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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잡감

마지막 낙관

2023년 7월 29일 by 이상한 모자

일전에 박권일 선생의 글에 나오는 호빗, 벌칸, 훌리건의 구분법을 눈여겨 보았는데, 며칠 후 한국일보에 그 책에 대한 서평이 실려 전반적 내용을 알게 되었다(물론 그 이후 이외의 다양한 신문에도 내용이 소개되었다. 또 검색을 통해 이미 이전부터 식자들에 의해 이 구분법이 언급돼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빗, 벌칸, 훌리건의 개념은 설명 대신 박권일 선생의 글을 다시 인용한다.

정치학자 제이슨 브레넌은 미국 유권자를 ‘호빗’, ‘훌리건’, ‘벌컨’의 세 그룹으로 나눈다. 호빗은 정치 무관심층이고, 훌리건은 편향적·광신적 지지자이며, 벌컨은 냉정하고 이성적인 유권자다. 정치학자 다이애나 머츠는 정치참여형 시민들이 거의 모두 훌리건적 성격을 가진다고 말한다. 한국인들만 유독 광기에 차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현대 정치의 흔한 현상이라는 거다.

정치 팬덤이 극단화되기 쉬운 이유가 있다. 도덕적 확신이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취향의 다름은 존중할 수 있지만 도덕의 다름은 그렇지가 않다. 도덕은 세계를 인식하고 살아가게 하는 기본적 가정이기 때문에 양보하기가 어렵다. 문제는, 여러 심리학자가 밝혀낸 것처럼 이념과 문화적 배경에 따라 도덕 기준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서로가 ‘옳음’을 강변하니 늘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듯 정치 참여가 도덕의 문제이자 훌리건을 양산하는 활동이라면, 우리는 극한의 정치적 내전을 운명처럼 감내하고 살아야 하는 걸까?

쉽지 않은 문제지만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 실험심리학자 조슈아 그린에 따르면 인간의 도덕 판단엔 두 가지 시스템이 병존한다. 하나는 그가 “자동모드”라 부르는 직관적이고 감정적인 동기다. 다른 하나는 “수동모드”라 부르는 이성적인 동기다. 우리가 직면한 많은 정치 의제는 정교한 판단과 절묘한 절충을 요구하지만 오늘날 정치 담론은 대개 누군가를 악마화하는 일로 환원된다. 즉, “자동모드”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다. 관건은 이분법적 사고를 강요하는 양당제 정치를 탈피하는 것, 그리고 사람보다 의제를 중심으로 담론과 실천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훌리건’보다 ‘벌컨’에게 훨씬 많은 발언권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주목도는 낮지만 사회적 논의가 꼭 필요한 의제들을 더 많은 시민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이를 위해 아낌없이 공적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99093.html

이 글에서는 저자의 결론까지 인용하진 않고 있는데, 신문에 실린 서평을 보면 저자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저자는 에피스토크라시(epistocracy), 즉 ‘지식인에 의한 통치’에서 대안을 찾는다. 그러면서 충분한 지식을 갖춘 이들에게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주는 ‘참정권 제한제’나 더 유능한 시민에게 투표권이 추가로 주어지는 ‘복수 투표제’를 소개한다. 다만 ‘정치 엘리트주의’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저자는 이 제도에 앞서 충분한 숙의와 합의가 필요하며, 특정 사람에게 자격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유권자 능력 시험 등의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71217580001291

정서적/감정적으로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얘기다. 그러나 그런 걸 일체 배제하고 논의를 일단 따라가볼 필요는 있는데, 저자의 연구는 그렇다고 한다. 가령 가장 쉽게 제기될 수 있는 반론은 숙의민주주의를 통해 호빗이든 훌리건이든 벌칸의 비중을 늘리면 되지 않느냐는 건데(사실 박권일 선생의 벌컨 발언권 확대론도 근본적으론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실제 ‘숙의’의 결과물을 보면 호빗은 그냥 훌리건이 되고 훌리건은 더 극렬한 훌리건이 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는 것이다.

여기가 전통적인 좌우파 방법론이 갈리는 결정적 분기점이라는 생각이다. 각 주장이 좌파와 우파의 주장이라는 게 아니다. 여기서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가 관건이라는 거다. 가령 극좌파인 어떤 사람도 호빗과 훌리건에게 “벌컨이 돼라!”며 꾸짖고 두들겨패고 하다가 지쳐서 “역시 에피스토크라시가 있어야 돼…”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언제나 비슷한 경로로 가는 사람들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의문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숙의’라는 것에 한계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혹은, 그 ‘숙의’라는 것이 현재와 같은 형태의 대의민주주의 시스템과 결합해있을 경우라면 마찬가지 결론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닐까? 왜냐하면 호빗과 훌리건의 민주주의라는 것 자체가 본질적으로는 현대 대의민주주의의 오류와 한계일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제 수준에서는 저의 책을 참고해보시라는 정도의 설명을 덧붙이기로 하고…

