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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원작성자 : 장석준 
번역자 :  
게재 :  
1. 제 2인터내셔널 정당들의 기초조직 

- 제 2인터내셔널기 사회민주당들의 기초조직은 흔히 branch라 불렸으며, 지금도 많은 나라 진보정당의 기초조직은 이렇게 불린다. 이는 ‘나무 가지’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우리는 보통 ‘지부(支部)’ 혹은 ‘지회(支會)’라고 번역한다. 민주노동당의 용어법과 대응시켜 본다면, ‘지부’보다는 ‘지회’라고 하는 게 맞겠다. 왜냐하면, 사회민주당들의 branch는 선거구보다도 더 적은 도시의 가(街), 농촌의 읍(邑) 단위로까지 세분화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이를 지회라 부르겠다.)

- 지회는 사회민주당들에 의해서 창안된 것이다. 독일 사회민주당이 최초의 좌파 대중정당으로 등장하기 전까지 부르주아 정당들의 기초조직은 선거위원회였다. 이는 선거 시기에만 활동하며 주로 지방의 명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현재의 보수정당들의 지방조직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에 반해 사회민주당들의 지회는 선거 이외의 일상 시기에도 당원 교육 및 지역 활동을 벌였다. 이는 지배계급의 다양한 사회 조직에 대항하여 노동자․농민계급의 독자적인 사회 생활을 조직하는 기구로 활동했다. 선거 시기 이외에도 의회 바깥의 공간에서 일상 활동을 벌이는 근대적 대중정당은 이 지회 조직을 갖춘 사회민주당들에 의해 (더 정확하게는 최초의 사회민주당인 독일 사회민주당에 의해)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 지회는 지역 단위를 기본으로 조직됐으며, 선거구와 밀접한 대응관계를 가지되, 부르주아 정당의 선거위원회와는 달리 굳이 선거구와 일치할 필요는 없었다. 영국 노동당의 경우 한 선거구에 2~3개의 보다 세분화된 지회가 존재하고 이것이 모여 (선거구와 일치하는) 지구당을 이룬다. 한때 독일 사회민주당과 오스트리아 사회당은 아파트와 동 단위로까지 지회를 조직하기도 했었다(이 경우는 민주노동당의 ‘지회’ 개념보다는 ‘지역 분회’ 개념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 지회는 보통 백 명이 넘는 인원으로 구성되며, 지회 모임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열리지만 모든 구성원이 다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 독일 사회민주당처럼 당이 먼저 생기고 노동조합운동이 발전했든, 영국 노동당처럼 노동조합운동에 의해 당이 건설됐든 상관없이, 대개의 사회민주당 지회는 다 노동조합, 협동조합, 민중교회, 노동자학교 등의 다른 노동자 조직들과 중첩되었다. 아니 더 나아가, 각 지회가 애당초 이러한 조직들의 연합체로 출발하기도 했다. 지방적 수준에서 당과 이들 조직 사이의 경계가 분명해진 것은 상당한 발전 과정을 거친 뒤였다. 이러한 조직들은 하나의 건물에 함께 입주해서 이 건물을 지역 노동계급의 경제적․정치적․문화적 센터로 만들기도 했다.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민중의 집’이나 이탈리아 사회당의 ‘노동회관’이 대표적인 예이다. 진보정당운동이 민중들 사이에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이러한 공간 조건의 효과는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초기 사회민주당들의 지역 조직자는 대개 노동계급 출신의 술집 주인들이었다.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모이는 이러한 술집이 초기 당 조직화의 거점이 됐을 뿐더러 더 나아가서는 자연스러운 정치적 교육 장소가 됐다.)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사례:

* “사민당 조직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는 노동위원회다. 노동위원회는 읍단위 노동운동의 중추로서 거기에는 그 지역 사민당의 모든 가입단체들, 즉 노조지회, 여성위원회, 기독교사회주의 단체, 청년분회, 그리고 작업장분회 등이 모여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 중 하나 이상의 가입단체의 회원이 됨으로써 사민당에 가입하게 된다. 노동위원회는 유권자들의 정치교육과 선거운동의 거의 전부를 담당한다.”

