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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이대남

보수화

2025년 2월 15일 by 이상한 모자

어제 그제 등등 젊은 세대의 보수화 이런 거를 얘기하는 데 정말 답답해 환장한다. 기준과 팩트를 뒤섞어서 얘기하면 안 된다. 그런데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다 뒤섞어서 되는대로 얘기한다. 이러면 아무것도 얘기를 안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적어도 두 가지를 부정하면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본다. 1) 젊은 세대 중 상대적으로 여성은 진보적, 남성은 보수적 경향을 띈다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2) 그 중에서도 한국은 젊은 세대 남성의 보수화 경향은 특별히 강조할만한 정도로 관찰된다.

근데 이제 이런 얘기를 시작하면 과연 보수란 무엇인가 수준으로 간단 말이지… 예를 들면 기성세대가 잘못해서 거기에 반발하는 것 뿐이지, 그걸 보수화라고 부를 수가 있느냐 등등… 아니 그러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진보 보수 이렇게 부를 때, 그게 다들 진보적으로 또는 보수적으로 사상적 트레이닝이 아주 잘 된 사람들만 그렇게 부르는 거요? 상대적으로 진보화됐다, 보수화됐다 라고 할 때는 이유가 뭐에 대한 반발이든 반대이든 경향적으로 그렇게 된 결과를 갖고 말하는 것이지. 물론 진보가 진보가 아니고 보수가 보수가 아니어서 생긴 여러 왜곡에 대해 비판할 수는 있어. 그래서 제가 책에다가 썼잖습니까? 오늘날 진보는 보수를 반대하는 것, 보수란 진보를 반대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렸다, 라고! 근데 이것과 이거는 다른 문제다 이거다.

또, 다른 나라 극우를 판별하는 기준을 갖다 대면 또렷하게 차별화되지 않는다 라는 얘기도 종종 하는데, 가령 기후변화나 이민자에 대한 태도 등등이 기준이어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그 정도까지는 보수화 된 태도가 나타나지 않으니, 보수화라고 부르면 안 된다는 식이지. 그런데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로 기후변화나 이민자에 대한 태도는 보수화의 결과이지 그 자체가 보수화가 아니다. 보수화의 지표를 뭘로 판단할 거냐라는 건 그 시기의 정치와 조응한 결과인 것이지, 애초에 국내 정치적 맥락에서 기후변화와 이민자 문제가 쟁점화가 안 되어 있는데 그걸 갖고 보수화를 판단하자고 하면 그게 말이 되겠는가?

그럼 뭘 갖고 판단해야 하느냐? 그러니까 종합적인 분석과 비평이 필요한 거지. 가령 최근에 강원택류 얘기를 중앙일보가 계속 쓰고 있는데, 오늘은 뭘 쓴 거냐. 이 얘기 아니냐.

동아시아연구원(EAI)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2~23일 성인 1514명을 대상으로 웹서베이(web survey)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다. 이에 따르면 ‘한국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는가’(0~10점)라는 질문에 20대(18~29세)는 5.08점으로 전 연령대에서 60대(5.07점) 다음으로 낮은 점수를 줬다. 전체 평균(5.36점)에도 미치지 못한다.

특히 20대 남성은 4.89점으로 가장 낮았다. 반면 이들의 부모 세대라 할 수 있는 50대 남성은 5.81점으로 가장 높았다. 2017년 조사에선 20대 남성(만족 48.6%)이 40·50대 남성(37.3%, 43.6%)보다 우호적이었다.

‘민주주의가 다른 제도보다 더 낫다’는 데 대해서도 20대 남성의 62.6%만 동의했을 뿐이다. 30대 남성(64.3%), 60대 여성(71.5%)이 뒤를 이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4165

다른 때 같으면 더 많은 분석을 할 수도 있겠지만, 윤석열이가 계엄을 선포하고 그게 정당했다는 근거로 야당이 국회 권한을 남용했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젊은 세대 남성만 이런 반응을 보인다? 그게 의미하는 바가 뭐겠나?

그니까… 이런 결과에 자꾸 눈을 감으면 안 된다는 거다. 항상 문제는 해법이지 현상이 아니다. 여기서 해법을, 해법이랍시고 말려 죽이자 이런 얘기나 하면 안 된다는 거지…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보수화, 이대남

SNS 그만 해라

2025년 2월 12일 by 이상한 모자

맨날 하는 얘기지만, 지친다 정말.

