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아이오와 코커스에 대한 방송 내용
금요일 오전 방송분이다. 게이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 것도 좋겠지. 근데 그게 전부인가? 아니지. 그런데 이 녀석, 나랑 나이가 같은데… 누구는 미국을 쥐락펴락하고 누구는 집에서 혼자 끙끙 앓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자. 부티지지의 돌풍이다. 민주당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버니 샌더스와 양강구도를 형성하면서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반면 유력 후보라고 봤던 조 바이든은 4위를 차지하며 대단히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이제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아이오와 코커스 결과는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됐다. 그동안 아이오와주에서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부티지지와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이 강세였고 조 바이든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이런 결과는 백인이 절대 다수이고 농촌지역인 아이오와주의 특수성에 기인한 것이다. 이 때문인지 조 바이든은 아이오와 코커스에 상대적으로 적은 자원을 투입한 걸로도 알려졌는데, 그렇더라도 이 정도 대패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오와 코커스는 15% 이하 득표 후보를 지지한 당원이 2차투표권을 갖는 형태로 진행됐는데 피터 부티지지는 2차 투표에서 몰표를 받았다고 한다. 현재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는 유력후보들의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뜻이다.
/ 부티지지는 1982년생으로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인물 중 가장 젊은 38세로, 저와 동갑이다…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 출신이고 독실한 성공회 교인이라고 한다. 2015년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커밍아웃한 바 있고 이번 코커스 과정에서도 동성파트너와 연단에서 포옹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부티지지의 집안은 남유럽의 몰타에서 온 이민자 출신인데, 아버지인 조지프 부티지지는 교수 출신으로 안토니오 그람시의 옥중수고를 미국에서 처음 번역한 좌파 성향의 인물이라고 한다.
부티지지는 학창시절부터 공부를 잘했고 지금도 8개국어를 한다는데, 하버드 대학교에서 역사와 문학을 전공했다. 2007년에는 로즈장학금을 받아 옥스퍼드 대학으로 유학을 가 철학 정치 경제를 전공했다. 이후 민주당 소속 지역 정치인들의 선거를 돕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맥킨지 앤 컴퍼니의 컨설턴트로 일했고 2007년에는 버락 오바마 대선 캠프에서 자원봉사자로 근무했다. 2011년에 고향인 사우스벤드 시장직에 도전해 29세의 나이로 사상 두 번째로 젊은 시장이 됐다.
사우스벤드는 인디애나주의 도시이다. 인디애나주 역시 시골 분위기인데, 주도인 인디애나폴리스 외에는 중소도시와 농촌으로 구성돼있다. 사우스벤드 인구는 10만명을 조금 넘는 수준인데 가톨릭 명문으로 유명하고 미식축구를 잘 하는 걸로 알려져 있는 노틀댐 대학이 위치해있다(웨스트윙의 제드 바트렛이 이 대학 출신이라는 설정). 1960년대 중반 까지는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제조업이 경제를 지탱했는데 자동차 산업이 쇠퇴하면서 도시 전체가 몰락했다. 전형적인 러스트벨트 사례인 셈이다. 부티지지는 시장으로 일하면서 노틀댐 대학 등과 산학협력을 통해 보건의료 등 첨단산업을 유치하고 투자를 끌어 들이는 데에도 성공했다. 또 공동화 된 거주지역이나 공장부지 등을 없애거나 되살렸고 재정건전화를 위해 시가 갖고 있는 부동산을 처분하는 등의 정책으로 성공적인 도시재생의 사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결과 2015년부터 사우스벤드 시의 인구가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점은 러스트벨트 여론에 강점이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 인디애나주는 보수적 성향인데,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원래 인디애나주지사였다는 점을 봐도 확인된다. 부티지지가 커밍아웃을 하게 된 것도 마이크 펜스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인 법안을 밀어 붙인 것에 반대하면서 생긴 일이라는 평가이다. 이런 지역에서 성과를 낸 인물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의 유권자들, 즉 러스트벨트의 백인들에게 상당히 어필할만한 요소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부티지지는 시장 재임 도중인 2014년 7개월 간 아프가니스탄에서 정보 장교로 파병돼 근무한 독특한 이력도 갖고 있다. 즉 능력있는 엘리트이면서 자기 책임을 다하는 신선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부티지지 최대의 강점이다. 이게 아이오와 코커스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러스트벨트에 대한 호소력은 버니 샌더스의 강점이기도 할 것이다. 2016년 대선에서도 확인됐듯 버니 샌더스의 주요 지지층은 백인 노동자 계층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부티지지와 지지층이 일부 겹친다고 볼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다만 버니 샌더스는 미국 정치에서 가장 왼쪽에 있다고 볼만한 정책을 주장하고 있는데 부티지지는 정책적으로 중도파 후보로 분류된다. 따라서 블루칼라보다는 화이트칼라와 엘리트들의 지지를 얻고 있어 버니 샌더스보다는 같은 중도파인 조 바이든과 지지층이 겹친다고도 볼 수 있다. 즉 아이오와 코커스 결과는 조 바이든을 포함한 중도파 후보 지지자들이 부티지지를 선택한 결과로도 분석 가능하다는 거다.