* “스웨덴에서 사민당과 노조 사이의 조직적 관계는 노조의 지방분회가 사민당 지역당에 가입함으로써 이뤄진다. 이 제도는 아직까지 남아 있다. 이 때, 노조원은 특별히 본인이 선택하지 않는다면 자동적으로 사민당원으로 된다. 일단 사민당원이 되면 이들은 자신이 속한 노조의 정책이 아니라 개인의 자격으로 투표한다.”

* “당의 정책 과정은 평당원의 참여를 최대한 허용하는 구조이다. 특히 스웨덴 사민당에는 ‘회람’이란 독특한 제도가 있는데, 모든 중요한 정책논의는 최하위 지역당에서 시작되거나 혹은 충분한 자료와 더불어 그곳으로 회부되어 특별위원회를 통해 검토되는 것이 상례이다. 따라서 모든 중요한 정책사안들은 최고정책기관인 중앙당대회에서 반전될 가능성은 거의 없을 정도로 오랜 논의와 충분한 합의절차를 거친 것들이다. 평당원의 정책과정에 대한 깊은 참여는 당원의 교육과 훈련을 위해 더없이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이상, 고세훈, 「서구 복지체계의 변화와 정당-노조관계」, 최장집 편, <유럽민주주의와 노동정치>, 법문사)

* “지방에서 노동자 코뮨(노동위원회는 대개 스웨덴의 최하위 지역단위인 ‘코뮨’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노동자 코뮨’이라고 불렸다)이 단순히 정치적 활동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이 조직들은 노동조합운동을 지도하며 각종 문화적 행사를 주도하였다. 노동자 코뮨은 ‘민중의 집’을 설립하였으며, 이 안에 영화관, 도서관 등을 설치하였고, 문학강좌도 개설하였다. 민중의 집 수는 1890년에 2개, 1900년에 22개, 1905년에 53개 그리고 1910년에는 112개로 각각 증가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노동자들, 특히 노동조합원들이 민중의 집이라는 문화적 공간의 활용을 통하여 사민당에 대한 정체감을 확고히 하였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겠다. 요컨대, 민중의 집은 노동자들에게 일종의 공공영역으로 기능하였다.” (안재홍, 「스웨덴 노동계급의 형성과 노동운동의 선택」, 안병직 외, <유럽의 산업화와 노동계급>, 까치)    

영국 노동당의 하부 당구조:

- 영국 노동당의 지구당은 당의 지역 지회들과 노동조합 지회, 사회주의 단체들, 협동조합, 노동당 지지 직능단체들, 여성 분회(section), 청년사회주의자 지회(당 청년단체) 등의 연합으로 이뤄진다. 각 지역 지회는 자체의 지회 서기를 두고 일상 활동을 벌이는데, 대개 노조와 지역의 활동가들로 구성된다. 노동당 당원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조합원들은 노동조합 지회에 소속되는데, 노동당의 전통 속에서 이들 노동조합 지회는 일상 활동을 벌이는 현장 조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노동조합 간부들이 지구당의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상층 위원회의 역할만을 했다. 이것이 기층 노동자들의 유기적인 당 참여에 대한 지속적인 장애물로 작용해왔다. 

- 사회민주당들이 의회에 진출하고 원내 주요 정당이 되면서 반대로 기초조직은 부차화되거나 퇴보한 게 사실이다. 많은 점에서 부르주아 정당의 선거위원회와 다름없는 선거운동 조직으로만 남게 된 것이다. 이는 영국 노동당 같은 경우 특히 심했다. 반대로, 중요한 사안을 놓고 당내 반대파가 보다 변혁적인 노선을 내걸고 활동을 시작할수록, 그리고 당이 다시금 대중투쟁과 중첩될수록, 기초조직은 다시 생명력을 보였다. 가령, 영국 노동당에서는 1950년대에 당내 좌파가 지구당을 중심으로 활동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다시 당 풀뿌리 조직의 중요성이 대두됐다.  

2. 제 3인터내서널 정당들의 기초조직

- 러시아혁명을 성공시킨 볼셰비키당은 진보정당의 기초조직 형태에도 커다란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cell, 즉 ‘세포’조직의 등장이었다. 이 세포조직은 크게 네 가지 점에서 전통적인 지회조직과 달랐다.

