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 경찰을 보낸들
내가 뭐라고 아는척 하고 싶지 않지만 신문이니 뭐니에 개소리가 실린 걸 볼 때마다 열받는 걸 억누를 수가 없다. 법과 원칙,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싸움… 대통령의 이딴 소리도 웃기지만, 노동 문제에 전문성 있다는 분들이 떠드는 이상한 소리 하는 것도 견디기가 어렵다.
화물노동자, 건설노동자의 불법행위… 절대 하지 마시라고 얘기한다. 법적으로 책임지우라고도 한다. 공개적으로 여러 번 얘기했다. 그런데 때려잡으면 불법행위가 없어질까? 이전에도 썼지만 이러한 불법행위는 이들이 교섭력을 확보하는 게 애초에 불가능한 노동의 현실에서 비롯되는 부분이 상당히 있다. 정말로 현장의 불법행위를 엄단하고 싶으면 때려잡는 것에 더해서 구조적 문제를 해소해줘야 한다. 그리고 그 구조적 문제란 노조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책임있는 교섭구조를 만들어 주는 것에 있다. 합법적 지렛대를 만들어 줘야 그걸 붙들고 씨름할 거 아니냐. 그게 없거나 미약하니 불법적 수단에 의존하는 길이 넓어지는 것.
옛날에 건설노조 왔다갔다 할 때 연맹위원장인가 하는 분의 조합원 대상 강연을 듣게 된 일이 있다. 우리 운동권들 그 양반 이름 들을면 바로 국민파… 이 생각부터 하게 되지. 근데 현장의 기준으로 보면 그 양반은 아주 똑똑한 사람으로 이름이 나있다고. 어쨌든 무슨 얘기를 하는데, 자본가들하고 싸우자 이런 얘기 할 줄 알았더니 뽀찌근절부터 시작하더라고. 타워크레인이 안 돌아가면 공사가 안 되는데, 그러다보니 작업을 빨리 하기 위해 현장에서 다이렉트로 타워크레인 노동자한테 얼마씩 찔러 준다… 이거 근절해야 한다… 건설노동자가 건설노동자한테 상납하는 구조라는 건데, 타워기사도 건설노조 소속이란 말야. 노조 입장에선 조합원끼리 갑-을이 되는 이런 구조는 전혀 도움이 안 되지. 이 얘기 들은 게 2006년이거든. 2017년인가에도 내가 이 얘기 나오는 기사를 본 거 같아.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일인데, 건설현장에선 그냥 일상적으로 벌어진다고.
타워기사는 참 욕심쟁이 아니냐, 언론에서 이렇게 쓰거든. 근데 타워크레인 노동자 얘기 들어봐라. 타워크레인 알지? 대개 그 꼭대기까지 사다리 타고 기어 올라간다. 나름대로 안전로프니 뭐니 장구를 갖추지만 사고나기 딱 좋지. 매일 최소 2번씩 목숨 거는 거지. 거기다가 바람 불지? 타워크레인 넘어갔다는 뉴스 종종 보잖아. 그거 넘어가면 그냥 그대로 죽는거거든. 기술적으로 이런 게 유지 불가능한 측면도 있기 때문에 전망이 밝지도 않고. 거기다가 임금은 제때 나오나? 쓰메끼리라고 하는 게 있어요. 건설현장이라는 데는 일을 하면 임금을 두 달 있다가 줘. 그것도 제때 안 나오는 경우가 허다함. 하도급 구조니까 업자가 중간에 들고 튀기도 하지. 그러다보니 비공식임금?에 의존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타워크레인 뽀찌도 그런 종류 중 하나란 말이다. 절대 정당하진 않지만 때려 잡는 걸로는 해결 안 되는 거지.
노동자가 노동자한테 구조적으로 종속되고 서로 갑질하는 이런 구조는 특수고용 등의 형태에서 보다 빈발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노동자와 업자의 구분이 흐려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가령 일부 언론에 그런 사례가 보도됐는데, 화물차량을 몇 대씩 소유하면서 차를 소유하지 않은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영업을 맡기는 거야. 이 분은 노동자냐 자본가냐? 근데 운임을 기준으로 하면 차를 1대 갖고 있든 2대 갖고 있든 이해구조가 일치하거든. 그니까 막 이런 분도 노조에 가입을 해서 활동을 해요… 현장에서 입김이 더 셀테니 노조 내에서의 지위도 올라가는 거지. 아마 화물도 그럴 건데 담쁘 아저씨들 옛날에 보면 자기들끼리 사장이라고 불러. 박사장 이사장… 노조 지회장을 맡겼더니 회장님이라고 하더라… 정회장님… 지회장은 어흠~ 하면서 어깨에 힘주고… 아무튼 그런 의식구조다 보니까 화물차를 5대 갖고 있는데 무슨 노동자냐 이런 시각보다는 나는 차량 1대 가진 사장이고 저쪽은 5대 가진 사장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 측면이 있다는 것임.
그래서, 항상 우리 운동권들은 강조했어. 제1의 목표는 노동자성 쟁취다, 사장의 굴레를 벗어던지자! 조합원들이 입으로는 머리로는 그러자 해. 하지만 실질적으로 가장 급한건 뭐다? 업자고 뭐고 돈이 제일 급한거야. 화물연대는 규모가 큰데 비해 업태가 다양하고 임금노동자로서의 형태는 거의 완전히 해체된 상태인 만큼 옛날부터 보조금이나 운임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음. 어떻게 보면 경제주의라고 할 수도 있겠지. 유가보조금, 표준요율제-표준운임제-안전운임제 세트가 다 마찬가지. 노동자성 쟁취? 그게 당장 되는 게 아니잖아요 먹고 살기 힘든데… 이렇게 되는 것임.
그니까 이게 이종격투기도 아니고 뭐냐고. 내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만약에 지옥이라는 게 있다면 말이다. 그건 지옥의 관리자가 개별 죄인들에게 어떤 구체적인 형벌을 영구히 주는 그런 게 아닐 거다… 그저 서로 죽고 죽이고 짓밟는 끝없는 free for all의 상태를 만들고 방치하는 것, 그게 지옥의 참 모습일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내가 본 특수고용이나 그와 별다를 것 없는 건설노동자들의 삶은 지옥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볼 수 있겠지. 이미 지옥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준법이니 하는 말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바다 건너 코포라티즘 국가의 사례를 읊는 것은 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오바하지 말라고? 알겠습니다… 그만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