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은 건폭, 교육개혁은 킬러문항… 아직 연금개혁은 킬러 아이템을 발굴 못 했으나 조만간 성공할 걸로 예상. 이런 식으로… 개혁은 거창한 게 아니라 무엇무엇만 바꾸면 정상화 된다는 식의 접근은 전형적인 21세기형 포퓰리즘이라고 본다. 그래서 어제 아침에 쓴 글에도 이렇게 썼다.
대통령의 말에 현실을 맞추기 위해 참모들과 여당이 온갖 오물을 뒤집어 쓰는 진풍경이 반복적으로 연출된다.
‘대통령은 틀리지 않는다’는 식의 대응에 ‘지도자는 무오류’라는 북한식 접근이 연상된다는 사람도 있다. 교육개혁은 ‘킬러문항’으로, 노동개혁은 ‘건폭’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개혁의 실내용이 없는 상태로 유권자가 혹할 만한 키워드만 던진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이라고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 역시 있다. 독재와 포퓰리즘의 결합은 미국의 트럼프 시대에서 보듯 전세계적 극우포퓰리즘의 경향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즐겨 언급하는 ‘자유민주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애초에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란 그런 차원이 아니라 반공주의와 시장지상주의의 고전적 결합에 지나지 않는 거 아니냐는 의심도 있었다. ’자유민주주의’의 실체는 거의 반박이 불가능할 정도로 명백하게 드러났다고 본다. 수능 발언 논란은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해프닝에 불과하다.
여기서도 썼지만 ‘사실상 친윤’들은 그간 전정권을 트럼프에 즐겨 비유해왔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트럼프에 더 가까운건 문재인이 아니라 윤석열이다. 트럼피즘이 아니라 석열이즘이다. 이런 얘기 쓰면 또 민주당 편드냐고 할 건데, 그런 얘기 하기 전에 제발 제가 쓴 책이라도 봐라. 문정권이 본질적으로 뭐였는지는 거기 다 써있다.
전임자 탓하고 전정권과 반대되는 걸 하면서 ‘전정권이 만든 A만 바꾸면 모든 게 정상화 되고 잘 된다’는 식의 논법은 문민정부 이후부터 계속돼온 것이다. 저의 책은 그런 현상을 더 본질적으로 따져보면 대의민주주의 전반이 시작부터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지금 수능 얘기를 또 근본적으로 하면 김상곤식 혁신교육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데, 혹시 책 있으신 분들 미국의 반지성주의 뒤에서 두 번째 챕터 보시라. 그것도 모티프가 거기 다 있어요. 하루이틀 얘기가 아니야.
그런 이유로, 정치적으로 지금이 어떤 시대냐를 논하는 것은 정권의 성격 그 자체보다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과 대의민주주의 정치가 맺고 있는 관계를 중심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단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당으로 따지면 5년만에 정권이 바뀌었더라도 지금은 문재인 정권 2기 같다.
시대 구분의 최신 기준 시점은 박근혜 탄핵이다. 박근혜 국정농단에 분노해 촛불집회 나간 사람, 문재인 정권 열렬히 지지한 사람, 윤석열 검찰총장의 정계 진출에 환호한 사람은 세대별 이념별 투표행위별로 다른 사람들이다. 그러나 시대정신이라는 한 묶음으로 봤을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다 같은 사람들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문통이 윤석열 검사를 검찰총장에 임명하고, 그 사람이 들이받다가 대선 나와 대통령 된 건 어떤 기막힌 우연이 아니다. 다 같은 시대정신의 맥락 안에 있는 일이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소극으로… 라는 써먹기 좋은 유명 격언이 있는데, 이 경우에도 잘 맞는다. ‘개혁’은 문정권에서 비극으로, 윤정권에서 소극으로 반복되고 있다.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볼 때 윤통은 사람 웃기는 소극을 충실히 연기하는 입장일 터이다. 그렇다면 소극이 종장에 이르고 새로운 시대정신의 막이 오를 때에 등장할 지도자의 상은 무엇일까? 그것은 진정으로 프로페셔널한 정치인 또는 진정으로 양심적인 관료의 등장으로 구체화될 것이다. 이들이 뭔가를 시작하자마자 실패하는 게 새로운 시대정신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일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무서운 시대이다. 석열이즘은 그러한 시대를 준비하는 징검다리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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