① 이는 합법 상황보다는 비합법 상황에 맞는 고도의 규율을 갖춘 지하활동 조직 형태였다. 이는 볼셰비키당의 역사적 조건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이후 이 조직 형태를 받아들인 각 나라의 공산당들은 반파시즘 투쟁 과정에서 확실히 사회민주당들보다 더 효과적인 활동을 벌일 수 있었다.

② 선거구를 고려한 지역 단위 조직이 아니라 공장이나 사업장을 기반으로 한 현장 조직이 기본이었다. 물론 서비스직 노동자들이나 비노동계급 당원들을 위한 지역세포도 있었지만, 기본은 역시 직장세포(제 3인터내셔널은 이를 ‘경영세포’라 불렀다)였다. 직장세포는 지역의 선거 활동에도 참여하긴 하지만, 주되게는 현장에서의 선전․선동, 조직화, 투쟁 지도에 집중한다.

③ 지회보다도 훨씬 더 일상 활동에 대한 당의 요구가 강했다. 그래서, 세포 서기의 역할도 막중했고, 세포에 속한 당원들 역시 지회보다 더 빈번하고 결속력 있는 회의를 가지며 그때 그때마다 임무를 부여받고 이를 수행한다. 세포는 기본적으로 세포의 구성원들이 각자 한 명의 혁명가로 성장할 것을 요구한다.

④ 따라서 세포는 지회처럼 백 명을 넘나드는 규모로 존재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당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개 20~30명이 적정한 구성이라고 여겨졌고, 3명만 있어도 하나의 세포가 구성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 러시아혁명 이후 서유럽을 강타한 혁명적 투쟁의 물결 속에서 노동 현장에 기반한 당 조직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됐다. 1919~20년에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벌인 공장점거투쟁에서 사회당의 지역 조직들은 투쟁에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안토니오 그람시 같은 사회당의 젊은 지도자들이 제 3인터내셔널의 조직 노선에 공감하게 된 것은 이때부터이다. 직장세포 조직은 공장으로부터 비롯될 새로운 노동자 국가의 기초로 여겨졌고, 노동자들은 이 세포를 통해 새로운 국가의 주인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됐다.

- 서유럽에서 혁명의 파고가 잦아들자마자 파시즘의 공격이 시작되면서 이 세포조직은 위력을 발휘했다. 이탈리아 공산당은 레지스탕스 투쟁 과정에서 강력한 조직력을 기반으로 당원 만 명이 조금 넘는 조직에서 전후 이탈리아 최대의 대중정당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독일 공산당은 30만명이 넘는 거대한 조직력에도 불구하고 나치에게 패배했다. 독일 공산당은 제 3인터내셔널의 교과서에 가장 부합되게 당 조직을 운영했으며, 그래서 합법 상태에서도 세포들을 지하조직 비슷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나치와의 공개적인 투쟁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렇게 경직되게 당을 운영한 것이 오히려 패배의 원인이 됐던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일체의 진보정당이 비합법화된 파쇼하의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사회민주당이 불가피하게 공산당의 세포 조직 비슷한 형태로 재편되어야 했다. 이런 지하조직이 전후 합법 사회민주당의 재건에서 토대 역할을 했다. 

- 전후 재합법화된 상황에서 서유럽 공산당들은 조직상의 결단을 요구받았다. 레지스탕스 투쟁 과정에서 세포들이 공장이 아닌 가두를 중심으로 활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노동자들 자신이 직장별 조직보다는 거주지별 조직에 애착을 가지기 시작했다. 또한 공산당으로서도 선거에서의 성과가 중요해지면서 지역별 기초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노동조합의 다수파가 공산당으로 넘어오면서 굳이 직장세포를 통하지 않고도 노동조합과의 협의를 통해서 노동운동에 대한 지도가 가능하게 된 것도 또 다른 중요한 변화 지점이었다. 제 3인터내셔널 출신의 진보정당들이 유럽공산주의라는 자신들의 독특한 변혁노선을 추구하게 되면서 이와 함께 필연적으로 당 기초조직의 재편이 이뤄지게 된다. 

