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방송을 하러 갈 때 10분 늦게 나가면 30분 늦게 도착하는 마법 덕에 어제는 늦어버렸다. 그래서 오늘은 10분 일찍 나갔는데 방송 시작도 전에 도착해버렸다. 좀 그래서 SBS 앞의 스타벅스에 가서 좀 앉아 있었는데 옆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귀에 들려왔다. 더블민주당을 찍으려고 했는데, 투표용지에 더블민주당이 없어서 아무거나 찍었다는 거였다. 같이 있던 다른 사람이 더블민주당은 더블시민당 아니냐 라고 하니 전혀 몰랐다 라고 하더라.
중요한 건 여기가 SBS 앞의 스타벅스라는 사실이다. 최소한 화이트칼라다. SNS에서 늘 화려한 논리를 자랑하는 식자층이 볼 땐 황당한 일이겠지만, 비슷한 일이 부지기수일 거라고 본다. 지능이나 소양의 문제가 아니다. 관심의 문제다. 그래서 지금 선거 뉴스가 다 이런 거다.
그래서 정치를 어떤 기술의 문제로 보는 관점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실제 베버가 뭐라고 했는지와도 관계없이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말하면서 그런 관점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가’의 자질이 ‘기술’에 있다면 가장 모범적인 정치인은 세습정치인일 것이다. 오늘 중앙일보 칼럼에 이런 대목도 나오대.
한국인은 쉽게 납득 못 할 일이지만 일본 내 분위기는 다르다. ‘어설픈 자수성가보다 잘 키운 세습이 낫다’는 기류가 있다. 자민당 내 사정에 밝은 재일민단 관계자는 “총리가 될 만큼 싹수가 있는 세습 정치인에 대해선 병아리 시절부터 자민당이 전담 교사를 붙여 다방면에 걸친 교육을 한다”고 했다. “제대로 된 세습 정치인을 길러내는 쪽이 언제 사고 칠지 모르는 근본 없는 신인을 발탁하는 것보다 안전하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기술이 필요 없다는 거냐 라고 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굳이 말하자면 모든 사회구성원이 정치의 당사자가 돼야하고, 그 모두가 소명의식을 가져야 되겠지. 정치평론이라는 게 어떤 전문적 지식의 나열이나 엘리트정치 내부 정보의 유출, 통계학적 분석에 머무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는 그 자신의 내부 논리가 아니라 외력으로 굴러간다. 유튜브언론인의 180석 발언이나 김대호 씨의 늙으면 모두 장애인 발언이 본의와 관계없이 정치적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를 바꾼다는 것은 내부의 부품을 업그레이드 하는 게 아니다. 외력의 조건을 바꾸는 것이다. 정치평론을 전문가나 어떤 재야의 고수가 아니라 나 같은 놈 포함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믿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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