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일본 사람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는다는 글을 올렸는데, SNS에서 누가 엄중한 비판을 했다고 하여, SNS 사용을 크게 꺼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들어가서 읽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인데, 이번 기회에 또 한 번 정리하는 게 낫다 싶어 별도의 글을 작성하기로 한다. 이것 외에도 삼중수소에 대한 댓글이 있던데, 그건 따로 쓰겠다.
일단 제기된 비판은 다음과 같다.
이런 글의 특징은 굉장히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일본 내에서도 반대 의견이 있다는 지적이나, 폐수 방류 문제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으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말들은 매우 그럴듯하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이 문제의 본질은 어떤 사람들이 한국 정부가 일본의 폐수 방류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 것을 가지고 한국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후쿠시마 앞바다에 지엽적인 영향이 있을 가능성을 신중하게 검토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겠으나, 그게 있는지 없는지와
(1) 한국에 영향을 미치는가
(2) 현존하는 다른 오염원들에 비해 한국에 현저하게 큰 영향을 미치는가
(3) 그것을 근거로 타국의 폐수 방류에 대해 간섭하는 것이 적절한가
(4) 간섭 여부에 대한 한국 정부의 판단을 놓고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적절한가등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후쿠시마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 폐수 방류가 걱정할 만한 일이라는 데는 감정적으로 동의할 수 있고, 예기치 못한 위험이 숨어있을 수 있다는 것도 원론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이런 것은 한국에서 이 문제가 다뤄지고 있는 상황과 크게 관련이 없다.
가령 향후 100년 동안 후쿠시마 현 주민이 암으로 사망할 확률이 2배 증가한다면 (매우 가능성이 낮은 사건이며 극단적인 예시이다), 틀림없이 큰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것이 폐수 방류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것을 정당화해 주지는 않는다. 도쿄 권역을 포함해 태평양에 인접한 지역에 사는 모든 일본인의 암 발병 확률이 10배 증가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본의 국내 문제일 뿐이며, 한국 정부는 그에 대해 간섭할 이유가 없다. 한국인들이 그 불간섭을 이유로 한국 정부를 비판할 명분도 없다.
타국에서 하는 일에 간섭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 있는 일이므로, 자국에 유의미한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뚜렷한 근거를 갖춘 예측 없이 타국에서 하는 일에 간섭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국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편을 들어주면서 그 근거가 “타국 현지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같은 것이어서야 도저히 들어줄 가치가 없다.
* * *
이 글에서는 “정확히 말하면 일본 사람들의 심경은 복잡한 것이다” 같은 괴상한 망상을 제시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폐수 방류 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나 환경 운동을 하는 사람들만이 목소리를 내고 있을 뿐이다. 다른 태평양 국가에서는 더더욱 관심이 없다.
특정인의 문제제기에 대한 논설이므로 경어체로 하겠다.
우선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해도 있는 듯 하여 바로잡아 봅니다.
선생님 글은 쓰신 마지막 문단이 핵심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공유하신 저의 그 글은 민주당이나 윤석열 정권의 대응을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자기들 얘긴 과학이고 남이 얘기하는 건 다 괴담이라고 당당하게 사회적으로 발언하는 과학자들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걸 아시기 때문에 ‘편을 들어주는’이란 단서를 붙이셨을듯도 한데요. 물론 저 개인으로서는 민주당과 윤석열 정권에 대한 판단을 갖고 있습니다. 근데 그건 뒤에 따로 얘기하더라도, 그 글에서의 초점은 과학자들의 태도라는 것을 분명히 하겠습니다.
한국인이라도 세계 시민의 일원으로서 일본 정부의 방류 결정에 대한 입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중국, 러시아,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의 어떤 정책과 결정에 대해 입장을 가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일반 시민도 그럴진대 과학자의 과학적 태도란 어때야 할까요?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므로 방류에 반대해선 안 된다’는 식의 주장을 과연 과학적이라 할 수 있을까요? 한국인-과학자는 자국에 영향을 미치지만 않으면 타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선 외면하거나 상관하지 말자고 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겠지요. 자기들 주장은 다 과학이고 남의 주장은 한사코 괴담이라니 하는 소립니다.