3. 유럽공산주의 정당들의 기초조직  

전후 이탈리아 공산당(PCI)의 경우:

* “PCI는 레닌주의적 의미에서 전위당이 아니다. PCI가 전위당에서 대중정당으로 전환한 것은 톨리아티가 전후 소련에서 돌아와 ‘사회주의로의 이탈리아적 길’을 천명했을 때이다. 레닌주의적 전위당의 고전적인 무기는 당의 세포조직이다. PCI는 전후 즉시 당의 세포조직을 강화시키고 그 조직원을 확대하고자 시도했다. 그러나 당의 세포조직은 감소했다. 이제 세포조직은 거의 그 기능을 상실해갔다. 이와 동시에 지회(section, 사회민주당의 전통적인 branch와 거의 다르지 않은 것. 그래서 앞으로 계속 지회라고 번역하겠다. - 인용자)조직은 증가하기 시작했다. 1951년에 지회조직은 10,200개에서 1961년에 11,000개로 증가했다. 1976년말경 전국의 약 170만 당원은 11,875개의 지회조직을 통해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PCI의 지회조직은 세포조직보다 더 크고 더 다루기 힘든 지역 단위에 기초해 있는 조직이다. 사실상 혁명적이고 저항적인 활동에서 의회활동과 선거활동으로 강조점이 옮겨지자 세포조직보다는 지회조직이 PCI의 기본적인 활동 단위가 되었다. 공산당 조직담당 서기인 세키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 당은 새롭게 달라졌다. 다른 사회계급이 조직화되었으며 정부와 지방행정에서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았다. 즉 지회조직의 기능은 과거보다 더욱 중요해졌다.” 지회조직은 100명에서 150명 정도로 구성되었으며, 전투적인 핵심조직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정치클럽이다. 대부분의 소읍에는 세포조직이 없으며 하나의 지회조직이 그 지역의 모든 당원을 포함하고 있다. 지회조직을 통하여 활동하는 당원들의 임무에는 PCI의 선전활동에서부터 공산주의자 축제, 피케팅, 반파쇼위원 조직 등 광범한 임무가 포함된다.” (이상, 이혁, 「이탈리아 공산당 연구」, 한국사회연구소 엮음, <대중정당>, 백산서당.)

* “세포조직의 지회조직 형태로의 지속적인 이동의 결과는 첫째, PCI 당원의 자질저하뿐만 아니라 PCI 당의 활동성 위축이다. 다계급적 지역조직으로서의 지회조직은 대중조직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이것은 특히 70년대 특별 지회의 수립과 더불어 더욱 그러했다. 특별 지회는 시 차원의 지역조직으로서 주어진 구획에서 다계층적인 피고용자 모두를 모으는 조직이었는데, 하나의 지역적 대중 자치조직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런 상태에선 당의 활동도 계급적 관점의 구체화가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대중의 긴급한 이해와 요구에 대한 계급적 해석, 상황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적 관점 하에서 능동적 대처를 요구하는 당 활동가의 자질은 지회조직에서는 필요가 없었다. 둘째, 당의 활동성의 마비와 더불어 지회조직은 거대 공장이나 도시 지역에서 PCI가 보다 견고한 침투 능력을 가지는 데 무능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당의 활동성의 상실과 당의 침투 능력 부족은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당원 수의 지속적 하향세를 보여주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왜냐하면 소수 활동가에게 지나친 당업무의 과부하가 돌아오고 이는 다시 활동가나 여타 당원의 탈당뿐만 아니라 새로운 활동적 당원의 충원에까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당원 충원의 어려움은 PCI 당원의 고령화와 당 활동성의 저하뿐만 아니라 당의 자금난까지 유발시킨다.” (권형기, 「레닌적 당조직론」, <현실과 과학> 제 10호.)

