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관의 미디어 생태계 복원이란 무엇인가?
매일 아침 신문을 읽지만 아무래도 놓치는 것들, 혹은 가볍게 보고 잊어버리는 것들이 있을 수 있다. 있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부지기수겠지. 그래서 일간지 칼럼 등을 모아놨다가 한 번에 다시 본다. 읽은 것을 또 읽는 것이다. 조중동과 한겨레 경향이 다 포함된다. 마침 금요일 밤 방송도 짤렸으니 시간이 많아져 여러 생각을 했다.
그러한 와중에 오늘 이동관씨가 한 말에 대해 잠시 생각한 바가 다시 떠올랐다. 이동관씨는 이렇게 말했다.
“공정한 미디어 생태계의 복원, 자유롭고 통풍이 잘되고 소통이 이뤄지는 정보 유통 환경을 조성하는 데 먼저 총력을 기울이려 한다”, “이제 대한민국에도 영국 BBC 인터내셔널이나 일본 NHK 국제방송처럼 국제적 신뢰와 인정을 받는 공영방송이 있어야 한다”, “넷플릭스처럼 콘텐츠 거대 유통 기업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원’이라는 것은 뭔가 이전의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뒤이어 나온 문구들을 보면 그것은 복원이 아니라 비가역적 변화, 가지 않은 길을 가려는 시도로 느껴진다. ‘BBC나 NHK’를 예로 든 게 아니라 ‘BBC 인터내셔널이나 NHK 국제방송’을 말한 걸 보면 그렇다. 지금까지 정부 여당 행태의 맥락과 연결해보면, 이건 결국 공영방송이 국내적 쟁점에 대해 관점이나 논조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냥 뉴스 읽는 정도로나 하고, 굳이 심층적인 걸 하고 싶다면 국제뉴스를 다루라는 것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도 NHK 국제방송에 대해선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다. 일본의 경우 NHK 국제방송이 언론의 역할이 아니라 일본 정부의 입장을 해외에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돼왔다. 그짓말 같냐? 2014년에 한국의 공영방송 장악 방식으로(경영위원회 위원을 친정권 인사로 꽂고, 그들이 친정권 인사를 회장으로 선임하는 방식) 선임된 모미이 가쓰토 당시 NHK회장님이 취임 기자회견에서 국제방송에서의 영토 문제 등을 다루는 방식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우’라고 하는 것을 ‘좌’라고 할 수는 없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하여는 어느 나라에서나 있던 문제이므로 일본만 문제 삼을 것은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다. NHK 국제방송이 자기들 입장을 해외에 알리는 나팔수가 되기를 바랬던 정권의 바람을 반영한 것이다. 한 마디 하고 만 게 아니라 실제 정권 차원에서 그러한 일이 기획되고 추진되었다.
신도 요시타카(新藤義孝) 일본 총무상은 5일 “우리나라의 생각이나 매력을 세계에 정보로 발신하는 것의 중요성이나 (이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전 세계를 담당하는 우리나라 유일의 국제방송인 NHK국제방송의 존재 방식 등을 조속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NHK가 전했다.
신도 총무상은 이를 위해 NHK국제방송을 담당할 `전문가 모임’을 설치하겠다고 밝히고 이 모임은 “NHK국제방송이 어떤 형식으로 어떤 내용을 방영해야 더 좋아질 것인지, 국제방송이나 일본의 정보 발신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다시 검토하고 점검하자는 것이 가장 큰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런 흐름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라는 어떤 신문은 아베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시도라며, 만일 2023년 한국에서 했으면 괴담세력의 괴담같은 얘기가 됐을 주장을 용감하게 사설로 제기하기도 했던 것이다.
FT는 9일(현지시간) ‘아베의 국수주의, 걱정스러운 전환’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아베 총리가 부상하는 중국이 위협될 것이라는 우려 속에 자신의 국수주의 어젠다를 더욱 강력히 추진하면서 일본 민주주의에 우려할만한 영향을 일부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아베 총리가 임명한 NHK 경영위원 4명 가운데 1명도 난징(南京) 대학살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으며 또다른 경영위원은 여성의 ‘합리적인’ 위치는 가정이라는 발언도 했다.
NHK는 9일 치러진 도쿄도 지사선거를 앞두고 원전쟁책이 선거쟁점으로 부상한 가운데 원전산업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억압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
신문은 이어 아베 총리의 계획은 지속적으로 토론을 방해함으로써 여론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리려는 것으로 보이지만 아베 총리가 상대적으로 열린 일본 사회를 공격하는 구실로 중국 위협론을 사용할 경우 비극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우리는 일본이 아니기에 양상은 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방금 FT의 2014년 사설에서 오늘날의 정세를 읽을 수 있듯, 본질적으로는 유사한 무언가의 역할을 요구하게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앞에 썼듯 ‘복원’이라고 보기 어렵다.
별 뜻 없이 한 말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경험해 본 바 있기에 빈말로 들리지 않는다. 뒤에 넷플릭스 얘기도 그냥 한 얘기는 아니지 않나 싶은데, 뭐 차차 보면 알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