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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대학내일] 헌법재판소가 문제인가?

조회 수 969 추천 수 0 2008.11.23 21:43:51


지난 11월 13일 헌법재판소는 종합부동산세의 일부 조항에 대한 위헌과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 대한 헌재의 판결은 각 정치세력과 여러 국민들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참여정부가 얼마나 엉터리로 세금을 걷었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이라고 강변했고, 민주당 등 야당들은 종부세를 사실상 와해시키는 판결이라고 반발했다. 많은 국민들은 헌재가 수구세력과 기득권층의 편을 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헌재 재판관 누구누구가 종부세 폐지를 통해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얘기가 인터넷에 돌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논의가 전개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디어오늘의 이정환 기자의 경우도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의 헌법재판소 비판이 촌스러운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의 주장은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응용하는데서 출발한다. 코끼리를 강변하는 상대방에 맞서 코끼리를 자꾸 얘기하다 보면, 논의가 상대방에게 휘말려 겉돌게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코끼리’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다. 헌재는 종부세의 모든 것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린 것이 아니다. 사실 헌재는 종부세에 대한 정부/여당의 코미디 수준의 딴지 대부분에 대해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세대별 합산과제 등 종부세의 일부 조항이 위헌의 여지가 있다는 것은 법률 제정 초기부터 나오던 얘기였다. 아마도 우리는 헌재의 판결을 존중하면서도 기존의 종부세 납부 대상자들에게 세금을 납부하는 방법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한나라당, 조중동 등은 일부 위헌판결이 종부세 전체의 부당함을 증명했다는 식으로 논의를 호도하고 있다. 헌재의 판결이 종부세를 사실상 무력화시켰다고 헌재를 비난한다면, 결과적으로 이 ‘호도’에 동참하는 격이 된다.


이것은 단순히 담론 형성 전략의 문제만이 아니라 더 심층적인 태도의 문제다. 헌재를 손쉽게 비판하는 조류에서는 법과 정치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아쉬운 수준에 머물러 있음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법적 판단에는 어느 정도의 정치적 맥락이 고려되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법이 정치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정부나 국회의원이 기존의 입장을 크게 변경하는 정책을 시행하거나 법안을 발의한다면, 그런 것들은 정치적 판단으로 존중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법적 판단이 어제의 판결에서 크게 벗어나는 판결에 손을 들어주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사법부는 우리의 법적 체계 전체를 두고 세부적인 사안들에 대해 판단하고, 이것 전체를 조금씩 바꾸어 나가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종부세의 세대별 합산조항과 비슷한 것들이 과거에도 위헌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 판결은 충분히 예상가능한 것, 게다가 피하기 힘든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한 반론은 물론 가능하다. 기존의 헌재 판단과 다른 판단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서술하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공론형성의 중요한 한 축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서술은 법리에 입각해야지 헌재 판관 개개인의 신상을 문제삼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문제는 헌법재판소에 있는 걸까,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과거의 정책발의자들에게 있는 걸까, 아니면 예상되었던 상황에 전혀 대처하지 못하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있는 것일까.

 
정치적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것은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종부세의 지지자들이다. 자신들이 발휘해야 할 정치력을 헌재에게 떠밀고, 헌재만을 비판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힘을 더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요즈음의 이명박 비판자들을 보면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이명박을 독재자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정치적으로 손을 놓아 정부에게 더 마음대로 하게 만들고, 그후 정부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분개하게 만드는 전략(?)이랄까. 이것은 지난 여름 대규모의 촛불시위가 우리에게 남겨놓은 잘못된 유산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대규모의 시위는 자연발생적인 것이지 기획될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정치의 무력함을 강조하고 다시 그런 시위가 필요함을 강변하고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것은, 명백한 정치적 자위행위이며 자해행위일 것이다. 우리에겐 언제나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는 정치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거북이도난다

2008.11.24 21:17:34
*.239.247.126

이번 헌재의 종부세 판결에 대한 가장 적절한 반응은 이준구 교수의 글이 아니였나싶네요.
현재 우리나라의 세제에 관한 논의도 끌어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뉴녕

2008.11.24 21:43:16
*.255.182.22

이준구 교수님의 글 매우 그 분야 전공자로서 타당한 반응이었죠. 뭔가 헌재의 전문성에 대한 문제제기로 발전시킬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헌재의 권한이 매우 강하긴 한데, 한국처럼 법관들만으로 구성되지는 않는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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