* PCI의 지회조직은 대개 100명 안팎의 당원으로 구성되며 이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총회를 가졌다. 그러나 이는 레지스탕스 투쟁의 여진이 남아 있던 1950년대까지는 여력을 갖고 있었으나, TV 등의 대중 매체의 확산이 이뤄지는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지나치게 비대하고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지회 총회에는 극소수의 당원만이 참석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지회 조직의 공동화에 따라 시․도당의 상근 활동가들이 당 운영의 전권을 떠맡기에 이르렀다. 당원 100만명의 대중정당이 불과 몇백명의 주요 활동가들에 의해 움직여지는 기현상이 나타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것이 PCI의 유명한 doppiezza(‘괴리’라는 뜻) 현상이다. 반대로 1960년대말 등장한 혁명적 신좌파들은 공산당 초기의 공장세포와 같은 조직들을 만들어 당시 막 다시 불붙은 파업 물결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PCI에 실망한 많은 젊은 세대들을 활동가로 조직했다.

* PCI의 지회조직이 생명력을 상실해간 과정에 대해서는 당조직과 지방자치체 사이의 지나치게 밀접한 결합을 원인으로 지적하는 입장도 있다. PCI는 이탈리아 부르주아 국가를 포위하는 수단으로 지방자치체 진출을 강조했는데, 이 과정에서 당의 풀뿌리 조직이 당이 장악한 지방자치 행정조직과 지나치게 중첩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대부분의 지역 활동가들이 읍장이나 시의원들이었다. 이는 PCI의 저력의 근원이었지만, 또한 당이 기존 체제를 넘어서는 활동을 수행하는 데 장애물로 등장하기도 했다. 

전후 프랑스 공산당(PCF)의 경우:

* “프랑스 공산당의 당대회들, 특히 1950년의 당대회에서 공산당 지도자들은 직장세포의 근본적 성격에 진저리날 정도로 되풀이하였다. 모리스 토레즈는 이에 대해 “그것은 우리 당의 근본이념에 관련되는 최고의 중요성을 가진 정치 문제”라고 말했다. 르쾨르는 조직에 관한 그의 보고서에서, 직장세포들에 대한 최근의 불만은 그것이 노동분쟁에 너무 지나치게 관여하고 정치 문제들을 경시함으로써 그릇된 방향을 걸어왔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고 하였다.” 

* 하여간 1945년의 프랑스 공산당에서는 전전과 비교하여 직장세포가 수적으로 현저히 감축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현상은 노동계급보다 중산 및 농민계급들의 비율이 더 큰 당원증가에서 오는 사회구조상의 변화로서, 부분적으로는 설명된다. 그러나 이것만이 유일한 요인은 아닌 것으로, 1944년에는 노동계급 당원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1937년보다 직장세포의 수는 감소된 데 대하여, 노동계급 당원 수의 비율은 증가한 것 같다. 1950년 당대회에 르쾨르가 제출한 보고서는 전체적 도표를 만들지는 않고 있지만, 몇 가지 그에 대한 전형적인 예를 인용하고, 다음과 같이 부언하였다. 즉, “고립적인 사건이란 없으며, 실례들이 일반적 경향을 밝혀 주고 있다”고. 그러므로 정당의 근본적인 요소로서 직장세포를 지속하는 데는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하고 있는 것 같으며, 당 지도자들은 그 제도가 지회 제도보다 일층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한 곤란을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이상, M. 듀베르제,  <정당론> - 上, 문명사.)

* 이렇듯, 전후 PCF는 PCI와 동일한 현실 변화에도 불구하고 직장세포를 당 기초조직의 중요한 구성 부분으로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1979년까지 당이 여전히 작업장, 거주지 등에 기반한 28,000개의 세포 조직을 유지하고 있었던 데서 드러난다. 이 세포가 모여 지회(section)를 구성하게 돼 있었으며, 1979년 현재 이는 3,000개였다. 다시 이 지회는 98개의 광역지부(federation)에 속한다.

* 그러나, PCF의 세포 조직이 PCI에 비해 이 당의 생명력을 고양시켰던 것은 아니었다고 평가된다. 그 이유는 세포에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의사결정의 ‘권한’보다는 당 중앙에 의해 결정된 임무의 수행이라는 ‘책임’만이 부과되던 스탈린주의 시기의 전통이 PCF에 깊이 뿌리박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PCF의 직장 및 거주지 세포는 기층 노동자들의 의견이 당 중앙으로 표출되는 기반이 되기보다는 당 중앙의 결정이 수동적으로 전달되는 통로(소위 전달벨트) 역할만을 했다고 비판받는다. 

