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할래 이에야스
밥 친구 드라마로 최근 이 드라마를 다 보았다. 전국시대 하면 대망을 많이 얘기하는데, 나 같은 녀석들은 역시 노부나가의 야망이다. 그래서 전국시대 지식이 혼노지의 변까지에 집중돼있다. 물론 전국시대 게임들이 대개 최소 1600년(세키가하라 전투), 혹은 1615년(오사카 여름의 진)까지 다루기 때문에 대략의 흐름은 안다. 다만 밀도가 노부나가 시대에 걸친 기간 동안에가 훨씬 높다는 거다.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좀 매력이 덜하기도 하고… 어쨌든 최후의 승리자이기 때문에…
그런 차원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기존의 너구리 이미지가 아닌, 보통 사람으로 묘사해 접근하는 것은 흥미로운 시도였다. 초중반까지는 마츠준이 마츠준스러운 연기를 하는데 뒤로 가면 입체적인 인물 연기를 잘 보여준다. 츠키야마도노로 나오는 아리무라 카스미는 뭐 역시 그 다운 연기 톤이다. 나머지 캐스팅을 보면 이 시기(2023년) 핫했거나, 촉망받거나, 무게감 있는 고참이거나 했던 배우들이 골고루 있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다 모았지 싶은 생각도… 마지막에는 가마쿠라 도노의 13인의 주연이었던 오구리 슌의 깜짝 출연까지… 그러고 보면 이 드라마의 대단한 점 중 하나는 노인 분장이다. 어떻게 노인을 이렇게까지 잘 재현했는지?
아무래도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무조건 좋은 놈으로 묘사해야 하다 보니 무리수가 상당히 있다. 역사적 사실을 완전히 뒤틀지만 않으면 사료의 빈 공간을 창조적으로 메꿔가면서 서사를 살리는 게 사극의 묘미이므로 이해할 수 있는 범주다. 다만 몇 가지 대목은 아쉬움이 상당한데, 대표적으로 혼노지의 변에 대한 해석이다. 아케치 미쓰히데 개인의 원한으로 평이하게 넘어갔다. 마지막 싸움의 시빗거리가 되는 호코지 종명 사건도 마찬가지다. 훨씬 복잡하게 만들 수 있을 거 같은데, 교과서적으로 넘어간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해석도 특별할 건 없는데 이건 무로 츠요시의 거의 신들린 연기로 다 만회했다.
전체적인 주제 의식으로 보면 이전에 인상깊게 본 가마쿠라 도노의 13인과 비교할 때 차이가 명확해 보인다. 가마쿠라 도노의 13인은 권력과 타락에 대한 일반론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보편적 주제의식이 돋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떡할래 이에야스는 말하자면 일본적이다. 가령 대표적으로 지적받는 무리수, 츠키야마도노가 나름의 평화 구상을 통해 오다 노부나가의 팽창주의(나아가서는 극 종반에 강조되는 ‘난세’의 정신…)를 견제하려 했다는 대목이다. 이 드라마에서 이 대목은 단지 대안적 역사 해석이 아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인물의 내적 갈등을 설명하는 핵심 요소다. 따라서 1차적으로는 역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너구리로만 묘사하지 않기 위한 서사라고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는 건데, 사실 츠키야마도노의 구상은 자본주의의 고도화와 자유무역으로 전쟁과 분열 및 고립주의에 대응한다는 현대 글로벌자본주의 정신의 재현이다. 전국시대에 뭔 소리냐… 라는 데에서 이질감이 있기 때문에 말들이 많았던 것인데,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이 구도(전쟁 대 자본주의)가 전형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반전평화는 왜 필요한가? 전쟁이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가기 때문인가? 아니면 자본주의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인가? 츠키야마도노가 둘 다, 혹은 후자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자유주의적인 이러한 시각이 시사하는 바, 이 드라마는 이데올로기적이다.
이제 이게 왜 일본적인지를 생각할 차례다. 드라마의 후반부에 요도도노가 자결 직전에 말하는 바, 유약한 비겁한 정정당당하게 싸우지 않는 뒤에서 헐뜯는 일본이 된다는 식의, 푸념은 정확히 일본의 극우주의가 평가하는 현대 일본의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려면 보통국가화해야 한다. 즉, 요도도노와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옥쇄(?)는 일본식 국가주의-군국주의에 맞닿아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그것을 ‘난세의 망령’이라고 한다. 이 난세의 망령을 극복하는 것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이다. 즉, 이 구도에서 오사카는 우리에게 기시 노부스케로 잘 인식되는 국가주의-군국주의-팽창주의를, 에도는 요시다 시게루-이케다 하야토로 대표되는 로우 폴리틱스, 즉 경제주의를 연상하게 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일본 정치의 이 전통적 구도에서 후자가 승리하는 흐름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처럼 읽힌다.
그런데, 말하자면 일본식 리버럴의 문제가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즉, 앞서 구도를 적용하였을 때, 그렇다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평화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해온 전쟁과 살육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현실정치로 말하자면, 2차대전기의 주변국 침략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자신도 난세의 망령이니 뭐니 하지만 어찌됐건 드라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싸움을 난세를 끝내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일로 포장한다. 마지막에는 츠키야마도노가 나타나 잘했다며 위로도 해준다. 어쩔 수 없는 희생이 있었지만 결국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거친 과정으로서의 싸움… 그 정도의 인식인 것이다. 그 점에서 이 드라마는 착한 얘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으나 한계를 벗어난 메시지를 담지는 않은(못한 게 아니라고 본다) 걸로 평가할 수 있겠다.
하여간 이 문제로 안드로메다로 가는 대목들이 좀 거슬렸지만, 의외로 재미있는 드라마였다. 마츠준이 갑질을 하고 대본에 개입해 수정하고 뭐 그랬다고는 하던데… 여튼 현대적 감각이 조화롭게 녹아있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착한 드라마를 많이 만들겠다고 하면 좋겠는데, 비방이라는 우익 드라마의 새로운 시즌을 만든다든지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어 걱정이 된다. 남의 나라 걱정 할 때인가 싶기도 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