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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Author: 이상한 모자

순발력

2021년 3월 24일 by 이상한 모자

오늘은 낮에 무슨 방송을 하였는데, 여기서는 상대로 국민의힘에서 오신 분이 나온다. 그러니까 지금은 오세훈 캠프이다. 신문과 방송쟁이들의 박영선 후보 초청 토론회를 보면서 무슨 얘기를 해보자는 거였다. 마침 오세훈이 안철수를 이겼으므로 사전 토크에서 발언하였다.

오세훈의 승리 비결은 국민의힘에 붙은 비호감을 LH사태가 정권심판론을 키우면서 상쇄시킨 게 오세훈 경선 승리 컨벤션 효과를 배가했고 이게 다시 선순환이 된 덕이다… 안철수의 경쟁력은 국민의힘에 비호감 딱지가 붙어 있다는 것에서 출발하는데 이 전제가 해소됐으므로 조직과 배경이 확실한 오세훈으로 쏠린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 이를 공략할 박영선의 전략은 명약관화이다. 첫째, 비호감을 다시 되살리자… 비호감의 핵심인 과거 정권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오세훈=이명박 프레임을 만들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 이걸 검증 전략으로 포장하고 정치 냉소를 유발, 정권심판으로 기울어진 중도층의 투표 유인을 날려 버린다. 셋째, 장점인 조직을 최대 가동해 빈 공간을 메꾼다. 여기에 대응하는 오세훈의 전략은 현재를 강조하는 것일 게다. 지금 이 정권에서 얼마나 살기 어렵냐? 정권심판 해야 한다. 과거와 현재의 대결. 그럼 미래가 남는데, 오세훈 쪽의 미래 전략은 심플하다. 정권교체를 위해 구태세력은 빼고 나머지가 다 모이는 선거이다, 이걸 보여주면 된다. 안철수가 꼭 필요하다. 2012년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안철수도 응할 것이다. 박영선 쪽의 미래 전략은 좀 어렵다. 중소기업벤처부 장관 이력을 살려 21분 컴팩트 도시? 수직정원? KS뭐시기코인? 더 크게 가야한다. 문재인 2.0의 예고편 같은 거? 여기서 2.0이란 하던 걸 더 세게 하라는 게 아니지. 버그는 고치고. 계승할 것은 계승하고. 근데 이게 잘 안 되겠지…

여튼 이런 뭐 말같잖은 얘기 하고 토론회 시청으로 넘어갔다.

보니까 가끔 같이 방송하던 논설우원님이 의외로? 날카로운 질문을 했다. 그리고 아마도 과거에 치킨 얘기 같은 것으로 남의 인터넷 신문에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 PD님… 작년에 무슨 인터뷰 편집 논란도 있고 했는데 여튼 이 분은 좀 남의 다리 긁는 얘기를… 동아일보 기자는 왜 왔는지 모르겠고…

여튼 그걸 보고 나서 진행자의 질문에 적당한 답을 스케치북에 적어 내고 뭔가를 떠드는 거였다. 점수를 줘라 하기에 70점 줬다. 숫자가 중요하냐? 뒤에 좋은 얘기 안 나올 거 같아서 좋은 얘기를 여기서 많이 해줬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얘기를 쓰라기에 이명박 썼다. 박영선은 자기가 잘한 걸 얘기할 때도 BBK 이명박… 오세훈 공격할 때도 이명박이 연상된다 이명박… 도쿄아파트 방어할 때도 BBK 이명박… 가장 아쉬운 얘기 쓰라기에 박원순 썼다. 집토끼 전략? 이 주제만큼은 아니잖아! 임종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했더니 잘 모릅니다… 뭐냐…

그 다음이 하이라이트. 박영선의 당선 가능성을 쓰라는 거였다. 잘 봐라, 상대는 오세훈 캠프에서 왔다. 그러니 당선이 안 된다고 할 거다. 그런데 패널이 둘이 나오는데 둘 다 박영선은 끝났다 이러면 되겠어? 프로정신을 발휘해 내가 총대를 메야지. 그래서 그랬다. 60%이다… 무난한 숫자 70에서 10%를 비관적으로 봤다… 앞의 전략 등을 구사해 결과가 좋으면 박빙선거. 조직력은 여당이 우위이니 승산이 제로인 것은 아니다… 란 틀에 박힌 해설.