그래서, 호빗과 훌리건은 제끼고 벌컨들에게 운전대를 넘겨주자는 식의 결론이 아니라, 또는 호빗과 훌리건에게 너는 왜 벌컨이 되지 못하느냐… 지금부터 내가 너희들이 모르는 세상의 진실을 보여줄테니 너도 벌컨이 함 돼봐라… 안 되면 혼날줄 알아라… 이렇게 접근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어쩔 수 없이 벌컨이 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가, 이게 고민의 핵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게 근본적으로 안 되는 일이다 라고 한다면 그 분에게 남는 해법은 어떤 방식으로든 검증된 소수의 다수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 뿐일 것이고, 언젠가는 가능할 수 있지만 아직 우리가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라고 말하는 분은 나이 먹고도 철없는 좌파로 남는 것이고…

그래서 내 생각에 진보라든가 어떤 좌파라든가 하는 것의 근본적인 태도란 거는 비관으로 일관하더라도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에 마지막 낙관이 있느냐, 이게 핵심이 아닌가 한다. 뒤집어 말하면 아무리 현실을 낙관하더라도 ‘원래 사람들은 안 되는 것’이라는, 마지막의 마지막에 비관을 품고 있는 사람은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진보라든가 좌파라든가는 아닐 수 있다는 것. 오해하지 마시라. 누구는 좌파여서 되고 누구는 안 되고 이런 얘기가 아니다. 좌파면 어떻게 아니면 어떻냐. 그러나 우리가 좌우 구분의 어떤 기준을 말한다면 그 핵심의 핵심은 이게 아닐까 이러한 생각을 했다는 거다.

추가. 이런 얘기를 라디오에서 ‘시럽급여’얘기랑 같이 한 바 있었는데, 방송국에 사람들이 그런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네가 실업급여에 대해 뭘 아느냐며, 나는 벌컨인데 실업급여는 시럽급여가 맞다 라는… 에이구… 다음에 얘기합시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민주주의에 반대한다

이동관의 미디어 생태계 복원이란 무엇인가?

2023년 7월 29일 by 이상한 모자

매일 아침 신문을 읽지만 아무래도 놓치는 것들, 혹은 가볍게 보고 잊어버리는 것들이 있을 수 있다. 있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부지기수겠지. 그래서 일간지 칼럼 등을 모아놨다가 한 번에 다시 본다. 읽은 것을 또 읽는 것이다. 조중동과 한겨레 경향이 다 포함된다. 마침 금요일 밤 방송도 짤렸으니 시간이 많아져 여러 생각을 했다.

그러한 와중에 오늘 이동관씨가 한 말에 대해 잠시 생각한 바가 다시 떠올랐다. 이동관씨는 이렇게 말했다.

“공정한 미디어 생태계의 복원, 자유롭고 통풍이 잘되고 소통이 이뤄지는 정보 유통 환경을 조성하는 데 먼저 총력을 기울이려 한다”, “이제 대한민국에도 영국 BBC 인터내셔널이나 일본 NHK 국제방송처럼 국제적 신뢰와 인정을 받는 공영방송이 있어야 한다”, “넷플릭스처럼 콘텐츠 거대 유통 기업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원’이라는 것은 뭔가 이전의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뒤이어 나온 문구들을 보면 그것은 복원이 아니라 비가역적 변화, 가지 않은 길을 가려는 시도로 느껴진다. ‘BBC나 NHK’를 예로 든 게 아니라 ‘BBC 인터내셔널이나 NHK 국제방송’을 말한 걸 보면 그렇다. 지금까지 정부 여당 행태의 맥락과 연결해보면, 이건 결국 공영방송이 국내적 쟁점에 대해 관점이나 논조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냥 뉴스 읽는 정도로나 하고, 굳이 심층적인 걸 하고 싶다면 국제뉴스를 다루라는 것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도 NHK 국제방송에 대해선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다. 일본의 경우 NHK 국제방송이 언론의 역할이 아니라 일본 정부의 입장을 해외에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돼왔다. 그짓말 같냐? 2014년에 한국의 공영방송 장악 방식으로(경영위원회 위원을 친정권 인사로 꽂고, 그들이 친정권 인사를 회장으로 선임하는 방식) 선임된 모미이 가쓰토 당시 NHK회장님이 취임 기자회견에서 국제방송에서의 영토 문제 등을 다루는 방식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우’라고 하는 것을 ‘좌’라고 할 수는 없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하여는 어느 나라에서나 있던 문제이므로 일본만 문제 삼을 것은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다. NHK 국제방송이 자기들 입장을 해외에 알리는 나팔수가 되기를 바랬던 정권의 바람을 반영한 것이다. 한 마디 하고 만 게 아니라 실제 정권 차원에서 그러한 일이 기획되고 추진되었다.

신도 요시타카(新藤義孝) 일본 총무상은 5일 “우리나라의 생각이나 매력을 세계에 정보로 발신하는 것의 중요성이나 (이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전 세계를 담당하는 우리나라 유일의 국제방송인 NHK국제방송의 존재 방식 등을 조속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NHK가 전했다.

