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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제3지대

제3 불모지대에 대한 자유연상

2023년 7월 8일 by 이상한 모자

윤심의힘이나 더블민주당이나 뭐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소위 제3지대라는 데도 뭔 일만 있으면 너도 나도 찾아대고 읊어대는 통에 이제 불모지대가 됐다고 생각한다. 소위 제3지대론에 대한 내 생각은 뭐가 됐든 양당이 버티고 있는 것보다야 나아질 가능성이 있지만, 대부분은 다시 양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벗지 못한다는 거다. 늘 하는 얘긴데 양당이 ‘~에 대한 반대’로 버티는데, 제3지대가 ‘양당에 대한 반대’로만 형성된다고 하면, 그게 유지가 되겠어?(그런 주장 자체가 필요치 않다는 게 아니다!) 애초에 ‘~에 대한 반대’라는 문법이 정치를 지배할 수밖에 없게 하는 것이 현대의 대의정치 구조라는 것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저의 생각인데, 근데 아무튼 그럼에도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앞서의 그 아주 적은 ‘가능성’을 지켜보는 거다. 요즘 나오는 얘기들들 보면 죄송한데 뻔한 결론이라는 생각이다. 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들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이고…

오늘 보니 정의당 어떤 분들이 탈당 막 하던데, 15년 전 같으면 생각할 수 없는 분이 거기 같이 있는 걸 다시 보니 뭐랄까 세월이 야속하다. 그렇다고 남은 분들이 딱히 뭘 해낼 것 같지도 않고. 최근에 몇몇 분들이 “근데 그 양반은 왜 그래?”라는 식으로 여러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하기도 했는데, 대개 그렇게 답을 했다. 지금은 누가 어디서 뭘 해도 모든 게 이상하지 않은 시국이 아닌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보시라…

미뤄놓았던, 정모라는 분이 쓴 장문의 글을 뒤늦게 보았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너무 뭐랄까 사고방식이 도식이고 단계다. 도식과 단계에 의존하지 않는 사고가 필요한 시기이다. 우리가 사실상 발명해낸 이념 도식을 갖고 지금 현실 정치를 해석하려고 하면 안 맞는 게 너무 많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어떤 현실적인 뭔가 절박한 감상? 그런거 만큼은 전해지는 거 같다는 생각이다. 요즘은 그런 절박함들이 없다. 어느 단체든 조직이든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운동권들의 그러한 마음의 표현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런 복잡한 기분을 아십니까?

그래도 너무들 서로 미워하지 마시라. 어디 시장 골목에 작은 연구소를 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김선생님이 최근 썼다는 글을 읽게 되었는데 뭔가를 제안하는 것이 그 자체로 중요한 시기가 아닐까 한다.

https://blog.naver.com/nuovo21/223147379007

제안이라고 하니, 나름대로 어떤 노선에 대한 생각의 원칙 같은 건 있다. 첫째, 현실과 싸워야 한다. ‘우리끼리’만 알아듣는 얘기나 하면서 서로가 존재하는 것 자체에 안도하는 그런 퇴행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아니라 뭇사람들이 현실이라고 믿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포기하면 안 된다. 둘째, 그런 차원에서 안으로 말리면 안된다. 밖으로 퍼져야 한다. 정파를 만들든 연구소를 만들든 조폭을 결성하든 그 목표는 밖이어야 한다. 박권일 선생이 좋은 글 쓰셨는데, 이 글에 다루는 ‘정치팬덤’의 아래의 문제를 운동권도 똑같이 안고 있지 않나 함 생각해봐라.

언론이 ‘정치 고관여층’이라고 부르는 이들 상당수는 사실 정치과몰입자 혹은 정치 팬덤이다. 그들은 당내 계파 싸움 양상, 여의도 뒷소문에는 빠삭하지만 정작 그 당이 추진한 정책과 역사에 무지한 경우가 많다. 정치가 가치의 쟁론에서 멀어지면서 권력 자체를 위한 내전으로 환원될 때 민주주의는 토대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기 쉽다. 정치 팬덤은 분명 대중의 주체적 활동이지만 동시에 더 깊은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왜곡된 정치 현상이다. 엘리트와 팬덤에만 맡겨두기에 정치는 지나치게 중요하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99093.html

셋째, 그런데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은 결국 ‘우리’의 이야기여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현실의 문제, 신문 1면을 장식하는 얘기, 시덥잖은 여야의 말장난 같은 말싸움을 갖고서도 근본에 가 닿을 수 있는 얘기를 이끌어내는 실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의 이정표는 더 넓게, 더 아래로 향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냥 기분이 좀 그래서 씨브려봤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제3지대

