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대통령이 될 때는 그 자가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지. 원래 그런 거다. 어떤 대통령도 마지막에 가선 미움 사게 돼있다. 레임덕은 그 정도가 어쨌든 필연이다. 내가 정치 원로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서 정권 초기에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는 것이여. 1) 국정운영동력이 상실되기 전에 정치와 사회를 어느 방향으로 얼만큼 움직여 놓을 것인가? 2) 미움의 대상으로 전락한 이후 차기 정권은 어떤 세력이 쥘 수 있도록 할 것인가? 그래서 문정권이 지금에 와선 그로기 상태가 됐더라도 1)에서 성과가 있고 2)에서 좀 더 ‘나은’ 세력(그게 당내든 당외든)이 정권을 잡는 경우를 만들 수 있었더라면 역사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거다.
여기다가도 언젠가 썼는데 2017년 2018년 팟캐스트 등에서 여러 차례 얘기했어요. 문정권 실패하면 그 다음부턴 각자도생의 시대이다… 책에도 썼는데, ‘대의’를 추구해봐야 나에게 손해로 돌아오는 것 이상의 효과가 없다는 걸 확신하게 된다면, 그 다음부터는 각자 자기 이익을 최대화 하는 방향으로 다들 달려갈 수밖에 없기 때문임. 문정권은… 결과적으로 효과가 없을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그러니까 ‘대의’를 추구했다는 생색만 내는 길을 택했다. 당연히 효과가 없으니 사람들은 그 ‘대의’를 사기라고 하고 각자도생을 택하는게 차라리 낫다고 하는 거다… 이 ‘대의’에 ‘진보’가 같이 묶여버린 것,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임.
더블민주당이 싹쓸이 한 2018년 지방선거 결과를 놓고 다들 호들갑을 떨었지만 나는 그때도 이렇게 썼었다.
현재의 정치권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결과는 서구의 경우처럼 대중의 원한감정이 극우화된 형태로 돌출되는 것이다. ‘공정성’을 요구하는 대중의 목소리에서 이 길로 이어질지 모르는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공정성에 대한 갈망은 민주주의와 시장논리의 결합이라는 근대 사회의 원리로 볼 때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제는 이 갈망이 좌절될 때 사람들이 무엇을 요구하느냐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본 것은 사람들은 불공정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 평등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약육강식의 질서를 강화하는 시장원리의 확대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실질적 평등을 요구하는 길은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을 내면화한 상황에선 스스로 강자가 되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방식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같은 ‘요구’도 결국은 정치의 효과인 셈이다.
서구의 경우 이런 요구가 소수자 및 난민으로부터의 분리 시도를 통한 정상성 회복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요즘 말하는 극우포퓰리즘이다. 인터넷이 세계만물을 통합하는 시대상 속에서 우리도 자유롭지 않다. 이걸 바람직한 미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을 자처하는 정치는 태평성대 속에서도 파국을 준비하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야 한다. 실질적 평등의 달성이 가능하다는 사회적 신뢰가 만들어져야 하고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들 역시 마련돼야 한다. 대안적 정치는 이런 조건을 스스로 만드는 속에서만 가능할 수 있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6685
또 다른 글에서는 이런 얘기도 썼다.
요즘 분위기를 보면 더불어민주당의 장기집권이 가능한 상황이 될 것도 같다. 그러나 그것이 근본적 차원에서 뭘 의미하는지를 더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유럽 사민주의 세력의 집권 이후 행태는 전형적인 중도화였다. 성공적인 주류화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은 일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극우포퓰리즘의 인큐베이터가 됐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됐다.
한국의 상황이 크게 다를까? 새롭고 신선한 젊은 정치인이 등장해 암호화폐 거래 자유화, 수능 정시 대폭 확대, 난민 퇴출, 주식시장에서의 공매도 전면 금지, 사법시험 부활, 세금 감면 등을 공격적으로 내세우며 ‘개혁’을 부르짖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이런 일은 근대 정치의 전반에서 반복되고 있다. 21세기 극우포퓰리즘에서 우파는 ‘개혁’의 외피를 두르고 부활한다.
이런 일을 방지하려면 개혁의 주도권을 놓지 말아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다. 집권세력이 그럴 수 없다면 적어도 그 책임을 실제적 대안을 꿈꾸고 자처하는 세력이 적극적으로 짊어져야 한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정권이 스스로 적극적으로 만들고 있다. 미래의 극우주의자 역시도 똑같은 광경을 볼 것이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8359
말해 뭐해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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