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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좌파와 석열왕과 팬덤정치

2022년 8월 23일 by 이상한 모자

대선에서 어떤 자칭 좌파 단체들이 사실상 석열왕 지지를 선언하는 코미디를 벌이고 어떤 분은 이 논리로 책도 내고 별 일이 다 있었는데, 이제와서 함 봐봐라. 자유민주주의? 적법절차? 다 어디갔냐? 뭐 정상참작을 하자면, 그 단체들에 내분도 있고 그랬다는 사실까지 온정적으로 내가 보려고 하지만, 하여간 스스로 좌파임을 부정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냥 극우파인 석열왕을 지지했기 때문에? 아니지. 그게 비판적 지지와 다를 것도 없는 역-비판적 지지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좌파의 선택지를 양당정치의 부산물에 한정한다는 점에서, 체제적 변화를 구상해야 할 좌파가 좌우로 진동하는 것에 그치는 진자운동의 정치, 체제 유지 status quo의 수호자를 자처한다는 점에서 완전한 배신이었던 것이다.

이 얘기 하면 또 버릇처럼 그래서 이재명이 됐으면 뭐 달랐겠냐~~ 막 이러는데, 앞의 문단을 다시 읽으시오. 역-비판적 지지는 비판적 지지와 다를 바 없다, 라는 말은, 당연히 비판적 지지는 대안이 아니다란 말을 내포하는 거지? 좌파의 이재명 지지는 아마도 비판적 지지겠지? 당연한 거 아니냐 이 답답한 인간들아. 이 얘기를 또 해??? 1윤석열 욕엔 반드시 1이재명 욕을 동반해야 하니? 옛날에 중궈니횽이 즐겨쓰는 표현 빌자면, 하나님이 굳이, 머리를 달아주셨잖아요.

이런 게 팬덤정치의 원형이야. 팬덤정치라 그러면 아~~ 그냥 막 무비판적으로 누구를 추종하는 거구나, 그런 ~빠들을 혼내주자는 거구나 그냥 이렇게 생각하지? 팬덤정치란 왜 작동하냐? 그게 상대에 대한 반대라는 ‘나의 선택’을 정당화 하는 어떤 기제란 말이다. 그런 점에서 팬덤정치는 요즘 말로 무지성이 아니고 극도의 합리성이다. 예를 들어 어떤 좌파가 더블민주당 반대하느라고 석열왕 지지를 해버렸다면, 지금 그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별 소릴 다 할 거 아니냐. 실제 그런 사람들 있을걸? 팬덤정치란 게 그런데서부터 출발하는 거야. 지금은 그냥 지들 맘에 안들면 다 팬덤정치라고 하지만… 누가 그러냐고? 장이사장님이 그러더라.

얼마 전에 누가 그러더라. 이제부터 좌파는 반민주당 비국민의힘 노선으로 가야 한다… 내가 볼 땐 그것도 웃긴 거야. 그게 비민주당 반국민의힘 노선으로 가자, 이거랑 뭐가 다르냐? 반민주당 반국민의힘 이렇게 표현해도 마찬가지야. 뭔가에 대한 반대, 반대에 대한 반대, 반대에대한반대에 대한 반대… 자기 내용도 없이 외부 변수를 겨냥한 포지셔닝 만으로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강변하려는 태도야 말로 좌파가 직면한 위기의 최대 원인이다.

뭘 더 반대하고 덜 반대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적어도 아 쟤네는 자기 기준이 있구나, 이런 믿음을 갖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내가 그랬지? 더블민주당이 검수완박 할 때 차라리 정의당이 국힘이랑 같이 필리버스터를 했어야 됐다고. 그게 국힘이랑 한편 먹는단 얘기가 아니고 자기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석열왕 비판은 비판대로 하고…

이런 얘기를 하려고 책까지 썼잖아. 현실은? 정의당과 역逆정의당의 대립? … 하나님이 머리를… 에효 그만합시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비판적 지지, 좌파, 팬덤정치

한동훈의 개념남발

2022년 8월 23일 by 이상한 모자

오늘 신문을 보다 후니횽이 ‘2차 가해’란 주장도 했다는 걸 알게됐다. 가령 조선일보 기사…

한 장관은 또 “최 의원이 저에게 말하는 건 2차 가해”라며 “가해자가 피해자를 상대로 이런 식으로 대면하는 게 맞나”라고 말했다.

… 라고 표현돼있다.

어제도 썼지만 왜 가해자 피해자 개념에 집착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뒤집어 말하면, 장관이 한동훈이 아니면 최강욱 씨가 법사위원을 해도 되는 거냐??? 생각을… 생각을 좀 해봐! 하나님이 경우를 따져 문제 해결을 하라고 인류에 머리를 달아주셨는데, 그걸 거기에 쓰지 않고 쟤가 누구 편인지, 지금 이 얘기가 누구에게 유리한 쪽으로 갈 것인지 냄새를 맡는 더듬이 비슷한 걸로나 쓰니까 얘기가 이렇게 되지.

아시다시피, 2차 가해란 주로 성폭력 사건에서 많이 써온 개념이다.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 때문에 그렇다. 성폭력을 당한 여성은 2차적인 가해의 대상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건 지금도 그렇다. 남들이 낙인찍고 수군대는 통에 피해자는 스스로 피해를 입은 사실마저 인정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 그래서 2차 가해 얘길 하는 거다.

