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림픽이니 뭐니 이런 걸 아주 혐오하는 사람이지만, 또 이걸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걸 존중하지 않을 수는 없고 하여 대개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다.
다만 우스개소리는 좀 해도 되지 않나 하는데, 최근 한국 선수들의 선전을 보면 한국 스포츠의 양대 성공 요인이 뭔지를 확인시켜주는 거 같아 재미있다는 생각이다. 한국에서 성공 공식! 첫째, 공정하고 효율적인 선발. 둘째, 회장님. 이 두 개가 있어야 한다. 하나만 있으면 안 된다. 양궁 얘기하니 정 회장님 나오고, 사격 얘기하니 김 회장님 나오고 하는 광경에서 이걸 느꼈다. 축구는요? 축구는 일단 감독을 공정 효율적으로 선발 안 했잖아…. 그리고 축구에서의 교훈. 회장님은 입은 닫고 지갑만 여셔야지 다른 회장을 겸임하면 망테크를 타게 된다….
여기까지가 우스개고. 이번에 언론 보도를 보면서 좀 의문이었던 게, XY염색체를 가진 복싱선수 얘기. 아니, 그거 딱 보면 먼저 소위 간성인 아닌가 하는 생각부터 들게 되지 않나? 처음 있는 사례도 아니고. 근데 인터넷 기사는 죄다 트랜스젠더, 무슨 성기 제거 안 한 수영선수 이런 걸 엮어서 쓰더란 말이다. 좀 그러다 말겠지 생각했는데 급기야는 오늘 중앙일보에 교수라는 사람이 이런 칼럼을 쓴 걸 보고 해도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아래의 내용.
스포츠는 공정한 경쟁이 핵심이다. 공정한 스포츠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도 소수자 인권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다수 여성 선수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공정성 시비를 일으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남성 호르몬 수치가 낮더라도 태생이 남성인 트렌스젠더 선수들과 시스젠더 여성 선수들이 경쟁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불만이 줄기차게 제기되고 있다.
이런 글에다가 이제 게임 커뮤니티에서 배운 무슨 PC주의, 올바름 이런 거 욕하는댓글 달고 이런 대환장 파티 벌어지고 이러는 게 아주 환장을 한다 이거지.
이런 얘기들에 대해선 한겨레에 적절한 칼럼이, 오늘만 2개나 올라와 있다. 아래의 글.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여자 권투 선수를 두고 며칠간 엄청난 기사가 쏟아졌다. 알제리의 이만 칼리프 선수를 신뢰할만한 근거도 없이 ‘XY염색체’를 가진 남자 혹은 트랜스젠더라고 했다. 마치 대단히 불공정한 경기가 벌어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기자들이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칼리프 선수가 (인터섹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지정 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는 시스젠더 여성이란 걸 부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오시가 “성 정체성, 표현 및/또는 성적 변화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편견 없이 안전하게 스포츠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원칙을 정한 것에 주목하는 대신, 뜬금없이 출전 찬반 논쟁을 붙였다. 칼리프 선수가 어린 시절, 여자답지 못하다고 괴롭히는 남자 아이들의 주먹을 피하면서 권투 선수로서의 재능을 발견했고, 여자가 운동하는 걸 싫어하는 아버지의 반대를 이겨낸 사연에 관심을 가졌다면 그리 쉽게 남자같다고 모욕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가 올해 1월에 알제리의 소녀와 아동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 롤모델로서 유니세프 대사로 임명된 사실, 때마침 지난 4월 유엔인권이사회가 인터섹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결의안을 첫 채택하는 역사적 성과는 외면했다. 무엇이 상식이 될 것인가. 언론의 책임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52712.html
여기서 중요한 건 XY 염색체를 가지고 있더라도 여성일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안드로겐(남성호르몬) 무감각 증후군이 있는 경우 XY염색체를 가졌기에 남성호르몬이 분비되긴 하지만 안드로겐 수용체의 기능에 결함이 있어 표적 세포에 적용하지 못해 남성으로 분화·발달이 되지 않아 여성의 외형으로 태어난다. 국내에서 성소수자를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순천향대 서울병원 젠더클리닉 이은실 교수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XY염색체를 가진 안드로겐 무감각 증후군(완전형)을 가진 여성인 경우 남성호르몬 수치가 높지만 작용하지 않으므로 의미가 없다”라며 “남성호르몬이 근육량과 운동 능력의 발달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데, 이 경우에는 남성호르몬을 수용할 수 없으므로 남성호르몬이 제 기능을 못 하는 상태라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칼리프 선수 당사자가 자신의 염색체 관련해 입장을 표명한 적이 없으니, 섣부른 판단을 자제해야 할 것이 분명했음에도 언론은 마치 “성전환 수술”을 한 것마냥 보도한 것이다.
오늘 한겨레에는 올림픽과 ‘그린워싱’ 논란에 대한 기사도 실렸는데, 적절한 좋은 얘기다. 아래의 링크.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152367.html
물론 이 얘기는 한겨레만 한 얘기가 아니고, 오늘만 한 얘기도 아닌데, 굳이 이걸 거론하는 건, 오늘도 파리에서 고기를 안 준다 침대가 불편하다 이러는 얘기가 조선일보에 실렸기 때문. 아래 기사.
https://www.chosun.com/sports/sports_special/2024/08/08/EJ6SDMRXN5DRZPU7A6SXLFQXRA/
내가 볼 때는 골판지 침대나 채식 식단에 대한 ‘찬반’에 갇히는 거 자체가 함정이다. 이 기사에도 보면 무슨 올바름 어쩌고 하면서, 선수들이 ‘최고의 기량’을 펼칠 수 있게 해주면 문제가 다 해결이 되는 양 하고 있다. 어이, 그런 식으로 가면 애초에 올림픽 정신이란 게 뭐였는지부터 얘기를 해야돼요.
근대 올림픽 누가 하자 그랬냐? 프랑스의 귀족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쿠베르탱씨지? 그 양반이 올림픽을 애초에 하자 그런 이유가 뭡니까? 이 양반에게 스포츠란 교육이요 수양이요 자기계발이었다 이것임. 이걸 지구적 단위로 하면 어떻게 됨? 전쟁이 아니고 올림픽을 통해 경쟁을 하면서 인격도야 하자는 것임. 그리하여 올림픽으로 세계평화를 이룩하자는 게 이 분의 구상이었다. 그게 실제로 되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런 측면에서 보면 골판지 침대랑 채식 식단이 뭐 나쁘냐? 올림픽 정신으로 보면 이런 시도를 하는 게 오히려 당연하고, 자국 선수들이 성적을 내야 하니 그런 올림픽 정신 같은 대의는 없는 나라들이나 챙기시고 우리는 돈으로 해결한다고 하는 강대국의 태도가 올림픽 정신 훼손이지. 사실상 회장님이 해결하는 한국도 비슷하고. 그러니까 그런 걸 종합해서 보면 골판지 침대랑 채식 식단을 비판적으로 다룰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비판 논리는 그게 그린워싱에 불과하다는 걸 지적하는 것이라는 얘기.
세상사람들 다 거꾸로 말해도 언론이라고 하면 이런 공자님 말씀을 주워섬기는 척이라도 해야 되는데, 해도해도 너무한다 싶어서 이렇게 써놓는 것임. 올림픽! 너무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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