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글을 보는데, 결국 그런 얘기 아닌가 싶었다. 다들 관심 갖는 얘기. 그래서 한국 사회에 극우란 얼마나 되는 거고, 그들로부터 나의 삶은 얼마나 위협 당하고 있는 것이며, 향후에 이들을 어떻게 처리(배제든 분리든 설득이든 감화든…)할 수 있다는 거야? 그래서 이런 분석, 저런 통계, 이런 숫자, 저런 조사를 막 가져와서 이렇게 갖다 붙이고 저렇게 갖다 붙이는 일을 끝도 없이 반복하며 지 하고 싶은 얘기 계속하고 있는 것 아니냐… 뭐 그런 건데.
과연 그런 숫자로 ‘진정한 극우’의 정확한 퍼센티지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반대의 정치’라고 이름 붙인 개념을 계속 말해왔다. 그것은 대다수 사람들의 정치 지향이 ‘진정한 ~’은 아니라는 개념이다. 따라서, ‘아직은 진정한 극우가 출현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개념은 나에게 성립하지 않는다. 그것은 대개는 원래 그런 거니까. ‘진정한 극우가 출현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결국 다수는 진보라든가, 중도라든가, 상식이라든가 뭐 이런 얘기를 증명하려는 것일텐데, 그 진보 중도 상식은 ‘진정한 진보’, ‘진정한 중도’, ‘진정한 상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왜 극우에 대해서만 혹은 이대남의 보수성에 대해서만 그 자신을 증명할 것을 요구하면서 안도를 얻으려 하는가?
그래서, 전국민 중에 ‘진정한 극우’가 몇 퍼센트 정도 되고, 그냥 보수는 몇 퍼센트고, 합리적 보수는 몇 퍼센트고, 범진보가 몇 퍼센트… 이따위 분류법은 중요치 않다는 거다. 그건 정치적 국면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 숫자들의 중요성은, 그러한 숫자들이 등장하는 국면에 현실 정치가 유권자를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조직하였는지를 동시에 분석할 때에야 유효한 데이터가 된다. 여기서 숫자들 즉 전자는 후자를 설명하기 위한 요소일 뿐이다. 전 국민 중 극우가 몇 퍼센트 되느냐를 따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특정 국면에 특정 선택을 하도록 만드는 정치가 어떻게 작동하게 되었는지 그 동학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대의 정치’를 얘기했던 나는 ‘개념의 사슬’을 말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아무리 봐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대개는 관심이 없고 중요한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극우는 몇 퍼센트고, 앞으로 뭘 해야 이들을 없앨 수 있느냐만 묻고 싶어 한다. 실상,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잘 모르겠다고 말하면서도, 대단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정치에서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관심이 없고, 누가 무슨 죄를 지었으며 그 죄를 책임지도록 하기 위한 어떤 방법이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마치 쇼핑하면서 상품을 둘러 보듯이 말이다.
무슨 말을 하는지 납득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냥 답답해서 쓴 말이고 큰 의미 없으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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