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안내
  • 이상한 모자
  • 야채인간
  • 김민하 공화국
  • 신간 안내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Author: 이상한 모자

영농경력 11년

2021년 3월 15일 by 이상한 모자

문통의 영농경력 11년에 대해서는 토요일과 일요일 방송에서 짧게 다뤘는데, 토요일 방송에선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의 농지법 위반 의혹은 사저 부지 매입할 때 농업경영계획서 등을 거짓으로 적어 냈다는 것이다. 영농 경력 11년 등의 대목인데, 원래 문재인 대통령은 퇴임 후 살던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하지만 경호상 문제 때문에 새로 땅을 사서 사저 건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다. 그 집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 거라고 했다.

그러려면 거쳐야 할 법 문제는 똑같이 거쳐야 한다. 즉 이 문제는 투기냐 아니냐가 아니라 경자유전의 원칙이 그만큼 형식적으로만 남아있고 허술한 농지법이 그걸 뒷받침하고 있으며 대통령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보여준다.

이런 얘기도 했다.

농지거래와 개발 투기가 이미 우리 삶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된 것 자체가 현실을 바꾸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땅을 팔아 돈을 마련하고 싶은 농민 등 토지소유주, 이걸 투자 또는 투기의 수단으로 삼고 싶은 외지인과 금융, 주택이나 아파트를 지어야 하는 업자나 건설자본, 집값 문제 해결해야 하는 정부의 이해관계가 하나로 맞아 떨어지는 과정에서 사각지대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토지공개념 등도 얘기했는데 좀 더 적극적인 상상력을 펼쳐야 한다.

일요일 방송에서는 법률적 문제를 조금 더 자세히 다뤘다.

2009년부터 농사를 11년 지었다고 표현하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게 사실이다. 다만 법상의 기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농지법 제6조에 따르면 농지는 자기의 농업 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하게 돼있다. 영농경력은 농지취득자격증명 발급을 신청할 때 첨부하는 농업경영계획서에 적게 돼있다.

현행 법령에 영농경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이 정해져 있지는 않은데, 농업 경영에 ‘이용할 자’ 역시 농지 취득이 가능하므로 농지취득자격 유무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은 아니다. 따라서 영농경력에는 텃밭을 가꿨다든지 하는 이력을 포함시킬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실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양산 매곡동 자택에서 밭일을 했고 사진도 남아있다. 특히 매일 돌봐줘야 할 대상이 아닌, 일단 심어 놓고 1년에 한 번 수확하는 유실수 등 다년생 식물을 재배할 경우엔 영농경력 주장에 더 유리하다. 자기노동력으로 농업경영을 할 수 없는 경우 농작업 일부를 위탁할 수도 있다.

다만 이런 식으로 농지를 취득하고 개발행위를 한 후 파는 게 투기 아니냐란 지적이 있을 수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의 SNS는 그 대목에 대한 반론을 한 것이다. 형질변경은 지자체의 허가 대상인데 농업진흥지역이 아니라면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고 대개의 귀농 귀촌 절차가 이에 따라 이뤄진다.

오늘 아침 방송에선 이명박 사저 논란과는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려 했으나 진행자가 자기 철학을 얘기하느라 시간이 지나서 하지 못했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경자유전의 원칙, 농지법, 영농경력

뭐가 공정이냐

2021년 3월 12일 by 이상한 모자

이제 정치권에서 공정이라고 하면 그냥 청년층에서 반응이 안 좋다는 취지의 습관적인 표현인 것 같다. 대통령이 엘에이치 어쩌구를 공정의 문제라고 하기에 그게 왜 그런 건지 이리 저리 생각을 해보았으나 답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이런 글을 썼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069.html

같은 내용을 라디오 방송에서도 떠들었는데, 전달이 됐겠니? 이 글도 마찬가지야. 글에서 논하고자 하는 게 상대의 마음에 전달이 되겠어? 안 되겠지. 그러니 그냥 에스엔에스에다가 대통령 사저 부지도 내돈내산… 이렇게 쓰는 게 나은 거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LH, 공정

대구는 혁명의 도시였다

2021년 3월 11일 by 이상한 모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3110300105

이 얘기도 많이 하는 얘기다. 아래 한겨레도 정리한 일이 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78365.html

같은 내용을 다소 다른 관점으로 정리한 느낌도 있는데, 종합하면 대구의 보수화는 이익분배 정치와 반공탄압의 내면화가 김대중 반대로 외화된 것이 핵심이다. 즉, 이 맥락에서 박정희주의는 프로-박정희라기 보다는 안티-김대중이 핵심인 것이다.

풀어서 쓰면 이런 얘기다. ‘우리가 남이가’ 때문에 박정희와 보수정치를 지지하게 돼 김대중 반대에 이른 것이라기보다는, 김대중을 반대하고 ‘우리가 남이가’를 쟁취하려다 보니 박정희와 보수정치를 지지하게 된 것 아니냔 거다. 여기서 김대중 반대에 대한 맥락은 자기부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무시무시한 반공탄압을 견디지 못했고, 반공탄압을 내면화하게 됐으며, 그 결과로 ‘빨갱이 김대중’은 미워해야 할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폭력의 대물림이랑 비슷한 것 아닌가?

그런 차원에서 오늘날 보수정치의 토대는 어쨌든지간에 박정희다. 건국절 논란과 ‘국부 이승만’은 ‘반공’을 근본으로 한 논리로만 정당화되는 박정희주의를 포지티브한 방식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반대와 또 그에 대한 반대가 교차하는 정치는 근대의 탄생으로부터 임베디드 된 것이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김대중, 대구, 박정희
« 이전 1 … 385 386 387 … 470 다음 »

최근 글

  • 감사하면서 살자
  • 포퓰리즘에 대한 좋은 말씀
  • 2026년, 변비
  • 바이브 코딩
  • 이대남에 대한 이중잣대라는 이중잣대

분류

누적 카운터

  • 1,535,629 hits

블로그 구독

Flickr 사진

추가 사진

____________

  • 로그인
  • 입력 내용 피드
  • 댓글 피드
  • WordPress.org

Copyright © 2026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Omega Child (Weirdhat) WordPress Theme by ThemeH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