어제인가 그제인가, 신문에서 이대남 함부로 재단하지 마라류의 글을 또 하나 보았다. 그런 글을 보면 이대남은 온 세상 사람들에게 사냥당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신문만 보는 나는, 이대남 사냥하는 글보다 ‘이대남은 환상이다’, ‘꼭 그런 건 아니다 일반화 하지 마라’, ‘잘못 됐더라도 기성세대 탓이다’ 등등의 글을 훨씬 많이 본 거 같다. 어디서들 그렇게 이대남들 사냥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이 생각은 민주당 사람이 이대남 말려죽이자 얘기 하기 전에 함). 결론은? SNS에서 하는가부다… 그러면, SNS라는 게 어차피 다들 각자의 타임라인에서 떠드는 건데, 자기 타임라인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하는 얘기를 공론장인 신문에다가 자꾸 쓰는 게 뭔 소용인가?

이런 얘기를 하면 또 어쩌고 할텐데, 이대남 함부로 재단하지 마라류의 글을 쓰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나는 SNS와 신문 얘기를 하는 거다.

비슷한 느낌으로 말하면, 오늘도 그런 글을 보았다. 젊은 여성들이 응원봉 들고 집회 나왔다고 기특한 시선으로 보지 말라는 얘기였다. 사실 그렇다.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으면 집회에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오히려 안 나오는 녀석들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그런데 또 엊그제는 그런 글을 보았다. 젊은 여성들이 집회에 많이 나왔는데 왜 이러한 사실은 무시하고 다들 이대남 얘기만 하느냐는… 생각해보니, 신문에서 ‘기특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보지 마라’는 글은 종종 보았는데, ‘기특하다’고 하는 글은 거의 못봤다. 도대체 누가 그렇게 기특하다고들 한 것인가? 어떤 새끼가? 이 개같은 새끼 진짜… 열받게… SNS를 안 보는 나는 그러면 SNS에서들 그러는구나,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늘 얘기하는 거고 다들 하는 얘기고 한 10년째 누구나 걱정하는 얘기지만, SNS가 열받는게, SNS에서 한참들 얘기를 해서 이미 어떤 스키마를 만들어 놓는단 말이다. 근데 그게 다 자기들 타임라인에 맞춰져 있어. 비슷한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타임라인에. 그래서 그 스키마에 안 맞으면 애초에 알아듣지를 않아. 그러니까 뭐가 될 리가 있냐?

SNS를 없애고 유튜브를 없애고 좋아요와 수익화와 이 염병할 것들을 다 없애야 하는데… 너무 화가 난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SNS, 응원봉, 이대남

이대남의 게임적 세계관

2024년 12월 25일 by 이상한 모자

사석에서 이대남의 게임적 세계관이 1) 왜 집회에 나오지 않는지, 2) 그럼에도 왜 일부 오타쿠들이 집회에 나왔는지를 모두 설명해준다고 얘기했는데, 요즘 무슨 얘기를 해도 그렇지만 잘 전달이 안 되는 거 같았다. 내가 볼 때 이른바 이대남은 게임적 세계관을 전제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해도 설명도 되지 않는다. 사실 나는 이걸 다들 알고 공감하는 얘기라고 생각하거든? 근데 오프라인에서 말을 하면 상대방이 이해 내지는 동의를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

첫째, 게임적 세계관은 철저하게 모든 일이 사이버 세상에서 구현된다. 콘서트든 티켓팅이든 어떤 항의든 오프라인을 전제하는 K팝 소비자(응원봉!)들과는 다르다. 그래서 이들은 커뮤니티 등에서 윤석열이 나쁜 짓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도 집회 참가 의지랄까 그런 거는 상대적으로 잘 가질 수 없는 한계를 안고 있다. 집회에 나간다는 거는, 큰 결단이다.

이건 반대쪽에서도 마찬가진데, 만약에 그래도 윤석열이 계엄 선포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임적 세계관의 이대남 누군가가 태극기 집회 같은 데 나갔다 라고 하면, 이거 정말 큰 결심 한 거다. 부들부들 떨면서 나가는 것임. 대신 게임적 활동에 익숙한 이들의 온라인 활동은 매우 적극적이고 활발한데, 악플을 단다든가 도배를 한다든가 다른 사람인 척을 한다든가 뭐 그런 거는 일당백이지. 그래서 CIA 신고 같은 거 열심히 하고 그러는 게 다 이 맥락임.