신도 총무상은 이를 위해 NHK국제방송을 담당할 `전문가 모임’을 설치하겠다고 밝히고 이 모임은 “NHK국제방송이 어떤 형식으로 어떤 내용을 방영해야 더 좋아질 것인지, 국제방송이나 일본의 정보 발신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다시 검토하고 점검하자는 것이 가장 큰 취지”라고 설명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40805179500073

이런 흐름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라는 어떤 신문은 아베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시도라며, 만일 2023년 한국에서 했으면 괴담세력의 괴담같은 얘기가 됐을 주장을 용감하게 사설로 제기하기도 했던 것이다.

FT는 9일(현지시간) ‘아베의 국수주의, 걱정스러운 전환’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아베 총리가 부상하는 중국이 위협될 것이라는 우려 속에 자신의 국수주의 어젠다를 더욱 강력히 추진하면서 일본 민주주의에 우려할만한 영향을 일부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아베 총리가 임명한 NHK 경영위원 4명 가운데 1명도 난징(南京) 대학살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으며 또다른 경영위원은 여성의 ‘합리적인’ 위치는 가정이라는 발언도 했다.

NHK는 9일 치러진 도쿄도 지사선거를 앞두고 원전쟁책이 선거쟁점으로 부상한 가운데 원전산업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억압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

신문은 이어 아베 총리의 계획은 지속적으로 토론을 방해함으로써 여론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리려는 것으로 보이지만 아베 총리가 상대적으로 열린 일본 사회를 공격하는 구실로 중국 위협론을 사용할 경우 비극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https://www.yna.co.kr/view/AKR20140210084700009

물론 우리는 일본이 아니기에 양상은 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방금 FT의 2014년 사설에서 오늘날의 정세를 읽을 수 있듯, 본질적으로는 유사한 무언가의 역할을 요구하게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앞에 썼듯 ‘복원’이라고 보기 어렵다.

별 뜻 없이 한 말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경험해 본 바 있기에 빈말로 들리지 않는다. 뒤에 넷플릭스 얘기도 그냥 한 얘기는 아니지 않나 싶은데, 뭐 차차 보면 알겠지요.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NHK, 이동관

김연경 선수 스쳐지나간 얘기

2023년 7월 27일 by 이상한 모자

두통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병원에 다니고 있다. 강남까지 가야하는데 마침 방송도 다 짤려서 시간도 많으니 잘됐지 뭐냐.

오늘 병원 건물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키가 무지 큰 사람이 갑자기 뒤에서 오더라. 슥 봤는데 김연경 선수가 아닌가!? 나는 4층 가고 그 양반은 다른 층 가는데, 그 찰나의 순간에 많은 고민을 했다. 어떡하지… 인사를 해야 되나…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해야 되나… 근데 그게 오히려 민폐 아닌가… 내가 배구팬도 아니고 TV도 안 보는데… 그래서 결국 아는 척도 못하고 엘베에서 내렸다는 얘기…

그건 그렇고, 병원에서 도수치료를 받는데 거액의 치료비를 선결제했다. 두통만 없애준다면 억만금이라도 낼 수 있겠다는 심경이었다. 도수치료는 처음 받아보는데, 놀라웠다. 근육과 신경에 통달한 분인지, 그냥 터치만 딱 해도 어디가 문제인지를 알더라. 처음에 만질 때는 아프던 부위가 몸을 이렇게 저렇게 막 우두둑 꺾고 어쩌고 한 후에 만질 때에는 안 아프게 되는 것이 신기했다.

어쨌든 치료사 센세의 설명대로 하면 내 몸은 거의 쓰레기에 가깝다. 근육을 늘리는 스트레칭도 무리이니 하지 말라고 한다. 일단 팔을 곧게 펴는 연습부터 하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센세의 걱정은… 두통의 원인은 어깨지만 지금대로면 어깨를 바로잡아도 문제가 허리로 갈 수 있다… 왜냐면 실제로는 어깨부터 발끝까지 다 문제이기 때문… 그러니까 상체의 경우 특정 부위의 신경을 건드리면 팔이 찌릿찌릿 하는 반응이 있는데, 하체는 신경을 건드려도 발에 반응이 없다. 센세는 “충격적”이라고 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내가 뭘 그렇게 잘못 살았는가…

진통제와 더불어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았는데, 약국의 약사가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중독되는 거 아니겠지? 그러면서도 모처럼 평일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생각도 들었다. 평소엔 일찍 누워도 제대로 잘 수 없다. 근데 이거 신경안정제 먹고 잠들었다가 새벽 4시에 못 일어나게 되는 거 아닌가? 그나마 남은 프로그램도 짤리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걱정이다. 그런 일이 생기면 주간 아니면 일간 김민하 같은 걸 구상을 해서 여러분의 코 묻은 돈을 빼앗는 거밖에 방법이 없다.

앞으로 먹고 살 길을 생각하느라 집중이 잘 되지 않지만, 조금 쉬고 휴가 가신 분 땜빵하러 나가야 한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두통, 재활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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