진영논리와, 반-진영논리라는 진영논리

2023년 4월 24일 by 이상한 모자

오늘은 한석호라는 분의 글을 조선일보를 통해 보았다. 모르겠다. 나는 이런 이유로 누굴 미워하거나 공격하거나 뭘 논박하거나 그럴 힘이 이제 없다. 그냥 지켜본다. 그럼에도 그냥 한 마디 덧붙인다. 우리 좌파 패밀리들이 평소에는 민주당을 진보로 인정하지 않는다(이 개념 규정 논쟁에 지쳐서 그냥 세상이 다 진보라 하니 진보라 불러주겠다 한 일은 있다). 근데 ‘탈진보’ 선언할 때에는 진보가 곧 민주당이다. 이 간극에 항상 의아하다. 옆집이 중국집이던, 공덕동의 2층 사무실 생각이 많이 난다. 벌써 거의 20년이 다 돼간다. 그땐 참 다들 꿈이 컸었다.

최근 벌어지는 여러 현상에 대한 풍문을 들으면서 여러 생각을 한다. 그런 일들이 많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진영논리에 충실한 사람들이 있다. 자기 진영을 지키기 위해선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민주당 얘긴가요? 국힘, 정의당, NL, PD, 민주노총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 다 마찬가지였다. 내 경험으로 볼 때 그렇다. 이게 조직논리인데, 뇌의 어떤 부분을 남한테 맡겨놓고 사는 거랑 비슷하다. ‘우리 편 논리’만 반복하고 그것에 의거해서 공격하고 방어하면 장땡이다. ‘우리 편 논리’가 아닌 건 일단 공박한다. 개미들 더듬이 움직이는 것처럼 상대를 파악하고 ‘우리 편 논리’에 근거해서 주장하는 거 같으면 일단 인정해준다. 이런 것만 수십년 한다.

그런데 이게 임계점이 있다. ‘우리 편 논리’라는 게 너무나 군색해지고 ‘우리 편’ 자체도 없어지고 이러다보면, ‘우리 편’에 의존해 살던 자기 자신에 대해 현타가 오는 것이다. 이제 나이도 먹고 해서 시간도 얼마 안 남은 거 같고. 이젠 뭐라도 주도적으로 해야 하지 않겠나. ‘반-진영논리’라는 또다른 진영논리에 의존하는 증세가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 그렇잖아. 진영논리에서 탈출하는 거면 사안에 따라 판단하고 이쪽 저쪽 경중을 따져서 이건 이게 잘못됐고, 저건 저게 잘못됐고 이렇게 따져야지 뭔 탈진영 선언을 하고는 탈진영 선언 집단에 몸을 의탁하냐고.

오늘 어떤 선생님 전화도 받았는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금 모라는 사람이 하는 제3지대에 정의당도 가야 된다고 보냐 묻기에 내가 그랬다. 정의당이 결국 뭐냐가 문제인데, 결론 못 내렸다. 정의당이 더 이상 진보 뭐라고 하는 데 있어서 효용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금태섭 신당이라도 같이 하는 게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의당이 어찌됐건 여전히 진보 뭐라고 하는 효용이 있다고 하면 금태섭 신당 같이 하는 건 그 진보 뭐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될 거고 오히려 죽쒀서 개준 꼴 될 것이다… 근데 이제 이런 논리도 ‘안 되는 얘기 말고 뭐 좀 되는 얘기를 해봐’ 앞에선 무력하지. 답정너라고 있지? 답정너인 듯. 아마 저 선생님은 같이 하자고 할 모양.

언젠가 모 방송 진행자가 얘기했다. 세상에 도움도 안 되는 것 같고 개인적으로도 스트레스 받는 이 일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나도 비슷한 생각인데, 당신은 그만둬도 월급이 나오지만 난 생계 걱정부터 해야 한다… 말이 씨가 됐나? 이제 유일하게 남은 TV 출연 방송 제작진이 전화를 했다. 다음 방송까지만 나와 달라… 그니까 이게 파리 목숨이다. 내일부터 오지 말라고 하면 그냥 네 해야 한다. 방송국들은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다. 뭐 그래도 되겠지. 억울하면 정직원 하시든가?

요즘 시국이 시국이라 방송 하나 짤리면 다른 섭외는 없다. 짤리면 그냥 끝이다. 다 얼마 안 남았다고 봐야지 신경 안 써. 난 하나도 신경 안 쓴다. 진짜 좌파연하던 사람들이 다 바람따라 강물따라 흔들리고 흔들고 하는 세상인데 떠들어 제끼는 걸로 먹고 사는 게 뭔 소용인가. 크게 봐서 이렇게 죽고 저렇게 죽고 하는 과정인 거지 하나도 걱정할 거 없어. 영화 타짜에서 짝귀가 그랬다. 별게 아니야… 니도 곧 이렇게 될끼다… 그냥 맘대로 하고 살어야지 별 수 있냐?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제3지대, 진영논리

현실을 초월하는 현실이 되어야

2023년 4월 22일 by 이상한 모자

오늘은 어떤 선거컨설턴트가 지금 상황을 ‘초현실적’이라고 말하는 얘기를 보았다. 심정적으로는 100% 공감한다. 그런데 냉정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 상황이 너무나도 비상식적이고 초현실적이어서 총선 앞두고 제3당, 4자구도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진단의 현실성은 얼마나 될까?