이게 관건은 오세훈 캠프에서 오신 분이 숫자를 뭘 적어 내냐는 건데… 관계자인데 0% 써내는 거 너무 야박하게 보일 수 있어 어렵다. 10? 20? 50? 뭘 써내도 자연스럽지 않다. 이거 어렵다. 과연 저 분이 어떻게 할까… 뭘 써낼까… 결국 나온 답을 보고 무릎을 쳤다.

21%……

그 분이 그랬다. 제가 21분 컴팩트 도시 홍보 좀 해드렸습니다. 기념할만한 순발력이라고 생각했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박영선, 오세훈

내셔널리즘 동원 전략

2021년 3월 23일 by 이상한 모자

중궈니횽 같은 사람들은 옛날 버릇대로 이 정권이 뭘 하면 다 주사파적 세계관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아닌 것도 있고… 그래 보이지만 아닌 게 많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가령 문통이 김원봉 얘기 하면서 술 한 잔 올리고 싶다 이러는 거는 주사파적 세계관과 관계가 없다. 그 세계관이라면 김원봉은 숙청을 해야겠지…

이건 안티 박정희적인 민족주의 세계관일 뿐이다. 한일회담-일본군-독재의 대립항으로서 친일청산-광복군-민주주의의 조합을 내세우는… 1960년대 이후 장준하 계열의 특징이다. 이 정권이 대북 문제의 성과에 집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문통의 후보 시절 행보나 임기 초 행동을 봐도 나타나는데, 이 흐름은 기본적으로 반일과 자신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한도 내에서의 북한을 용인한다는 태도를 깔고 간다. 실제로는 대북 성과를 내는 게 정무적으로 이익이라는 점을 겨냥하고 있고, 민족주의적 서사에서 대북 온건론이 용인된다는 점을 알리바이로 활용하는 것이다. 개성공단은 왜 재개가 안 됐는가? 결국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이런 것 말고 권력의 의도된 내셔널리즘 동원 전략이라는 것도 있다. 권력에 별달리 호소할만한 조직기반이 없거나 이게 훼손된 상태일 때 이런 게 등장한다. 가령 양제츠가 블링컨 거의 멱살잡고 자기 동네 가서 영웅된 것 봐라. 중국의 내셔널리즘 부상은 덩샤오핑 이후 공산당 지배의 근거가 훼손된 것으로부터 기인한 현상이다. 공산당이 부정부패와 반민주로 타겟팅 되면서 새로운 대중동원전략이 필요해진 것이었다. 이게 시진핑대에 와서 완전히 무르익었는데, 꼬리가 개를 흔드는 형상이다. 즉, 공산당이 내셔널리즘 동원전략을 통해 지지기반 유실을 막고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셔널리즘의 동원전략이 시진핑 독재 강화를 정당화하게 된 것이다. 이게 지금 우리가 보는 광경의 실체이다.

일본 정치의 극우화 역시 아베 신조의 가문이 아니라 자민당이 조직 기반을 스스로 파괴하는 ‘개혁’이 수반한 변화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관저 주도의 정치는 아베 신조 대에 이르기까지 민주당까지 포괄, 정파 불문의 개혁 과제 중 하나였다. 파벌정치가 나눠먹기와 ‘삼각동맹’의 원흉으로 지목 되었기 때문에 그 반대를 택한 결과이다. 메이지 유신에서 ‘막부가 아니니까 천황’으로 간 것과 비슷한 거다. 자민당이 휘청하면서 비자민연립정권과 그 여파로서의 지샤사 연정이 성립됐고, 정권을 잃기 직전의 고노 담화라든지 지샤사 연정의 무라야마 담화라든지 이런 게 중도화 의제로 제시됐던 거다.

