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일요일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늦은 것 같았다. 씻고 견과류를 한움큼 집어 먹고 집을 나섰다. 집 앞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했으나 고양시였다. ㅆㅂㅆㅂ 막 그러면서 역까지 걸어가서 대기 중인 택시에 탔다. 여의도로… 눈까지 오고 아주 스릴이 넘쳤다. 하지만 시간을 맞추는데 성공!

다음 코너 출연자가 꽈배기를 사왔는데 안 먹었다. 자기 동네에 굉장한 꽈배기 집이 있는데 거기서 사왔다 이건데… 꽈배기라는 게 결국 도넛의 일종이다. 나한테 좋을 것은 없다. 거기다가 뭘 제대로 먹지 않고 왔기 때문에 첫 끼니를 당류범벅으로 먹는 것은 좀 부담이다. 정중히 사양을 하고 앉아 있는데 작가님의 스타일링이 아주 멋있는 거였다. 나이가 좀 있으신데 반백의 머리를 그 뭐라 그러냐 숏컷인데 볼륨펌? 그리고 빨간색 니트인데 팔목은 좁지만 다른 부분은 헐렁한… 그리고 청바지를 약간 걷었던가, 아무튼 뭔가 90년대에서 뛰쳐 나온 것 같으면서도 세련된 느낌이 좋았다. 나도 멋있는 사람이고 싶어졌다.

이걸 마치고 목동으로 가서 커피를 시켜 놓고 원고 작업을 했다. 일요일에 가끔 마주치는 박 선생님이 와서 견과류를 주고 갔다. 방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견과류를 먹으면서 냉면을 생각했다.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는 정제탄수화물 위주 식사도 괜찮지 않을까? 지난 번에는 실패했지만 오늘은 성공이다. 문통 싸인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열 받았나… 자영업자는 너무 힘들다 뭐 그런 걸로.

집에 와서 집을 좀 치우고 누워서 좋지 않은 생각을 하다가 다시 또 뭘 보다가 건반을 만져 봤다가 … 시간을 죽이다 보니 다음 날이다. 두 끼는 먹어야지 싶어서 남은 굴국을 해치우기로 했다. 밥을 먹기 전에는 푸성귀를 먹는다. 이것 만으로도 이미 배가 부른데 밥과 굴국과 김치까지 먹었다. 확실히 밥을 먹기 전에 야채를 먹으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편집적인 사고가 증가하는 것 같다. 한 번 시작되면 막 소용돌이를 친다. 언제부터 이랬지? 그건 모르겠다. 최근에 새삼 자각하게 되었다. 병원에 다녀야 하나? 아무튼 그런 사고의 순환을 깨기 위해서 그러는 것인지 뭐 살게 없나 생각하다가 스피커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도달하였다. 나루님에게 괜히 링크를 보내보기도 하고… 스피커 사달라고… 당연히 안 사주지… 스피커도 사야되고 밥솥도 사야되고… 아니 그런데 사실 밥솥은 이태원 살 때 선물 받은 거란 말이다. 그 때가 벌써 언제냐… 6, 7년이 됐어요. 스피커도 저거 그냥 북쉘프 피씨 스피커 뭐 한 5만원 짜린데 10년은 쓴 거 같다.

에효… 이게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 냉수 먹고 속이나 차려야지. 마침 탄산수가 대량으로 준비돼있다.

책상으로 쓸 합판과 벽돌이 예상외로 오늘 왔다. 좋았어. 자다 일어나서 그거 받고 다시 처자다가 아이템 뭐 할지 얘기하는 전화 받고 다시 자다가 또 아이템 뭐 할지 물어보는 문자 와서 확인하고 다시 처 자다가 오후 늦게나 일어나서 생선을 구워 먹었다.

그리고 나서 본격적인 방의 구조 개선 작업을 시작했다. 모든 작업환경을 해체하고 책상다리를 벽돌로 받치고 건반을 그 아래로 밀어 넣으려는데… 이런 옘병 거의 1미리 차이로 가로 길이가 모자란 거였다. 아놔… 위 아래가 모자란 건 받침을 쓰면 되지만 좌우가 이러면 방법이 없다. 멘붕이 와서 누워있다가 일단 인터넷 연결을 다시 하고 바 테이블을 검색했다. 높이가 높아야 되니까… 사이즈를 잘 확인한 후에 주문했다. 이게 뭐하는 거냐 도대체…

이 테이블은 25일에나 온다고 한다. 그러면 그때까진 어떻게 한다? 임시로라도 갖고 있는 수단을 최대로 활용해야 한다. 워낙 주렁주렁 쓰고 있는 게 많기 때문에 작업 환경을 한 번 해체하면 다시 복구하기까지 거의 반나절 걸린다. 어떻게든 했다. 만족스럽지 않지만 할 수 없다. 넓은 집에 살았으면 애초에 시작할 일도 없었다. 아니면 취미가 없든지… 나는 단지 책상에서 책을 읽고 뭔가 쓰고 싶었을 뿐이고, 그럴 수 있는 자리를 확보하려고 한 것 뿐이다.

아무튼 임시로 복구하고 내일 방송할 내용을 후루룩 적어서 보냈다. 그러고 나니 이미 일요일이다. 밥을 먹어야지 싶어서 굴국을 끓였다. 굴이랑 무 정도만 있으면 순식간에 끓일 수 있다. 사실 무도 없어도 된다. 전에 사놓은 김치도 뜯었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 가끔 김치를 산다는 점에서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사람들이 많이 사는 제품으로 골랐는데 별 맛이 없다. 이 난리를 치고 나니 이제 곧 있으면 아침. 월화수목금토월의 아침이다.

이런 쓰잘데기 없는 글은 왜 자꾸 적냐, 요새는 정말 일로 만나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대화도 하지 않고 하여간 어떤 사람과도 인간적 교류를 하지 않는다. 완전히 고립돼있다. 거의 교도소이다. 알카트라즈. 뭐 어느 정도는 SNS도 안 하고 염병할 카톡이니 하는 메신저도 안 쓰는 내 선택의 결과지만. 그래도 어디다 말은 하고 싶어서 적는 것이다. 캐스트어웨이에서 배구공이랑 대화를 하잖아. 안 봤지만. 이불도 빨아야 하는데. 여기다가 이렇게 열심히 썼지만 사실 아무 의욕이 없어… 내일 집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이제 내일도 아니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