그런데 이 개념을 요 한 10년 내 너도 나도 멋대로 쓰며 ‘피해자 정체성’을 ‘내 존재의 정당성’으로 치환하는 세태가 자리 잡았다. 정치권도 그러한 행렬에 동참하면서 3차 가해니 4차 가해니 하는 말까지 등장하였다. 가히 아무말 대잔치의 시대이다. 후니횽도 마찬가지다. 맞는 논리로 맞는 얘기를 하는 게 그렇게 어렵나? 아니다. 그냥 상대방에 불리한 언쟁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이러는 거다.

정작 여성계에선 2차 가해니 피해자 중심주의니 하는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논의를 하던 차이다. 거짓말 같냐? 내가 아예 자료집을 링크한다.

https://www.womenlink.or.kr/archives/19162

행사에 대한 기사도 링크해줄테니 봐라.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198

좀 읽고, 지금 뭔짓거리들 하고 있는지 좀 깨닫길 바란다는 얘기다. ‘피해호소인’ 이것도, 여기다가도 몇 차례 썼지. 그거 원래 족보에 있는 단어라고(물론 적자는 아니고 서자 정도…). 미쳐버린다니까?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2차 가해, 한동훈

검사의 세계에서 벗어나야

2022년 8월 22일 by 이상한 모자

오늘 후니횽이 상당히 오바했다. 신언서판이 어쨌다느니 했는데 밑천이 드러나고 있다고 본다. 화제인 최강욱 씨와의 설전을 봐도 문제가 뭔지 딱 나온다.

최강욱 씨 문제는 기소까지 된 사람이 법사위원인 게 적절하냐, 이것만 따지면 된다. 이해충돌 얘기도 그러한 큰 틀에서 결론이 나야 한다. 이해충돌 논리를 후니횽과의 관계를 놓고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결론나지 않는다. 후니횽이 수사를 한 것도 아니고 수사지휘를 할 것도 아니고 원론적으로 말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여당이 먼저 굳이 채널A 사건과 후니횽을 특정해 연상케 한 건 정치적 수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여기에 후니횽이 끼어들어서 ‘내가 피해자고 네가 가해자이므로 이해충돌’이라고 주장한 건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다. 가해자니 피해자니는 상관없다. 여기가 학폭위인가?

그 외, 이상한 얘기의 연속이었다. 검수완박 얘기하면서 자꾸 등 중을 얘기하는데, 일전에도 썼듯이 그거 아무 관계없다. 등이 아니고 중으로 했어도 시행령은 똑같이 개정한 후 문제없다고 했을 거다. 굳이 등 중 얘기 하는 건 더블민주당이 자기 꾀에 걸려 자기가 넘어졌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맥락일 뿐이다. 이 사태의 본질은 더블민주당이 불가능한 걸 스스로를 가능하다고 속이면서 이유도 없이 괴상한 입법으로 밀어 붙인 것에 있는 거지 등인지 중인지에 있는 게 아니다.

김학의 건도 그렇다. 저도 열받는다, 안타깝다, 돌이켜보면 사건 당시에 검찰이 더 잘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그러면 되는 것이다. 그러고 있다 보면 국힘 의원들이 김학의가 나쁘다고 안 되는 수사를 억지로 한 건 잘한 거냐! 라고 할테고, 문정권의 문제는 그때 얘기하면 된다. 근데 굳이 김학의 건을 갖고 물어보지도 않은 걸 얘기하면서 역공을 펴려고 드는, 그런 게 도대체 뭐냐?

국회의원이 아무리 국개우원이어도 형식상 국민의 대표이고 장관은 소통령이든 뭐든 행정부의 일원이다. 국회에 왔으면 그에 맞는 처신이 필요하다. 아무리 더블민주당이 졸렬해도 오늘처럼 하면 얼마 못 간다. 지금이야 나는 새도 떨어뜨릴 것 같지? 그 나는 새 신세가 되는 게 한순간이다.

왜 후니횽은 1절만 해도 될 거를 굳이 2절, 3절까지 무리수를 써가면서 정치적 주장을 하려고 드는 걸까? 바로~~ 그것이~~~ 한동훈 검사인 것이다. 검사들이 법전만 보며 열심히 하면 세상에 이러고 있을 일이 뭐 있겠나. 큰 수사에서 중요한 건 여론의 논리를 구성하는 거고, 싸이즈가 큰데 혐의가 애매한 범죄, 사건일수록 이게 중요하다. 예를 들면 고발사주를 제보사주라고 엎어치고 그런 거 있잖아. 내가 볼 때 한동훈 검사는 거기에 특기가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문제의 본질은 윤통도 그렇고 후니횽도 그렇고 그런 걸 ‘정치’라고 착각한다는 데에 있다. 대개의 정치인들이 그런 기술에 의존한다는 데서 그것도 정치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통치를 그런 걸로만 할 순 없는 거다. 그런 점에서 계속 이런 식이면 후니횽도 마찬가지로 고양이니 기타니 쨰즈니 하며 온갖 멋있는 척 다 해도 바닥이 드러나리라 본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검사, 검수완박,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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