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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정치 사회 현안

아무리 그래도 장관이 의원을….

2022년 11월 7일 by 이상한 모자

아니 뭐라고 횡설수설하고 다시 뉴스를 보니 우리 한동훈 장관께서 황운하 의원을 두고 직업적 음모론자라고 발언을…

이제 아껴뒀던 후니횽 얘기를 좀 더 해보자. 얼마 전에 어떤 분이 또 전화를 해와서는 그랬다. 이거 첼리스트… 얘기 안 된다고 보는데 후니횽은 왜 저렇게까지 흥분하는 거냐… 이유가 뭐라고 보나? 사실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러나 아무말 대잔치가 열리면 아무말러는 아무말이나 하는 거다. 세 가지를 얘기했다. 첫째, 원래 성격이 저렇다… 녹취록 등등 보면 특수부 검사인 걸 감안해도 뭘 못 참아하는 게 있다… 둘째, 처럼회 등에 강경대응하면 윤석열 지지층과는 또 다른 자기 지지층이 환호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정치적 제스처를 취하는 것일 수 있다… 셋째, 첼리스트 얘기가 사실은 아니더라도 또 후니횽 본인이 참석한 술자리가 아니더라도 윤통이 참여하는 심야의 유사한 술자리가 있었을 수 있는데 미리 한자락 깔아놔야 쉽게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결과일 수 있다… 그니까 이번에 이렇게 오바를 해놔야 대마를 잡혔을 때 지난번처럼 별거 아닌 얘기다, 또 음모론이냐 라고 할 수 있다는 것.

근데 이렇게 얘기하긴 했지만, 난 첫 번째 경우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거든. 원래 성격 저렇다… 근데 지금도 보면 그래. 내가 털보와 그 주변 덤앤더머들의 주장에 전혀 동의를 안 하고 공감을 안 한다. 황운하 씨는 옛날에는 별 생각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악의적인 게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마약수사는 계엄령이고 이런 얘기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아무 말이다. 근데, 그렇다 해도 국무위원이 국회의원더러 직업적 음모론자라고 그러면 어떻게 되겠니?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는 거지. 같은 편끼리도 어떻게 방어가 안 되잖아. 결국 사과해야 할 거거든? 뭐하러 그래? 스타일 다 구기고… 결국 성격 문제다 이렇게 봄.

그렇잖아도 처음에 국회 나왔을 때는 좀 쫄아서인지 말이 조리있게 나오고 그랬거든. 그런데 요즘에는 입이 뇌를 앞서가기 시작해서 흥분하면 문장이 구성이 안 되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젊어서, 혈기방장하여 그런가요? 그런 태도로 무슨 장관을 하는가. 제가 주제넘게 어드바이스 하나 합니다. 우리 후니횽이 앞으로 정치도 하시고 뭐 그럴라면 꼭 버려야 할 습관 중 하나. 자꾸 피해자를 자처하면서 피해자는 막 덤벼들어도 된다고 정당화 하는 거. 본인에도 정권에도 우리 사회에도 도움이 안 되니 본인의 위치와 역할을 자각하셔야…… 되는데 안 하겠지. 제가 뭐라고 여기다 이런 얘기를? 알아서 하시고… 이제 자자… 지친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김어준, 직업적 음모론자, 한동훈, 황운하

참사와 정치 윤리

2022년 11월 7일 by 이상한 모자

어떤 훌륭한 분이 물었다. 대통령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맞느냐? 짧게 답을 했다. 사과 두 글자가 문제라기 보다는 권력이 법적 책임만 거론하니 그 이상의 것을 책임지라는 취지 아니겠느냐. 그러면서 그 얘기도 했다. 권력이 법적 책임만 말하는 것은 어느 순간부터 실제로 정책적 실패나 정치적 문제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는 처지에 놓여왔기 때문이다… 섬세한 구분은 아니지만 그냥 크게 나누기로는 1997년 위기부터 관료들 사이에 그런 공포가 커지지 않았나 한다. 가깝게는 국정농단을 봐도 그렇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책을 쓰면서 했던 생각이기도 한데, 이런 거다. 그러니까 책의 표현을 빌자면 반기득권 투쟁의 일환으로 우리는 늘 법적 책임을 지라든지, 법을 만들라든지, 바꾸라든지 그런 요구를 해왔는데 그게 이뤄지고 나서 문제가 시원하게 해소된 일이 있던가? 선거법이 그렇고 중대재해법이 그렇고… 합법투쟁은 무용하고 혁명으로 가야 한다 그런 우스개를 하려는 건 아니다. 성에 안차는 법 개정이더라도 그게 다 우리 인생에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이다. 그런 문제라기 보다는,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냐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기득권의 “법적으로 책임질 일 없다”는 기술적 항변은 반기득권의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요구와 한쌍이라는 것이다. 반면 반기득권의 “사과하라!”는 요구는 기득권의 “도의적 사과는 할 수 있지만 책임질 일은 없다”는 답변과 한 쌍이다. 기득권의 기만과 파렴치는 제쳐두고 포인트를 반기득권에 맞춰 보면, 우리는 기득권의 도의적 사과, 법적 책임 모두에 만족하지 않는 것이다. 이걸 도식화하면 당연히 우리의 요구는 모순일 수 있다. 하지만 양쪽 모두에 포함되지는 않으면서 동시에 양쪽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을 상정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데, 그게 말하자면 윤리라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그걸 뭐라고 표현하든 윤리적 책임의 영역에 있다. 그러니까 이 참사에 대해서도 그 내용과 정도가 어떻든 권력이 정치적 영역에서 윤리적으로 책임을 지라는 거다.

