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한테 관심도 없으면서
정파적 이해관계만 말하지 할머니한테는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많다. 지겹다. 냉소사회는 보셨나들? 보지마세요. 관심도 없으면서, 하나도 아는 것도 없으면서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월간중앙은 지들이 인터뷰를 해놓고도 제대로 보도를 못, 아니 안 한다. 지들 유리한 대목만 쓰는 거다. 전체를 봐라. 할머니가 무슨 말씀 하고 싶으신지.
https://news.joins.com/article/23782888
가령 아래의 발언들이다.
왜 이제야 문제를 제기한 건가?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건 안 해야 할 것 아니냐. 내 생각엔 역사관을 넓혀서 교육관을 만들어 올바르게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 한마디를 하더라도 옳게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 (수요집회) 나와봐야 배우는 거 하나도 없다. 사죄하라, 배상하라 하는데 뭣 때문에 하는지 알면서 하는 소리겠나.”
(생략)
수요집회를 그만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는 뭔가.
“학생들이 추우나 더우나 와서 앉아 있고, 저금통 털어서 가져오고 한 돈을 의심 없이 받더라. 난 그 학생들이 참 안타까웠다. 돈을 받으면 더 보태 점심이라도 먹여서 보내든지. 할머니들이 안타까워서 오는 학생들에게 옳은 역사 공부를 가르쳐야 하는데, (정대협은) 자기들 (단체) 운영하느라 바쁘다. 이제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를 배워야 하는데 말이다. 대한민국 학생들이 대한민국 주인이다. 일본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봐야 무엇이 맞는지, 잘못인지 알게 되리라 생각한다.”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느꼈던 계기가 있었나?
“아베 총리가 ‘한국이 거짓말한다’고 하니까 (일본에서 온)학생들이 정말 그런 줄 알더라. 이웃 나라니까 사이좋게 지내면서 올바른 역사를 알려준다면 자연히 깨닫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수요집회에 정말 안 나갈 건가?
“너무 기력이 없다. 이제 나가봐야 나밖에 없다. 피해자가 없는 데모(집회)를 왜 하나. 피해자가 있으니까 학생들이 오는 건데, 난 그 학생들 더 고생시키기 싫다. 없는 돈 받아다가 차곡차곡 쓰는 것 싫다.”
(생략)
지금 솔직한 심경은 어떤가?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김학순(※1991년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피해 할머니. 97년에 작고했다.)이 시작했지만 이용수가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결심하니 마음이 나아졌다.”
운동을 마무리 짓겠다는 건 무슨 뜻인가?
“운동을 끝내자는 게 아니다. 아베 총리의 악행을 보고도 일본에 면죄부를 줄 순 없다. 아베 총리는 항상 거짓말을 한다. 다만 운동하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우리 다음 세대가 일본에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또 그렇게 해야 먼저 하늘로 간 할머니들한테 당당하게 ‘내 할 일 마쳤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에 쓰는 글은 거의 이 문제에 관한 것 뿐인데 오늘도 보낸 글에 아래와 같이 썼다.
생존 피해자의 존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운동의 가장 큰 동력이었다. 하지만 피해자들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이대로 가면 몇 명의 국회의원 및 장관을 배출한 결과만을 남긴 채 흐지부지 될 수도 있다. 이용수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지어 제대로 교육을 하겠다면서 “김학순 할머니가 시작한 일을 이용수가 마무리 지어야 죽어도 할머니들 보기 부끄럽지 않다”고 말한 것에는 이런 고민이 담겨있는 게 아닐까?
이용수 할머니는 윤미향 당선인을 안아주고 “불쌍하다”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화해할 일은 아니라고 했다는데, 그 심경을 어찌 다 짐작하겠는가. 우리가 할 일은 앞으로 어떻게 일본의 전쟁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고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각자 자기 좋을대로 이용수 할머니의 말을 활용하는 게 아니다.
아래는 나눔의 집 문제에 대한 화요일 라디오 방송의 일부이다.
나눔의 집 측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사후에 어떤 사업을 할 것인가에 대해선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호텔식 요양원을 만드는 게 답은 아니다. 돈벌이를 위한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당연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고 일본에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고 이를 인정하도록 만드는 활동을 계속 해나가야 한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서 후원금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쓰이지 않았다는 얘기는 많이 하지만 이 분들이 다 돌아가시고 나면 일본의 과거에 책임을 어떻게 물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고민을 안 하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에 이런 고민이 더 절실하다.
‘말’에 대해서는 아래의 글도 참고할만 하다.
한겨레 / [기고] 군 위안부 논쟁의 윤리를 생각한다 / 정유진 (2020. 5. 14.)
글 안에 있는 김복동 할머니의 인터뷰도 다시 보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