백보 양보해서 ‘나는 과학이고 너는 괴담’이라는 주장의 타깃이 정치권이나 이른바 시민사회라면 그냥 참 오만한 사람들이로구나 하고 말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전 글에서 인용한 과학자가 쓴 글을 보면 다른 학자에 대하여 초등학생 수준도 안 된다느니 그보다 뛰어난 학자가 넘쳐난다느니 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런 글을 동아’사이언스’에다가 기고를 했습니다. 혹시 제 블로그에서 못 찾으실까 싶어서 링크를 붙입니다.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60752
정상적인 교육을 통한 학위를 받고 나름의 내세울만한 성과도 갖고 있는 학자를 이렇게 평가하는 게 과연 ‘과학적’인 것일까요? 이 과학자 분들이 혹시 그런 주장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보건학자, 생물학자는 운동권이다… 반핵인사이다… 진보 성향이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불순한 괴담분자이다…
그런 주장은 이 과학자분 혹은 분들에게도 그대로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 윤석열 후보 캠프에 있었다든가 공동으로 토론회를 개최하고 주관했다든가 지지했다든가 그런 말씀을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전 그런 얘긴 일부러라도 안 합니다. 과학자의 과학적 소양과 과학적 논의의 태도를 논하기 위해 꼭 필요한 얘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면, 비주류고 소수의견에 속하는 학자라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이런 취급을 당해도 되는 것일까요? 과학사를 통틀어보면 비주류/소수의견에 속한 과학자의 주장이 일부라도 증명되는 일이 비일비재입니다. 과학자 커뮤니티 내에서 자기들끼리 품평할수야 있겠지만, 그 녀석들 주장은 다 괴담이며 다룰 가치가 없는 주장이라는 식으로 공론장에서 말한다면, 그것은 과학일까요? 애초에 과학이란 뭘까요? 이 블로그에 보면 칼 포퍼나 뭐 그런 것에 대해 주워들은 알량한 지식을 적어 놓은 메모도 있는데요. 하여간, 저는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말 나온 김에 인용하신 글과는 별개로 윤석열 정부 대응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 정부에 더 적극적으로 말씀하는 게 좋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 생각은 여러 기회를 통해 얘기했는데요. 그게 꼭 오염수를 방류하면 일본을 공격하겠다고 협박을 하라든가 머리띠 두르고 드러누워야 한다든가 하는 얘긴 아닙니다. 말씀하신대로 오염수 방류는 일본 정부의 주권적 사항이므로 한국 정부는 물론 IAEA나 그 할애비가 와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주변국이니까 의견을 피력할 수는 있겠지요. 우리가 이 정도로 크게 우려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대안을 찾거나 연기하자는 등의 이런 저런 얘기가 나온다, 살펴줬으면 좋겠다… 이 정도 이야기를 해야 혹시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한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의 폭도 넓어지고,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재개 주장에 대해서도 응하기가 쉬워지지 않겠느냐… 저는 그런 생각입니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라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익히 아시겠지만, 실제 한일정상회담에서 대통령은 몇 가지 요구를 일본 총리에게 하였는데요. 크게 나누면 1) 문제 생기면 방류를 막아라, 2) 모니터링 결과 등을 알려달라, 3) 한국인 전문가가 검증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 라는 겁니다. 근데 1)은 이미 일본이 그렇게 하기로 한 사항이구요. 2)는 결국 3)과 연동될텐데, 3)에 대해선 일본 정부가 별다른 얘기가 없습니다. 대통령실은 한미정상회담 당시 일본 정부가 우리 요구를 다 사실상 수용했다 라고 설명했구요. 오늘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가 명시적 반대는 안 했으므로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로 평가하였는데요. 근데 그렇게 볼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방송국을 떠돌아 다녀야 하는 제 직업상 여당 소속이거나 여당을 지지하는 분들과도 이런 저런 대화를 할 기회가 있는데요. 우리 정부가 좀 더 강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보였어야 한다는 데에는 일정 정도 공감했습니다. 물론 이 분들 다수는 이른바 비윤으로 분류가 되겠고 결국은 저 개인의 경험이기 때문에 일반화하기엔 어렵습니다만… 다만 제 생각에는 그 정도면 일본 정부에 좀 더 우려를 표명해보자 라는 것 정도는 상식적으로 취할 수 있는 태도인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일본인들의 감정에 대한 저의 ‘괴상한 망상’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결국 한국에 앉아 생각하는 것이니 망상이라면 망상일 것입니다. 다만 근거가 뭐냐에 대한 설명은 조금 필요할 것 같은데요.