4. 현대 진보정당들의 기초조직

-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 공산당의 경우:

잔존한 공산주의 계열 진보정당 중 현재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정당 중 대표적인 것이 남아공 공산당이다. 남아공 공산당은 아파르트하이트 체제가 협상에 의해 종식되면서 합법화됐다. 합법화와 함께 이 당은 당의 기초조직을 세포에서 지회(branch)로 재구성했다. 이는 이탈리아 공산당의 전환과 비슷한 것이다. 남아공 공산당의 기초조직이 어떠한 역사적 발전을 보여줄지는 두고볼 일이다. 

독일 녹색당의 경우:

* 녹색당의 기본 단위는 지방모임이다. 이들 모임은 2주에 한 번에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총회를 가지며 당원을 통제한다. 이들의 상위에 시․군․구 단위 조직들이 있다. 이들 조직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총회를 가지며 여기에는 해당 지역의 모든 당원들이 참여할 수 있다. 

* 녹색당만의 특성 - 기초단위의 결정 과정에 비당원 운동집단의 참여를 허용: “녹색당의 일부 지방 지부들은, 시민운동단체의 대표들과 같은 비당원들이 녹색당의 결정 사항들에 대해 표결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광범위한 토대를 지닌 녹색운동을 형성하려는 녹색당의 바람과 일치하는 것으로서, 그것의 최상의 형태가 바로 정당이다. 그들은 선거정치에 참여하기를 원치 않는 운동가들을 포함한 전체 민중들의 욕구와 관심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개개의 당원들과 비당원들은 자신들의 제안이나 요구사항들을 녹색당의 상근 활동가들이나 모든 수준의 당위원회에 직접 개진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방지부들에 있어서 비당원들은 비록 토론에 참여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할지라도 투표하지는 못하도록 되어 있다.” (「서독 녹색당의 구조와 운영」, C. 스프레트낙 외, <녹색정치>, 정신세계사.)

브라질 노동자당의 경우:

* 노동자당에서는 30명 정도의 당원이 의무적으로 가입․참여하게 되어 있는 누클레우(nucleos, ‘중핵’이란 뜻)가 당의 기초조직을 이루며, 이는 세포와 마찬가지로 공장별로, 거주지별로, 활동가의 특성별로 조직될 수 있다.

* 어떻게 보면, 누클레우는 세계진보정당운동사의 기초조직 역사에서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세계사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① 누클레우는 사회민주당의 지회, 공산당의 세포 등 세계진보정당운동사의 기초조직 발전과정을 하나로 총화하고 있다. 노동계급의 대중 공간에서 최대한 공개적으로 활동하며 선거에 적극적으로 결합한다는 사회민주당의 지회의 전통이 살아있는가 하면, 공장별 조직화를 중요시하며 지회보다는 더 긴밀한 결합력과 가일층의 활동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세포의 전통도 이어받고 있다. 이것이 완전한 변증법적 합에 도달했는가는 평가하기 힘들지만, 어쨌든 중요한 실험임에는 틀림없다.

② 누클레우가 제 3인터내셔널의 세포조직과 굳이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은 누클레우가 임무 수행이라는 측면뿐만 아니라 의사결정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사실 레닌의 민주집중제 공식에 따르면 벌써부터 이러한 약속은 이행되었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스탈린주의 시기 이후 대개의 공산당에서 현실은 결코 그렇지 못했다. 누클레우는 공직 후보 선출, 주요 정책 결정에서 주도권을 발휘한다. 물론 다른 진보정당에서도 당원 총회에서 공직 후보를 선출한다는 점에서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당에서는 이러한 총회를 통한 선출 이전에 누클레우를 통해 후보나 정책에 대한 치열한 논의 과정이 이뤄진다는 점에 특성이 있다. 이에는 해방신학을 기반으로 한 기초공동체 운동의 전통이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③ 누클레우의 또 다른 의의는 대개의 사회민주당이나 공산당들에서 기초조직의 의미가 약화되고 그 생명력이 상실돼가던 1980년대라는 세계사적 상황 속에서 제 3세계의 새로운 노동운동에 기반하여 그와 반대되는 흐름이 등장했다는 사실에 있다.   

