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모처럼 오후 방송 일정이 없었다. 중요한 인터뷰 같은 걸 잡으면 막 취소도 되고 그런 모양이다. 이거 뭔가 곧 실직하는 거 아닌가 하는 괜한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오후에 잘 시간이 확보돼서 점심 약속을 잡는 사치를 부려봤다.
집에 와서 잠깐 누웠다 곧 잠들었는데, 라디오 방송을 하는 꿈을 꾸었다면 믿겠냐? 이거 뭐 쉰 거야 만 거야… 눈 뜨고 이제 또 내일을 준비하기 위한 일을 해야 하는데 일이 손에 안 잡히고 막막하다. 아, 그리고 내가 색소폰전문가가 김종인을 어떻게든 할 거라고 내가 그랬잖아! 빨리 가서 성지순례들 하시오. 조건도 봐라. 결국 총괄선대위원장 주고(이게 상임선대위원장이랑 뭐 다르냐) 공천은 손 안 대고 그걸로 합의한 거지. 그때 얘기한 그대로잖아!
하여간 사람들 참… 그런 거 예측하는 게 맞고 틀리고가 뭐 중요하다고. 어떤 조건에서 누가 무엇을 왜 하는지 해석하는 게 중요한 거지… 정치평론은 장학퀴즈가 아니고 우리가 체제에 대한 이해의 정도를 높이기 위하여… 에휴… 그만하고.
오늘 아침에는 21뭐라는 잡지에 보낼 글을 써야해서 커피 가게에 갔는데, 거기서 서지현 검사를 보았다. 아마 라디오 출연하고 아침 식사를 하시는 모양이다. 마음이 좀 그랬다. 박사가 어쨌다고 맨날 떠들지만 내 스스로의 삶에 왜 부끄러움이 없겠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는 것만이 방법이다.
이제 곧 금요일인데 길고 긴 하루를 마치면 일주일 중 유일하게 완전히 쉴 수 있는 토요일이 된다. 딱 하루이다 보니까 하루종일 잠이나 자는 것은 아깝다. 그러다보니 뭘 또 부산스럽게 하게 된다. 평일엔 일하느라 안 자고, 쉬는 날엔 노느라 안 자고, 그럼 언제 잔단 말인가. 잠은 사치이다.
요즘엔 사실 뭘 하는 것보다도 결과적으로 뭘 할까 고민하는 것에 시간을 더 쓰는 것 같다. 왜 이러냐. 내가 왜 이러냐. 뭐가 문제냐 나는. 무슨 문제냐. 잠 덜 깬 횡설수설은 그만하고 탄산수 마시고 속 차려야겠다.
어제 무슨 대화를 하다가 붉은돼지 얘기가 나왔는데 그러면 당연히 가토 도키코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 오늘 낮에 왠지 생각나서 찾아 들었는데 괜히 눈물이 나오고 그랬다. 이제는 사모펀드 또는 코인 얘기나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운동권 출신이 가사를 읽는다면, 같은 마음일 것이다.
가끔은 옛날 얘기를 해 볼까
언제나 가던 그 단골가게
마로니에 가로수가 창가에 보였었지
커피 한잔의 하루
보이지 않는 내일을 무턱대고 찾아서
모두가 희망에 매달렸어
방황하던 시대의 뜨거운 바람에 떠밀려
온몸으로 시대를 느꼈어… 그랬었지
길가에서 잠든 적도 있었지
아무데도 갈 곳 없는 모두가
돈은 없었지만 어떻게든 살아갔지
가난이 내일을 실어날랐지
작은 하숙방에 몇명이나 들이닥쳐
아침까지 떠들다가 잠들었다
폭풍처럼 매일이 불타올랐어
숨이 막힐때까지 달렸어… 그랬었지
한 장 남은 사진을 봐
구렛나룻의 그 남자는 너야
어디에 있는지 지금은 모르지
친구도 몇명이나 있지만
그날의 모든 것이 허무한 것이었다고
그렇게 아무도 말하지 않아
지금도 그때처럼 이루지 못한 꿈을 그리며
계속 달리고 있지… 어딘가에서…
가토 도키코의 사연에 대해선 우리 존경하는 장석원 님이 2007년에 글로 정리해놓은 것이 있다.
2006년은 헝가리혁명 50주년의 해였다. 지난 1998년, 68혁명 30주년이 지구적으로 시끌벅적하게 치러진 것에 비하면 50이라는 숫자의 남다른 의미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조용하게 지나갔다. 당사자인 헝가리가 봉기에 가까운 반정부 시위로 과거를 기념할 여유가 전혀 없었다는 것도 원인 중의 하나일 것이다.
헝가리혁명은 동유럽 바깥의 사회주의자들에게 ‘스탈린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헝가리의 인민들에게 연대의 인사가 아니라 탱크를 보내는 소련을 보면서 스탈린주의와 단절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좌익들 중에 일본인인 구로다 간이치도 있었다.