일반적으로 일본인들이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하면 그것은 맞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대개의 일본인들은 살인사건이 났다거나, 용의자가 도망 중이라거나, 전직 총리가 피살당했다거나 하는 얘기가 아니면 거의 언제나 시사에 관심이 없는 상태인 게 아닐까요? 제가 과문해서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정책적으로 찬반 양론이 부딪치는 이슈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이 표출된 것은 약 10년 전 안보법제 논란 이후 없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준으로 따지면 한국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데요. 물론 관심 자체는 이 문제가 일본에 비하면 더 정치쟁점화 돼있어 보다 높겠습니다만, 결국 그것도 이른바 정치고관여층의 얘기겠지요. 정치에 관심이 별로 없는 분들이 후쿠시마 오염수 얘기를 열내면서 하는 것은 딱히 보지 못했습니다. 안 했으면 좋겠지만 한다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정도지요. 천일염 사재기 같은 얘기도 있습니다만(이건 이것대로 별도로 다뤄볼만 하지요), 정부 여당이 자평하는대로 광우병 논란 당시와는 질적으로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결국 한국인 혹은 일본인들이 어떤 감각이다 라는 것은 언론을 포함한 공론장의 여론을 놓고 평하는 것일 수밖에 없을텐데요. 그런 전제를 놓고 말씀드리자면, 저는 직업 특성상 매일 새벽 여러 신문들을 보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일본 언론을 베낀 기사도 있고 기자가 쓴 칼럼도 있고 한데요.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이 쓴 칼럼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후쿠시마는 사고 상처와 재건 노력이 교차하는 곳이다. 집권 자민당은 선거 때마다 총리 첫 유세를 후쿠시마에서 시작한다. 공영방송 NHK는 수시로 후쿠시마 재건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여러 대형마트에서는 잊을 만하면 후쿠시마 농수산물 판촉 행사를 연다. 후쿠시마 복구를 맡는 일본 부흥청의 올 예산만 5523억 엔(약 5조 원)이다. 지진해일로 유실된 철도와 원전 인근 어항(漁港)은 복구를 마쳤다. 철도 여행객은 드물고 항구는 텅 비었지만 애초 경제성을 따진 사업이 아니었다.
일본에서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강하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10년 넘게 부흥에 땀 흘리는 후쿠시마에 ‘오염수’ 딱지를 붙이지 않으려는 정서가 크다. 근거 없는 소문으로 인한 피해를 우려하는 현지 어민은 반대하지만 일본 국민은 꺼림칙해도 후쿠시마에 민폐가 될까 방류 반대 의견을 드러내놓고 말하길 꺼린다. 다만 이건 일본 얘기다.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30718/120303060/1
도쿄 특파원이니 일본 현지인 도쿄에 체류하고 있을 것이고, 특파원 특성상 일본 언론을 상시적으로 모니터링 할테니,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했습니다.
또, 인용하신 글에 보면 남기정 교수가 교수신문에 쓴 글이 있는데요. 그 글에 일본 지방지들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와있습니다. 근데 거기 보면 ‘어쩔 수 없다’ 는 답변이 상당량 나온 걸로 보이는데요. ‘어쩔 수 없다’는 게 뭘까… 무엇을 어쩔 수 없다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그런 답을 선택한 사람들 심경을 나름대로 추론하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것이 뭘까요? 지금까지 해온 부흥의 노력이 있는데 폐로는 해야되겠고 방류는 그걸 위해 필요하다고 하니 어민들이 반대하고 일부 불안해하는 정서가 있다고는 해도 결국 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나… 이런 생각 아니었을지…
물론 그것 역시 망상이라고 하시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습니다. 직업 특성상 망상을 많이 해야 하고, 결국은 그걸 블로그에다가 쓰는 정도의 얘기이니 그 정도의 너른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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