- 민주노동당의 분회 조직의 위상은?: 민주노동당의 ‘분회’ 조직은 여러모로 브라질 노동자당의 누클레우와 비슷한 데가 있다. 무엇보다도 사회민주당의 지회조직과 공산당의 세포조직이라는 지난 역사가 분회라는 하나의 조직 형태 안에 공존하고 긴장하며 종합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이것이 일종의 세계사적 도전이라는 것은 결코 과장이나 허풍이 아니다.

댓글 '2'

김강

2012.08.16 20:04:34

독일 좌파당 기초조직은 시군구당 아래에 Basis Organisation이라는 기초조직을 둡니다. 이 조직은 주거지별로 조직되거나 특정 운동 테마별로 구성되고, 시군구당 회칙마다 다르긴 하지만 보통 10명 이상 조직되면 공식적으로 인정되어서 시군구당 지도부에 대표를 보낼 수 있는 식. 그밖에 연방주당과 중앙당에는 각각 여러 위원회들 및 테마별로 연방주및 중앙당 차원의 각종 활동 그룹들이 있습니다.

게슴츠레

2012.10.29 20:50:29

잘 읽었습니다. 이해를 뒷받침해줄 경험이 없어서 사례별 기초 조직의 차이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머리에 들어오지 않지만 몇 개 단어를 익힐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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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노동운동 노동운동의 지역전략 논의를 위하여 file 김현우  이상한모자 2012-08-24 4587
19 노동운동 노조운동과 계급성 김연홍  이상한모자 2012-08-24 4617
18 진보정당 전체운동에서 지역이 가지는 실천적 의미 김형탁  이상한모자 2012-08-24 5764
17 노동운동 산별노조 건설의 역사와 쟁점 박준형  이상한모자 2012-08-16 4870
16 진보정당 80년대 영국의 지방자치사회주의 실험 장석준  이상한모자 2012-08-16 4665
15 진보정당 사회민주주의의 왼쪽? - 유럽 급진좌파정당의 현황 장석준  이상한모자 2012-08-16 4492
14 진보정당 영국노동당 지구당 운영사례 김현춘  이상한모자 2012-08-16 4215
13 진보정당 영국노동당 조직구조 해설 강원택  이상한모자 2012-08-16 5370
» 진보정당 외국 진보정당의 기초조직 사례 [2] 장석준  이상한모자 2012-08-16 5232
11 진보정당 남부문제의 몇가지 측면 안토니오 그람시  이상한모자 2012-08-13 5478
10 진보정당 러시아 혁명사 (상) 11장 ~ 끝 레온 트로츠키  이상한모자 2012-08-11 4125
9 진보정당 러시아 혁명사 (상) 1장 ~ 10장 레온 트로츠키  이상한모자 2012-08-11 4369
8 진보정당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 1912~14년의 볼셰비키 장석준  이상한모자 2012-08-11 4229
7 진보정당 장 조레스와 프랑스 사회당 - ‘혁명적 개혁주의’라는 이상, 혹은 몽상? 장석준  이상한모자 2012-08-11 5051
6 진보정당 독일 사회민주당 -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독일 공산당·사회민주당 장석준  이상한모자 2012-08-11 4730
5 진보정당 독일 사회민주당 - 사회주의자탄압법에서 수정주의 논쟁까지 장석준  이상한모자 2012-08-11 4730
4 진보정당 당직공직분리제 검토 보고서 file 진보정치연구소  이상한모자 2012-08-11 4227
3 진보정당 역사의 거름이 된 20년 장석준  이상한모자 2012-08-11 4552
2 진보정당 사회운동과 새로운 정치정당 힐라리 웨인라이트  이상한모자 2012-08-11 6390
1 체제/제도 보편주의 복지를 위한 시론 : 보편주의를 둘러싼 쟁점을 중심으로 file [1] 윤홍식  이상한모자 2011-01-08 75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