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 기배동은 기안동과 배양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이다. 화성시는 옛날에 군이었다. 기안동과 배양동도 원래는 기안리 배양리다. 대개 시골과 주변 도시의 관계가 그렇듯 화성군 사람들은 옛날부터 다양한 이유로 수원시로 진출했다. 공부를 잘 해서, 돈을 벌어야 해서, 그냥 시골이 싫어서, 사고쳐서, 무언가에 쫓겨서… 등등.
우리 집도 그렇게 수원으로 옮겨 온 케이스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별 일이 다 있었다고 했다. 수원에서 인천으로, 인천에서 수원으로, 그리고 수원에서 용인으로, 다시 용인에서 수원으로 옮겨다녔다. 다만, 내가 기억을 하고 있는 시점에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이 돼있었던 것 같다.
방학 때는 기안리의 외가집에 종종 놀러갔는데, 지금의 기안초등학교 앞 언덕에서 사촌을 뒤에 태우고 자전거로 내려가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를 피하느라 옆 낭떠러지로 떨어졌던 일도 있었다. 안경이 얼굴에 짓눌려 깨져 피가 흥건했고, 외할머니가 말 그대로 맨발로 달려왔던 기억이다.
언론이 이름 붙인 이른바 ‘수원 세 모녀’도 원래 집은 기배동이라고 한다. 아저씨는 빚에 쫓겨다녔고, 빚쟁이들이 기배동 집까지 찾아오는 바람에 수원시로 거처를 옮겼다는 것이다. 추심으로부터 도망온 것이므로 당연히 전입신고는 어렵다. 아들이 있었지만 희귀병으로 사망했고 이후 빚에 쫓기던 부친도 사망, 모친과 딸들이 생계를 이어가보려 했지만 어려웠던 것이다.
언론에 많이 등장하는 이들 집의 문… 그 문이 있는 집은 권선1동이라고 하는데, 2012년에 서울에 올라오기 전까지 나도 살았던 동네이다. 내가 어릴 때는 그 동네 2층짜리 ‘연립주택’에 살았다. 1층짜리도 있고 2층짜리도 있고 했는데 대개 가난한 사람들이 살았고, 그래도 조금 사정이 나은 사람들은 바로 뒤쪽의 5층짜리 주공아파트에 살았다.
나이를 먹고 연립주택과 주공아파트는 SK뭐라고 하는 멋진 아파트 단지로 싹 바뀌었다. 대학 동기가 그 아파트에 살고 있어 몇 년 전에 친구들과 놀러간 일도 있었다. 2017년에 대세를 따르는 투표를 열성적으로 했던 이 친구들은, 돈을 꿔서 아파트를 사서 재산을 불리는 얘기도 하고 세금을 너무 많이 걷는다는 얘기도 하고… 그러더라.
그냥… 이 뉴스가 나오고부터 계속 복잡한 마음이라 일하러 가기 전에 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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