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전화를 가끔 받는다. 아주 가끔이다. “어떻게 보세요”류의 뜬구름 잡는 질문을 해오면 이런 저런 답을 하는데 보통은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것 같다. 말한 걸 제대로 들었는지도 늘 의문이다. 뭘 기대하고 나 같은 사람에게까지 전화를 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지방선거 끝나고 어느 기자의 전화를 받았다. 사전투표율이 높아서 투표율이 높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아니더라 하기에, 그건 충분히 예상된 바 아니었느냐고 했다. 사전투표날부터 방송에 나가서 계속 한 얘기고 다들 비슷한 생각이었다 했는데, “제가 모든 방송을 보지는 못해서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내가 당신이 방송에서 하고 다니는 얘기를 다 알아야 하느냐’란 뜻인가 해서 잠시 고민… 그런데 내 얘기의 취지는 그만큼 대체적인 의견 일치가 있었던 문제 아니냐란 뜻이었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특히나 아 다르고 어 다른게 언론과 정치의 세계이다.
우리 한겨레의 박모라는 분이 글을 썼는데 이런 대목이 나온다.
지난 5일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낙마에 관한 질문에 “전 정권에서 유능한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나”라고 답변한 건, 검찰총장 시절 자신을 핍박했던 문재인 정부에 대한 트라우마와 집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큰 따옴표니까 직접 인용이다. 윤통이 저렇게 말한 게 있던가 싶어 검색을 해봤으나 안 나온다. 발언의 의도를 살리는 방향으로 마사지한 거 아닌가 싶은데, 여기서 아 다르고 어 다른 세계의 문제가 발생한다.
윤통이 당일에 했다는 명언은 처음에 속보로 이렇게 전해졌다.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훌륭한 사람 봤나”
두 눈을 의심했고, 기사를 검색해봤는데 이때만 해도 기사에 다 이렇게 써있었다. 나도 이 발언을 근거로 인터넷 방송에 가서 얘기를 했는데, 같이 출연한 사람들은 다른 말을 봤다고 했다. 나중에 검색을 해보니 발언이 바뀌어 있는데,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두 개의 예가 있었다.
1)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나”
2)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나”
그런데 추가된 부분이 ‘그렇게’냐 ‘이렇게’냐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렇게’라고 할 때는 ‘전 정부 장관들도 다 문제있는 사람들이었다’라는 거다. ‘이렇게’라고 하면 ‘내가 지명한 후보자는 전 정부 장관들 보다 훌륭한 사람이다’란 뜻이다. 즉, 전자는 ‘전 정부 문제’가 핵심이고 후자는 ‘내가 지명한 사람의 능력’이 핵심이다.
한겨레 박모님의 글은 내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윤통의 발언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면 큰따옴표를 쓴 것부터가 잘못인데, 그건 그렇다치고 어쨌든 마사지라고 봐도 ‘그렇게’의 경우인 때에야 대강 맞는 얘기가 된다. ‘이렇게’인 경우에도 갖다 붙이면 못할 얘기까진 아니지만, 확대해석이다.
그러면 실제 윤통은 뭐라고 말했을까? 현장 동영상을 돌려보면 ‘이렇게’가 맞다. 그럼 애초에 왜 속보는 저렇게 전달됐을까? 이후 보도에 혼동이 있는 이유는 뭘까? 윤통이 이 말을 할 때 하필이면 카메라 셔터음이 파바박 하고 막 플래시가 터진다. 현장에서 펜기자가 잘못 들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이지 않았나 한다.
그러니까 박모님과 제가 후원회원인 그 신문은 잘 좀 하시고.
그건 그렇고, 윤통의 문제가 된 이 발언과 최근 지인찬스 논란 등은 뭘 보여주나? 오늘 대통령실이 6촌이라는 이유만으로 채용이 안 된다면 그것도 차별이라고 했다. 권력의 무게를 아주 우습게 아는 발언이다. 저런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건 대통령의 세계관을 거스르지 않는 한도 내에서 수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윤통의 인사관이란 뭘까? 전 정권은 운동권 출신들 막 갖다 쓰고 민변으로 도배를 했으면서, 능력있는 사람을 나랑 가깝단 이유만으로 배제해야 할 이유가 뭐 있냐! 이런 항변 아닌가? 그러나 오늘날 운동권이니 뭐니로 폄훼되고 있지만 그건 어쨌든 최소한 지식인 사회의 어떤 네트워크의 연장이긴 한 것이다. 그 안에서의 평가와 판단에 대한 체계는 어쨌든 돌아가는 게 있단 말이다. 엘리트 시스템에서 못하는 걸 해보라는 취지의 정책 판단을 실현하는 수단이란 평가를 할 수 있다는 것.
반면 윤통식 측근인사는 크게 두 개의 필터로 이뤄지는데 첫째는 검찰에서 잘 나가던 사람이란 필터, 둘째는 나와 가깝고 내가 써봤고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는 필터이다. 대통령실은 대검찰청이 아니고 후자는 그저 정실인사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이건 ‘운동권 출신’이나 ‘민변’에 댈 것 조차도 아니다.
‘윤석열 사단’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굳이 대통령실을 대검찰청으로 만든 효과는 조만간 보게 될 것이다. 국정원의 움직임은 그 신호탄이다.
Comments are closed, but trackbacks and pingbacks are op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