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자기 자신을 내다 파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과거에 비하면 풍족한 삶이다. 그래도 근본이 달라지는 건 아니라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
월 수 금은 여의도에서 밤 11시가 다 돼 끝나는 일정이다. 어제는 눈이 엄청나게 왔다고들 했다. 교통사정이 어찌될지 모르니 시간을 넉넉히 잡으라는 연락이 왔지만, 어차피 차는 없지 않은가. 늘 그렇듯 지하철로 이동, 여의도역에서 내려 여의도 공원을 가로질러 갔다. 여의도 공원은 설원이었다. 눈을 밟는 소리가 왠지 크게 들렸다.
문제는 일정이 끝나고 나서였다. 보통은 출연료의 일부를 늦은 귀가와 바꾸는 마음으로 택시를 탄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좀 걷고 길을 건너 국민은행 앞에서 버스를 타고 광흥창역으로 갔다. 6호선을 타고 집에 오니 거의 12시였다. 다들 교통사정 때문에 고생했다고 하는데 남의 일 같았다. 내 고향 수원에 살았으면 분명 집에 못 갔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서울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 아니겠나.
집에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이런 저런 식사대용 음식을 사다 편의점 PB상품으로 나온 ‘반마리 치킨’이라는 가공육을 샀다. 계산하려고 보니 1+1이라고 한다. 눈에 고생도 없고, 훈제치킨 반 마리가 갑자기 한 마리로 되다니. 나는 행운아이다. 언론 보도를 보니 오늘 출근길은 전쟁이었다고 하는데, 심심한 위로의 말씀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