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은 주간지다. 요즘 같은 정국에 대응하는데 있어선 상당한 난감함이 있을 것이다. 하루에도 정세가 3번씩 바뀌는 요즘이다. 일주일을 겨냥하는 주간지로서는 버틸 수가 없다.
제작 일정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목요일 오후에 모든 원고 수정이 마감돼 밤에 인쇄 작업 등이 마무리 되고 금요일이면 잡지가 나오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러면 보통 여기 들어갈 칼럼은 수요일에 쓰게 된다. 최대한 늦게 써도 데드라인은 목요일 오전이다. 이 글은 수요일 새벽까지 썼다. 한동훈이 입장을 바꾸는 것처럼 액션을 취하면서 잡지가 나오자마자 글의 생명력은 없어진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이들의 계산법은 한결 같았다.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
한동훈 대표는 세 가지 요구안을 내밀었다. 첫째 김용현 국방부 장관 해임, 둘째 내각 총사퇴, 셋째 대통령의 탈당이다. 여의도 문법으로 해석해보면, 한 대표의 제안은 의미심장한 데가 있다. 대통령의 탈당 요구는 여당이 정치적 뒷받침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이를 내각 총사퇴와 합치면, 새롭게 구성되는 내각을 어느 세력으로 채우느냐 하는 의문이 남는다. 결국 대통령이 국정에서 일정 부분 손을 떼고 거국내각을 구성하는 해법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겠다는 느낌이다. 논의가 이런 쪽으로 흘러간다면 이전부터 여의도 주변에 유령처럼 떠돌던 ‘임기 단축 개헌’ 같은 아이디어를 덧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출구전략으로서는 가장 ‘순한 맛’의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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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4일 심야에 열린 의원총회에서 여당은 탄핵안 반대 표결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이른바 친한계도 탄핵에 찬성하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탄핵 찬성 입장을 밝힌 이들이 보수 진영 내에서 ‘배신자’로 찍힐 수 있고, 탄핵은 사실상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게 정권을 헌납하는 결과를 낳게 되며, 결국 보수 진영 전체가 궤멸하는 상황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등의 이유다. 다음날인 12월5일 한동훈 대표는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지만, 계엄 선포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과는 큰 차이가 있고, 여전히 탈당을 요구한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자는 것일까? 친한계 현역 의원 중 하나로 꼽히는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이 에스엔에스(SNS)에 남긴 글을 보면 다른 계산법이 있다는 느낌이다. 박정훈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법의 심판을 받을 때까지 현 정부는 시간을 벌어야 한다” “야당이 발의했던 특검은 받더라도 대통령 탄핵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수사가 진행되면 시간도 벌 수 있고 국면을 바꿀 기회를 만들 수도 있다”고 썼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대통령이 직무 정지 상태에 빠지면,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는 방안은 원천 봉쇄된다. 반면 탄핵소추안 가결을 일단 막고, 이후에라도 어떻게든 ‘순한 맛’ 해법을 받아들이도록 대통령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기만 한다면 범여권은 대통령직의 궐위로 인한 조기 대선의 시점을 어느 정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 가장 유력한 경쟁자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재판 일정 등을 고려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두말할 것 없이, 이런 계산은 범여권 대권주자에게 유리한 판을 만들기 위한 ‘정치공학’의 차원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결정적 시기에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야 할 한덕수 국무총리가 계엄선포안 심의 과정에서 이를 끝까지 반대했고, 이후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수용하도록 대통령을 설득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에도 뭔가 의미가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앞서 ‘마지막 순간’이란 표현도 새로워 보인다.
이 모든 정황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 대통령은 마치 건재한 듯 행동하고 집권 세력의 ‘선수’들도 겉으론 장단을 맞추는 듯하지만, 내심으로는 다들 ‘차기’를 겨냥한 주판알 튕기기에 들어간 상황이라는 것 아닐까? 사자는 만용을 부리며 날뛰다 제풀에 지쳐 누워버리고, 땅에는 어스름이 짙게 깔리며, 권력의 심장부는 바야흐로 ‘개와 늑대의 시간’에 들어섰다. 이 시점에 드는 예감은, 나타나는 게 뭐든 원하는 건 오직 자기 살 찌우기지 민주공화정이 일순간 무너진 것에 책임지는 건 아니리라는 거다. 부디 틀렸으면 하는 생각이다.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64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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