그는 스탈린주의란 무엇인가, 스탈린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당시 일본에는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었던 트로츠키의 사상을 접하게 됐다. 그리고 일본의 첫 번째 트로츠키주의자가 됐다.
비록 일본 트로츠키주의자의 절반은 그를 죽이고 싶어 할 만큼 미워했지만 어쨌든 1957년 이후 그는 일본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그런 그가 2006년 6월 26일 사망했다. 그의 부음을 접하고 머릿속에 떠오른 노래가 가토 토키코 여사의 ‘가끔은 옛 이야기를’이었다.
이 곡은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92)”의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듯이 이 곡은 우리로 치면 386세대에 해당하는 일본 ‘전공투세대’를 그린 노래다.
지금은 일본의 국민가수 대열에 들어선 가토 도키코는 도쿄대학 재학 중인 1965년 가수로 데뷔해 화제가 됐었다. 60년대말 도쿄대 학내집회에 참가한 그의 모습이 현장의 기자들에 의해 발견돼 대서특필되면서 또 화제를 불러 일으켰었다.
보도를 보고 도지사대학 전학련의 후지모토 토시오 의장이 집회에서 노래를 부탁했지만 거절했다. 그러나 이것이 계기가 돼서 사랑에 빠졌고 둘은 후지모토가 방위청 습격사건으로 수감 중이던 1972년 옥중결혼을 해 또 화제가 됐었다.
‘가끔은 옛 이야기를’은 이렇게 시작한다. “언제나 들르던 단골카페 / 마로니에가 창밖으로 보이던 /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보냈지” 남의 나라 노래 같지 않은 가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흔들리는 시대의 열기에 휩싸여 / 온몸으로 순간을 만끽했지 / 그랬었지…”
무언가 아련한 그림이 떠오른다면 보다 선명하게 그려보자. “모두들 갈 곳이 없었기에 (…) / 작은 하숙방에 몇 명이나 밀어닥쳐서는 / 아침까지 떠들다 잠이 들곤했지 / 폭풍 치는 매일이 불타고 있었기에 / 숨이 차오르도록 달렸었지 / 그랬었지”
너무 후일담스럽다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게 87년 당시 전학련/공투 세대의 솔직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운동이 막을 내렸다고 사람들까지 무대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 있는지 지금은 알 수 없는 / 친구들도 많이 있지만 / 그 날의 모든 것이 헛되다고는 / 아무도 말할 수 없어 / 지금도 그때처럼 / 이루지 못한 꿈을 그리며 / 계속 달리고 있을 거야 / 어딘가에서…”
2007년은 유월항쟁 20주년이 되는 해다. 우리들의 항쟁은 지금도 이루지 못한 꿈을 그리며 달리고 있을까?
후지모토 도시오는 운동권에 염증을 느끼고 귀농을 했다가 2002년인가에 사망한 걸로 알고 있다. 어떤 분의 글에 그렇게 나온다. 그 이후에 이 노래를 부를 때는 마지막 구절이 각별한 느낌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가토 도키코 하면 나카모리 아키나가 부른 ‘난파선’의 원작자라는 점도 얘기를 하게 된다. 1984년에 낸 곡인데 1987년에 나카모리 아키나가 커버했고 뭐 늘 그렇듯 대히트…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 본인이 부르는 버전도 들을만 하다.
단편소설을 써보면 어떨까. 친구들이 4년 만에 만났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외식보다는 집에서 파티를 열기로 했다. 언택트이코노미의 트렌드에 맞추어 음식을 배달시키기로 했다. 채식전문점을 고집하는 친구와 고기를 꼭 먹어야 하겠다는 친구가 맞섰다. 채식을 꼭 하겠다는 친구, 뭐든지 배만 채우면 된다는 친구, 안 먹어도 된다는 친구는 한 편이 됐지만 고기를 먹고 싶다는 친구가 고집을 부려 합의가 불가능했다. 결국 배달을 따로 따로 시키기로 했다. 채식주의자 친구는 속이 매우 쓰렸다. 저 놈 때문에 또 고깃집에 돈을 주게 생겼군… 고기를 좋아하는 친구도 마음이 상했다. 너 같은 것 때문에 채식이니 뭐니 유난 떠는 애들이 늘어 나잖아… 하지만 음식은 한 바구니에 담겨져 배달되었다. 번호만 달랐지 사실은 한 집이었던 것이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정봉주 전 의원과 손혜원 무소속 의원이 이끄는 열린민주당에 합류해 4월 총선에 비례대표 후보로 나선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 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된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재임 기간 법무부에서 검찰개혁추진지원단장을 맡았던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도 열린민주당 소속으로 비례대표 선거에 출마한다.
열린민주당은 20일 당내 비례대표 경선에 나설 20명의 출마자 명단을 발표했다. 김의겸·최강욱·황희석 이외 남성 후보는 손혜원 의원의 보좌관을 한 김성회 정치연구소 씽크와이 소장, 서정성 광주남구의사회장, 안원구 전 대전지방국세청장, 조대진 법무법인 민행 변호사,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 황명필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국민소통특별위원 등 9명이다.