둘째, 근데 일부 이대남 오타쿠들은 집회 왜 나온 거냐? 바로 이게 윤석열의 사악함이 MAX인 이유이다. 윤석열이 한 짓은 게임적 세계관에서 보면 최종보스나 하는 일이다. 심지어 최종보스가 나타났다면 용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다른 건 다른 핑계를 다 댈 수 있는데, 최종보스까지 나왔는데 가만히 있는 건 안 되잖아? 그래서 오타쿠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결단을 비로소 내리고 집회에 나간 것임.

자 이게 집회에 대한 얘기고…

게임적 세계관에 대해 좀 더 들어가보면. 이런 거지. 가령 공정성에 대한 희구 이런 거 말야. 이대남들이 세상 살면서 어디서 ‘노력하면 그에 걸맞는 보상이 주어진다’는 걸 체험을 해봤기에 그게 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문제 제기를 투표로 할 정도에 이르렀느냔 말이다. 이건 단지 ‘내가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경험만으로는 부족하다. ‘공정한 대우를 받은 적이 있고, 이게 정상이다’라는 체험이 있어야, ‘내가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것은 역시 부당하다’는 구체적이고 집단적 감각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겠나.

내가 볼 때는 이 ‘공정성’을 체험하는 장이 게임이다. 게임이 게임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저가 들인 노력만큼의 보상을 획득하게 설계할 수밖에 없다. 그게 경험치든, 돈이든, 뭐든 말이다. 그게 안 되면, 확률형 아이템 이슈 이런 것처럼 완전 개작살 나는 거지. 무조건 공정해야 돼. 이건 온라인 오프라인 상관없어. 게임은 공정하게 설계돼야 해.

또 하나. 게임적 세계관은 ‘능력치’이다. 하다못해 삼국지를 해도 누가 잘나고 누가 못났는지를 줄세울 수 있다. 관우랑 장비랑 누가 더 세냐? 삼국지 소설 읽으면, 그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유비가 관우랑 장비 어느 한 쪽을 빼고 천하를 논할 수가 있겠니?

근데 코에이 삼국지로 가면 결론을 낼 수 있지. 관우는 무력이 98이고 장비는 99여. 일기토 붙이면 장비가 이기지. 다만 아이템을 주면 청룡언월도와 장팔사모에 능력치 보정이 붙어서 서로 무력이 비슷해진단다. 여포는 무력 100인데 방천화극이 또 추가 능력치를 주고 거기다가 코에이 삼국지 전통으로 숨겨진 능력치가 더 붙어서 일기토에서는 무조건 여포가 짱이지! 그렇지만 유비로 플레이를 하려면 계략을 써야 하고 내정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장비만으로는 안 되고 지력과 정치가 중간은 가는 관우가 있어야 한단다… 뭐 이런 식이잖아. 이게 게임적 세계관 안에 있는 이대남이 사람을 평가하는 ‘능력치’의 관점이다.

여기서 게임적 세계관의 이대남은 ‘나’에게 주관적인 능력치를 항목별로 늘 매기는 거지. 삼국지로 따진다면(꼭 삼국지라는 법은 없음. 롤플레잉 게임 레벨이어도 되고…) 나는? 통솔은 그래도 한 70은 되고, 무력은 65정도… 지력은 80정도 아니려나? 정치는 좀 자신없어 55정도 되고, 매력은 역시 대인관계에 좀 자신이 없지만 타고 나길 못나진 않았으니(못나지 않은 게 중요) 80정도? … 그리고 이 능력치에 걸맞는 대우를 요구하는 거고. ‘나’보다 능력치가 낮은데(레벨이 낮은데) 나보다 나은 대우 받으면 못 참고… 이러는 것.

그리고 이 게임적 세계관이… 날이 가면 갈수록 여성의 신체를 자원화, 식민지화 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는 게 큰 문제.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이 이 원리를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다 내면화 한 상태임. 특히 일본! 그리고 거기에 따라가는 한국, 중국.

이 얘기를 몇 군데서 했는데 다들 ‘?’ 이런 표정을 짓길래 굳이 메모를 남겨봤다.

Posted in: 신변잡기, 잡감 Tagged: 게임, 세계관, 이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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