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다못해 쓴다. 동료시민이라는 말을 미국의 마이 펠로 시티즌에서 온 걸로 많이들 해석하지만, 국내적으로는 국민이라는 용어에 담긴 국가주의적 맥락에서 탈피하고 싶을 때 활용한 맥락이 있다. 소수자들과의 연대의식이나 이런 거 강조할 때 있잖나. ‘국민’의 맥락에서 ‘비국민’ 취급되어 온 소수자들도 모두 같은 동료시민이고, 그런 맥락에서 연대하자고 할 때 활용하기 좋은 단어이지. 가령 이런 맥락이다.
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32436236786?cat_id=50010200
그런데 한동훈씨가 얘기하는 거는 이런 얘기랑 다르다. 어떤 맥락에서는 완전 반대다. 가령 오늘 하는 얘기를 봐라.
참배 이후에는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 참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우리가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낯선 사람들 사이 동료의식으로 완성된다”며 “재해를 당한 낯선 사람에게 운영하는 찜질방을 내주는 자선, 연평도 포격 당시에 한 달 동안 주민들께 쉴 곳 제공하셨던 인천 인스파월드 박사장님 같은 분, 지하철에서 행패 당하는 낯선 시민 위해 대신 나서준 용기 같은 것이 제가 생각하는 동료시민 사회 동료 의식이다”고 했다.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4/01/01/3PYLXJDHXJG5BIBRKWXEN72YVU/
국민일보의 보도에 의하면 이런 얘기도 했다고 한다.
한 위원장은 비대위원장 취임 후 주변에 “국민이라는 말은 현실에서 잘 와닿지 않고 추상적인 느낌이 강하다”면서 “이에 비해 동료시민은 출퇴근시간에 스쳐 지나가고 카페에서 커피를 기다리며 내 앞뒤로 줄 서 있는 분들을 떠올리게 하지 않나”는 평소 철학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https://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337557&code=11121100
단지 표현의 문제일까? 국민 대신 쓰는 말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아니다. 한동훈씨가 법무부 장관 퇴임할 때 “상식있는 동료시민과 함께 미래를 위한 길을 만들고 같이 가겠다”고 했다. ‘동료시민’에 ‘상식이 있다’는 속성이 수반된 것인지, 아니면 ‘동료시민’의 범주가 있는데 그 중 특별히 ‘상식있는’ 부류와만 함께하겠다는 것인지 애매할텐데, 오늘 한동훈씨가 든 동료시민의 사회 동료 의식의 예를 연결해보면 ‘동료시민’은 일반 국민 중에서도 특별히 상식을 갖춘 선진적 인물의 부류를 지칭하는 걸로 보인다.
이런 맥락을 다 종합을 하면 한동훈식 동료시민이란 뭘까? 일반 국민 중에서도 특별한 부류이다. 이 특별한 부류는 대개 ‘정상인’이며 ‘공공선’이라는 명분 하에 국가를 대신해 자기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을 갖춘 존재들이다. 한동훈식 정치는 그런 분들을 특별히 호명해 “함께 가면 길이 됩니다”라고 하는 거고, 그런 분들이 사회를 이끌면서 불순한 운동권들을 제거하고 소수자 등의 못난 이들에게 시혜를 베풀면서 지도를 하면 좋은 나라가 된다고 주장하는 거다. 그러니까 그게 선민의식이고, 엘리트주의고,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사회에 기생하는 좀벌레나 같은 것들이니 박살내자고 하는 게 전체주의고 그런 거지.
부당거래라는 영화를 보면 검사들이 봉사활동 한다고 노숙자들 배식하는데 가서 밥 퍼주고 그러거든? 그러면서 기자한테 우리 검사들이 평소에 좋은 일 많이 한다고 기사 좀 잘 써달라고 하고 그런다고. 그게 동료시민이다. 좋은 말 또 하나 오염됐네… 이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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