당원들이 바이든의 대안으로 부티지지를 선택했다면 바이든이 갖지 못한 걸 부티지지가 갖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앞서 언급한 정치적 신선함, 즉 젊고 중앙정치무대 경력이 없다는 게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1942년생으로 만77세인 바이든은 자신의 경험과 관록 특히 외교정책을 다뤄본 경험을 내세우며 부티지지를 10만명 이상 인구를 가진 도시도 다뤄본 일이 없는 초보 정치인으로 평가했었다. 하지만 최소한 아이오와에서는 이런 논리가 전혀 먹히지 않았다는 점이 증명됐다. 이렇다보니 오히려 버니 샌더스나 엘리자베스 워런 등 좌파 후보를 막기 위해선 바이든보다 부티지지가 유리하다는 여론이 형성된 측면이 있다.
바이든이 최근 국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상태였다는 것도 코커스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이나 탄핵 국면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끌어 들이면서 바이든의 지지세가 크게 하락했다. 만일 민주당이 탄핵 카드를 쓰지 않았으면 바이든의 회생은 어려웠을 것이다. 탄핵 국면이 이어지면서 바이든 지지층이 단결해 지지율이 일부 복구됐지만 탄핵이 상원에서 최종 부결됐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 즉, 아직 불안한 상황인데 부티지지는 이런 곤란한 정치적 스캔들로부터 자유롭다는 강점이 있다.
아이오와 코커스 결과가 바이든에게는 큰 정치적 위기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바이든은 자신이 트럼프를 이길 수 있는 적임자라고 주장해왔다. 흑인 유권자들이 오바마 정권에서 부통령을 역임했던 자신을 조직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러스트벨트의 백인노동자들로 득표력을 확산시킬 수 있는 유일한 후보라는 논리였다. 그런데 아이오와 코커스 결과는 오히려 바이든 카드가 러스트벨트에서 먹히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드러냈다. 만일 흑인 유권자들이 바이든 카드를 포기하고 당선 가능성이 있는 후보로 전략적 투표를 하게 된다면 바이든은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원래 바이든은 러닝메이트로 공화당원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는데 아이오와 코커스 이후에는 흑인 러닝메이트를 언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주요 지지층부터 다지자는 전략으로 바꾼 것인데, 이번에 상당히 강한 타격을 받았다는 방증이다. 또 바이든은 대통령이 될 준비가 된 사람을 러닝메이트로 선택하겠다는 언급도 했는데 자신이 고령이기 때문에 재선 도전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논리에 대한 반대 논리를 제기하는 걸로 보인다.
어쨌든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결과가 중요하다. 바이든 캠프는 뉴햄프셔에 거의 10억원 넘는 금액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만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바이든이 기사회생하면 유색인 유권자 수가 많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도 좋은 성적을 이어갈 수 있고 이어지는 슈퍼화요일에서의 성과를 기대해볼 수 있다. 반면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또 패배하게 된다면 사실상 경선은 접어야 되는 처지가 될 수 있다. 일단 뉴햄프셔 주의 여론조사를 종합해보면 아이오와보다는 바이든에게 나쁘지 않은 결과지만 절대적으로 유리한 국면도 아니다. 뉴햄프셔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좋게 보면 흥행으로 갈 수 있는 거고 나쁘게 보면 과열양상으로 갈 수 있다.
이는 2016년엔 경선 이후 후유증 극복이 안 됐던 상황의 재판이 될 수도 있다. 지금 구도는 사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 대 버니 샌더스라는 구도에서 크게 변했다고 볼 수 없다. 힐러리 클린턴은 중도적 정책과 여성 대통령이라는 진보적인 구호, 흑인들의 지지 확보를 조합하는데 성공했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진보 성향을 보이는 버니 샌더스 지지자들이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는 힐러리 클린턴이 가졌던 장점을 부티지지와 바이든이 나눠 갖고 있는 형국인데, 부티지지는 힐러리만큼 흑인 유권자들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고 바이든은 힐러리 만큼의 상징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샌더스 지지자들은 2016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태도이다. 경선 과정을 통해 이런 격차가 해소돼야 트럼프 재선을 민주당이 막을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다. 2016년의 학습효과가 있어서 이번에는 경선에서 이긴 후보를 분명하게 밀어주자는 목소리가 강한 것도 사실이지만 당장 샌더스 지지자들이 아이오와 코커스 결과에 대해 부정선거가 의심된다며 과열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민주당 전국위 의장이 재확인을 요구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런 점에서도 앞으로의 흐름을 주목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