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여행
오늘은 방송국에를 갔는데 딱 문제의 표결을 하는 그 시점이었다. 결과가 나오자 마자 방송에 나가 이런 저런 얘기를 떠들었다. 내가 그랬다. 그러게 가만히 있던지… 아무래도 글을 쓸 거 같으면, 가결 요청 글을 썼으면 분열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거 아니냐. 당에 부담주기 싫고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 지킬테니 찬성 표결 하시오… 이런 내용의 글을 썼는데 가결이 됐다? 그건 그냥 그렇게 당연하게 된 거고. 그랬는데도 부결이 됐다? 아이고 나는 약속 지키고 싶었는데 어쩔수가 없네요… 그러면 되는데 굳이 왜 부결 요청 글을 썼는지 모르겠다… 이런 얘기를 했고, 구속 여부는 검찰이 증거인멸 수사를 아주 뭐 대단하게 열심히 했으니 기각을 장담할 수 없을 거라는 취지로 얘기를 했는데, 같이 나온 변호사님은 구속 가능성을 낮게 본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사람을 잘 안 만나는데 일 끝나고 모처럼 우리 락커 나선생과 오랜만에 인간말을 만나러 갔다. 나선생과 인간말은 한 학번 아래로 학교에서 스쿨밴드를 한답시고 함께 설치고 다닌 사이다. 약속장소는 을지로였다. 인간말이 무슨 가게를 가자고 했던 건데 정작 예약은 안 했다고 하여 도로 나오게 되었다. 힙지로? 사이버펑크풍의 거리를 방황하다 고깃집에 가서 석갈비인지 뭔지를 먹고 2차로 젊은이들이 모여있는 술집에 갔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고 나선생도 건강을 생각해 자제하는 입장이었으나, 인간말은 모처럼의 해방감 때문이었는지 소주를 2병이나 마셨다.
그리고나서는 데이빗 보위가 간판에 그려져 있는 2층 술집으로 3차 원정을 떠났다. 연필로 신청곡을 적어 내면 틀어주는 컨셉이다. 나선생은 핑크플로이드의 무슨 노래를 신청했다. 그러면서 데이빗 길모어는 정말 최고라고 했다. 우리는 늙은 것이 아닌가? 술에 취한 인간말은 솔루션스의 무슨 노래를 신청했다. 민망했다. 솔루션스 멤버가 여기 있는데… 사람들이 알아보면 어쩌나 했다. 나는 the neighborhood의 stargazing을 신청하려 했는데 네이버후드의 영어 스펠링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술에 취한 인간말에게 대신 적어달라 했는데 stargaging이라고 적더라. 데이비드 길모어를 좋아하게 된 나선생은 내가 신청한 노래에 대한 흥미가 별로 없는 듯 했다. 나쁜 새끼…
술에 취한 인간말은 결혼한지 2년이 좀 넘었는데,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둥 가증스러운 소리를 계속해댔다. 본인은 표현을 잘 안 하는데 누군가와 같이 살다 보니 주입식 교육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선생도 비슷한 고충을 이야기 했다. 이야기를 잘 듣고 있는데도 왜 리액션이 없느냐는 타박을 받게 된다는 거였다.
그러다 갑자기 인간말이 외쳤다. 내가 바로 그 쓰레기 같은 INTP이다! INTP이기 때문에 표현을 하지 않는다! 그러자 나선생이 자기도 INTP라고 하는 거였다. 쓰레기들! INTP놈들은 진짜 쓰레기 같은 놈들이다. 나는 비난하였다. 너희가 쓰레기 같은 녀석들인 것은 이유가 다 있다. MBTI가 결과가 그것을 증명한다. 너희는 정말 구제불능의 인간쓰레기들이다! 인간말이 그러는 당신은 뭐요라고 하기에 INTP라고 답해줬다. I, N, T, P 모든 항목에 만점이 나오는…
인간말은 용인시민이기에 명동에서 광역버스를 타야했다. 오랜만에 만나 약간 들떠서 그랬는지, 그럴 필요는 전혀 없었지만 인간말이 버스 타는 데까지 걸어서 동행했다. 다들 떠나고 나만 홀로 남아 카톡 택시를 부르려 했으나 응답이 없었다. 시청까지 걸어가서야 간신히 카톡블루를 잡는 데에 성공했다. 혼자 길에 버린 시간이 1시간이나 되었다. 이렇게 장시간 별 이유없이 방황한 것은 오랜만이기에 특별히 기록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