물론 나도 일단은 그렇게 말을 하고 다닌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제3지대에 대한 국민적 수요는 높다! 각 당이 뭔가를 바로잡지 않으면 큰일날 것이다! 그러나 실제 유의미한 신당 출현 가능성은 높게 보지 않는다. 지난 번에 썼듯 어떤 조건들이 갖춰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더 나아가서는, 지금 신당 얘기하는 주요 플레이어들이 그런 걸 모르고 움직인다고 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적당히 하고 말겠지’ 하는 생각부터 드는 거다. 물론 이 분들이 어느 당의 비대위원장이나 무슨 단일 후보 역할을 하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닌, 그것을 초월하는 끈기를 갖고 이 문제에 접근한다고 하면 나는 그 신당의 성격이 뭐든 박수를 칠 것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냉정하게 접근해야 한다. 기존의 상식부터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양당의 삽질은 과연 제3당의 출현 가능성을 높이는가? 요즘은 오히려 양당의 삽질이 양당제를 유지하는 핵심 요인으로 비춰지지 않는가? 한쪽이 정신차리면 아마 다른 한쪽도 정신차리는 척 할 것이다. 제3당이라는 옵션을 놔두면서도 양당은 서로 증오할 수 있는 한 얼마든지 마치 압력솥의 추를 다루듯 여의도 정치의 압력을 조정할 수 있다.

양당제는 기득권이다. 기득권이라는 것의 핵심은 기득권이 아닌 쪽의 선택지를 무력화하거나 제거할 수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배트맨시리즈를 보라. 여기서 기득권은 배트맨이다. 악당은 보통 원패턴이다. 배트맨은 다양한 악당들을 다양한 수단으로 제압한다. 차를 부수면 그 안에서 오토바이가 튀어 나오고, 오토바이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 붙이면 비행기로 갈아 타고 나온다. 배트맨에게는 언제나 수단이 있다. 마찬가지다. 제3당 출현? 다 수단이 있다. 역대 제3지대 세력들이 결과적으로는 다 양당제에 흡수되거나 굴복한 것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이런 얘기하면 넌 무슨 안 된다는 얘기부터 하느냐고 면박주는 사람들 있는데 그게 아니다. 첫째, 이 모든 일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옛날에 다 있었던 일이다. 안 된다는 얘기부터 하는 게 아니라, 옛날에 그렇게 해서 안 됐다는 얘기 하는 거다. 둘째, 우리에게 필요한 건 현실에 이러 저러한 비관이 있더라도 필요한 얘기를 계속하며 끈기있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런 전제가 있다면 비관을 말하는 것은 오히려 용기다. 뭔가를 안 하기 위해서 비관을 말하는 것은 비겁이지만, 뭔가를 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현실을 인정하는비관은 언제나 필요한 것이다. 오히려 이런 종류의 비관을 덮어놓고 비난하는 게 정확히 양당제적 사고방식이다. 양당 지지자들에게 너희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 이 얘기 해봐라. 정확히 ‘네가 안 된다는 얘기를 하는 배경엔 안 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게 아니냐’, ‘뭔가를 해보겠다는데 왜 재부터 뿌리냐’란 논리로 말하지. 양당의 지지자들이 그렇게 하는 것에도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선거법 개정 문제도 마찬가지야. 오피니언 리더들의 선거법 개정 여론이 있으니까 양당제는 한 발짝 앞으로 갔다가 다시 한 발짝 후퇴하는 걸 앞으로 가는 거라고 속이면서 계속 스텝을 밟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아주 비관적으로 본다. 그러나, 그러니까 얘기하지 말잔 얘긴가?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얘기해야 하는 거고, 그렇든 아니든 얘기해야 한다는 거다. 현실적 조건이 어떠하든 해야 하니까 한다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거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은 앞을 똑바로 봐야지 외면하고 정신승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눈 앞을 외면하고 걸어온 사람일수록 앞이 낭떠러지인 걸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을 때 절망하고 뒤돌아 나갈 확률이 높다. 지금 조선일보랑 인터뷰 하고 막 이상한 얘기 하고 다니는 한 때의 진보들이 거의 그런 사례다. 숀 코너리의 연구 수첩을 갖고 있었던 인디아나 존스는 낭떠러지인데도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안 하면 대배우 숀 코너리가 죽게 생겼기 때문!(트릭 자체는 조잡한 것이었지만…) 하여간 저는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도, 그런 절박한 태도를 고수하기를 계속해서 요구하고 싶은 것이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양당제, 제3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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