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평론가 하러 가기 전에 잠깐 여유가 있다. 또 한탄을 할까 했지만 최근 본 영화 얘기나 적으련다. 스포일러 있을 수 있다.
박찬욱 씨의 그 영화는 범죄자로 의심받지만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 여자와 자타공인 모범적 경찰이지만 자기 기만을 반복하는 남자의 얘기다. 여자는 팜프파탈의 전형인듯 했으나 순애보를 가진 순정파고, 남자는 ‘여자’에 무너지는 반듯한 남자인듯 했으나 오히려 외설적인 인물이다. 남자는 겉으로는 직분에 충실한듯 하면서 끊임없이 여자를 의심하지만 그렇다고 선을 딱 긋지는 못하고 정작 눈 앞에 기대하는 광경이 펼쳐지면 도대체 뭘 하는 건지 제정신을 못 차린다. 이에 비해 여자는 그 끝이 자기파괴에 도달하는 파국이라 하더라도 사랑에 솔직하고 충실하다.
여기까지 보면 팜프파탈이란 클리셰를 박찬욱식으로 뒤집고 비튼 것처럼 보이는데, 하필 여자가 탕웨이고 극중에서도 중국인이란 점까지 가미하면, 저강도이긴 하지만 하여간 숨길 수 없는 정치적 맥락이 드러나는 느낌이 있다. 극중에 등장하는 한국인들은 역차별, 원전완전안전(대표적인 자기기만이다)과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거나 돈벌레이다. 민족적 정통성은 오히려 중국인에 있는데, 이 중국인은 모든 등장인물 중 가장 주체적인 선택을 시종일관 한다.
보통 흔히 떠올리는 구도는 반대였을 것이다. 다른 영화에서 중국인은 돈만 되면 살인이든 뭐든 무엇이든 하는 사람들로 그려진다. 이 구도를 의도적으로 뒤집었다는 데에서, 이건 난민과 같은 외부자들에 대한 우리의 자기기만적 태도를 돌아보게 만들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할법한 대목이다. 굳이 난민 문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어쨌든 의도적으로 구도를 비틀어 버린 건데, 현실적으로 이걸 관객에게 납득시키는 일은 탕웨이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다. 그렇다. 이 역할은 탕웨이만 할 수 있다.
정치병자 입장에서 결국 정치적 얘기를 하고 말았는데, 박찬욱 씨가 굳이 정치적 코드(원전완전안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말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런데 그런 게 핵심이라기 보다는… 뭐랄까 영화에 대한 영화, 영화다운 영화였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영화를 별로 보지도 않는 제가 감히 말씀드리건대 영화다운 영화는 요즘 잘 없고… 설 자리가 많지 않은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 해변 씬, 특히 탕웨이와 박해일이 차례로 통과하는 두 바위? 사이의 길과 이어지는 해변의 파도, 그러한 미장센은 완벽한 고전영화였다. 박찬욱은 봉준호보다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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