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일본 할배의 만화영화를 보러 갔었다. 당연하게도 그런 풍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 않아 굳이 볼 생각은 없었지만, 다들 대실망이라고 하기에 급 흥미가 생긴 것이었다.
2차 대전과 그 후의 그 시절은, 그러니까 그런 거다. 죽음과 맞닿은 전쟁을 하던 그 논리로 재건과 생산으로의 동원을 정당화했다. 전투기 엔진 만들던 설비를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데 투입했다. TV, 전기밥솥, 세탁기가 현대적 ‘3종의 신기’로 등장했다. 전쟁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아이러니다. 죽음이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삶이다. 1941년생인 일본 할배의 성장기는 그런 때였다.
전쟁과 불길로 소멸한 엄마를 찾고 싶은 본의와 순산이라는 현실의 생산을 맡아야 할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탑으로 돌입하는 주인공은 마치 이상과 생계를 저울질하며 대중예술에 투신하는 할배의 초심을 말하는 듯 보인다. 그런데 창작이라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거나 혹은 감수하는 세계이고, 동시에 죽은 세계이면서, 죽은 것에 삶을 불어 넣는 세계이다. 창작물은 녹아내린 가짜 엄마나 깨져버린 장미처럼 살아있지 않다.
거기에 삶을 불어 넣을 수 있는 것은 아직은 늙지 않은 할머니처럼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으면서도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인물처럼 느껴진다. 펠리컨들의 침공은 곧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님을 깨닫게 되는 사건이다. 젊은 상태의 엄마가 팰리컨을 불태우는 과정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의 씨앗들도 어쩔 수 없이 불태워지는데 이건 전쟁의 논리다. 더군다나 펠리칸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도 좋아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이상이랄까 그런 것을 찾아 달려온 것이지만 그 안에도 죽음으로 삶을 혹은 삶으로 죽음을 정당화 하는 논리 즉 현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탑 안에서 꿈과 환상의 모험을 쫓은 끝에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람’에 도달하지만 거기서 발견하는 것은 주인공에게 네가 싫다고 말하는 그의 본심이다. 세속적으로 말하면 전처의 자식이다. 좋을리가 있겠나? 그런데 거기서 주인공이 또 깨닫게 되는 것은 삶과 죽음의 동질성, 즉 이상과 현실의 어떤 융합이다. 그 둘은 자매이면서, 같은 자식의 어머니가 될 운명을 지고 있다. 애초에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람’은 현실의 인물이면서 왜 탑에 이끌렸는가? 경위야 어찌됐든 그도 나름의 이상이랄까 명분을 품은 것이다. 주인공을 어른스럽게 대하지 않고 싫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속내이다.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 이들 자매는 같다고 해도 좋다. 같으면서도 다른 것이다. 그러니까 주인공이 한쪽하고는 거리를 두면서 다른 한쪽을 그리워하며 울며불며 쫓을 필요가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람’을 더 이상 그렇게 부르지 않고 “나츠코 엄마”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
모험의 클라이막스는 업계의 정점에 달한 일본 할배 그 자신을 마주하는 씬일텐데, 만들어 놓고 보니 자기 혼자 외골수로 도를 추구한다고 뭐가 되는 세상은 아니다. 그렇게 뭘 해봐야 세계는 고작 하루 정도 연장될 뿐이며, 그렇게 만든 세계마저도 야심가가 이끄는 군국주의 잉꼬 집단에 의해 침식되고 있다. 이 야심가는 나름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속이 빤하고 속물적이다. 믿을만한 후계자를 세워 세계를 유지해볼까도 하지만 사실은 의미가 없는 몸짓이다. 자기가 만든 세계 안에서도 전쟁과 죽음, 삶과 생산과 이 사이를 잇는 기만은 계속된다(여기까지 왔으면, 어느새 그것이 자연이며, 생명이다!). 애초에 세계를 유지하는 동력은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그게 대중이든 자본이든 뭐든)에서 왔다.
그러한 끝에, 군국주의 잉꼬가 고귀한 이상 혹은 심혈을 기울인 유산을 끝내 망쳐버린다면? 그래도 친구를 남겼으면 된 게 아닌가? 애초에 이렇게 되기 훨씬 전의 어떤 시점에 뭔가를 이루는 게 아니라 친구를 택해야 됐던 게 아니었을까? 여기까지 왔는데도 남긴 게 없다고 하면, 그래도 ‘나츠코 엄마’를 현실에 돌려주는 일은 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뭐 그런 거다.
이게 뭐랄까, 전쟁의 가해자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온전한 피해자일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공범의식을 가질 수도 없는 그 세대 일본인들의 은퇴 심경 같은 거라고 하면 어떨까? 아무튼 어떤 공감이 될만한 얘기라고 생각했으니까 만든 거 아니겠나.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70대 노년층이 보면 만족할만한 얘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그런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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