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수는 확실할 때 둬라
밀린 칼럼들 다시 읽으면서 오늘 나온 칼럼들도 몇 개 봤는데 이 글이 눈에 띄었다. 구체적으론 다음 대목이다.
인연이 닿아 그곳을 종종 찾다가 지역 활동가들도 알게 됐다. 때로 새만금 이야기가 나왔다. 핵폐기장은 반대하는 주민들이 새만금에는 우호적이라고 했다. 뭐라도 먹거리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한다는 것이다. 결국 토건자본의 이윤으로 돌아갈 뿐이라는 환경운동단체들의 비판에 반발한다고도 했다. ‘노가다’나 ‘함바집’ 찬모 같은 일자리조차 아쉬운 게 지역의 낙후한 현실이라며. 갯벌을 지키자는 주장이 주민들에게는 아쉬울 것 없는 서울 중산층의 배부른 낭만처럼 들린다는 것이었다. 충격이었다.
온 나라에 텅 빈 공항, 뻥뻥 뚫린 고속도로, 한산한 다리가 건설 중이다. 환경을 파괴하고 적자만 늘어난다는 비판이 많다. 이익은 토건자본 몫이라는 고발은 물론이다. 옳은 말이지만 더 나가야 한다. 좋은 것은 서울, 수도권이 독점하면서 지방은 자연과 함께 가난하게 살라고 하면 화가 치미는 게 인지상정이다. 수도권 중심주의에 대한 분노와 피해의식을 자양분 삼아 개발주의가 정당화된다. 기득권 정치세력들도 이익을 얻는다. 개발주의 비판도, 수도권 중심주의 비판도 그 자체로는 반쪽일 뿐이다. 둘 다 비판하면서 동시에 대안적인 평등사회의 전망을 키워야 한다. 무엇보다 수도권 사는 이익은 다 누리면서, 지방에 대해 남 일 보듯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새만금에 돌을 던지기는 쉽다. 나도 던졌다. 자기도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다 떼어 놓고 보면 틀린 얘기 아닌데 내가 볼 때는 공허하다. 이 시점의 새만금 사업 비판의 핵심은 도대체 그걸 왜 했냐는 거다. 수도권 중심이고 갯벌의 낭만이고 저어새고 다 떠나서 새만금 사업 왜 했나?? 이 사업의 골때리는 점은 ‘~을 하기 위해 간척을 해야 한다’가 아니라 ‘간척을 했으니 ~라도 해야 한다’라는 것에 있다. 지금 정부 자료 등 찾아보면 거기다가 산업단지 유치하고 이것도 유치하고 저것도 유치하고 막 그랬다는데, 전북에 새만금이 아니면 걔네를 유치할 데가 없나요? 잼버리가 그걸 보여주는 거 아닌가? 새만금이 아니면 잼버리 할 데가 없어? 당장 전북 중에서도 무주 얘기 하잖아. 태권도원이든 구천동이든 얘기하잖아. 잼버리를 유치해야 하니 새만금이 필요하다, 이게 아니라 새만금 간척을 했으니 잼버리라도 유치해서 뭔가를 해야 한다, 이거 아닌가?
이런 쓰잘데기 없고 인류에 해만 되는 일을 오로지 유권자 표심만 노리고 막 던지는 정치가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던질 때 잘 던져야지, 이딴 걸 던져 놓고 안해줄 거 같으니까 유권자들은 매달리게 되고, 유권자들이 매달리니까 또 안 하면 안 되는 일이 되고, 그러다 보면 아무도 반대할 수 없는 일이 되고, 이렇게 온 거라니까. 1988년도에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가 노태우씨한테 새만금 사업 빨리 해내라 막 요구를 했다고. 대선공약으로만 내놓고 실제로는 안 해줄 거 같으니까. 김대중 당시 총재가 지금 뭐 이렇게 될줄 알고 그랬겠나. 지금은 편집인인 양권모씨가 논설위원이던 참여정부 때 글 읽어보라.
https://www.khan.co.kr/opinion/khan-column/article/200604241804531
마찬가지로 훼손 논란 등이 있었겠지만 차라리 갯벌을 관광자원화 하고 그에 따른 개발사업을 진행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갯벌을 매립할 필요가 없었다는 거지 호남을 갯벌 말고 아무것도 없는데로 만들자는 데가 아니다). 이런 여러가지 면을 보지 않고 이걸 수도권-환경낭만주의 대 지방-경제주의의 대립구도인 양 묘사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납작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런 훈수는 그게 필요한 게 확실할 때에나 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