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중요한 세상

물론 과거에도 사람들은 남의 말을 잘 못 알아 들었다. 키보드워리어질 한참 하던 20년 전에도 아무리 긴 글을 쓰고 수십개의 댓글을 쓰고 염병을 해도 못 알아 듣는 사람 천지였다. 그런데 요즘은 그 때와도 양상이 다르지 않나 하고 생각했다.

가령 당신 방송을 잘 보고 있다거나, 당신 책을 잘 읽었다거나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다. 빈말이 아니다. 특히 책을 사서 읽어주신 분들은 대를 이어 감사하다고 해도 모자랄 정도이다. 그런데 가끔 놀라는 것은, 이 분들 중에도 내가 쓴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책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오늘은 라디오에서 앞으로의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PD님이 그러는 거였다. 쓴 책들과는 달리 냉소적이지 않군요… 그래서 말씀드렸다. 방금 한 얘기 다 그 책들에 있는 얘기라고… 그랬더니, 그런 내용은 못 보았다는 거였다.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책을 쓴다는 것은, 나름대로 할 말이 있어서 쓰는 거다. 세상은 끝장이 나고 있고 여러분은 망했고 앞으로도 개선될 가능성은 없다, 이런 메시지를 전하려고 책을 쓰지는 않는다(뭐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세상이 끝장이 나고 있기는 하지만- 무엇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 이 메시지를 전하려고 쓴다. 즉, 앞의 세상이 망하고 있다라는 현실 진단은 뒤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얘기에 도달하기 위한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뒤의 얘기는 기억하지 않고 앞의 얘기만 안다는 것은 뭘까? 사실 별 관심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얘기를 떠들었지만, 여기다가도 그렇게 많은 얘기를 썼지만, 여전히 뭔 소린지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여기서 ‘뭔 소린지 모른다’라는 것은, 내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기 보다는, 내가 무슨 맥락에서 뭘 말하려고 하는지를 모를 것이라는 얘기다. 가령 라면 먹고 싶어! 라고 하잖아? 이게 라면을 먹고 싶다는 얘기라는 건 알지. 근데 3일 동안 굶었는데 집에 라면 밖에 없어서 지금 라면을 먹고 싶다 라고 하는 얘기라면, 앞에 얘기를 알아야 하잖아. 그건 관심 없는 거지. 그럼 앞에 얘기를 안 했느냐, 아니지. 계속 했지. 오늘 굶었습니다, 오늘도 굶었습니다, 오늘도 굶었네요, 아 집에는 라면 밖에 없네요, 뭘 사러 갈까 했는데 돈이 없네요, 라면이라도 먹어야 할까?, 라면 먹고 싶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앞의 얘기를 안 들었느냐, 들었어요. 근데 맥락적으로 생각을 안 한대니깐. 근데 왜 라면을 먹고 싶어하지? 이렇게 생각한다고.

이게 무슨 현상일까? 과연 SNS나 숏폼 동영상, 세상만물을 캐릭터화 해서 캐릭터끼리의 대립으로 쉽게 쉽게 이해하는 세태, 그리하여 남의 말을 듣는 것 자체보다는 남의 말을 듣는 나를 서사화 하게 되는 데에 더 몰두하는 현상과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남 얘기를 할 때냐? 나도 대개는 남들이 뭐라고 했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난 가능하면 모른다고 말한다. 책도 안 읽었다고 답을 한다. 대충 읽은 경우에도 그냥 안 읽었다고 한다. 특히 책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가 중요한 대화에서는 안 읽었다고 한다. 대개 나는 모르는 사람이다.

내일은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아까 잠시 책을 참고하기 위해 찾아본다고 앉았다가 잠들어 버렸다가 지금 깨버렸다. 인류에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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