다. 그러다 사태가 심각해지니까 부랴부랴 뭔가를 하려고 하는데 이미 늦었고 잘 안 되다 보니 소독제 발언 등 무리수를 둔 것이다. 최근 내놓는 반격카드는 중국책임론인데… 단순히 자기 책임을 피해가려는 의도도 있으나 재선을 의식해 지지층을 자극하려는 의도도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전통적으로 중국 때문에 미국 제조업이 죽어간다고 생각하는데 그동안은 경기가 괜찮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게 중국과 자기가 협상을 잘한 덕분이라고 주장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경제가 위험해졌다. 그래서 다시 대중무역 이슈를 꺼내든 것인데 경제가 회복이 안 되면 실제로 중국을 향한 뭔가 액션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처럼 경제와 방역을 동시에 잡은 국가가 나서서 말려줘야 하나 생각도 들지만…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 될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