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어떤 방송국에 갔는데, 제작진이 앞으로 코너를 개편하기로 해 여러명이 나와야 한다며 아이템 협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카톡을 이용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강한 어조로 말하는 것이었다. 눈 앞이 깜깜해졌다. 카톡은 어떤 사람들만을 위해 사용할 수 없는 플랫폼이다. 문자로 보내라면 주저할 얘기를 그냥 부담없이 막 던지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쓰잘데기 없는 단톡방들… 벌써 현기증 난다.
그러나 내 고집 때문에 프로그램 제작을 방해할 순 없는 것이다. 그래서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카톡 안 깔면 짜른다는데(물론 이 분들이 그렇게 말한 적은 없었다)… 수긍하면서도 수동공격성을 표출하니 그분들도 좀 그랬는지 다른 대안을 찾느라 분주하다. 미안하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이다.
고립된 삶… 어떤 분들이 무슨 지원금을 받기 위해 독서모임을 만들었다는 연락을 주시기도 하고 그렇다. 지식이 목마른 분들의 독서모임은 권장할만한 일이다.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서로 잘난척이나 하는 모임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책에 대한 반응을 여기다가도 죽 올렸지만 정말 좋은 말씀 주시고 잘 읽었다는 분들이 많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찾아보면 애초에 별로 책을 읽을 마음도 없는데 읽어야 했던 분들도 있는 것 같다. 좀 배운 분들이 다수라고 보는데, 이 분들의 특징. 책을 읽기 전에 이미 책의 내용과 저자의 성향을 본인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읽다가 모르는 얘기 나오면 그냥 무시한다. 자기 예단에 맞는 얘기나 표현들만 계속 수집해서 그 무슨 확증편향 한다. 그 결과를 독서모임 같은 데서 서평이랍시고 자랑스레 말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책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마음을 갖지 않고 있는데 왜 독서를 하는가. 결국 비판 뭐 그런 거를 하는 자신의 모습에 심취하며 남들이 따봉이나 눌러 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카톡은 집단적 독백이 되고 네이트판과 트위터에선 작품 경연장이 막 열리는 거다. 내가 비판하는 거 자체를 놓고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 그건 얼마든지 하시고… 심지어 권장한다. 근데 그게 아니고 똑바로 안 읽고 말하니까 하는 얘기다.
아무튼 갑자기 딴 생각하다 열 받아서 여까지 왔는데… 독서는 결국 책이 중요한 거고 책이라는 거는 거기에 담긴 메시지가 중요한 거 아니냐. ‘책을 읽는 나’라는 서사의 주인공이 돼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에요. 서사든지 주인공이든지 그런 것은 다 필요 없고 나는 그냥 나대로 존재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를 잃고 무슨 허구의 주인공이 돼봐야 뭘 합니까. 그런 것은 환상이다.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다이어트도 할 수 없다. 몸무게 90킬로그램 이제 어떡할거냐.
Comments are closed, but trackbacks and pingbacks are op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