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선생 인성
뭐라고 뭐라고 적다가 보니까 문득 든 생각. 레선생이 옛날에 책 한 권으로 사람을 인간쓰레기로 만들고 그럴 때 보면 얼마나 인성이 개차반이냐. 역시… 관상은… 농담이고, 근데 레선생이 꼭 그러한 사람이 아니예요. 다 필요하니까 할 뿐인 거고 기본적으로는 사람을 선입견 없이 봐야 하지. 이건 도덕률이라기 보다는, 사람을 선입견 없이 보는 게 안 되면, 그 힘든 혁명이 되겠어?
근데 요즘 세태는 완전 반대지. 그냥 자기 기준에 흠 될 게 없다 싶으면 사람을 무작정 이상화하고 막 만세 부르다가, 흠이 나온 거 같으면 그 다음부터는 뭔 소릴 해도 욕하고 저주하고 비웃고 하는 거.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사람을 너무 믿는다는 것과 너무 불신한다는 것은 사실상 같은 거라고. 그러나 더 바람직한 거는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세상만사에 대해서 할 말은 하고 분노할 것에 분노하고 그러다가도, 그게 그냥 다 그럴 수도 있다 라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가지세요. 토니 클리프라는 인간이 쓴 레선생 평전에 등장하는 다음 구절을 읽고 매일 가슴에 새기시오.
마르토프와 갈라서는 것은 그로서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페테르부르크에서 함께 했던 활동, 옛 <이스크라>에서 활동했던 기간이 그들을 친밀하게 묶어 놓았다. 당시 감수성이 매우 강했던 마르토프는 일리치의 생각을 정확히 이해하고 세련되게 발전시키는 날카로운 감각이 있었다. 마르토프와 갈라선 뒤로 블라디미르 일리치는 멘셰비키와 격렬하게 싸웠지만, 마르토프가 어렴풋하게나마 올바른 노선을 취할 때마다 과거에 마르토프한테 취했던 태도가 되살아났다. 예컨대, 1910년에 파리에서 마르토프와 블라디미르 일리치가 ≪소치알 데모크라트≫ 편집부에서 같이 일했던 것이 그러한 경우였다. 사무실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블라디미르 일리치는 즐거운 말투로 마르토프가 올바른 노선을 취하고 있다거나 심지어 단을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뒷날 러시아에 돌아와서 블라디미르 일리치가 7월 봉기(1917년)에서 마르토프의 태도를 보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그것이 볼셰비키한테 어떤 이익이 돼서 그랬다기보다는 마르토프가 혁명가의 의무를 다하는 가치 있는 행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다.
과거에 진보신당이 한참 어려울 때 이런 식의 얘기를 타이핑해서 프린트해갖고 담배피우는 데 등에다가 붙여 놨던 기억이다. 홍대에 사무실 있을 때… 어항 속의 금붕어가 어항을 뛰쳐나와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던… 그게 어떤 징조였던 건가? 왜 이렇게 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