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 저래 곤란한 입장도 있고 하지만, 답답하다. 물론 억울한 것도 있으리라 본다. 어떤 부분에선 과도한 비난을 받는 대목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잘못한 것에 대해 뭘 인정하고 나야 억울한 얘길 거들기도 하고 그러는 거지, 그런 것도 없이 원래 다 이렇게 하는데 우린 억울하다 이 한 마디로 다 퉁치려고 하니, 다른 얘길 하고 싶지가 않다.
계속 지켜보다 보니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다. ‘원래 다 이렇게 한다’고. ‘원래 다 이렇게 한다’고 생각하는 걸 했는데 상황이 계속 이상해지면, 원래 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는 거 아닌가? ‘원래 다 이렇게 한다’는 미명 하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희생됐나? 제가 A부터 Z까지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제가 알기로 ‘원래 다 이렇게’ 하지는 않는다. 거기서만 통용되는 게 있는 거다. 그게 본인들 생각에 좋은 쪽으로 작용하는 것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신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 쳐보자. 신문에서 여론조사 보도하면서 특정 정당이 자기들을 선전할 목적으로 제작 제공한 이미지를 써서 논란이 됐는데, 애초 해명은 사실 관계가 맞지도 않고, 계속 논란이 되자 ‘원래 다 이렇게 한다’고 하더니 언론을 흔들지 마라 큰 소리 친다고 생각해봐라. 그걸 잘 한다고 하나?
다들 불평하는 것과 달리 저는 여기에 무슨 대단한 정치적 음모나 유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문제의 본질은 저널리즘적 고민과 훈련이 아니라 청취율, 조회수, 클릭수에 압도적으로 경도된 제작 방식에 있다. 숫자에 매몰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방식을 정당화 하면서, 나머지 고민해야 할 문제는 다 부차적으로 취급하고, 누군가 그 ‘부차적 문제’를 지적하면 ‘흔들기’니 ‘모함’이니 하며, 자신들만의 ‘원래 다 이렇게 하는 것’을 계속 강화해 온 후과를 치르는 거다. 물론 이번에도 결말은 다르지 않으리라 본다. 또 피해자가 되어 가지고 지금까지 하던 방식이 맞다고 하는 확신을 한 번 더 얻는 걸로 귀결되겠지.
그런 점에서, 이 문제의 본질은 의외로 정치적 소재가 아니라 사건사고적인 것, 가령 2021년의 이런 사례에서 발견할 수 있다.
5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성범죄 뉴스를 다루면서 출연자가 가해자의 성범죄 행위를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묘사한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권고를 의결했다.
(…)
해당 방송의 ‘탐정 손수호’코너에서 진행자인 김현정씨와 출연자인 손수호 변호사가 12년 동안 벌어진 의붓딸에 대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의 성범죄 행위를 수차례 선정적으로 묘사했다. 손 변호사는 해당 건과 비슷한 사건이 생각보다 많다며 친족에 의한 강간과 강제추행 사례들을 다수 소개하고, 해당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협박을 하면서 말한 내용까지도 그대로 인용했다.
아울러 “자극적인 예를 전달할 목적이 아니며 끔찍한 일이 우리 주변에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경각심을 갖고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을 알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김현정씨는 “너무 끔찍하다고 불편하다고 외면하면 그다음에 대안을 세울 수 없는거니까 좀 어려워도 이 사건 들여다보겠다”고 말했다.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2781
2021년 11월의 문제의 방송 내용은 아래 링크에도 전문이 남아있다.
https://www.nocutnews.co.kr/news/5649568
주목할 것은 출연자가 원고를 읽고 있다는 점이다. ‘방송을 해본 사람’으로 말하자면, 저건 사전에 100% 제작진에게 제출하고 검수받은 내용이라는 뜻이다. 아이템 선정도 제작진과 협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 생각엔 제작진에 주도권이 있었을 거다. 순전히 내 주관적 느낌이지만 출연자는 별로 이 내용을 다루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라디오 PD라는 사람들은 대개 음악 방송 PD를 꿈꾸고 그걸 하고 싶어한다. 시사 프로그램 PD가 되고 싶어서 라디오 PD 되는 사람은 잘 없다. 저널리즘적 훈련 그런 거 보통 없다. 그나마 이 회사가 시사 방송 관련 인적 인프라가 좀 있는 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식이다. 여기서 유튜브를 맨날 욕하지만, 유튜브와 큰 차이도 없는 세상으로 다들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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