이제 장을 정치의 영역으로 옮겨오면 윤리와 부딪치는 것은 이해관계이다. 그 중에서도 민주주의가 보편화됐다고 스스로 믿는 세상에 사는 우리가 직면하는 것은 윤리와 정파적 이해관계의 갈등이다. 정파적 이득 추구가 윤리를 압도하는 것을 우리는 일상적으로 보고 있다. 가령 절대로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안 된다는 역설적인 참사의 정치적 이용 사례는 어떤가? 국가 애도 기간은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이지만 참사를 탈정치화하는 방식으로 정권의 정파적 이해관계에 복속시킨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조처였다. 법적 책임을 거론하는 것의 이면에서 우리가 결국 찾아내는 것도 여론을 정파적 이해관계로서 다루는 통치의 기술이다.

이게 권력의 말하자면 눈가리고 아웅 식의 위선이라면 그 건너편에는 노골적인 뻔뻔함을 앞세운 정치 세력의 만행이 자리잡고 있다. 무책임한 음모론을 생산해내며 상대를 악마화하고, 그걸 근거로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그러니까 서로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던가 하면서 동시에 얼마든지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뻔한 정치 기술의 향연이다. 이것은 정파를 가리지 않는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것은 정파적 이득의 추구를 위해 윤리가 어디까지 짓밟힐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심지어 그러한 음모론을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유통하는 사람들의 흔적에는 어떤 즐거움 같은 게 묻어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과거에 신념윤리 책임윤리 이런 얘기를 속류적으로 하는 걸 보면, 질러 놓고 반발은 무시하고 가는 게 책임윤리라는 식의 표현을 보게 되는 일이 많았다. 어떤 정치적 문제에 있어서 윤리는 정파적 이득 추구와 반드시 대립하지 않는다. 책임을 지기 위하여 정파적 이득을 극한까지 추구해야 되는 일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것 역시 늘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볼 때에는 윤리와 정파적 이득이 충돌하는 그 순간에 정파적 이득을 포기하는 것이 어떤 뭐랄까 책임윤리 그런 거다. 그리고 참사에 대해서, 더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가 무언가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요구하는 것 역시 그러한 윤리적 책임인 것이다.

돌이켜보면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매료됐던 어떤 장면들, 민주당 지지자라면 바보 노무현이랄지 뭐 그런 것들… 운동권들이라면 우리 스스로 기억하는 그 숱한 수많은 사람들의 그러한 영웅적 순간들… 전태일 열사… 이런 것들… 어떤 포기-페티시가 아니다. 사건의 그 순간에 우리 각자는 어떤 윤리를 본 것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뭐 그러한 생각… 이것 저것 생각을 했다는 그러한 기록이었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법적 책임, 사과, 윤리적 책임, 이태원 참사

왜 후니쓰에 답을 구하려 드는가

2022년 11월 7일 by 이상한 모자

오늘 뉴스를 정리하다가 한동훈 씨를 붙들고 마약 수사 얘기를 하는 더블민주당의 법사위원들을 보았다.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 한동훈 씨를 붙들고 그 얘기 해봐야 “그럼 마약 수사를 하지 말까요?” 이 얘기 이상의 뭐가 나오냐. 태도의 문제는 별개로 치고, 논리로 보면 법무부 장관 입장에선 저렇게 반응하는게 당연하다. 이게 법무부 장관 책임이냐?

인터넷 방송에서도 말하고, 여기에도 쓰고, 오늘 아침 글에도 쓰고… 마약 수사에 정신이 팔려 경찰이 경비 업무를 등한시했다는 지적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물론 마약 수사를 하려고 일부러 기동대를 보내지 않았다 이딴 거 말고, 위에서 원하는 걸 열심히 하는 걸로 수사영역의 축소를 막아보려고 했다는 정도이다.

여기에 문제제기를 하려면 첫째로 경찰에게 해야 한다. 경찰 지휘부에다가 해야지. 너네는 왜 알아서 기려고 용을 쓰냐. 너희들 밥그릇만 관심있고 국민 안전에는 관심이 없었던 거냐, 이렇게 물어야지. 둘째로 고분고분한 경찰을 원했던 ‘위’에다가 문제제기를 해야지. 그 ‘위’라는 것은 결국 경찰국을 만든 이상민 씨고 윤석열 대통령이지 한동훈 씨가 아니다. 실체적으론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논리 상으로는 그렇다는 거다.

한동훈에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여러분은 여전히 비이성적인 상태이고 아직도 조국 사태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만 주게 될 뿐이다… 라고 쓰지만, 근데 그게 핵심이지. 그런 상태니까 저 분들이 윤석열이라는 대마왕과 한동훈이라는 중간보스와 싸우는 용사들의 모습을 연출하는 거지. 지고 쓰러지고 절망하더라도… continue? 우리 편들의 환호 속에 1coin 추가로 오뚜기 같이 일어나 다시 한 번 도전하는…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총선으로…

내가 후니횽에 대해선 다른 할 말이 많은데, 오늘은 여까지만… 하도 답답해서…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이태원 참사, 한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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