그러나 실제 대중이 호응한 것은 교과서 문제로 대표되는 백래쉬였고 자민당이 ‘삼각동맹’ 즉 자기 지지기반을 파괴하는 대신 기댄 것도 극우주의였다. 우정민영화와 극우화를 동시에 추진한 고이즈미 정권은 이러한 현상을 여실히 드러냈다(이 시기 동아시아라는 공간 내에서 일본 외교가 장쩌민의 내셔널리즘에 대응하였다는 특성 또한 있다). 또한 고이즈미가 구현한 극우주의는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분열할 시장주의와 국가주의를 봉합하는 아교로 기능했다. 해외 자본에 국가 사업을 넘겨줄 수 있다는 국수주의자들의 우려를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잡아 맨 것이다. 대중적 백래쉬의 배경은 고이즈미의 방북 전후 납북자 문제가 쟁점화 됐다는 것도 작용했다. 이제 일본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서 뭔가를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국가로 거듭난 것이다.

이 정권에선 조장관님이 죽창가 올리고 김현종 씨가 다카스키 신사쿠 언급하고 유니클로 불매하고 이런 게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극우주의, 내셔널리즘

미나리

2021년 3월 16일 by 이상한 모자

뭐 중요한가 싶지만, 스포일러가 있겠지요.

미국에서 뭔가 상을 받았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사전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미나리란 영화를 보았다. 내가 영화에 대해서 뭘 알겠냐? 지금도 따로 찾아본 게 하나도 없다. 감독이 무슨 생각으로 만든 영화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장담할 수 있다. 미국인들 사이에 이 영화는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에 대한 반성이란 맥락에서 소비되고 있을 것이다. 마치 유럽인들이 과거에 2차대전이 왜 일어난 거냐며 혼란에 빠졌던 것과 같다. 이런 분위기가 최소 향후 몇 년은 더 갈 것이다.

영화를 보고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어떤 고립감이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캘리포니아에 가서 노동을 하면 병원비도 대고 빚도 갚고 하여간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얘기한다. 그럼에도 굳이 ‘가든’으로 낭만화 된 농사를 짓겠다는 것은 어떤 소외로부터의 탈출이다. 그건 대도시의 한국인 커뮤니티에 대한 불신이기도 하고, 어둡고 캄캄한데다 쓸모없는 존재는 태워 죽이는 노동환경에 대한 환멸이기도 하다. 능력이 없어서 도태된 게 아니다. 기성 체제에 적응을 못해서 ‘자의’로 떠난 것이다.

이유가 어떻든 갑자기 낯선 환경에 놓이게 됐으니 뭐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수맥을 찾는 사람과 농사를 도와주는 사람은 모두 전형적인 백인 하층민의 외양을 하고 있어 위협적이다. 한국전쟁 참전 경험을 말하면서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데 성공하기도 하지만 십자가를 지고 걷는 기행과 엑소시즘에 대한 집착은 묘한 불안감을 불러 일으킨다(속죄와 퇴마의식은 저 사람이 분명 죄를 많이 지었을 것이란 확신을 갖게 한다). 주인공은 그들과 자신을 구분해 스스로를 합리적 존재로 규정하고 합리적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시도는 모두 실패한다. 더불어 주목할 것은 기성의 ‘사회’라는 게 주인공들의 자립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 영화에는 ‘사회’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들이 기성의 사회 대신에 결국 의존하게 되는 것은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소외된 상태인 백인 하층민들의 비합리성과 이들 커뮤니티의 중심인 복음주의 교회 정도이다(기성의 한국인 교회는 여기에 설 자리가 없다!).

베이비시터 대신 불러 온 외할머니는 문제를 자력으로 해결하기 위한 내키지 않는 시도였고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게 결국 파국의 불씨가 되었다. 그러나 외할머니의 존재가 없었더라도 일이 잘 됐을까는 의문이다. 오히려 주목하게 되는 것은 외할머니가 심은 미나리의 존재다. 누가 돌봐주지 않아도 알아서 자생하는 성격 탓에 그 난리통을 겪은 뒤에도 희망(?)으로 남을 수 있었다. 사람의 삶이라는 게 소외되고 배제되고 이상해지고, 그러면서도… 그러든지 말든지 하여간 꿋꿋하게 살아가는, 살게 되는, 미나리 같은 거다. 가치판단의 문제를 다 떠나서 어떻게 보면 결국은 미나리들이 트럼프를 찍은 것이다. 말 장난 같지만 그게 오히려 길게 보면 희망일 수도 있다. 별 근거는 없지만, 어쨌든 미나리는 원더풀이기 때문이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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